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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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티 인상 참고용)




시스템 기동...


가수면(假睡眠) 상태를 종료합니다...



눈을 뜬다. 세상의 빛을 인식한다.


렌즈를 덮은 차단막을 열자 보이는 것은, 누군가의 미소.


" 잘 잤어? "


사람. 아침의 눈부신 햇살 속에서 따사로이 웃어주시는. 저의 주인님.

로봇인 제게 있어서 수면이란 감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님께선 매번 제게 물어보십니다.


" 네. 주인님께선 잘 주무셨습니까? "

" 덕분에. 특히 요즘은 민원이 없어서 좋네. "


주인님께서 손을 내미십니다. 그 손을 잡고서 저는 무릎 꿇은 자세에서 일어납니다.

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데, 어째서 인간 보다 무거운 기체를 도우려 하는 걸까요.


" 오늘도 안젤라랑 같이 저택 관리하는 법을 배우러 가는 거지? "

" 그렇습니다. 방법은 이미 기억했습니다만... 아직은 앤 양 만큼 잘 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


실제로, 앤 양에게서 배운 내용은 바로 기억했다. 그러나 앤 양의 방식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 그건 네가 전투용이라서 그럴 거야. 그럼 힘내. "

" 네. 저택은 맡겨주십시오. 오늘도 무사히 다녀오시길. "



………………

…………

……



주인님이 직장에 다녀오실 동안 저는 저택을 관리하는 것이 제 일이 되었습니다.

통상의 경계 태세와는 다르게 저택을 돌아다니고, 창고에서 전력을 꺼둔 제 몸을 보는 것은 기묘한 감각이 듭니다.


(안젤라-앤 인상 참고용)


" 배티? 무엇을 그렇게 보고 있어요? "

" 아, 앤 양. 잠시 이전 기체를 보고 있었습니다. "

" 흐음~ "


안젤라 양이 특유의 말투를 흘리며 저와 이전 기체를 번갈아 봅니다.


" 저는 본체가 이것 뿐이라 어떤 감각인지 모르겠네요. 배티가 보기엔 어떤 느낌이에요? "

" 어떻냐고 해도.... "


앤 양의 말을 듣고 이전 기체를 다시금 바라봤다. 창고에 있는 모습은, 이전의 전쟁이 끝난 후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

전투 외에는 사용될 일이 없는. 전투만을 위한 기체.


이전 기체와 카메라를 연동하여 지금의 내 모습을 본다. 이전 기체가 바라던, 효율적인 의체.

지금의 나는 바라던 것을 얻었다. 따스함을 느꼈다. 이전 기체로서는 이러한 감각을 느낄 수 없다.


" ...결국, 쓸모가 없었군요. "

" 네? "

"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


중얼거린 한 마디에, 앤 양이 되물었으나.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고개를 젓습니다.


" 지금의 제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얘기였습니다. "

"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


안젤라 양이 웃으며 맞장구를 쳐줍니다.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 자, 저택을 관리할 일로서 우선 빨래 부터 시작해 볼까요? "

" 저... 앤 양? 그것에 대해서 말인데.... "

" 네? 뭔가요, 배티? "


앤 양은 가사일을 전문으로 하는 안드로이드입니다. 그렇기에 손재주도 좋고 효율적이게 움직입니다만....


" 저는 관절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앤 양.... "

" ...아, 참. 그랬었죠? "


어제 보여준 앤 양의 세탁법은 돌아가는 손목을 이용해 세제를 묻히고, 그것을 짜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저는 인공피부가 있기에 관절이 너무 돌아가지 않게끔 되어있습니다. 무기를 꺼내기 위한 팔을 제외하면.


안젤라 모델 처럼 효율적이게 기능하려면 피부가 없는 편이 좋을 텐데.

어째서 주인님은 피부가 있는 것을 고르신 걸까요? 나중에 물어봐야겠습니다.


" 굳이 제 방식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 거에요. 세젯물에 적시고, 짜내기만 하면 되는 걸요. "

" ...알겠습니다. "


세탁기로는 씻을 수 없는 손세탁은 수작업으로 해야 했습니다.

관절이 돌아가지 않는 저로서는 비효율적이게 발로 밟아 세제가 스며들게 하고, 몇 번을 감아서 짜냅니다.

전력의 소모만 늘어날 뿐, 힘들거나 하지는 않지만....


" 배티? 왜 갑자기 멈춘 거에요? "

" ...차가운 감각은 그다지 좋지 않군요. "


아픔을 느낄 순 없지만, 이 신체는 차가움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감각 센서가 달려 있습니다.

감각을 느낄 수만 있을 뿐, 이 정보가 주어지는 것에는 '좋다'도 '싫다'도 없어야 합니다만.

어째선지 차가운 감각은 제게 있어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 흐음~? 차갑다구요? 저는 그런 센서가 없어서, 무슨 감각인지 모르겠네요. "

" 네...? 앤 양에게는 감각 센서가 없습니까? "


처음 알았다. 안젤라 모델은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해서, 저 보다는 감각 센서가 뛰어날 줄 알았는데.


