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마지막 장을 넘기기 전까지는 어떻게 끝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마치 인생의 마지막 처럼


비로소 죽음에 이르면 마지막 장을 보며 깨닳게 되지 자신의 죽음을 말이야...



한 마을의 외진 곳에 리치 한명이 살고 있었어.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에 매력적인 몸매를 가지고 남들을 도울줄 아는 착한 리치였지. 하지만 마을 사람들 과는 다른 이질적인 외형과 죽음에 가깝다는 것은 그녀를 한없이 외롭게 고립시켜 갔어. 참 얄굳은 일이지?



그렇게 그녀는 산 중턱에서 홀로 자신의 연구에 매진하며 살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날, 산에 큰 비가 내리던 어느날 이었지. 조용한 그녀의 집에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나지막히 울려 퍼졌어. 



똑 똑 똑



그녀는 서둘러 문을 열었어. 그곳에는 비에 젖은 한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지. 그는 리치인 그녀를 보고 인사를 건냈지.



안녕하세요. 제가 산을 넘 다 큰 비를 만나서 무척 곤란한 상황인데,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신세를 질 수 있을까요?



그는 이 말을 건내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어. 리치는 서둘러 그를 집 안으로 들였고 따뜻한 목욕물과 식사를 대접해 주었지. 그리고 화롯불을 쬐며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배려하며 조심스레 말을 건냈지. 비가 와 추운 밖과는 다르게 둘은 따뜻한 밤을 보낼수 있었어.



다음날 비가 그치고 청년은 리치에게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건내고 마을을 따라 산을 내려갔어. 그런 청년을 그녀는 혹여 산을 내려가다 다치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어. 그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게 보이자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지



늦은 오후 리치의 집에는 다시 한번 노크소리가 울렸어.



똑 똑 똑



그녀가 문을 열자 아침에 마을로 향했던 청년이 고기와 싸구려 와인을 들고 서있었어. 그리곤



별 거 아닌 소소한 선물이니 받아주셨으면 해요.



그녀는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고 청년의 아쉬운 표정을 뒤로하고 문을 닫았지. 그리고 창문의 커튼 틈으로 청년이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자 그 앞에는 고기와 싸구려 와인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



리치는 그 와인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와 조금 맛이 보았어. 비록 싸구려 와인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어떤 와인보다 고급지고 깊은 맛이 느껴졌지.


하루 이틀...청년이 리치에게 보여주는 조그만 배려들은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녹여주기에는 충분한 온기였어.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고 행복한 시간이 이대로 멈춰 영원했으면 했어. 하지만 멈춰있기를 바라는 부부의 책장은 죽음 이라는 바람에 의해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마지막 장을 향해 넘어가고 있었지.


어느덧 천천히 넘어가던 청년의 책장은 마지막 장에 도달해 버렸어.


사고였어. 산책 중 발을 헛딛은 자신의 사랑을 구하려다 높은 산중에서 떨어져 버렸어. 그리고 그의 책은 이 일을 끝으로 더 이상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지.


누군가 보기에 청년을 행동은 무척 로맨틱하고 희생적이며 용기있는 행동 이겠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리치에게도 그럴까? 

그녀에게 그의 행동은 그저 이기적이고 부조리하며 

이해 불가능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지.


리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그가 구해준 목숨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할까? 아니면...자신의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책의 마지막 장에 도달하게 될까?


글쎄? 내가 보기에는 그녀에겐 아직 책장이 많이 남아있는것 같네...


리치는 그날 이후 끝나버린 책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동분서주 하기 시작했어. 그러면서 불법적인 일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어. 그럴수록 그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그녀의 책은 점점 처음의 빛나던 하얀색을 잃고 빨갛게 물들어 갔지.


어느덧 10년? 20년? 글쎄 확실한건 긴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책에서 새빨간 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실때 쯤 청년을 되살릴수 있었어.

청년은 자신을 되살려준 리치와 사랑의 포옹을 하며 기뻐했지.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의 이기심에 스스로를 망치고 다른 이들의 책을 빼앗아 불태워 버린 진짜 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닳았을때 기분이 어땠을까?


끝난 책을 이어가기 위해 이어져야 하는 다른 수많은 책들을 불태워 없애고 찢어냈다면?


아니 어쩌면 빼앗긴 책들은 그렇게 끝날게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린 알 수 없어. 마지막 장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오직 빼앗긴 자만이 알 수 있는 거니까.


응? 넌 누군데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글쎄 나는 어쩌면 되살아난 주인공 일지도 몰라. 


혹은 이 일에 처음 희생자로 모든걸 관망하고 있었던 걸지도. 


아니면 책장을 넘기는 바람 일지도 모르지


어쩌면...지금부터 시작 될 모든 이야기의 집필을 마친 작가 일수도 있겠네?


위의 사랑과 이기심에 점철된 하나의 연극을 집필 하는걸 즐기는 작가 말이야


그건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


그럼 너의 책은 어떨까?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그리고...어떤 마지막장을 보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