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monmusu/70435307


도망쳐 나오듯 그 거리에서 멀어진 한스는 시내의 대로를 걸었다. 한낮의 밝은 햇볕 아래 혼자서 그 길을 걷는 이는 드물었다. 보통은 둘이서, 가끔은 세명 이상이 북적거리는 거리를 채웠다. 서로에게 밀착해있으면서도 더욱 가까이 붙으려 애쓰는 모습만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사람의 것은 아닌 신체적 특징들과 함께.

 

간혹 가다 그 말고도 혼자서 길을 걷는 이가 보였다. 메이드 복을 입은 깃털이 달린 마물이라던가 등짐에 보따리를 가득 싣고 가는 너구리 마물처럼. 그러나 혼자 다니는 ‘남자’는 한스 그 하나뿐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는 평범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평범한 풍경의 구성원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러나 피와 살 대신 정과 사랑을 탐하는 마물의 변모에 사람들은 너무나 빨리 적응했다. 서로가 남긴 깊은 묵은 상처에 비해 치유는 빗물에 피가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 빨랐다.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던 나날은 마치 전설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같이 아득해져 버린 말이었다.

그리고 한스는 그 모든 것을 잊지 못한 채 남아있었고.


평범하고 잘날 것 없는 농부의 아들. 농부로 태어나 농부로 자랐어야 할 이름없던 남자아이는 찢겨지고 먹혀버린 가족들의 조각을 주워모으며 용사 한스가 되었다. 그렇기에 마물에 대한 인간의 증오, 그 최전방에 서있던 그는 자신의 가족을 먹어치운 포식자가 아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이 공포든 혐오든 그 모든 기억은 그것을 부정했다.

 

그런 그의 바람과는 별개로 그는 이제 여러모로 눈에 띄는 존재였다. 이곳 저곳에서 핥아내리는듯한 여러 시선을 느낀 한스는 불쾌감에 다시금 골목으로 숨고 싶었지만, 아까의 경험이 그를 제지했다. 그는 어두은 골목의 그림자에서 그를 응시하는 시선을 여럿 발견했다. 두번째도 첫번째만큼 운이 좋다고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스는 그 길을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시선들에 신경쓰는 대신 다른 문제에 집중하기로 생각했다. 아무튼 아까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노숙은 절대 안된다. 안전한 숙소가 필요했다. 


제일 먼저 생각이 미친 곳은 마이어의 여관이었다. 한스 그가 절연하고 나온.

그곳으로 향하려던 그의 발걸음을 가로막은 것은 그의 자존심이라기보다는 그의 이해자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마이어 이 나쁜 자식아… 너만은 그러지 말았어야지…”

 

마이어의 여관까지 몇 분만 더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서, 한스는 발걸음을 무겁게 돌렸다. 아직은 그는 자신의 친구를 용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어디로…?’

 

한스는 다른 여관들을 떠올렸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손님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마물을 내 숙소로 들여보낼지도 모른다.

 

문득 그는 오늘 꼭 다시 오라던 길드의 접객원을 떠올렸다. 길드에서 제공하는 숙소는 길드원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다. 마침 일을 구하는 것도 필요했으니 말이다.

 

 




 

길드의 하루는 무척이나 바빴다. 마물의 습격에 의한 의뢰는 사라졌지만, 반대로 이 마을의 사람 수만큼 마물이 이주해와서 일이 두 배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람들을 마주해야만 하는 접객원 에들레이드는 이제서야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녹초가 된 몸을 겨우 추스리며 그녀는 푸념했다. 

 

“길드장님… 사람을 제발 더 뽑아달라고요….”

 

실은 이미 구인 광고를 냈지만, 그래서 인력들이 하나 둘씩 확충이 되어가고는 있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은 한참 모자랐다. 자격은 단 하나, 글을 읽고 쓸 줄 알기만 하면 되었지만, 어느 시대건 그런 사람은 드문 법이다. 한동안은 이 일을 혼자서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달콤한 휴식을 맞아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한스가 찾아온 것은 물론 그의 악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들레이드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몇 마디 욕설을 내뱉은 뒤 접객할 준비를 했다.

 

‘찌뿌리고 냉소적으로 맞이해서 찜찜하게 기분 나쁘게 해 줄 테다.’ 


그것이 그녀의 소심한 복수라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손님이 전에 왔던 모험가인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럴 계획이었다.

 

“어서옵셔~ …어?”

 

어제 왔던 그 손님, 모험가 겸 용사. 그렇지만 지금은 백수인 그 손님.

실은 바쁜 와중에도 저 손님한테 필요한 의뢰를 찾아놓느라 더욱 고역이었다.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안 오면 어쩌나, 혹시나 늦게나마 온다면 찾아놓은 성과를 좋아할지 설레었기 때문에 산더미 같은 일 와중에도 소소하게 찾는 즐거움과 같았을 것이다. 


