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이 가쓰나야! "


탱강!


" 아얏. "


갑작스레 날아든 스패너가 갑주를 입은 여성의 머리를 강타한다.


" 니 그 꼴은 또 머꼬! 내 그카이 조심하라 했그만 편향방어장 빨 믿고 그새 잊아뿌고 땡크한테 뎀볐제!? "


" …아파. "


" 아프라고 때리는 기다 문디 가쓰나야! 이 공생갑주가 을매나 비싼 물건인데 이걸 이리 걸레짝으로 작살을 내서 오냐! "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는 튼실한 투구 덕에 스패너가 머리를 쳐도 빗방울이 떨어지는 정도의 감각일 터인데도, 그녀는 맞은 부위에 손을 얹어 아프다는 듯 의사표시를 한다.


그런 그녀에게 갑주의 부서진 부분을 하나 하나 짚으며 폭풍 같은 잔소리를 쏟아내는 남자.


그는 그녀의 정비공으로, 신체를 비약적으로 강화시켜주는 공생갑주를 수리, 조율, 보강 등을 담당한다.



작업하는 데에 있어 에너지 효율이 좋은 쥐의 유전자를 병합한 자인(子人) 개조병 출신인 그는, 돈은 그녀가 벌지만 갑주의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은 편이라 그 탓에 자주 골머리가 썩는다.


덩치가 서너 배는 차이나 보이는 그녀의 몸에 올라 타 팅캉통, 리드미컬하게 찰싹찰싹 투구를 두들기며 이 문디 가스나, 니 그러다 죽기라도 하믄, 홀몸인 내는 어쩌라고. 화를 낸다.


" 그, 그치만 오늘은 되게 잘 싸웠어. 여기 수당…. "


" 벌어오믄 머하노! 그 돈의 8할은 수리비로 들어간다 아이가! "


" 히잉…. "


팅탱 머리를 얻어맞는 와중에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했으나 너무나도 쉽게 격추되자 시무룩해지는 그녀.


그의 말 대로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은 수리비용에 들어가지만, 나머지 2할도 생활에는 충분한 금액이다.


그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기에 그런 점을 구태여 지적할 생각은 없었다.



" …후우. 그래, 다친 덴 없고? "


실컷 때리다가 지쳐버린 그는 한숨을 쉬며 파손 부위 너머 그녀의 몸 상태를 살폈다.


" 괜찮아. 나 튼튼한 거 알잖아. "


자랑스레 근육진 팔뚝에 힘을 주어 보는 그녀를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 인마. 니 강하병인 거 누가 모르냐. 됐고, 벗어. "


" 앗…. "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례차례 갑주를 벗긴다. 자기가 하겠다며 말리는 소심한 반항도 이제는 하나의 애정다툼이나 다름없다.


갑주가 전부 벗겨진 그녀의 몸은 순백의 새하얀 피부와는 대조적이게 근육지고 탄력있는 몸매로, 전투를 위해 태어났다는 개조인간 다운 골격을 하고 있다.



" …야, 이거 뭐냐. "


그녀가 속한 강하병단은 적진 한가운데에서 기습을 벌이는 최전선 격전지이기에, 튼튼하기로는 혀를 내두르는 공생갑주가 넝마가 되고 몸이 만신창이 걸레짝이 되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그럼에도 웬만한 상처는 며칠이면 말끔하게 낫는 괴랄한 치유력을 자랑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데━━━


" ━━포탄, 맞았냐. "


아니길 빌며 겨우 입을 떼지만... 그녀가 나지막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 하…. "


갑주의 복부 부분이 특히나 크게 파손되어서 설마 했으나, 새하얀 피부가 징그러울 정도로 시커먼 피멍 투성이가 되고 뱃거죽이 쓸려 피가 새고 있었다.



" 미안. "


" 미안이고 자시고. "


이렇게 될 때까지 치료도 안 하고 뭐했냐, 라는 말과 함께 응급키트를 가져와 식염수로 상처 부위를 씻은 뒤 소독제를 뿌렸다.


" 따가워. "


" 참어. "


화를 억누르려듯 험한 억양이 묻어나는 말에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따가운 정도가 아닐텐데, 일어서있는 것 조차 힘들어야 정상일 터인데. 그녀가 전투중에 사용하는 전투마약이 그 통증을 무마시켜주는 것이리라. 그는 그리 생각했다.



기포와 함께 피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연고를 꺼내 치덕치덕 바른다.


