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반복)



따사로운 햇살, 북적이는 교실에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남학우들이 저마다 어디로 놀러갈 지 계획을 세우는 한 가운데, 책상에 걸터 앉아 반 내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을 느낀다.


땀방울이 송글 맺혀 뒷 머리를 묶은 여학생의 가느다란 목선을 타고 흐르는 것을 구경하며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 지 고민하는 나.


역시 매점에서 파는 빵을 데워 먹는 것이 나으려나- 그렇게 메뉴를 거의 결정했을 즈음에,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다.



' 다른 반 아이인가? '


남들과 섞이지 않고 홀로 우두커니 서있어, 친구를 찾으러 온 건가 싶어 잠시 바라보지만 그녀는 조용히 책상만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름표를 보려 해도 명찰은 달려있지 않았기에 누구인지도 모르고, 나는 금세 흥미를 잃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툭, 내 어깨를 치는 느낌이 나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 야, 너는 어디 놀러갈 데 없냐? "


" 나? 글쎄다……. "


햇살에 그슬린 구릿빛 피부가 유독 돋보이는 친구가 내게 여름방학 계획을 묻는다.


" 딱히 없으면 나랑 같이 바다로 놀러 가자. 곧 공부에 치여 살 텐데 이 때 아니면 여자애들이랑 언제 놀아보겠냐. "


친구의 제안에 귀가 솔깃 해지며, 가서 수영복 차림도 구경하고 수박도 깨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얼마 안 가 귀찮다는 생각이 슬금 슬금 바구니 속을 채운다.



" 역시 귀찮아. "


" 하이고 이 새끼… 그래, 안 가도 좋으니까 여자애 하나라도 놀러 가자고 좀 꼬셔와라. 남자 넷에 여자 셋은 그러니까. 부족한 인원 정도는 채워줄 수 있지? "


" 대신 매점 빵은 니가 쏴라. "


오냐, 하면서 손을 흔들고 무리로 돌아가는 친구. 적극적으로 주변인과 친해져서 반 애들이 서로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그다. 덕분에 대체적으로 조용한 나 또한 반에 소외되는 일 없이 모두와 면식은 튼다.



그럼 부탁받았으니 누구한테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내야 할까, 스윽 고개를 굴려 반의 여학생들을 둘러본다.


여학우들은 저마다 무리를 지어 어제 있던 일, 요즘 유행하는 노래 등을 주제로 조잘거리고 있었기에 저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하나를 데려온다는 것은 내게 있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대화를 쉽게 걸 만한 혼자 있는―― 아, 저기 한 명 있다.


아까부터 목석 마냥 한 책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 여학생이 너무나도 위화감 있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여학생들 사이에서 수다 폭격을 받고 싶진 않았기에 책상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간다.



" 안녕. "


" ……? "


갑자기 말을 걸 줄은 몰랐는 지 불렀음에도 살짝 느린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드는 그녀.


멀리서 봤을 때도 묘하게 주변이 푸르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피부가 매우 뽀얗다. 새하얀 우윳빛이 감돌면서도 창백한 느낌이 서려 주변이 시원해진 기분을 준다.



" 여기서 누구 기다리는 거야? "


" 아니…. "


" 그럼, 여기서 뭐 해? 우리반은 아닌 것 같은데. "


" 여기… 내 자리…. "


슥- 손가락으로 조금 전 까지 처다보고 있던 책상을 가리키는 그녀.


음? 반 친구들의 이름을 다 외우진 못해도, 최소한 어느 자리에 누가 있다는 정도는 기억하는 나는 그녀가 이 자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녀는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나름의 추리를 해 본다.


" 혹시 전학생이야? 다른 반과 착각했다면 내가 데려다 줄 수 있어. "


" 아니, 여기가 내 자리야. "


우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뭐라 대꾸하기가 힘들어진 나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본래의 목적이나 달성하기로 한다.



" 그래. 그럼 혹시 방학 때 시간 있어? 다 같이 바다에 갈 건데, 자리 하나가 비거든. "


" 바다…? 방학…? "


그녀는 무언가 벙 찐 표정을 지은 채, 내가 한 말을 곱씹으며 내게 다시 되묻는다.


" 음… 생각 없으면 무리해서 올 필요는 없어, 친구들이랑 여행 갈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마지노선이니까. 권해보는 거야. "


누군가에게 권유할 때는 한 발 빼고, 당위성을 강조하는 거라고 그 친구가 가르쳐 주었다. 많은 친구를 사귀는 화술이니 꼭 익혀두라며 귀에 딱지가 앉을 때 까지 말하기에 배운 기술이다.