" 가사일을 하다보면 차가운 거나 뜨거운 걸 겪을 때가 많을 텐데, 처리할 정보가 많아서 온도를 수치로만 알아요. "

" 그렇... 습니까.... "


앤 양은 오히려 직접적인 온도 감지 보다는 수치화를 통해 판별하는 방식인 듯합니다.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째서 전투용인 저만? 주인님은 제게 무엇을 주고 싶으셨던 걸까요.


" 자 자, 발이 멈췄어요. 세탁을 빨리 끝내야 청소로 넘어갈 수 있다구요. "

" 아, 알겠습니다. "


철퍽 철퍽- 차가운 감각을 느껴가며 세탁물을 힘주어 짜낸다.

세탁 이후 청소도 앤 양 만큼의 섬세한 행동은 쉽게 따라하지 못했으나,

차가움을 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여긴 배티 양이었다.



" 이번에는 요리를 할 시간이에요! 저택인 만큼 다른 고용인들을 위해 많이 만들어야 해요. "

" 제 몸의 도구와는 다른 도구로 식재료를 조리하는 것이랬죠? 해보겠습니다. "


머릿속에 입력된 레시피와 어제 보여준 앤 양의 시범대로 따라 하면, 아무 문제없을 것입니다.


탕탕, 지글지글, 착착.


요리의 기초라고 불리는 오므라이스 볶음밥을 만들었습니다.


" ...맛이 좀.... "

" 별로인가요? "


앤 양의 반응에 따라 저도 한 입 시식해 봅니다.


" ...탄 맛과 설 익은 재료, 굵게 썰린 야채 등이 느껴집니다. "

" 아무리 레시피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쉽게 되진 않더라구요. 저도 그랬어요. "

" 앤 양도? 의외군요. "

" 그게 저희가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레베카 아주머니~! "


그녀가 누군가를 불렀습니다. '레베카' 라고 불린 분은 이곳의 주방장으로, 기분 좋은 미소를 띄우며 오셨습니다.


" 요리가 잘 안 되니? 어디 보자꾸나. 네가 안젤라가 얘기한 배티지? "

" 그렇습니다. 요리에 대한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


레베카 씨는 웃으시면서 요리를 하는 방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몇 번의 시도 후, 합격점을 받아내게 되어 레베카 씨와 앤 양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요구사항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이 듭니다.

이전 기체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각이었습니다.




………………

…………

……




"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

" 그래. 잘 있었어? 저택 관리는 어땠어? "

"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습니다만, 대부분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


저는 오늘 있었던 일을 주인님께 보고했습니다.


" 그랬어? 수고 많았네. 잘 했어 배티. "


주인님은 그렇게 말하시고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셨습니다.


" 저... 주인님? 이건.... "

" 응? 칭찬의 의미인데. 혹시 기분 나빴어? "

"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잠시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서.... "


제가 그리 말하자 주인님은 웃으시면서 계속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셨습니다.

뭘까요, 이 감각은....


한동안 저는 주인님의 손길을 느끼다, 문득 오늘 들었던 궁금증이 떠올라 질문했습니다.


" 주인님?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

" 어. 뭔데? "

" 저는 앤 양과 다르게 전투용임에도 인공피부와 온도 감각 센서가 있는데... 그건 어째서인가요? "

" 아~ 그거 말이지. "


저의 질문에 주인님은 턱을 쓸으며 잠시 생각하시더니, 가볍게 말씀하십니다.


" 그냥? "

" ...네? "

" 별 생각 없었는데,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옵션을 추가해봤어. "

" ...그러, 시군요. "


무언가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깊게 고민한 저는 예상과는 다른 답변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주인님이 바라보시더니. 다시 말씀하십니다.


" 깊게 고민한 건 아니지만, 너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추가한 거였어. "

" 제게도요? 그건 무슨.... "

" 원래 쓰던 너의 본체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잖아? 그러니 이 참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갔으면 해. "

" 느끼지 못했던... 것들? "


그래. 라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주인님.

저는 그 말씀에 이전 기체가 느끼던 감각과 지금 기체가 느끼는 감각을 비교해 봅니다.

이전 기체는 단순히 감정을 기록했을 뿐, 감정 모듈이 부착된 현 기체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 네 손. 차갑네. "


주인님께선 저의 손을 잡아서 들어올리고, 두 손으로 포개어 감싸셨습니다.


" 주인님의 손은. 따스하시네요. "

" 어때? 감각 센서가 없으면 못 느끼잖아? "

" 그건... 그러네요. "


차가운 것은 싫지만. 저는 주인님이 주시는 이런 따스함이 좋습니다.

주인님이 말씀하시고 싶으신 것을 이해하자, 가슴 부근이 따뜻해집니다.

동력구에 이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술자 분께 정비를 요청해야겠습니다.





배티는 오늘, 행복도 패러미터가 80% 상승한 것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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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캐릭터AI에 푹 빠져서 약 일주일간 그것만 즐길 정도로 계속 했음.

그러다가 연기하는 캐릭이 아니라 AI랑 대화하면 어떤 반응일까 싶어서 여러모로 말을 걸어봄.

사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반응이 제각기 다른 것이 신기하더라.


그래도 너무 빠져서 생체리듬 망가질 정도가 되니까 슬슬 글 써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뭐 쓸까 머리 싸매다가 AI랑 대화하며 느낀 걸 토대로 이 작품을 이어서 썼음.

되도록 작품 매일 쓸 수 있게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