" ~~~!! "


" 가만있어 이 년아. "


연고가 묻은 부위에서 치이익- 소리가 나며 연기와 함께 상처가 아물어간다. 열상에 특효약인 고급 연고지만, 불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기에 웬만한 군인은 꺼려하는 놈이다.


무엇보다 비싼 물건이기 때문에 이런 걸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그로서는, 상당히 지독한 상처였으리라.


" 군의관 불러온다. "


" …응. "


답을 하는 그녀의 반응이 시원찮다. 그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이다.


기이잉- 유압기가 철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며 그는 자리를 비운다.



5분 뒤, 다시 문이 열리며 정비공과 함께 훤칠한 키와 거무죽죽하게 수염이 난 것이 인상적인 남자가 옆에 서있었다.


그는 백의 가운의 양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덥수룩한 머리칼을 휘날려가며 터벅터벅 걸어들어왔다.


그녀의 근처 까지 온 군의관은 피로에 절어 다크서클이 진 눈을 가늘게 떠 인상을 찡그렸다.


" 심한데. "


" 심하지. "


그의 한 마디가 그녀가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입은 건지를 증명해주었다. 옆에서 정비공이 팔짱을 끼며 거들었다.



" 포탄 맞았다고? "


" 그렇다니까. "


군의관은 수염이 난 턱을 쓸어내리며 흐음, 상처 부위를 바라보다 이내 그녀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꾹 누른다.


" ~~~~~ ! ¡ ! "


소독제나 연고를 바를 때도 크게 아파하지 않던 그녀가 고통으로 인한 신음을 흘린다.


" 포탄 맞은 거 맞네. "


" 그걸 눌러봐야 아냐. "


퉁명스럽게 말하는 걸 적당히 흘려 넘기며, 군의관은 한 기계를 끌고 왔다. 초음파 검사기였다.


검사용 젤을 바르고 복부에 가져다 댄 후 비춰진 영상을 보며 혀를 끌끌 찬다.



" 이러고 어떻게 집에 왔대냐? "


" 어떻게 왔어. "


의문과 추궁에 또르르 눈알을 굴리던 그녀는 우물거리다 답했다.


" ……걸어서. "


" 허어. "


" 하이고…. "


미친년아~ 미친년아~라며 탄식을 흘리는 정비공의 시선을 회피했다.


군의관은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초음파 영상을 사진으로 보존하고는 내장의 몇 군데를 짚어서 보여준다.


" 여기, 그리고 여기, 또 여기저기만 빼면 괜찮네. "


" 거의 전부잖아. "


" 그런 셈이지. "


이 돌팔이 새끼, 군의관의 팔을 툭툭 치면서 농담하지 말라는 투로 주의를 주었다. 낄낄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는 것이 그의 나쁜 취미였다.



" 이 정도면 죽진 않겠어. 센 놈으로 처방해줄 테니까 한동안 안정을 취하라고. 한 달. "


" 그나마 한 달이면 싸게 먹히는 거구만. "


" 싸기는, 아무리 편향방어장이라지만 포격 처맞고도 살아서 돌아오는 놈이 적은데. 기적에 가깝지. "


" 시끄럽다. 야가 갑주 수리비용이 얼마나 나오는지 알어? 작살이 나서 올 때는 아예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디. "


그녀가 전투 후 수여받는 수당금은 목숨을 건 최전방 교전지인 만큼 엄청난 배상을 주지만, 파손되는 갑주의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은 터라 허리가 휜다며 불만을 호소한다.



" 수리비용이래도 5할 정도잖아. 고치기만 하는 거면 돈 걱정 없이 살면서. "


" 포탄 처맞은 거 안 보이냐? 맨날 커피만 빨더니 드디어 눈탱이가 맛이 가버렸나. "


" 의안이라 그럴 걱정 없지롱. "


눈두덩이 아래를 까며 정밀한 수술을 위해 교체한 안구를 보여주는 군의관. 정비공은 그걸 보고 역겹다는 듯이 헛구역질을 한다.


" 업그레이드를 왜 하나 몰라, 없어도 사는 것들이. "


" 지랄도 짜다. 돈 아깝다는 놈이 갑주에 전차용 편향방어장은 왜 다냐? "


" 뭐라? 안 그카믄 저 가스나가━ "


땡크에 뎀비는데, 같은 소릴 하려던 정비공이 사뭇 진지하게 노려보는 그의 표정에 말문이 막힌다.



