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정전기를 지짓거리며 사방으로 뻗친 머리칼


촛점이 자꾸 흐려지는 부시시한 눈빛


그 상태로 흘려내보낸 갈라진 목소리.


아마도 그녀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건가 싶을 것이다.


감히 학교 후배가 선배님의 단잠을 깨우곤 한다는 소리가


“그러니까… 하, 한번만 안아… 주세요…”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주문. 당연하지만 난 애초에 할 생각도 없었다.


주먹이 내 얼굴만한 솔피 선배님에게 버릇없는 짓을 할 만큼 목숨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교문 뒤에서 키득거리는 일진님들의 미션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무릅 쓰고 온 것일 뿐.


요청을 재차 설명했을 무렵엔 주변의 다른 3학년 선배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새끼 미쳤나?” “자살 하고 싶나 봐” “명복을 액션 빔”


솔피 선배, 그녀는 우리학교를 넘어 우리 지역에서 제일 싸움을 잘 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먼저 시비를 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싸움이 붙은 상대는 단 한명도 빠짐없이 병원 침대에 2주 이상 누웠었다.


소문에 따르면 솔피 선배는 아파트 입구를 가로막은 불법 주차된 트럭을 들어서 옮겼다고 한다.


2미터를 넘실거리는 키와, 남들은 헐렁거리는 교복 셔츠의 팔통을 한가득 메꾼 엄청난 체격을 보아선 헛소문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난 지금 그런 선배님에게 먼저 시비를 걸고있는 셈이다.


솔피 선배는 딱히 말이 없었다.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한번 노려다 본 뒤론 머리카락을 벅벅 긁을 뿐.


내가 남자 치고는 체격이 작은 편이라 이 조그만 놈의 어디를 때려야 좋을 지 고민이라도 하시는 걸까.


그래도 솔피 선배에게 얻어맞고 죽거나 장애가 생긴 사람은 없었다. 


선배님이 자비를 베푸신다면 아마 일주일 결석 정도로 마무리 되지 않을까.


“야”


그리고 마침내 솔피 선배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직 졸음이 덜 가신듯 했지만 눈빛은 아까보단 날카로웠다.


“ㄴ… 네?”


“돌아가“


“어… 돌아… 가요?“


”그럼 종 치고도 남의 반에 있을래?“


그 순간 울리는 음악소리,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 소리였다.


‘사, 살았다!’


만세삼창이 터지려는걸 가까스로 삼켰다. 


다행스럽게도 이 아릅답고 자비로운 선배님이 나의 무례함을 어설픈 재롱쯤으로 넘거주신 듯 했다.


선배님의 거룩한 용서에 존경을 표한 나는 허리를 바짝 굽혔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럼 이만…”


“너 3반이지? 수업 끝나고 남아 있어. 내가 간다.”


아.





“청소 당번들은 이따 검사 받으러 오고, 나머지는 어디 싸돌아댕기지 말고 그냥 얌전히 집에들 가라. 이상”


반장의 인사와 함께 분주해지는 교실 안, 하지만 나는 오들오들 떨기만 할 뿐 아무 대책도 새우질 못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튀고 싶었지만 오늘은 넘긴다 한들 내일은 어쩐단 말인가, 자퇴라도 해야되는걸까.


-쾅-


시끌벅쩍하던 교실 안이 일순간 차가워지는게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뻔했다.


“저 선배가 왜?” “망했다, 나 돈 안가져왔는데” “떡대 좆되네…“ 


온갖 수근거림 사이에서도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발걸음, 책상이 쿵쿵 울리는것만 같았다.


”야“


그리고 내 머리 위에 내던져지는 묵직한 목소리. 결국 올게 왔다.


이렇게 된 이상 당당하게 받아들이자. 잠시 기절했다 깨어나면 모든게 해결될거다.


”죄, 죄송…합니…“


그 순간 놀라운 기적을 맞이했다.


발이 땅에서 멀어지고 몸은 공중에 수 놓이며 두둥슬 떠 오르는 기적.


