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물들이 사실 인간 남성을 매우 '성적인 의미로' 잡아먹기 좋아한다는건 교단 수뇌부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있고 정보통제중임.

대부분의 말단들이나 민간인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세계관임.

그리고 마물들의 나라나 공존하는 나라가 훨씬 더 번화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정보통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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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월 00일 

오늘은 드디어 의뢰가 들어온 교국 서쪽 변경 마을에 도착했다.

국경 지대인 이 마을을 반나절만 나가면 마물들이 인간을 도륙하고 갈기갈기 찢어 잡아먹는 마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최근 마을들 주변에서 수상한 발자국이 나타난다고 조사 및 필요시 토벌을 의뢰한 것은 마을의 촌장이었다.

마음 고생이 심한 것인지 며칠 간 잠을 못자 눈이 퀭한 촌장이 나를 반겼다.


X월 XX일

마을 주변에서 보이는 발자국들은 웨어울프 무리의 것이었다.

교단 대사제인 스승님께 수련받을 때, 놈들은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지휘 체계가 잡힌 조직을 이루며 

일사불란하게 사냥을 하는 영악한 놈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발자국을 분석해본 결과 다른 녀석들보다 늘 앞서 걷는 보폭이 더 큰 녀석의 발자국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놈이 이 무리의 리더인 모양이다. 

조사 결과를 촌장에게 전해주자, 늙은 촌장 부부는 어린 손자 한스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마물들은 잔인하게도 젊은 남성들을 납치해서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

이런 험한 세상에 여인들, 노인들만 남아서는 뒷일은 뻔하다. 

번화한 교국의 수도에서도 빈민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노인과 여인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 마을은 마물들이 그렇게 만들게 두지 않을 것이다.


II월 IIII일

조사 이래로 쭉 놈들의 행동반경과 이동경로에 함정을 설치해두었으나 성과는 없다. 

다만 함정 주변에 흔적들은 있었다. 흔적들은 명백히 나를 조롱하는 느낌이다.

고기를 걸어둔 함정들은 고기들만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뭔가 달큰하고 끈적거리는 액체들이 함정에 잔뜩 묻어있었다.

처음에는 오줌이라도 갈겼나 했는데 오줌과는 다른 느낌의 액체였다.


아무래도 마물식의 영역 표시를 한 것이 아닐까?

어쨋든 접근 방식을 바꿔야한다. 놈들의 우두머리는 생각보다 똑똑한 놈인 모양이다. 더 이상 함정은 유효하지 않다.

나는 스승님께 하사받은 야전용 개인 무장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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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가는 숲 속은 빠른 속도로 어두워졌다.

나는 한 손으로 단단히 검을 붙잡고 숲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단에서 받아온 성수에 적신 검과 화살들, 

그리고 밖에서 봤을때는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매달아 둔 교단 특제 신성력 폭탄이 발걸음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여차할 경우 최대한 많은 웨어울프 무리를 끌어들여서 자폭할 계획이다. 

그것이 교단의 전사이자 마물 토벌이라는 신성한 의무를 부여받은 나의 사명이 틀림없다.

나는 그런 비장한 생각을 하며 숲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이동하였을까, 숲 안쪽에서 무언가의 기척을 느낀 나는 발소리를 죽인채 접근하기 시작했다.

'캥..끼잉..크릉...' '질꺽...질꺽..'

마물의 울음소리다! 나는 검자루에 손을 대고 언제든 뽑을 준비를 마치고 조금씩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다보니 뭔가 기척이 이상했다. 

웨어울프 외에도 하나의 기척이 더 느껴졌다.

'한스?'

놀랍게도 촌장의 어린 손주인 한스 녀석이었다.

한스는 웨어울프 아래에 깔려서 발작하듯 허리를 부들부들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 마치 웨어울프에 깔려 뜯어먹히는 희생자의 단말마로 보였다.


나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쳐나갔다.

"제기랄! 한스! 이 괴물 녀석!!!! 죽어라!!!!"

"캥?"

한스를 잔혹하게 뜯어먹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웨어울프 녀석은 새로운 인물의 난입에 당황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이놈을 빠르게 해치워버리고, 한스를 데리고 우선 퇴각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놈의 목으로 칼이 날카롭게 날아드는 순간.

"크르릉!" '퍼억'

옆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강타했다.

"크헉!"


다행히 갑주로 보호받고 있어 큰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몇 바퀴 옆으로 굴러 머리가 어질어질 거렸다.

흔들리는 시야에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포식자처럼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달빛을 뒤로 해서 정확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나뒹굴고 있는 랜턴 불빛에 희미하게 비친 모습이 최소한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였다.

그리고 탄탄한 근육과 날카로운 손톱이 인상적인 팔과 다리. 틀림없이 이 놈이 무리의 우두머리다.


놈을 살피던 나는 순간 한스의 머리만한 둥근 그림자 두 개가 놈의 흉부에서 출렁이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알겠느냐? 놈들은 인간 남자를 사냥할 때 남자가 방심하기 쉬운 미녀의 모습으로 위장을 하고 사냥한다.'

'하지만 놈들이 인간 남성을 갈기갈기 찢어서 잡아먹는 흉포한 야수들이라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것이야.'

'놈들의 환술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린 나는 고개를 한 두번 저어 그 거대한 것에 대한 것을 머리 속에서 털어내고,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고 칼을 다시 쥐고 놈에게 대적했다. 놈은 내가 당당히 마주보자 왠지 기뻐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놈들도 나름대로 전사의 긍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일까.

시야 한구석에서는 나와 우두머리의 싸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탐욕적으로 한스를 뜯어먹는 웨어울프의 모습이 보였다.


'제길... 시체라도 반드시 촌장에게 데려다 주마 한스...'

그것도 어렵다면 최소한 여기서 놈은 반드시 저승 길동무로 삼아주마..

나는 품 속의 신성력 폭탄을 왼손으로 한번 쓰다듬은 뒤, 함성을 지르며 놈들의 우두머리에게 달려들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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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교단에서 서쪽 변경 마을로 파견 온 마물 사냥꾼의 운명은?

폭발사산 엔딩이냐 합동 결혼식 엔딩이냐?


그리고 한스는 납치된 것이 아니라 마을 밖에서 놀다가 눈맞은 웨어울프 누나를 따라 제발로 왔다고 합니다.

요 발랑까진 놈.





인간들만 개심각한 시리즈 1 크라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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