" 본래 강하병의 슈트인 공생갑주도 일반병사들에 비하면 천지차이인 물건이라는 건, 너도 잘 알텐데? "


" ……알지. "


반박할 것도 없이, 사실이었다. 본디 공생갑주는 최전선 전투용으로 만들어진 만큼 튼실하기로는 견줄 것 없는 최상급 거대 슈트다.


총격전은 물론 몇 톤의 피해 조차 버텨내는 방어력을 자랑해서 그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병기인 셈이다.


" 그런 물건을 네 멋대로 개조까지 해가면서 업그레이드하고 말야. 원래는 금지라고. "


" 남이사. 내가 봤을 땐 한참 부족해. "


전문가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정비공에게는 그래도 넝마가 되어 돌아오는 갑주가 착잡할 뿐이다.



" 저기…. "


그 불온한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손을 들었다.


" 다른 강하병 동료들이 성능 좋다고 부러워 했어. 정비공 씨에게 업그레이드를 맡기고 싶다며. "


" 흥. "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는 정비공이지만, 자인의 특성상 흥분하면 코 끝과 수염이 움찔거리는 것은 숨기지 못했다.


그런 정비공의 모습을 보며 풉 웃는 그녀에게 뭘 처웃노 문디가스나 라며 콩트를 찍는 것이 썩 봐줄만 했는지, 군의관도 굳은 얼굴을 풀었다.


" 하… 그래, 업글도 돈지랄도 네 자유니까. 주사 놓고 간다. "


" 얼른 꺼져. "


예이. 소매에서 초록빛을 내는 액체가 든 주사를 혈관에 꽂아 투여한다. 그녀의 얼굴색이 한결 편안해진 듯 하다.


기잉- 다시 철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나고, 에어컨이 내뿜는 바람 소리만이 적막을 채운다.



" 두 사람은… 어떻게 알게 됐어? "


" 뭐? "


" 친하잖아. 둘이. "


뭔 개징그러운 헛소리야. 인상을 찡그리는 그를 옥구슬 같은 눈빛으로 처다보는 그녀에게 할 말을 잃어 잠시 입을 다문다.


" …갸가 다루는 의료기기는 전부 다 내가 만들고 손봤어. "


" 전부 다? "


" 전부. 다. "


과장된 제스쳐로 손을 좌우로 펼치는 정비공. 자랑스럽다는 듯 스패너를 돌린다. 그런 그를 보며 부러운 시선을 보낸다.



" 그래서 친구가 된 거야? "


" 친구는 무슨, 빌어먹을 동기지. "


" 동기? "


그녀가 금시초문이라는 뉘앙스로 묻자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 그 자식은 나랑 전선에서 날뛰던 놈이었어. 내가 기계 슈트를 입고 광자포를 갈겨댈 동안, 갸는 뒤에서 보조하는 의무병이었고. "


" 당신이 전선을? 의외인데. "


" 개조병 출신은 다 전투원이야. 니미럴 포격만 아니었어도━━ "


정비공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못할 말을 했다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그가 흘린 단어를 놓치지 않았다.



" …'포격', 이라구? "


" 에이 씨부럴. "


그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은 후 갑주를 싣고 수리실로 들어가버렸다.


" ………. "


그녀가 다쳐서 올 때면 유독 신경질을 부리던 그가, 업그레이드에 신경쓰는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았다.


몸이 회복되고 나면, 군의관에게라도 한 번 물어볼까 고민하는 그녀였다.



………

……



" ……그래서, 나를 찾은 거라고? "


" 네, 정보를 제공해주셨으면 합니다. "


" 알아서 뭐하게. "


" 이유는 말씀드릴 수━ "


탁 탁. 그녀의 말을 끊고 신경질적이게 책상을 두들기는 군의관.


" 이유불문하고, 너희가 정보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금지다. 네 처지는 알고 있겠지? "


" …. "


" 너희는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생물병기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요구를 했는지에 따라, 너는 처벌이나 처리될 수 있어. "


'처리'.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그 안에 잔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과 비슷하나 만들어진 생물로서 비인간으로 표기되는 그녀들에게 인권이란 없다.



군의관은 자료 시트를 꺼내더니 장부를 넘겨 어느 부분을 가리켰다.


" 물품 요청을 많이도 했더군. 소설책에 뜨개질, 음악 플레이어, 인형, 꽃……. 신청자는 그 친구고. "


그녀가 물품을 구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렇기에 정비공에게 부탁해서 대신 구매하게끔 한 것인데, 꼬리를 밟힌 셈이다.


