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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의 벽돌로 우뚝 솟아있는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거대한 왕궁. 여느 날들과 같이 고요함 속에 사람들의 비명을 감춰 거짓된 평화를 연기하고 있었으나,

그 소리없는 아우성에 금이 가는 듯. 성인 남성만한 은색의 직사각형 원반이 창문을 깨고 빠져나온다.



휘우우웅ㅡ



'....나를 추적한다면 마을에 계속 있는 것도 위험하다. 어서 빵빵이에게 알려 거점을 옮기는 게 좋겠어.'



목에 찬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잊은 채 창공을 가르며 남쪽으로 향하는 커다란 양철 쟁반 위에는 강현성이 타고 있었다.

타고 있다고 해야 하나, 거의 떨어지지 않으려 꼭 붙들고 있는 것이 매달려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아 보였지만.



.....



"캐서린!!!!!"



마을 외곽에 위치한 작은 오두막.

하나뿐인 아담한 굴뚝에서는 이맘때 쯤 연기가 피어오르고, 구수한 버섯 스프 향기가 지겹도록 코를 찔러댔으나 오늘은 달랐다.

연기도, 냄새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



평소와 달리 마을 쪽에서도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위화감과 숙소에서 자신을 뒷담하는 캐서린의 작은 목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음에 다급히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현성.



"....안 돼..."



오두막 안의 모습은 참담했다.

깨진 유리병과 부서진 목재 식탁, 찢어진 벽지와 나무 마루바닥은 맨발로 밟고 다녔다간 발가죽을 찢어발길 정도로 파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캐서린의 모습도 역시...



'.....도적 떼라도 든 건가, 크게 저항한 흔적은 많지만 혈흔은 보이지 않는다. 도망친 거겠지...'



거실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오두막의 작은 거실을 둘러보며 핏자국이 없음에 안심한 현성은, 캐서린의 방 안을 마저 둘러보는데 그곳은 거실과 달리 혈흔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이불로 덮혀진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침대에 엎어져 있었다.

사고 현장을 어지럽히는 일은 현성에게 있어서 금기시 되는 것 중 하나였지만, 혹여나 캐서린의 시신이라도 누워 있는 것인가 하는 불안한 마음에 다급히 이불을 걷어내는데...



"....뭐냐 이건...지금 장난하는 건가."



이불 안에서 피를 흘린 채 차갑게 식어가는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캐서린이 아닌 서큐버스였다.

언짢은 불쾌감과 안도감에 방 안을 다시 살펴볼 수 있게 된 현성은 흥건한 핏자국은 모두 이 서큐버스와 관련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자신이 만들어두었던 철제 인형. 페데아가 골렘이라 칭한 그것들이 반파된 채 벽에 처박혀 있거나 바몸이 찌그러진 채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신기한 점은 골렘들의 한쪽 손이 검처럼 날카롭게 변해 있었고, 피가 묻어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대체..."



서큐버스들의 공격이라면 캐서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녀들의 말 그대로, 그 탐욕스러운 꼬리 주둥이로 캐서린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서 통채로 집어삼킨 것이라면?



콰앙ㅡ



문짝을 부수듯이 열어재끼고서 곧장 마을로 달려가는 현성.

현대 한국에서도 실종된 사람을 찾는 데엔 수많은 인력과 기술이 동원되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있는 세계는 좋게 쳐봐야 중세 시대의 기술력을 가졌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그렇게 믿고 아끼던 다이아몬드 캐슬 비서실 팀원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모험가 길드에 큰 돈을 걸어 의뢰를 하러 가는 것이다.



"....맙소사....여신님...이게 뭡니까..."



현성의 뜻대로 되는 일은 유감스럽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마을에 도달했을 때 마을은 이미 무언가의 침략이라도 받은 듯 이곳 저곳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가 처음 이 세계에 발을 들였던 그곳,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과 같이.



'마물들이...여기까지 들이닥쳤단 말이야...?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아니, 그 놈들이라면 오히려 이 일을 마물들에게 사주했을 수도 있겠지.'