" 친구…… 여행……. "


어째 그녀는 두 단어를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감상에 젖은 표정으로 구슬 같은 눈에 이슬 같은 방울이 맺힌다.


" 어, 어어? 왜 그래? 갑자기 말 걸은 게 싫었어? "


가끔씩이지만 여자들 중에선 내가 말을 걸었다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 경우는 봤어도 이렇게 우는 건 처음있는 일이다. 뭘 잘못했지?


" 여행…… 못 가봤어……. "


" 여행을…? "


친구랑 여행을 못 가봤다는 건가? 그렇다고 이렇게 울 일인가 싶지만… 아니, 단정은 짓지 말자.



" 으음… 그러니까… 여행 갈래? 재밌을 거야. "


어렵사리 꺼낸 제안에 그녀는 으으응, 고개를 저으며 거부 의사를 밝힌다. 갈 수 없는 이유라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대답해줘서 고맙다고 자리를 뜨려 했다.


텁, 그녀가 내 옷 소매를 잡고 나즈막이 중얼거린다.


" 못 가…. "


" 못 간다니? "


갈 수 없다는 의사표현은 아까 들었고, 지금 이 행위는 나를 보낼 순 없다는 뜻인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녀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나――― 지박령이야. "





" ………예? "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얼빵한 소리가 나온다. 어딘가 아프기라도 한 친구였나.


" 나는, 줄곧 여기에… 있었어. "


다시 아까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 하지만 거긴―― "


" 나도 알아. "


뒷 말을 잇기도 전에 답변을 하는 그녀. 어느샌가 그녀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라도 들어보자고 생각해 되묻는다.


" 지박령… 이라고 했지? "


끄덕.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시금 자세히 보니 그녀의 살결은 사람 치고는 창백한 피부인데다, 뒷 벽이 조금 비치는 듯한 투명한 몸을 하고 있었다.


" 어째서 지박령이? "


" 그건…. "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듣자하니 그녀는 몇 년 전, 적어도 내가 이 학교에는 없던 시절에 이 학교를 다녔으나 원인 모를 사고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어느새 이 교실에서 눈을 뜨고, 자리에 묶인 채 움직일 수 없는 지박령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 그 사고라는 거. 자세히 들을 수 없을까? "


" 기억이 안 나. "


기억을 떠올려 보기 위해 머리를 굴려가며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떨군다.


" 아냐, 무리해서 떠올릴 필요 없어. "


" …고마워. "


죽기 전의 기억이란 양초에 붙은 불이 꺼지는 것 처럼 날아가기 쉽다는 얘길 들은 것 같다. 적어도 무언가 단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 아. 혹시 이름이 뭐야? "


이름? 그녀가 고개를 갸웃 거린다. 설마 이름도 잊은 걸까 식은땀이 난다.


" 내 이름…… 내 이름… 소… 소라. 유소라 였어. "


" 유소라… 좋은 이름이네. "


응. 이름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기쁜듯이 웃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처다보다, 그녀가 마주보며 시선이 마주치자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져 고개를 홱 돌리고 말았다.


" 흠 흠. 이름을 알았으니 사건을 조사할 차례로군 왓슨. "


" 왓슨…? "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멋쩍게 셜록 홈즈의 흉내를 내보았으나 그녀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투로 되받아쳤다. 더 쪽 팔린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셜록 시리즈를 추천하기로 하고 잠시 그녀에 대해 수소문을 해 보았다.


학생 중에서 그녀를 알 만한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던 중 체육 선생님이 무언가 알 듯한 반응을 보여, 자세히 여쭈었다.



" 그 학생… 착실한 아이였지. 몸이 약해서 체육 시간은 항상 빠졌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애 였어. "


그 말을 시작으로 그녀의 학교 생활을 들어본 결과,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였다고 한다.


가해자는 주로 여성. 그녀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 조차 모르게 은밀히 물건을 훼손한다던가 몸 구석 구석에 화상 자국이나 흉터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고.


" 미리 알았더라면 조치라도 취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사고였지. "


" 사고요? "


" 어어, 그런데… 너는 왜 물어보는 거냐? 이름은 어떻게 알고? "


" 지인이었습니다. "


흐음, 그래. 적당히 넘겨 짚어준 선생님은 뒷 이야기를 마저 해주셨다.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꿋꿋이 다니던 그녀가 어느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급하게 병원에 실려갔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잔혹한 이야기다.



