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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이 푹신한 비단 이불에 싸여 있는 아기들의 맥을 짚었다. 

그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안절부절못하며 의원에게 물어보았다. 




"어, 어떻습니까? 무슨 병인지 좀 알겠습니까?"




의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기들의 맥을 여러번 다시 짚어보고, 귀를 가슴팍에 대고 숨소리도 들어 보았으나 결국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한양에서 의원 생활만 20년째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남자는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옆에 서 있던 그의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루아침에 두 아들이 모두 죽을 병에 걸리다니. 


비단에 감싸인 채 바닥에 누워 있는 아기들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숨도 쉬지 않는 듯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얼핏 보면 죽은 거나 다름없어 보이는데, 맥은 여전히 뛰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한양 최고의 의원들도 병의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고, 이를 대체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원래 몸이 좋지 않았던 그의 장인은 두 손자를 본 뒤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얼마 전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내에게도 청년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으나, 대를 이을 아들들이 두 명이나 있었기에 그나마 슬픔을 줄일 수 있었고, 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귀하디 귀한 두 아들이 둘 다 죽을 병에 걸려버리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지면 큰일인 것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눈애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두 아들이 모두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그는 슬픔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두 아들의 차가운 이마를 손으로 매만지며 울먹였다. 




"대체... 대체 왜 이런 일이...? 이 어린 것들에게 대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저... 혹시 제 소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의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고, 청년은 의원을 바라보지도 읺고 절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숨은 쉬지 않는데 맥은 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 병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세상의 병이 아니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의원은 청년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말은... 이것이 혹시 신병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병을 치료할 의원이 아니라, 굿을 할 무당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사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몹시 용한 무당이 한 사람 있습니다. 

예전에 그 사람이 큰 상처를 입었을 때 제가 치료해 준 적이 있는데, 그래서 제가 부탁한다면 그 사람이 찾아와서 아이들을 살펴 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혹,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그 사람을 불러 보시는게..."




굿? 무당? 그리고 신병이라고? 


전부 터무니없는 괴력난신이 아닌가? 


청년은 유교를 공부한 사람으로써 그런 것들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고, 의원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토록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것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지금 물에 떠 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굿을 해서라도, 무당을 불러서라도 아이들의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선택권도 없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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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죽을 지경이구만, 아니오?"



"뭐, 뭐라고?"



"당신 두 아들 말입니다. 이상한 병에 걸려서 지금 죽을 지경이란 말이오."




무당은 청년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내뱉듯 말했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젊은 무당의 두 눈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것 같아 보였다. 




"그, 그걸 어떻게? 혹시 그 의원이 알려 준...?"



"흥, 안 봐도 뻔하지 뭐. 집 전체에 이렇게 안 좋은 기운이 가득한데 내가 그것도 모를까봐?"




무당은 집 안으로 그 이상 들어서지도 않고 마당에 그대로 서서 청년만 죽일 듯이 노려보고만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공격적인 무당의 태도가 청년은 당혹스러웠다. 


잠시 뒤 집 안으로 들어온 무당은 죽은 듯이 누워있는 두 아이를 보자마자 피식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하, 이거 보통 재앙이 아니로구만. 신의 분노를 단단히 샀소. 이건 굿으로도 안 되오."



"그건 무슨 말인가? 신의 분노라니?"



"주인양반, 당신은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습니까?"



"걸리는 일...?"




무당은 두 눈을 갸느다랗게 뜨고 청년을 노려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 불꽃이 파박 하고 튀는 것 같았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어긴 적 없느냔 말이오."



"야, 약속이라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나 보군. 분명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있었을 텐데."




청년은 잠시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얼굴이 새파래지고 말았다. 




"하, 얼굴빛이 변한 거 보니 찔리는 구석이 있긴 한가 보구만."



"그, 그건 말할 수 없는 일이오. 사적인 일이란 말이오."



"아, 그러신가? 그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하나 다 읊어줄까?"