왕궁에서 목격한 더러운 광경을 토대로, 이곳에서도 서큐버스들이 공습을 해왔다는 것을 추측하는 현성.

다 무너져가는 마을임에도 혹시나 생존자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려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길드로 향한다.



.....



끼이이익ㅡ



"...거기 누구 있습니까."



두 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하나는 어디로 갔는지 뜯어져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힘겹게 문틀에 매달려 곡소리를 내고 있는 모험가 길드의 문을 느리게 열고 주변을 경계하며 발을 들이는 현성.

자신이 타고 왔던 양철 원반을 조각내어 날카로운 여러개의 쇳조각으로 나누고서 자신의 주변에서 부유하게 하였다.



"....모험가 님...?"



그리고, 그가 발걸음 소리를 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 안내 데스크 밑 마루바닥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험가 님...강현성 님 맞으시죠...?!!"



곧이어 마루바닥이 열리고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린 여종업원, 프레데리카가 울먹이며 그에게 두 팔을 벌린 채 달려와 안겼다.



"흐아아아앙~"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일단 울지 말고 사건의 전후를 말해줬으면 좋겠네요."


"히끅...그게에....푸헤에에엥~"



현성이 프레데리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현성을 무시하는 말투를 숨기지 않았지만, 모험가가 되고 의뢰를 마친 자신에게 보수를 건넬 때마다, 날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던 그녀가, 이렇게나 구슬프게 우는 이유라고 함은...



'....주변 사람들이 다 죽은 거겠지. 그것도 눈앞에서.'



...20분 정도를 그녀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프레데리카를 꼬옥 안아준 채 등이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현성.

상냥한 손길과 목소리와는 달리, 그의 눈을 보아하니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오는 듯했다.



'.....이렇게 감성적이어서야, 어디 제대로 살아갈 수나 있을까. 정말 귀찮아 죽겠군..'


"모험가 님....저 이제 어떡해요....?"



한숨을 들키지 않으려 얇고 긴 숨을 내쉬는 현성의 귓가에 프레데리카의 서글픈 목소리가 떨리듯이 간질여왔다.



"....제게 말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식간이었어요... 갑자기 마을 곳곳에 서큐버스들이 들이닥쳐서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강간하고...꼬리로 사람들의 머리부터 잡아먹어버리고.....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저 때문에.....저 때문이에요...."


"....왜 당신 탓이라 자책하는 겁니까. 당신 탓이 아니에요."

'...내 탓이겠지...'



현성은 자신의 옷소매를 끌어당겨 프레데리카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녀의 감정이 고조되지 않게끔 진정시키려 들었다.

프레데리카의 귀가 쫑긋거리더니, 현성의 얼굴을 지그시 올려다본다.

눈물이 망울망울 젖어 있는 그녀의 눈에 현성은 어떻게 보인 것일까.



"....안젤리카 언니는 저보고 마루바닥 아래에 숨어 있으라고 그랬어요...자기는 사람들을 대피시킨 후에 찾아오겠다고..."


"...그런데 만나지 못한 거군요."


"....꼬리가 사람 몸통만한 서큐버스가...제가 보는 눈 앞에서..안젤리카 언니를 통채로 집어삼켜버렸어요....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꼬리를 통해 알 같은 게 나오더라고요...?"



말을 이어가던 프레데리카의 호흡이 가빠지고 다시금 눈물이 핑 돌아 말하기를 주저한다.

좋지 않은 기억이 상기됨에 따라 쇼크를 일으킬 수 있기에, 현성은 그녀의 손을 꼬옥 잡고서 그녀가 이성을 잃지 않게끔 계속해서 따스한 말을 건넨다.



...



"....그 알에서....안젤리카 언니와 똑닮은 서큐버스가....흐윽...흐에에에에엥ㅡ"


'종족 번식을 그렇게 하는 건가. 정말 역겨워 죽겠군...아니, 잠깐...천사 혼혈 중 남자 아이는 종마로 쓰고 있다면서...종족 번식 방법이 하나가 아닌 거냐...'



좆같은 생각을 계속 하다보니 슬슬 머리가 아파오는 현성.