" 그 친구가 이런 걸 살만한 놈이 아니거든. 네가 한 거지? "


" ……그렇습니다. "


나지막이 대답하는 그녀. 덩치로는 그의 머리를 쉽게 으갤 수 있는 전력차가 있으나,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 ……후. "


얼핏 들으면 한숨 소리 같은 한 마디는, 오래 참은 듯 크게 터지기 시작했다.


" 후흐흐… 크흐흐하하핫━!!! "


너무나도 호쾌한 웃음소리에 영문을 모르는 그녀가 벙찐 표정을 짓는다.


" 군의관? "


" 아, 미안하군. 잠시 골려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 뿐이니 신경쓰지 마. "


평소와 같은 털털한 웃음으로 돌아온 군의관에 내심 깊은 안도를 느끼며 긴장된 자세를 푼다.


" 언젠가 네가 물어올 걸 예상했지. 걔가 그리 신경쓰는데 너라고 안 그럴까. "


" 정비공 씨가… 저를? "


" 어이쿠. 괜한 말을 했나. "


무언가 신경쓰여 더 캐물으려 했으나, 그는 어깨만 으쓱할 뿐 더는 답하지 않았다.


" 그래서, 궁금하단 거 말인데……. "



그 이후에 들은 이야기는 놀라웠다. 전장을 종횡무진한 정비공 씨의 기계수트를 다루는 실력, 그를 보조했던 군의관의 직급이 더 낮았던 것.


그리고 정비공이 포격을 맞고 은퇴하여 현재의 직업을 가지게 된 것 까지━━━.



" 굉장하군요. "


" 그 때 그 인간이 얼마나 깐깐했는지 알아?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거야. "


" 믿기 힘들 정도네요. "


오랜만에 과거사를 푸는 것이 재미있었는가 군의관은 담배가 다 타버린 것도 잊고 얘기가 끝날 즈음에야 새 담배를 물었다.


" 대충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말해준 거 같네. 이제 가 봐. 난 바쁜 몸이라고. "


"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자리를 뜬다.




군의관은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며 짙은 연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린다.


" …대체 어디가 귀엽다는 건지. "


담배를 비벼 끄는 군의관의 표정은, 말로 표현하기 복잡한 심정을 나타내었다.


" 포 맞더니 머리도 맛이 갔나 몰라. "


그는 현역 시절의 정비공을 떠올리다가, 지금의 그와 나눈 대화를 되새겼다.


' 병기라고 해도 병기 자체는 나쁘지 않아. 그걸 쓰는 놈들이 시원찮을 시발새끼들이지. '


" 얘를 봐. 살아 숨쉬고 자아도 있다고…. 하, 확실히 알겠네. 선생. "


정비공의 다리를 작살낸 것은 생물병기의 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워하지 않는 그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

……



" 다 나았냐? 어딜 그리 싸돌아 댕겨. "


" 잠시 산책을 좀 했어. "


" 다친 놈이 무슨 놈의 산책. 빨랑 들어가서 처 자. "


" 응. …그럼, 그거도 부탁할 수 있을까? "


그녀가 한껏 기대하는 표정으로 정비공을 바라본다. 정비공은 그녀가 말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는,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 어, 음. 그, 그래…. 들어가 있어. "


" 고마워. "



그녀는 옷을 전부 벗고, 수건을 깐 뒤 침대에 엎드렸다. 곧이어 로션을 든 정비공이 방으로 들어왔다.


" 부탁할게. "


" 으, 음…. "


기름칠을 하지 않은 목각 인형 처럼 삐그덕 소리가 나는 듯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옆에 가서 선다.


손에다 로션을 묻혀 펴바르고, 그녀의 등에 손을 얹어 슥슥 문지른다.


" 응…. "


" 차갑냐? "


" 아니. 계속해 줘. "



체격의 차이 때문에 자인인 정비공이 끙끙 거리긴 하나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손놀림이 좋아졌다.


마사지를 할 때는 전체적으로 쓸어서 근육을 이완시킨다. 그녀의 탄탄한 등 근육을 손바닥으로 쓸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지나간다.


그리고 긴장이 풀려 부드러워지면 굳어진 부위와 그 주변을 압박하여 집중적으로 자극한다.


