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님, 이거 읽으실 수 있겠습니까? "


흰 감식복을 입은 젊은 학생이 붉고 더러운 것으로 쓰인 자국을 가리켰다. 불투명한 흰색 클립보드를 든 교수는 잠시 안경을 들어 올리고 눈을 찡그렸다.


" 으으음... 이건 읽으면 안 되는 거야. 애초에 현생종들은 읽을 수조차 없지. 아마도 옛 신들 중 하나일 거다. "


" 옛 신들 말이십니까? 실종자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


 학생은 벽면을 흘겨본다. 자바라 옷걸이에 걸린 교복 마이, 고등학생이었을까.


" 알아야 접촉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저쪽에서 접촉하지 않는다면 이쪽도 접촉할 방법이 없으니까. "


 교수는 면봉을 꺼내 붉은 자국을 슬슬 긁어 뜻을 흐트러트렸다.


" 하지만 실종자는 그들의 신호도 해석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


" 뭐 저쪽이 마음에 들면 그냥 가져가는 거지 뭐.  "


 교수는 대충 목뒤를 긁으며 대꾸했다.


" 완전 막무가내네요. "


 학생은 다 되지도 않을 한숨을 쉰다.


" 그러게나 말이다, 나 같은 마족도 대충 등가교환은 때려주는데... 그나저나 곧 있으면 학기도 끝나는데 뭐 계획 있냐? "


학생보다 한 뼘쯤 더 큰 교수는 그의 뒤로 붙어 어깨 너머로 슬쩍 훔쳐봤다.


" 전 따로 정해둔 것은 없습니다. " 




" 아, 그러고 보니 일주일쯤 뒤에 애굽으로 24박25일짜리 탐사가 있는데. "


" 싫습니다. "


 학생의 어투와는 달리, 교수의 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


" 16점짜리인데? "


 학생은 잠시 침묵한다. 



" 저번에 총장님 친서만 안 받았어도 안 갔을 겁니다. "


교수가 키득거리며 클립보드에 체크했다. 


" 거긴 자외선 많으니까 썬크림은 챙겨라? "


교수가 감식복 후드를 벗자 습기 찬 머리카락 위로 살짝 젖은 빨간 뿔 두 개가 솟아있다. 그녀는 손으로 뿔을 간지럽히는 물방울을 훔쳐낸다.


" 아 맞다 저번에 아후라마즈다 탐사 갔다 오시고 완전 타버리셨죠? "


 교수가 안경대를 검지와 중지로 문지르다 그만두고는, 한숨을 내쉬더니, 안경을 접어 넣었다.


" 여튼, 이제 슬슬 조사할 건 다 했으니까 슬슬 종합하고 끝낼까? "


학생이 잠시 교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교수의 감식복 상의는 이미 상의의 역할을 못 하고 체 다 풀리지 않은 지퍼에 의지해 교수의 허리에 감겨 있었다, 허리에  흰 옷 너머로 레깅스도 조금씩 비쳐 보이고 있었고, 그 위로 속의 색과 윤곽이 아스라히 비쳐 보이는 블라우스에 학생은


" 그... 그러니까 실종자는 어떻게 될 거 같으십니까? "


 누군가 등을 찌른 것처럼 학생은 움찔했다. 그가 쫓기는 듯 고개를 돌렸고 이내 감식복의 후드를 내리자, 목덜미에서 김이 올라왔다.


" 가장 유력한 건 옛 신의 애첩이 되는 거겠지. 아니면 반려가 되거나. "


학생이 감식복의 지퍼를 내렸다. 허리쯤에서 뭐가 걸렸는지 찰랑하고 쇠줄 떨어지는 소리가 울린다. 학생은 그걸 손 안으로 말아 넣어, 품속으로 숨겼다.


" 그 두 개가 차이가 있긴 합니까? "


 학생은 대답할 때, 교수를 바라보지 않았다. 


" 자아를 유지한다면 반려지. "


 또각 또각 고의가 아니라기엔 크게 소리가 울렸다. 그건 마치 내가 여기 있다 라고 말하는 듯한, 땅에 머리를 박은 타조 옆에서 발을 구르는 행위.


" 하, 그 신들도 꽤 성격 나쁜가 봐요. "


 학생은 귓바퀴 안쪽을 문질렀다. 


" 뭐, 지들 다음에 생긴 개념을 신경이나 쓰겠어? "


 그는 이를 물었다.


" 결국 소꿉놀이란 말입니까, 무상하네요. "


대화 도중에도, 교수가 장난스레 앞에 끼어들어도, 학생은 마치 본다면 벌칙이라도 받는 양 이를 악물고 교수를 눈에 들이는 것 자체를 피했다. 




 결국 이긴 건 학생이었다. 다시 말해, 제풀에 나가떨어진 건 교수였다. 됐다됐어! 하면서 다시 안경을 꺼내 쓴 것은 그녀였으니.


둘은 각각 감식복을 접어 둘둘 말았다. 살짝 나는 땀내가 코를 간지럽혔다.


" 그러면... 우리 문명도 결국 지능도 없을 어떤 거인이 아무 의지도 없이 휘두른 손에... "


" 이제 그 이야긴 이제 그만. 뭐가 듣는지에 따라서, 말만으로도 현실이 될 수 있다? "


  그렇게 말하곤 교수는 스스로 어깨를 톡톡 쳐 먼지를 털었다. 학생도 따라 먼지도 없는 어깨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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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필수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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