어떻게 하면 마약을 들키지 않고 들여오고 팔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칼날과 납탄이 휘몰아치는 그림자 속 어둠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가 지금은..

남성의 정액으로 연명하는 별 괴상한 신화속 악마들의 번식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신의 꼴이 여간 기합이 아니었던 것이다.



"...후....."


"다 저 때문이에요오ㅡ 제가 강했더라면 안젤리카 언니도...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ㅡ"


"....울지 마세요."


"후에에에엥ㅡ"



현성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잡더니 복숭아처럼 붉게 달아오른 부드러운 볼살을 타고 하염없이 구슬피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프레데리카의 양 어깨를 붙잡고서 그녀를 매몰차게 밀어붙였다.



"울지 말라고!!! 언제까지 울기만 할 거야. 울면 죽은 사람들이 돌아와?? 마물이 되어버린 안젤리카가 돌아오냔 말이야!!!"







"...히끅....흐잉...갑자기 왜 그러세요...모험가 님..."



프레데리카는 화들짝 놀라서 터져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아가며 현성을 올려다보았다.



"...복수해야 할 거 아니에요...그러니 울지 말고 저와 얘기를 좀 해요."


"...저는 힘이 없어요....제가 지금부터 열심히 훈련한다고 해도...모험가 님처럼 그렇게 강해지려면 십 년은 더 걸릴 거라는 걸 잘 아는데....제가 무슨 수로..."


'...현실을 잘 아는 건지...의지가 없는 건지 모르겠군..'



현성은 자신을 향해 역으로 성을 내기 시작하는 프레데리카에게 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는.....너무 나약하잖아요.....그 누구보다 더 잘 안단 말이에요..."


"....제가 있잖아요."


".....네?"


"조금 전에 말했듯, 제가 있잖아요. 그 역겨운 마물들에게 복수하는 거, 제게 부탁하면 되잖아요."


".....모험가 님도 설마..."


"..그래요. 저와 함께 다니던 아이.. 그 녀석도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마물들 손에."


"히이잉...불쌍해서 어떡해...진짜아.... 혼자서 약초 캐는 의뢰도 잘 못하던 애였는데에ㅡ"


"또 울려고 하네, 울지 말고 제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해주세요."


"...네에..."


"이 세계에 있는 마물들의 종류, 그것들의 주 서식지나 군락 등, 그리고 왕국의 군사 제도 및 기사단장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모험가 님...대체 뭘 하시려고..."



현성의 눈을 바라본 프레데리카는 나지막히 물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무언가를 품고 있는 듯한 그의 눈이었으니까. 하지만 열정, 용기, 희망, 이런 같잖은 감정으로 불타올랐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현성. 그의 눈은 조용히 칼날을 품었을 뿐이다.



.....



프레데리카에게 대부분의 정보를 알아낸 강현성.

그와 이야기를 하며 프레데리카 역시 조금 용기를 되찾은 듯하다.

강현성의 능력의 일부를 보여주며 그녀에게 희망의 불씨도 함께 보여준 셈이니.



"..그럼...모험가 님.. 당신에게 정식으로 의뢰하겠습니다."



프레데리카는 안내 데스크 캐비넷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바닥에 떨어진 깃펜을 주워 무언가를 정성스레 적기 시작했다.



"...기한은 없어요. 다만...반드시...복수해주세요...그리고...안젤리카 언니가 변한 서큐버스는...."


"...고통 없이 보내달라는 말인가요. 사실 그렇게 따지면 대부분의 마물들이 인간이 변한 게 아닌ㅈ


"분위기 깨지 좀 마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끼이익ㅡ 쿵ㅡ



길드의 하나 남은 문짝이 열리던 도중 더 이상의 힘을 지탱하지 못하고 떨어져버렸다.

강현성은 멋쩍은 듯 뒤를 돌아봤으며, 프레데리카는 울어서 팅팅 부어버린 눈과 환한 미소로 그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안부 인사를 전했다.



'.....일단 뱀파이어부터...묘지로 가는 건가..'


'부디...모험가 님이 무사하시기를...'



철의 용사 강현성. 그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ㅡㅡㅡㅡㅡ



나도 이세계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