" 혹시 그 학생이 굴러 떨어진 건……. "


" 나도 수상하게 생각했지. 증거는 없었어. "


그 이후로 체육 선생님이 졸업할 때 까지 제 2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가해자들을 감시하였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 아무튼 얘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휘적휘적 손을 흔들어주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교실로 돌아간다.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어쩌면 모르는 편이 괴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자 창가를 바라보던 그녀가 소리에 반응해 뒤를 돌아본다.


" 알아냈구나. "


내 표정이 어두웠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깨질 듯한 유리창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들으면 후회할지도 몰라. "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각오는 되어있다고 말하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진실을 고한다.






" ……조금은 진정됐어? "


" …응. "


생전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내어 눈물을 닦게 했다.


자세한 경위는 무거운 책을 옮기던 중 가해자인 그녀들이 설치한 함정에 발이 걸려, 굴러 떨어질 때 무거운 책들이 머리로 쏟아졌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 지독한 짓을 한 그녀들에게 복수하고 싶지는 않느냐고 물었으나. 그럴 마음이 없다고 했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은 복수귀가 되어 여기 있지 않았을 거라고. 확실히 그랬다.


" 그럼,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는 알 거 같아? "


" 그건 잘…… 모르겠어. "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선 그녀는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 놀러 가보는 건 어떨까? "


응? 그녀가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본다. 이야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 하지만 난 나갈 수가…. "


" 날 믿어봐. "


슥- 양 손을 내밀었다. 마치 댄스 홀에서 여성에게 댄스 파트너를 권유하는 옛날 영화의 제스쳐 같았다.


" ………. "


그녀는 머뭇 거리며, 손을 내밀어 내 손 위로 포개었다. 양 손을 갈고리 처럼 만들어 슬며시 당겨본다.


그녀의 몸에서 푸른 빛이 감싸이다 이내 팡- 하고 터져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마치 밤하늘의 유성군 같았다.



둥실―



풍선을 끌어당긴 것 마냥 가볍게 끌려오는 그녀.


" 와아…. "


그녀는 자신이 자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보다, 공중에 뜨는 부유감에 더 감탄하는 듯 하다. 너무나도 신기해 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즐기도록 냅두었다.


그녀가 바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목 아래 부분의 틈새로 봉긋하게 솟은 언덕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처다보다가 고개를 든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시선을 피했다.


" 그런데 다들 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 너라고 해도 되지? "


" 응 상관없어. 참, 네 이름은? "


" 내 이름은 ―――이야. "


" 좋은 이름이네. "


싱긋 미소를 띠며 웃는 그녀. 공중에 떠서 휘날리는 부스스한 머리칼이 나름 귀여웠다.



" 아까부터 뭐하냐 너. "


" 엉? "


갑작스레 말을 건 것은 구릿빛 근육맨인 내 친구였다.


" 여자애 하나 꼬셔오라 했더니 이상한 짓이나 하고 있어. "


" 아, 그냥 좀…. "


얘기를 하면 망상병 환자라고 생각할테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어버버 거린다.


" 얘가 좀 칠칠치 못하지? 푼수 같은 놈이라도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좋게 봐줘. "


" 응? "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 거리는데, 이 녀석 그녀를 똑바로 처다보면서 말을 건네고 있다.


말을 건네받은 그녀 또한 놀라운 표정으로 땡그란 눈을 하고 있다.



" 너도 놀러갈 거지? "


" 으, 응…. "


묘한 기백에 눌려 당황한 채로 엉겁결에 대답하는 그녀. 나도 예전엔 저랬었지….


" 좋아. 이걸로 인원 충족이다. 아, 너도 와라. "


" 뭐? 나도? "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고개를 까딱이며 그녀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 네가 데려왔으니까 네가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


" 이 자식이…. "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나한테 맡겼구만? 어쩐지 나한테 시킨다 했다.


하지만 뭐――…



꼬옥.



내 뒤에 숨어 옷깃을 붙잡은 상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녀를 보면, 도저히 혼자 보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렇게, 나와 그녀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 공! "


" 공! "


" 칠! "


" 빵! "


" " " 으악!! " " "


" 또 걸렸다! "


" 아―! 왜 나만! "


다 같이 모여서 놀이를 한다. 하지만 벌칙 게임은 주로 내가 하게 된다. 이런 거에 약해서 가기 싫었던 건데.


" ――이는 어떻게 맨날 지냐. 그럼 이번엔 누구를 골라 볼까~ "


" 제발 이상한 거만 시키지 말아주라…. "


전에는 가슴팍에 1분간 얼굴 묻기 같은 걸 시켜서 쪽팔려 죽는 줄 알았다. 그 애랑 얼마나 거북했는지.



