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그래, 그 일이 가장 처음 시작했던 때부터 이야기해야겠지.

분명 가을이었어. 낮에는 나름대로 더워서 노곤해지고 오후가 되면 시원해져서 기분좋은 그런 가을.

긴 장마와 태풍들 끝에 찾아온 맑은 하늘에 나도 모르게 자전거를 타고 나갔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던 것 때문일까, 주변을 둘러보자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 

예를 들면 목이 뜯겨져있는 오리와 죽어있는 비둘기들, 말라붙은 고양이들 같은 것들이 보였어.


물론 탄천의 근처를 자전거로 돌아다니다 보면 어쩌다 한번씩은 보는 것들이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보니 정말로 찜찜한 기분만 들었고, 시원하고 파랗던 하늘도 왠지 칙칙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지.


찝찝한 기분이 영 지워지지를 않고 허벅지와 종아리에도 거미줄 같은게 감기는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던 나는 자전거를 돌려서 집으로 돌아왔고, 샤워를 마친 이후에 남은 오후의 시간을 즐기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그 때의 시간은...정오. 그래, 분명히 정오였어. 어느샌가 틀어져 있던 라디오에서 12시를 알려드린다고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점심 식사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몸은 일어나지지 않았어. 일어나지지 않았어. 


다리에 쥐가 난걸까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어. 무언가가 내 발목을 붙잡고 마취를 하는것만 같았지.

수면 내시경을 해본 이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거야. 

목구멍 어디선가 느껴지는 간질거림과 묘한 향기가 풍기며 아득해지는 그런 기분을 말이지.

 

첫번째의 꿈의 내용은 명확하지 않아. 분명히 꿈이었다는 것은 확신하지만 부드러운 체온의 기억만 남아있으니까.

꿈에서 깨어났다고 생각이 든 순간 수마가 다시금 몸을 덮쳐왔어. 

사실 그때 내가 깨어있었는지, 아니면 깨어있었다고 생각하는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 

한 번이라도 깨어 있었더라면 그 사이의 기억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색일리가 없으니까.


우선은 두 번째 꿈이라고 말해둘까. 

당연하게도 이것도 꿈인지, 아니면 이번에는 정말로 깬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어.

실눈을 뜨면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와 눈을 마주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지.

그렇다고 해도 눈을 뜨지 않을 수는 없었어. 눈을 뜨지 않으면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대처할 방안이 없다는게 평소 지론이었거든.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분명한 내 방이었어. 벽지의 색만 빼고는

연한 보라색의...아니, 하늘색이 밖의 조명이나 눈의 착각으로 그런 색으로 보인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게 실수였어.

그 때 곧바로 일어나서 도망쳐야 했어. 

당장이라도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야만 했었어.

 

벽지의 색을 제외하고는 느껴지는 것이 모두 평소의 방과 같았기 때문에 안심한 순간이었어.

침대...그래. 푹신한 매트릭스라고 생각하였던 무언가가 물컹거리기 시작했지.

매트릭스 위에 한 겹을 더 깔아놓은 라텍스가 미끄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이상했어.


그리고, 그 매트릭스는 나를 감싸기 시작했어. 

추운 겨울날, 아니면 공포영화를 보고 잔 날 발까지 모두 이불로 둘둘 싸매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달리 부드럽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차갑고 끈적거리는 즙이 새어나오는 시체 같았어. 

공포에 질려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에서 나오는 건 소리가 되지 않는 으...아..하는 소리였지.


가위눌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면 깨어날 수 있다던지 하는 것을 시험했음에도 바뀌지 않았어.

바뀐 것이라곤 방광이 가득 들어찬 것 같은 뇨의와 붉은 환청, 깨질 것 같은 두통이었어. 


알아, 환청이 붉은색이라니 무슨 공감각적 헛소리냐고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어. 그 환청을 듣는 순간 모든 곳에는 붉은 색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환청은 찾아든 때와 같이 한순간에 사라졌고, 환청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몸을 감싸고 있던 감각도 사라졌어. 

그리고 찾아든 것은 평소라면 안심이 되었을 폭신한 이불의 감각, 열린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가을바람.


그렇지만 방금까지 강렬하게, 오랫동안 감싸져 있던 감각과는 이질적이었지.


태아가 어미의 자궁 안에서 감싸여 있다가 강제적으로 끄집어내져 울부짖는 감각이 이런 것일까 싶었지.

당연하게도 해방감, 이유 모를 상실감에 눈물이 치밀어오르던 중이었어. 무서웠던거지.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은 그 순간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어. 그저 홀로 존재하는게 무서웠던거야.


그 잠깐 동안의 외로움은 평소 무신론자이던 나도 신을 찾으면서 기도를 하게 만들었어.

외로웠으니까, 무서웠으니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것만 같았으니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를 무렵에 몸이 다시금 침대로 쓰러지면서 들려온 소리가 있었어. 

"신은, 그리고 그 어떤 절대적 존재도 너를 보지 않는다."라고 말이야.


그 이야기와 함께 가빠오는 숨을 토해내며 눈을 뜨자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지. 

그리고 자신이 기르던 강아지가 꼬리로는 미간을, 엉덩이를 코에 들이밀고 있었어.

단순히 강아지의 무게로 인해서 꾼 개꿈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려고 했지만....

두 번의 연속된 꿈이 무척이나 기분이 찝찝한 내용이었기에 괜히 소금물로 입을 헹군 뒤 하루를 보냈어.


이튿날이 되었어. 


집에 홀로 있기가 외로웠고 무서웠기에 나는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고, 잠에 들었어. 