무당은 계속해서 청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일단 마님은 다른 방으로 보내시는게 나을 거요. 그렇고 그런 사적인 일이라면야... 주인마님이 듣게 놔둘 순 없지 않소?"




그 순간 청년은 이 무당이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서, 서방님..."



"...미안하오. 하지만 잠시만 다른 방에 가 있어 줄 수 있겠소?"




아내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남편의 명령을 따랐다. 

그녀가 방 밖으로 나가고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무당은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했다. 




"고향에 두고 온 사람이 있군. 

어렸을 때부터 내내 함께 지낸 사람이야. 

그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군. 

아마 그녀가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겠지. 

힘든 마을 일을 돕지 않고서는 먹을 걸 구할 수 없는데 그런 일을 하면서 동시에 공부를 마음껏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무당은 뒷짐을 진 채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기 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운 방식으로 말을 쏟아냈다. 




"그런데 그 사람을 한 순간에 배신해 버렸군. 

그 사람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도 잊어버리고, 고향을 떠나기 전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도 저버리고 말이야.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군. 

여자에 대한 욕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에 대한 갈망? 

그것도 아니면 단순히 그 여자에게 질려서일까? 

이유가 어떻건 간에, 당신은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주던 여자를 헌신짝처럼 버려 버렸어."




무당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꼭 신이라도 들린 듯 흥분한 모습이었다. 

청년은 무당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찔려오는지 낯을 들지 못하고 무당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이건 당신이 버리고 온, 당신이 내쳐버린 그 가여운 여자의 복수요.

당신이 버리고 온 것이 이런 형태로 돌아온 거라고, 이해가 되오?"



"....."



"그러고보니 참 궁금하군.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그 여자를 버린 이유가 대체 뭐요?"



"...욕심 때문이었소."




청년은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한양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소. 

어기에서 다시 그 좁아터지고 더러운 깡촌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가슴이 답답해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단 말이오. 

그 와중에 과거에 합격하고, 마침 내 스승님이 준 편지에 적힌 장소를 찾아갔더니 내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 왔소. 

행운이었지. 나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소. 

너무나 욕심이 났고,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소. 

결국 나는 이곳에서 결혼하고 눌러앉은 거요."



"욕심? 욕심이라고...? 고작... 고작 그런 것 때문에... 그딴 거 때문에 당신을 기다리고 또 사랑해준 여자를 배반한 거요?"




그 말을 들은 청년은 고개를 쳐들고 무당을 노려보았다. 




"이보시오. 난 당신에게 무슨 도덕적 설교를 듣기 위해 당신을 부른 게 아니오. 

내 피붙이들, 저 불쌍한 아기들을 살릴 방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물어보려고 부른 거지...!!

더 이상 당신이 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소. 

저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 없다면 지금 당장 말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당신을..."




청년은 무당의 태도에 화가 나서 말을 마구 쏟아내다가 무당의 두 눈을 보고 순간 말을 멈추었다. 

그 두 눈 속에는 아까 전까지 서려 있던 청년에 대한 적대감 대신 허망함과 슬픔이 어려 있었다. 



뭐지? 왜 날 저런 눈으로 보는 거지? 




"...방법이 있긴 있소. 하지만 별로 마음에 안 들거요."


"저, 정말이오? 그게, 그게 뭡니까...?"




무당의 말에 청년은 아까까지 화내던 것도 잊고 무당에게 간절히 매달렸다. 

그런 청년을 보는 무당의 두 눈은 어느새 다시 분노와 적대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무당이 말을 계속하자,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청년의 두 눈에 희망의 빛이 돌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청년의 두 눈에 절망과 슬픔이 어리기 시작하더니, 무당의 말이 끝날 쯤에는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져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그렇소."


"다, 다른 방법은...?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없소. 그래서 할 거요, 말 거요?"




청년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무당은 그런 청년을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참 동안 흐느끼던 청년은 고개를 들고는, 비단에 싸여 바닥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자신의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삼키고는, 무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지금 당장 출발합시다."




무당은 절망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울기 시작한 청년을 내버려두고 먼저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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