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어느 마을에 몬붕이가 살았어. 몬붕이는 어릴 적부터 책 읽는 걸 참 좋아했었어.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혼자 살던 몬붕이가 물려받은 재산이라고는 책뿐이었으니, 어떻게 생각한다면 그가 책벌레가 된 일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라. 

 

어쨌든, 이제 몬붕이도 스무살이 되고, 어른이 되었어. 하지만 결혼이니, 과거시험이니 하는 건 관심도 없었지. 그냥 매일같이 방에 들어앉아 책을 읽고, 또 읽을 뿐이었어. 집 안에 있는 가구들을 다 팔아치울 지경이 되었지만 책은 단 한 권도 팔지 않았지. 그래서 사람들은 물어봤어. 그렇게 살아도 되겠냐고, 아무리 책이 좋고, 옛사람들의 뜻이 가득하다지만 먹고는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막말로 해서 책 읽는다고 쌀이 나오냐고, 금이 나오냐고. 그래도 몬붕이는 계속 책을 읽었어.

 

그러던 어느 날, 몬붕이는 잠시 어딘가에 들를일이 있어 집을 나섰어. 물론 책을 읽으면서 말이야. 그렇게 책을 읽으며 길을 나서던 몬붕이는 어느 순간 땅이 쑥 하고 꺼지는 걸 느꼈어. 놀란 몬붕이가 주위를 둘러보니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낯선 들판이야. 책 읽는 데 정신이 팔려 길을 완전히 잃어버린 거지. 몬붕이는 다시 발 밑을 확인했어. 그 아래에는 무슨 저장고 같은 게 보였어. 몬붕이가 땅을 파 직접 들어가보니, 안에는 쌀가마니들이 가득했어. 몬붕이가 몇 년은 먹고도 남을 양이었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모두 썩어있었어. 옛날 전쟁 때 누가 숨겨두고 가기라도 했던 모양인가 봐. 약간은 실망했지만, 몬붕이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 비록 썩기는 했지만 진짜 쌀이 나왔으니깐. 그래서 몬붕이는 더 책을 열심히 읽었어. 

 

또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몬붕이의 지갑 사정은 계속 안 좋아지고 있었어. 이미 가구들도 거의 다 내다 판 상황이라 더 이상 팔 것도 없었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기저기를 뒤져보던 몬붕이가 다락방에 올라갔을 때, 뭔가 번쩍거리는 게 있었지. 자세히 살펴보니 금으로 만들어진 옛 불상이야. 아마 아버지나 할아버지 때 쟁여놨던 물건인가 봐. 몬붕이는 기쁜 마음으로 불상을 얼마 전 부임한 현령에게 바쳤어. 그러면 분명 현령이 고맙다며 쌀이니 비단이니 가득 내려줄게 뻔했으니깐. 그런데 현령이 불상을 자세히 보더니, 화를 내며 말했어. 이건 금이 아니라 도금이라고. 지금 나를 우롱하는 거냐고. 그래서 몬붕이는 바라던 보상은 커녕 곤장이나 몇 대 맞고 풀려나야만 했지. 그럼에도 몬붕이는 희망을 가졌어. 비록 도금이지만, 진짜 금이 나왔으니깐. 그래서 몬붕이는 더 책을 열심히 읽었어. 

 

이제 몬붕이도 서른이 되었어. 책에 미쳐 일도 안 하고 하루하루 겨우 입에 풀칠만 하던 몬붕이에게 시집 올 여자는 당연히 없었지. 몬붕이도 그걸 알았기에 그저 하루하루 책만 보며 친구들에게는 반농담으로 책 속에서 예쁜 아내가 뿅하고 튀어나올 거라고 말하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아름다운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어. 친구들은 하늘의 선녀가 널 위해 떨어진 게 아니냐고 몬붕이를 놀려먹었지. 몬붕이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지. 

 

집에 온 몬붕이는 책 한 권을 펼쳤지. 그리곤 여느 날처럼 읽어나갔지. 그렇게 절반 쯤 읽었을까? 몬붕이는 이상한 종이 하나가 책에 끼워져있는 걸 깨달았지. 정말 아름다운 여자의 초상화였지. 몬붕이는 첫 눈에 그 여자에게 반해버렸어. 그리고 그 순간, 초상화에서 여자가 뿅 하고 나와 책 위에 앉았어. 그리곤 당당하게 몬붕이에게 말했지. 순수하게 옛사람들의 말을 따르는데도 힘들게 살아가는 당신이 안타까워 하늘이 명을 내려 선녀인 내가 당신과 결혼하고 행복하게 해주라고 했다고. 지금 당신을 돕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 그 누구가 옛 성현들의 말을 믿겠느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선녀도 몬붕이를 하늘에서부터 바라보며 그 순수함에 반해 사랑을 키워왔을 거야. 그도 그럴 게, 이미 선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는걸. 

 

이렇게 몬붕이는 선녀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어. 그렇지만 서른 살까지 책만 읽느라 여자는 가까이 한 적도 없었던 몬붕이는 남녀가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도 모르고 있었지. 그저 매일 함께 손만 꼭 잡고 잠에 들었을 뿐이야. 그렇게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고, 손만 잡아도 부끄러워하는 행복한 몇 달이 지나고, 몬붕이는 선녀에게 물어봐. 다른 사람들은 몇 달을 함께 살면 곧 아이가 들어서던데, 우리는 왜 그렇지 않냐고. 선녀는 씨익 웃더니, 이래서 책벌레는 안 된다고. 부부 관계는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몬붕이는 다시 되물었지. 어떤 공부가 필요하냐고. 제발 가르쳐달라고. 선녀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어. 그리곤 몬붕이를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지. 그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 알고 있을 거라 믿어.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행복했던 몬붕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녔어. 듣는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었지. 선녀가 이 얘기를 듣고 부끄러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몬붕이에게 그런 얘기를 왜 하고 다니냐고 화를 내자 몬붕이는 이렇게 말했어. 누군가와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거나 간통한 사이라면 남들에게 말할 수 없지만, 당신과의 일인데 내가 왜 감춰야 하냐고. 사람이라면 부부간의 일은 다 즐기는 것 아니냐고. 선녀도 부끄러워하면서도 더 이상 말할 수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