" 이번엔~ 너다! "


" ! "


웃으며 방관하던 유소라가 갑작스레 지목되자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게임을 너무 못해서 열외로 구경 중이었다가 이렇게 걸릴 줄은 몰랐나 보다.


" ――이, 소라에게 가서 뽀뽀 실시. "


" 뭣. "


너무 강도가 높은데 이건. 심지어 쟤는 처음 지목된 건데. 여학우들이 음흉한 얼굴을 한다.


" ……. "


그녀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얼굴을 앞으로 내민다. 묘하게 얼굴이 붉다.


으, 어쩔 수 없지.


쪽 소리나게 그녀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어째 얼굴이 더 빨개진 것 같다.



" 휘유~! 뜨겁다 뜨거워~! "


" …이제 됐지? "


" 어게이! 담판 가자! 이번엔 젠가다! "


젠가는 내가 그나마 자신있는 분야다. 복수해주마!


그러나 젠가로 농성전을 펼치다 종목을 바꾼 후 내리 패배를 거듭하며 여학우들의 노리개가 된 나.


유독 벌칙에서 유소라랑 엮이는 일이 많았지만, 그녀는 딱히 내색하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워터파크, 놀이공원, 카페, 노래방 등 등.


방학 동안 할 수 있는 놀이란 놀이는 다 해본 것 같다. 친구들과 놀 때 마다 그녀가 눈을 빛내며 신세계를 보았다는 듯이 기뻐할 때, 나 또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즐거웠던 여름 방학도 어느새 끝을 고하고, 우리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나와 그녀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교실에 마주본 채 앉아 대화를 나눈다.


" 요즘 유행곡은 좀 외웠어? "


" 응, 생각보다 많은 노래가 나왔더라. 몇 개는 부를 수 있을 거 같아. "


" 오늘 노래방 갈래? "


" 좋아. "


어깨에 가방을 매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나를 따라 둥둥 뜬 채로 따라오는 그녀.



" 그런데… 아직도 생각 없어? "


" ………. "


침묵.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으리라.


죽고난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부모님일 것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일 순 있게 되었지만, 내게서 멀어지면 투명해지고 나 이외에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가 부모를 만나고 싶다면 자연적으로 내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녀가 바란다면 나는 멀더라도 만나게 해줄 것이다.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고개를 살랑 저으면서 입을 연다.


" 만나고 싶어. 하지만… 난 살아있는 게 아닌 걸. "


" 네가 그렇다면야…. "


그녀 입장에선 몇 년 동안 죽은 줄 알았던 딸이 살아있다는 걸 부모가 알면, 집착하게 될 거라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했다.


" 미안, 너무 무거운 얘길 했네. "


괜찮아. 조용한 그녀를 데리고 노래방까지 가는 길이 조금은 멀게 느껴진다.


' 살아있는 몸이라. '


육체가 있다면…… 그녀도 조금은 용기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전공을 무엇으로 할 지 정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반 학생들 저마다가 어떤 진로와 전공을 배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그 사이에서 책상에 턱을 괸 채 사색에 빠진다.


요즘 기계에 관심이 부쩍 늘었다. 진로를 그쪽으로 정해볼까?


책상 서랍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낸다.


'안드로이드' 기술 관련한 정보와 디자인을 그려놓은 공책이다.






그녀는 꿈을 꾸었다.


유령이 되고 나선 꿈을 꾼 적이 없는데, 몸이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부유감에 빠진다.


검은 밤하늘에 수놓아진 형형색색의 별들이 그녀의 눈에 쏟아지는 듯 하다.


눈꺼풀이 무겁다.


천천히 눈을 뜨려하자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한 남성이 서 있었다.


그 남성은 뛸 듯이 기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런 남성의 얼굴을 나도 똑같이 따라한다.


나이가 들어 정돈되지 못한 그의 수염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거칠어진 그의 손이 느껴졌다.


" 어서와. "


" 다녀왔어. "


오래 기다렸지. 같은 말을 하며 서로의 이마를 맞댄다.


차가운 태엽소리가 따스한 고동소리와 맞물려 편안한 기분을 준다.



잠시만 이대로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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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 봐주는 몬붕이들 언제나 고맙다.

논야스라서 지워지진 않은 글이긴 한데...

아카이브 쓸 만큼 백업할 게 많지 않아서 하루 두 편 까지만 조금씩 올리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