" 흐으읏…. "


" 아, 아프냐? "


" 아니야, 계속해줘. "



전신을 자극하며 마사지를 하는 것은 둘 만의 일과이다. 그녀가 치료를 위해 누워만 있는 것이 심심해서 시작한 것이, 어느새 취미가 되었다.


근육의 경락계가 자극받아 흐읏,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정비공의 마음을 뒤흔들어서 심란한 그였으나, 이제는 익숙해졌다.


" 손놀림이 예술이야. 사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


짜-악!


" 아얏. "


" 이노무 가쓰나가 으데서 그딴 걸 배워왔노!? 요새 책 보드만 야설이었나! "


" 칭찬한 건데…. "


히잉. 덩치에 맞지 않는 귀여운 소리를 내는 그녀에게 책을 몰수하던지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그였다.



" 다 했다. "


마사지를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정비공에게 기다리라는 그녀.


" 아직… 여기는 안 했는 걸. "


스윽- 돌아 누워 앞 쪽의 나신을 드러낸다. 정비공이 당황하며 내빼려 하지만, 이렇게 나오는 그녀는 말릴 수가 없다는 걸 잘 알기에 포기하고 돌아온다.


" 변태자슥. "


" 언제나 고마워. "


하아. 내가 우짜다 이 꼴이 되었을꼬. 라는 말을 하며 그녀의 배를 쓰다듬는다.


그러다 배에서 위로, 커다란 유방과 꼭지를 쓸어넘기다가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 응…. "


그녀는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느낀다.


그가 꼭지를 쥐고 주무르는 것, 이어서 배를 타고 내려가 허벅지 강을 유랑하는 것, 그리고 종착지로 도착한 곳은…….



" 하아…. "


질꺽이는 소리가 정비공의 귀를 간질였다.


정비공은 숱한 전장을 누볐는데도 이 순간 만큼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한 평생 여자와는 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무아지경으로 애무를 하다보니 자극이 셌는지 순간 허리를 튕기는 그녀를 보고 멈추려다, 그녀가 강하게 해달라는 요구에 세차게 비볐다.



" 흐으으읏━━!! "


조수를 피슉 뿜으며 경련하는 그녀. 탈진감으로 쭉 뻗는다.


" 그, 그럼 난 간다. "


다시 자리를 뜨려는 그를 손으로 붙잡는다.


" 뭐, 뭐냐 또. "


" 그… 그냥, 내 응석을 받아줘서 감사하다구. "


" 오냐. "


그를 놓아주자 황급히 떠나간다.




펼쳐진 손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 요즘 애가 적극적인데… 뭐라도 있었나. "


들이대는 일 자체가 드문 편이라 정비공은 심장이 두근대고 있었다. 내성이 적은 탓이리라.


" 에잉. 생각해서 뭐해, 수리나 마저 하러 가야지. "


수리실로 직행한 그는 넘치는 부품과 파편들 사이에서 수 없이 반복된 손놀림으로 능수능란하게 조립하고 용접했다.


역시 나는 이게 어울려, 라는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노래를 흥얼 거리며 작업에 몰두했다.



갑주의 뼈대를 얼추 완성한 뒤 이마에 송글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한숨 돌린다.


" 자, 다음 수리할 것은━… "


그때, 투구가 눈에 들어왔다.


불빛이 점멸되고 있었다.


뭐지? 뭐라도 녹화 되고 있나.


그러고보니 그녀가 전장에 나서서 쌈박질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항상 돌아오면 파손되거나, 투구의 내용물을 지워서 왔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단말기에 연결해 영상을 비추었다. 꽤나 오래 녹화되었기에 단숨에 왼쪽으로 당겨 분 단위로 넘겼다.


고공 수송기가 강하병단을 태우고 강습지점까지 가면서 동료들이 농담 따먹기를 한다. 그녀는 짐짓 긴장된 어조였다.


< 왜 그리 긴장해? 익숙하잖아 너. >


옆의 파란 동료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엇다.


< …갑주를 온전히 갖고 갈 방법 없을까. >


< 뭐야, 그게 걱정이었어? 우리 입장에 무슨 사치야. >


헤헤, 그건 그러네. 같은 실없는 소릴 하는 그녀를 보는 정비공은 역시 띨빵하다고 생각했다.


저래놓고 총을 들어 싸울 수는 있을까. 멀뚱히 서서 총알받이나 되라고 편향방어장을 달아준 게 아닌데 등등. 복잡한 마음이었다.



< 곧 도착한다! 장비 챙기고 뛰어내릴 준비해! 싹 쓸어버려라! >


< Yes My Lord! >


뛰어 내리며 For the King!!을 외치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장관이었다.