그리고 잠에 들자 지난번 느꼈던 그 점액질과 보라색 환청, 보라색 벽지 가 눈에 들어왔어. 


어제 거의 비슷한 것을 체험해보았기에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개꿈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였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 강아지는 부모님의 방에서 자고 있던 걸 보고 온거야. 

문은 열어두었지만 계단을 놓지 않았으니 올라올 수도 없었을 테고 말이지.


왜 이런 악몽을 꾸는 걸지 모르기에 더 공포에 질리면서도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어. 

무교라고 하더라도 기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심적인 공포를 조금이나마 억누르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외우면 외울수록 몬붕이한테 느껴지는 무게감이 더 심해지고 귓가에서는 계속해서 입김 부는 소리와

깃털들이 바스락대는 소리, 발정기의 설치류들이 내는 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많은 것이 들려왔어.


차라리 성욕에 가득 차 있었더라면 그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키키모라라던지 하는 무해한 것이라고 상상했을테지만...어제도 이런 일을 겪었기에 괜한 용기를 내서 눈을 뜨고 자신의 위에 올라타 있는 무언가를 보려고 했지.


들어올리는 것만 해도 버거운 눈꺼풀 너머의, 눈동자에 새겨진 모습은 붉은 눈도, 괴물 같은 날개도 아닌 손바닥이었어.

대충 눈으로만 봐도 열 개가 넘는 손바닥으로 이루어진  고기 기둥 이 몬붕이의 배에서 자라나 있던거야.


단순히 정육점의 것처럼 거무튀튀하거나 붉은색, 흰색의 것이 아니었어. 흔들리는 피부, 노란 지방들.

적어도 이게 일반적으로 상상하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지. 

나는 그런것에 대해서 찾아보거나 지식이 풍부한 편이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그걸 보자마자 나는 악몽이라고 계속해서 말했어.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미쳐버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러면서도 그 손바닥이 다가와 자신의 목을 조를까봐 두려웠기에 필사적으로 목만을 비틀어댔지.

부정해야만 했는데, 부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보았다고 시인해버린 꼴이었어.

 

그 저항이 우습다는듯 손바닥'들'이 다가왔고 그 손바닥'들'은 목을 부드럽게 조이며 속삭여왔어. 

"너는 우리를 버렸지, 즐거웠어?" 라고 말이야.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어. 평소에 동물이나 곤충을 죽이거나 하지도 않았고 유기하지도 않았어.

여자친구도 사귀어본 적 없고, 원나잇이나 그런 업소를 찾아간 적도 없는 사람이었고 말이야. 


이것을 필사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분명히 이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어.

그랬기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압박 속에서 부정을 하려는 찰나 손바닥 중에 하나가 팬티로 내려간거야.

팬티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벗겨졌어. 


팬티 아래에 있는 소시지는 이 두려움에도 죽음의 위기라도 느낀 것처럼 발딱 서 있는거야.

그리고, 그것은 두 개의 손바닥에 붙잡혔고 북받치는 사정감에 말도 못하지 못할 정도였지.

이 죽음과 마주한 쾌락 속에서 멍해지기 시작한 때였어. 손바닥 하나가 고환을 쥐어버린거야.

그리고 꽉 쥐여오는 통증에 정말로 정신이 아득해졌지.


그 정신이 아득해지는 몬붕이의 귀에 들려온 건 다시는 잠들고 싶지 않은 두려운 말이었어.


"기억해. 잊었다 해도 약속의 무게는 잊혀지지 않아. 특히 나에게는"

 

자폐아나 중 2 병 설정에 심취한 사람이나 할 법한 말을 듣고 떠오른건 많았지만...

급소가 쥐여있는 채로 할 수 있는 거라곤 힘겹게 입술을 움직여서 욕설을 하는 것 뿐이었어.


그 직후 느껴지는 통증...아득해져가는 시간 속에선 날갯짓 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 점액이 흐르는 소리만 났어.

이번에 깨어난 시간은 새벽 6시.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남성과 목에 무언가 자국이 있는지 확인을 했지.


다행히도 남성은 얼얼한 걸 제외하면 자국이 없었고 목도 마찬가지로 깨끗했어.

침대로 돌아온 직후 깨달은 것만 아니었다면 희안한 악몽이라고 잊었을거야.

분명히 입고 있던 "보라색 팬티"  가 없었어. 


자면서 옷을 벗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을 뿐더러 어제는 창문을 약간 열어두었기 때문에 시원하다 못해 추웠으니까.

자신이 몽유병 증세가 나타난 것일까, 아니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어디 벗어둔 걸까 하는 말이 되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집 안 전체를 돌아다녔지만 팬티는 보이지 않았어. 


지친 끝에 자신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계시던 부모님에게 혹시 자신의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느냐 물었지.

부모님은 네가 문을 닫길래 라디오가 시끄러워서 그런줄 알고 신경쓰지 않으셨다 했어.


하지만, 나는 문을 닫은 기억도 없고, 문을 고정시켜둬서 절로 닫힐 리도 없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뭔가 점액질에 강제로 덧씌워진 기분에 신경질적인 샤워를 마쳤어. 


신경질적인 샤워를 마치고 나서 조금 진정된 마음으로 나는 PC 앞에 앉아서 이 경험을 말했지.

그리고 그 경험담과 꿈의 가장 밑에 조금은 장난스러운, 이런 질문을 써넣었어.  


"님들, 이런 현상이면 어떤 몬무스임?" 


PC 이외의 가독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PC로 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