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잘 알 수 없는 꿈을 꾸곤 했다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새에 올라타 하늘을 누비거나

보석으로 치장된 고래의 등 위에서 망망대해를 지켜보는 꿈

영문 모를 꿈이지만 너무나도 자유롭고 즐거운 꿈

그러나 별이 지고 해가 떠올라 꿈이 서서히 스러질 때 쯤

뒤숭숭한 기분을 안고 또 다시 같은 아침을 맞게 되었다




"오랜만에 또 이런 꿈인가"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컴퓨터를 키고

마우스로 인터넷 방송, 동영상 플랫폼들을 뒤적이며

키보드에 손을 얹는다




"어디 안좋아?"

"!"

부드럽게 이마를 쓸어내리는 손길

누구지?

"안좋은 꿈이라도 꾼 모양이네"

"저기.. 누구..세요?"

"하하, 잠이 덜 깬 거야? 아님 농담?"

고양이귀가 달린 여자가 장난스레 내 볼을 찌른다

"이상한 머리띠를 한 여자가 보이는 걸 보면 아직 꿈인가"

"이상한 머리띠? 자꾸 이상한 말 하지마. 어디 안좋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여자

그에 반응하듯 한쪽 귀가 접힌다

접힌다고?

"잠깐 그 귀.. 귀가"

"귀? 귀신이라도 본 거야? 그런 거 안믿는다며"

"아니 그 귀 방금 접혔..?"

"응? 귀야 당연히 접히지. 아 사람은 대부분 못한댔지. 그런데 이게 이제 와서 그렇게 놀랄 일인가?"

네코미미 헤드폰 같은 걸 떠올리던 나는 귀 옆에 아무런 띠나 머리핀 비슷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 근데.. 그쪽은 정말 누구시죠?"

빠르게 굳어가는 여자의 표정

"농담이 너무 심했어. 정말 화낼 거야?"

"아..아니, 정말 난 그쪽이 누군지 모르겠는데요? 집에 여자는 커녕 친구도 초대해 본 게 언젠지 기억 안 날 정돈데.."

벌컥

"주빈아! 지윤이도 왔는데 언제까지 방에 있을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의 모습

분명 기억 속 그대로다

지윤이가 대체 누군지 모르겠다는 것만 빼면

"어..엄마, 여기 이 사람 누구에요? 일어났더니 눈 앞에.."

"응? 얘가 대낮부터 넋이 나갔나. 지윤이잖아, 지윤이!"

"엄마, 내가 여자랑 연이 없는 거 누구보다 잘 아시.."

"이렇게 예쁜 애가 주말마다 깨워주러 오는데 넌!"

"네?"

그런 행복한 인생을 사는 인싸새끼는 대체 누구죠 어머니

"아무튼 나와서 밥 먹어! 지윤아, 못난 아들놈 봐줘서 고마워~"

다시 방에서 나가는 엄마

"아뇨, 그렇게까진.. 헤헤.."

속삭이듯 말하며 앞의 여자(지윤?)가 기쁜듯 웃는다

고양이상이라고할까 고양이 그 자체인데도 강아지같은 느낌

아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고

"그..그러니까, 저, 지윤씨? 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까부터 자꾸 왜 그러는 거야? 진짜 어디 아파?"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대뇌가 아프다

"저야말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거든요.."

"그런..끅, 장난, 히끅, 치지마.."

갑자기 울먹이는 지윤씨

이거 내가 울린 건가? 미치겠네

"저, 저기 미안해요. 근데 정말 저도 지금 이게 어떻게 된건지.."

"...정말 아무 것도 기억 못하는 거야?"

"그... 제 기억 상 일생에 여자랑 허울없이 지내본 적은 없어요. 지윤씨처럼 예쁜 사람이랑은 더 그렇고.."

정말 필터 없이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와중에도

호감이랑은 거리가 먼 말들을 내뱉는 거 보니

일단 난 내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예쁜 사람.."

그래도 칭찬은 기분 좋았나보다

"이..일단 엄마가 기다리니 밥부터.."

"응, 먹고 나서 마저 얘기하자"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테마나 요소는 많지만

글이 길어지면 모든 것이 뒤엉켜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느낌이다

짧은 글을 쓰려고 해도 묘사에 치중해 늘어지지 않기가 힘들..

"자서전인가요? 가명과 가상인물이 등장하는 자서전이라니, 이계의 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던가요?"