 

그 모험가는 데스크로 오더니 조용히 손을 얹었다. 어제 봤던 것도 그렇고 그렇게 말수가 많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첫 마디를 꺼내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또 오셨네요, 모험가님. 의뢰 몇 가지를 찾아 놨어요. 분명 마음에 드실 거에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준비해놨던 의뢰서들을 내밀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세가지 정도는 간단한 일용직이었다. 세상이 평화로워졌지만 어디든 급한 일손이 필요한 곳은 있으니까. 농장의 잡무 처리, 물품 전달 업무 같은, 옛날 같으면 D급 업무라 불렸을 업무들이다. 


그리고 두 장의 의뢰서가 핵심이었다. 

한 장은 모험가 길드 접객원 모집서

그리고 또 한 장은 검술 교사 모집서. 

 

시퍼렇게 날 선 진검을 서로 겨누던 옛날과는 달리 모든 무구류들이 육체를 상하게 하지 않는 마계은으로 대체되면서, 검술은 춤과 같은 하나의 행위예술로 변모하였다.

 

물론 투기장처럼 아직도 실용적인 검술을 필요로 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춤과 같이 유혹과 구애의 수단으로 변했다고 해야 할까. 

검술 교사가 필요해진 이유도 그것이다. 모험가들이 각자 자기의 방식대로 단련해온 검술은 그 나름의 예술성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한다. 교사와 학생이라지만, 실은 공연자와 관람객의 관계에 가까운 것이다. 


접객원 모집서야 아무래도 글만 읽고 쓰면 될 줄 알면 되지만, 그보다도 싹싹함과 언변이 중요한데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 모험가는 아무래도 그런 쪽에는 재능이 없어 보였다.

 

에들레이드는 당연히 손님이 두번째 의뢰를 고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후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누구든 일하고 싶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하고 싶은 게 지금의 심정이었기 때문에 대충 끼워넣은 것이지 진심으로 바라면서 건넨 것은 아니니까.

 

검술 교사 의뢰서를 유심히 보던 모험가는 고개를 들더니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에들레이드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지만, 진검이 검집을 가르면서 언제나 내던 서늘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니 나긴 났는데 이 소리는 마치…

 

“그거 검 맞아요…?”

 

“…”

 

“쇠몽둥이… 조차도 아니잖아요?”


원래 있던 검의 반정도도 남지 않았고 그나마도 뭉툭한 모양이었다. 불꽃 마법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불운한 검을 보는 듯했다. 모험가는 다시 검집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그러나 모험가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다른 것을 말했다.

 

“보시다시피 검이 이꼴이군요. 검을 하나 구해달라고. 연락해줄래요?”

 

“네? 아, 네.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그녀는 검이 저 모양이 된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아직 모험가가 떠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흠칫했다.

 

“길드에 남은 방이 있나요?”

 

그녀는 이번 대답도 늦게 대답할 뻔 했으나, 가까스로 제때에 말하는 것에 성공했다.

 

“아, 물론이죠! 어떤 방으로 내어드릴까요?”

 

“가장 싼 방으로요.”

 

"가장 싼 방은 샤워시설이 없어요. 그리고 또…” 

 

“길드의 보호는 제공되겠죠?”

 

보호, 물론 당연히 길드가 제공해야하는 서비스 중 하나이지만 평화로운 요즘에 와서는 큰 의미가 없는 개념인데 의아하게도 모험가는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듯이 물었다.

 

“당연히 제공하고 있어요. 사실 보호랄 것도 요새는 없긴 하지만요 하하…”

 

“그럼 됐어요.”

 

사이가 떴다. 어색해진 그때 그는 키를 받아서 숙소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고 그녀는 마침 생각난 듯이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저기… 모험가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얼굴은 천장이 가로막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고, 그 역시도 고개를 숙여서까지 그녀를 마주보려 하지는 않았다.

 

“이름 좀… 알려주실래요?”

 

아까와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어색함이 둘 사이에 찾아왔다. 당황한 그녀는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다른 목적이 있는 그런게 아니라.. 투숙객 명단에도 올려야 하고… 또…”

 

피식하고 웃음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지만 그의 표정을 어렵잖게 그녀는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한스.”

 

“아… 아 네!”

 

“한스라고 부르면 돼요.”

 

한스는 층계를 타고 올라갔다. 에들레이드는 한스가 사라질 때까지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가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최소한, 그녀의 상기된 얼굴과 손의 떨림을 발견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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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지난 화에 들어갔어야 했지만 중간에 잘랐음. 그리고 그동안 써온 창작 소설들은 한번에 링크 모아서 정리해서 올리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