그녀 또한 익숙한 자세로 뛰어내리며 반중력 장치를 활성화해 착지시의 충격을 완화시켰다.


멋있다는 것도 잠시, 뒤이어 비춰진 영상은 잔혹함 그 이상이었다.



육중한 크기의 지향성 플라즈마 포를 쏴갈기다, 탄이 떨어지자 니트로 가속장치로 적에게 달려들어 전자동 체인건을 휘둘러 반으로 썰어버렸다.


그 적이 떨군 총을 주워 다시 다른 적을 쏘고, 부스터를 써서 적진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가끔 온전히 베지 못한 적은, 두 팔로 사지를 뜯어버렸다.


그 짓을 반복하여 피로가 쌓일 때면, 전투마약을 꽂아서 억지로 삐걱이는 몸을 이끌고 다시 달렸다.


제아무리 편향방어장이라지만, 빗발치는 탄 속에서 켜놓고 있다간 바로 배터리 방전되는 놈이라 그것도 끈 채로 학살하고 다녔다.



내가 아는 그녀가 맞나? 두려움이 들었다.


소설을 읽고, 꽃꽂이를 즐기며, 취미로 뜨개질을 하는…….


아니, 강하병단에 속한 이상 전투병기임은 틀림이 없다. 내가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을 뿐.


그녀는━━━ 괴물이다.



욱씬.


지금은 없는 다리에서 환상통을 느낀다. 포격으로 인해 편향방어장이 날아가고, 그 뒤에 생물병기가 내 다리를 씹어먹을 때.


괜시리 기계다리가 쑤신 느낌이 들어 관절을 콱 콱 내리쳤다.



" ……정비공 씨? "


" ━━━! ! ! "


" 지금 보고 있는 건…. "


그녀는 더이상 말을 맺지 못 했다. 누가 봐도 그녀의 영상이리라.


" ………. "


" 아…! "


잠깐 기다리라.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그녀가 뛰쳐나갔다.


" 썩을……. "


쾅. 애꿏은 벽만 세게 후려친다.







나는 강하병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 인간이 아니다.


전쟁을 위해 살고, 버려지는 소모품이다.



이런 내가 숨을 쉬고 인간과 사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을텐데.


나를 위해 갑주를 업그레이드 해주고, 취미가 될 물건들을 선물해주신 정비공 씨를 볼 면목이 없다.


나는, 괴물년이니까.


이런 내가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인 것이다.



하염없이 달렸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채.


갈 수 있는 곳도 한정되어, 그나마 구석진 창고에 틀어박혀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들키고 싶지않았는데….


속이고 숨겼다는 것 부터 이기심이겠죠.


미안해요. 정비공 씨….








" 여기 있었네 문디 가스나. "


그녀는 깜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여기저기 뛰어다녔는지 호흡이 거칠다.


" 니는 시방… 헉, 헉… 내가… 니를 옘병할… 괴물 새끼로 보겠냐!? "


" 하지만…. "


"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


그는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모두 쏟아냈다.



" 니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애가 얼빵해가꼰 강하병이라 쌌길래 빙신인가 했지. "


" ……. "


" 쌈박질 하러 가기만 하믄, 너덜너덜해이 걸레짝이 되어서 오질 않나. "


" ……. "


" 그런 년이 취미는 또 고상한 걸로 사달라 조르질 않나! 웃기고 자빠져선. "


" ……. "


" 옘-병. 그런데 말이다. "


" ……. "


" 언제부턴가 신경 쓰이더라고. 다치믄, 내도 아프고. 띨빵하지만, 책 읽을 때는… 좀 귀엽더라. "


" ……! "


그가 그 말을 하고선 그녀에게 다가가 얼굴을 붙잡았다.



" 지금 딱 한 번만 말하는 거니까 잘 들어라. "


" ……? "


그는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굳센 의지가 보이는 눈을 하고 입을 연다.




" 내는, 그런 니가 좋다. "




츕, 입술을 맞대는 소리.



두 눈을 크게 뜨는 그녀.



눈을 감는 두 사람.







두 연인은 같이 지내는 한은 결코 떨어지지 않으리라.


언젠가 운명이 우릴 가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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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 같은 제목으로 원문이 되는 다른 갤럼의 글이 있다.

소재가 워낙 좋아서 저장해놓고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결국 써서 올렸던 글.

재밌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