불청객이군

"젊어서 여복이 없던 것은 맞네만, 자서전이 아니라 소설일세"

"오늘도 그런 삼류 소설이나 끄적이고 계시는군요"

"그래도 한 사람의 창작물인데 말이 심하군, 옐레나"

"창작물이라니, 원초적 욕구가 버무려진 단어 뭉텅이가요?"

"기쁜 상상을 글로 옮기고, 독자와 그 느낌을 공유한다. 그 무엇보다 즐거운 창작행위지. 실시간으로 소통도 할 수 있으니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고."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마법재능과 그 마법으로 번 수명 수백 년을 고작 다른 차원에 대한 로망 하나로 싸그리 날려먹으신 분다우신 감상이군요."

"흠흠, 이계의 기술은 정말 대단하더군. 세계 대부분을 새로운 추상적 세계로 엮다니. 하지만 기술보다도 더 대단한 것은"

"이형의 존재에 대한 상상력이라구요?"

"그래. 그 쪽 세계는 분명 인간종만이 지능과 사회를 가지고 사는 곳인데, '아인종'에 관한 이야기가 놀라울만큼 넘쳐나지. 저쪽이라면 이 곳에서 기피되는 자네라도 좋아해줄 사람이 많을.."

어깨를 살짝 치곤 자기 말을 시작 하는 옐레나

"그런 호감 필요 없습니다. 애초에 이런 반푼이 잡종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주인님같은 별종 밖엔 없으니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지켜보건대, 이 곳 친구들은 고작 피부나 눈동자가 좀 특이하다고 다른 이를 무작정 공격하지 않을 위인들인데. 하하하!"

"...모두가 그렇게 말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절 버렸죠. 이계가 어떤 세상이든 간에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할 것이라 하신 건 당신입니다."

"좋은 것만 닮을 수는 없는 법이긴 하지. 이들도 누군가를 단순하고 불합리한 이유로 기피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들이 자네의 그 모습 자체를 긍정할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확실하네"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

"상처입고 방황하던 자네를 처음 이곳에 들였던 때, 내가 자네에게 이곳에서 같이 지내자고 했을때,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청혼했을 때..."

"...?"

"자네는 내게, 나 이외에 자네를 긍정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내 말을 받아들이겠노라고 했지. 지금까지도, 앞의 둘은 몰라도 청혼만큼은 꼭 그래야한다고 하면서 여태 거절하지 않았는가?"

"그..게"

"물론 나도 머저리는 아닐세, 자네는 그저 자신이 없었던 게지. 상처를 곱씹으며 스스로 무너져있을 뿐이야. 하지만 그렇기에 이계의 연구에 더 몰두한 걸세. 자네가 미움받고 상처받지 않아도 될 세상을 위해.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더군."

"..."

"그럼에도 난, 당신에게 청하네. 지금까지 함께한 것처럼 함께하세. 어느 하나 변하는 것은 없겠지. 다만 나와 당신이 그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변할 게야. 더욱 견고하고 더욱 굳세게."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악마와의 잡종 나부랭이인 제게.. 당신과 동등히... 행복할 권리 따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네. 이런 곳에 틀어박히기 전까지 살아온 수십 년간, 내 당신보다 아름답고 뛰어난 여성은 본 적이 없다고 확신해. 순혈주의에 눈이 멀어 동족을 때려죽이고, 아무런 발전없이 나무에 절이나 바치다 퇴락한, 그런 머저리 귀쟁이들의 말은 이제 그만 떨쳐내게. 수백 년을 당신 곁에 있던 것은 악독한 혈육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한 나일세."

"주인님.."

"나와 새로이 함께해 주겠나? 주인과 하녀가 아닌 부부로서"

"네... 주인님. 아니, 일리야."



다른 세상의 이야기꾼들이 모여 노래하던 희곡의 마무리처럼

상처입었던 당신이 더 이상 그 때문에 아파하지 않기를

남은 흉터조차 당당히 웃어보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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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연구해서 꽂힌 게 이세계의 몬붕이 모임인 괴짜가 몬무스물 쓰다가 청혼하는 글을 쓰고 있는 몬붕이(=글쓴이)


나도 예쁜 고양이녀나 악마엘프혼혈눈나랑 살고싶다


러시아 이름은 어울릴 것 같아서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냥 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