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한지도 어느 새 한 달이 흘렀다. 언제나처럼 등교길을 나선 소년의 귀에 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와 같은반인데다 늘 함께 등교길을 나서는 쇼거스였다. 


[정말 안 나가실거예요? 저번 학기야 유야무야 넘겼지만 이번 학기도 이러시면 제적이예요 제적!]

[.......]

[어휴 정말! 오늘 정말 특단의 조치를 취할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문을 쾅 닫고 화를 씩씩 내며 나오는 쇼거스를 소년은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쇼거스도 그런 그를 보며 언제 그랬냐는듯 헤실헤실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소년은 그렇게 고함을 지르던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졌고, 그녀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집 안에는 누구야? 언니 되는 사람이야?"

[아휴, 언니는 무슨. 그냥 모지리 주인놈이예요.]

"주인? 벌써 결혼한거야?"

[결혼은 무슨! 오랜 예전부터 전통에 따라 내려오는 계약 뭐시기에 묶인 관계라구요. 무엇보다 주인놈도 마물소녀라구요.]


결혼했냐는 말에 마치 모욕을 당한듯 펄쩍 뛰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쇼거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나서야, 쇼거스는 정확히 어떻게 된 사이인지 그에게 소상하게 말해주었다.

쇼거스는 현대 사회에서도 키키모라와 버금갈 정도로 유명한 '봉사에 특화된 급사종족'으로 유명하고, 그 때문에 대부분 가정부로서 취직하거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키모라나 레프러칸, 브라우니 같은 경우에는 종족의 태생 자체가 전통적으로 가정을 돕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지만 쇼거스의 경우에는 그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태초의 쇼거스를 만들어 낸 종족이 바로 그 올드 원이라는 거죠.]

"신기하네.... 그래서 오랜 예전부터 전통적인 계약이라고 이야기한 거야?"

[역시 이해력도 좋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네요. 이러니까 제가 주인삼고 싶어지다니까요.]

"하하, 그건 나중 일이고. 그것보다 그렇게 대단한 종족이면 옛날부터 유명했을 텐데?"


한숨쉬는 쇼거스는 이미 그것은 아주 먼 과거, 영광에 젖은 흔적들 뿐이라고 했다. 스스로의 능력에 안주하고 자만했던 올드 원들은 빠른 속도로 쾌락을 탐닉하며 쇠락해 갔고, 지금 남아있는 후손들은 그 흔적만 미미하게 남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이다. 


[뭐 그 주인놈 같은 경우에야 생물학에 소질이 있어서 학교에서도 특별취급하면서 등교 안 해도 등교했다고 해줬지만, 얼마 전의 감사때문에 그런것도 이제는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뭔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야... 그래서 그렇게 오늘 아침부터 화를 낸거야?"

[그래요! 방구석에 콕 박혀서는 혼자서 뭘 하는지 모르겠고, 챙겨주는 밥은 그래도 잘 먹어서 살아는 있는거같은데 도통 모르겠다니까요?]


소년은 허허로이 웃으며 고생이 많은 쇼거스의 등을 도닥이며 주물러 주었고, 쇼거스는 미소를 지으며 더 해달라고 보채는, 그런 등교길이 되었다.


* * *


"소년 군. 그럼 잘 부탁하네."

"네...네에에..."

단축 수업으로 낮에 수업이 끝나게 되어 집으로 가려던 그 때, 쇼거스를 따라 교무실로 간 소년은 커다란 짐을 떠맡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마침 이웃이라는게 화근이었을까, 아니면 평소 쇼거스와 친하게 지내던 것이 문제였을까. 학생부장을 맡고 있던 백택 선생이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부탁한 것이 바로 '올드 원 등교 대작전'이었다. 아침에 이야기했던 그 방구석 폐인을 어떻게든 학교로 데려와 달라는 진심어린 부탁과 이참에 봉사점수도 챙겨주고 생활기록부도 이쁘게 써주겠다는 청탁 아닌 청탁에 어쩔수 없이 이 일을 떠맡게 된 것이었다.


"오늘부터 어떻게든 구슬려야 하는 걸까?"

[마침 얼마 뒤면 중간 고사니까 같이 공부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찾아오는 건 어때요?]


그러거나 말거나 쇼거스는 귀찮았던 주인놈과 관련된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과 평소부터 좋아했던 소년을 집에 들인다는 그 사실만으로 기쁜지 생긋생긋 웃으며 원형질막을 꿈틀거렸다. 어서 들어와요. 소년은 그렇게 쇼거스가 사는 집 안으로 발을 디뎠다.


역시 유명한 급사 종족이라서 그런가, 소년은 집안이 정말 빛이 난다고 느낄 정도로 반짝거리고 정리가 잘 된 집 안의 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아침에 만들었는지 미미하게 남아있지만 향긋한 카레 냄새가 식욕을 돋우었고, 거기에 환기가 잘 되어있는데다 습도도 적절한 것이 아주 쾌적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구석에 닫혀있는 방문을 마주하고는, 직감적으로 이 곳에 올드 원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꽉 닫히고 답답하고 어딘가 습해보이기까지 하는 문. 문앞에는 오늘 아침을 해결했다는 듯 어질러진 식기가 놓여져 있었다.


[주인놈. 그래도 싹싹 잘 먹었네요. 평소에는 다 먹지도 않고 남기면서 부스럭 부스럭 과자나 씹어대더니.]

"하하... 하... 그러면 어디"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의 일부가 열렸다. 이참에 더 열어보자는 듯 힘을 주었지만 무거운 빗장을 걸친 듯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쇼기야? 점심 줘.]

[주인놈아! 학교에서도 예전처럼 편의 못 봐준다고 공지 나왔단 말이예요! 내일부터라도 학교 가자구요!]

[학교는 싫어. 내 방이 아늑하고 좋아. 밖에 나가긴 싫단 말이야.]

[정말 이럴거예요?!]


문 앞을 놓고 언제나처럼 대치를 하고있는 둘을 보던 소년은 그 사이에서 슬쩍 문을 더더욱 밀었다. 평소 쇼거스가 밀던 것에 맞춰서 막아놓은 빗장일 테니 거기에 소년의 힘을 더 얹으면 빗장도 버티지 못할 것이란 계산이었다. 소년이 점점 힘을 주자 드드득, 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빗장이 풀리거나 부러지려는 소리가 났고, 황급히 그것을 막으려는 푸닥거림이 방 안에서 들렸지만 그것보다 문이 열리는 것이 더 빨랐다.


와직.


"됐...으악!!"

[꺄아아악!!]


문에 온 힘을 쏟았던 소년은 자연스레 문이 열림에 따라 방 안으로 굴러 들어왔고, 그가 부딛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촉수다발이 흐드러진 머리와 그 사이로 힐긋 보이는 눈, 박쥐의 날개와 같은 피막 날개. 그리고 포동하고 말캉한, 살집이 있는 그녀의 몸이었다.


라는 느낌으로 올드원과 소년과 쇼거스의 삼각러브코메디가 보고싶어. 누가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