기적의 원천은 내 옆구리를 붙잡은 선배님의 커다란 손과, 나 정도는 깃털마냥 들어올리는 단단한 팔.


선배님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계셨다.


이렇게 한참을 들어올려져야 간신히 마주할 수 있는 선배님의 얼굴.


체격이 너무 크고, 좀 무섭게 생겨서 그렇지,


솔직히 솔피 선배, 대단한 미인이다.


얼굴만 본다면 이 사람이 손꼽히는 싸움꾼인걸 믿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게다가 이제보니 이 선배, 흉부의 요철도 심상찮다. 


교복 셔츠가 본분을 다 하려 어떻게든 그걸 가두려는게 너무 애처롭게 느껴질 만큼.


’솔직히 저 품에 안긴다면 기분 진짜 좋을 것 같긴…‘


난 진짜 병신이다. 나의 무례함을 단죄하러 온 선배님을 보며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그나저나 선배가 날 이렇게 붙잡아 들어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이대로 바닥이나 창문 밖으로 내던지려는걸까.


내 몸통을 절반도 넘게 감싸는 큼지막한 손아귀에 붙잡힌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선배의 팔이 조금씩 움직였고,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다음 생은 나도 알파메일로...'


그때 나는 또 다른 기적을 목도했다.


큼직하고 푹신한 쿠션 두 덩어리가 내 안면을 마구 비벼대는 기적.


너무도 거대한 존재감에 호흡이 힘들어 숨을 크게 들이쉬면


마치 갓 데운 우유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냄새가 폐부에 깊숙히 파고들어오는 기적.


뭘까 이 아늑함과 달콤함은


신께서 어린 나이에 숨 멎은 이를 가엾게 여겨 천국으로 직행이라도 시켜주신걸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잠시 생각을 관두고 나를 감싸쥔 황홀감에 몸을 내던지기로 한 찰나.


"하읏!"


어라 이 목소리.


살짝은 에로틱함이 섞인 신음소리 였지만 본래의 성문은 내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사형수라면 본디 자신을 집행한 처형인의 목소리와 눈빛은 온전히 간직해 가지 않겠는가.


"소, 솔피 선배...?"


"씨발... 갑자기 가슴 만져서 놀랐잖아 새끼야"


네? 선배님 가슴이요? 


그 순간 전면의 아늑함에만 집중하느라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내 엉덩이와 등엔 단단하고 튼튼한 벽과 바닥이 마련되어 있던 것이다.


그럼 설마 선배는 아까 나를 그대로 들어올린 후에 그대로 껴안...


"으아아아악! 죄, 죄송해요... 나갈..."


"닥쳐, 누가 나가래?"


그 순간 나를 휘감은 팔뚝에 힘이 실리더니 내 몸은 쿠션쪽으로 깊숙히 밀어넣어졌다.


"우웁... 뭐, 뭐하는거에요오..."


"왜? 안아달라며? 니가 해달래서 해주는건데 무슨 문제있어?"


아니, 문제 많죠 당연히...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앞으로는 푹신한 살덩이가, 뒤로는 단단한 근육덩어리가 나를 마구 눌러대는 탓에 입술조차 뻥끗거리지 못했다.


내 의견 따윈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았던 듯, 대답따위 듣지 않은 솔피 선배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내 가슴 존나 크지 않아? 니 머리보다 큰거같은데 지금 자지 터질것같지?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학교 갈때나, 집에 갈때나.


널 끌어안고 모셔다줄게. 주말이고 방학이고 내 품에 쑤셔박을게.


니가 부탁했으니까 앞으로도 존나게 안아줄게, 됐지?"


내 의견은 단 1%도 함유되어있지 않은 통보가 끝난 후.


난 그렇게 선배의 품에 안긴 채 결국 우리 집까지 배송되었고. 


다음날 아침엔 나를 학교에 배송시키러 온 선배와 마주했다.


그리고 이 때 선배가 나를 끌어안으면서.


얼굴에 홍조를 잔뜩 띄운 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는건.


다음날 학교에 퍼진 소문으로 듣게 되었다.








일진이지만 나한텐 친절한 그런 솔피쟝이 보고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