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얗고 네모난 방에서 눈을 떴다. 여긴? 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내가 일어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 정신이 들어? 긴 말할 거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너는 죄인이야. 지금부터 너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이 방에 가두었고, 세 개의 문 만이 유일한 탈출구지. "


그 목소리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로 문 세 개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 각각의 문은 왼쪽부터 펄펄 끓는 용암이 바닥에 가득한 방으로 이어지는 문, 적어도 지나갈 수 있게끔 밧줄을 연결해놨지만, 자칫 떨어지면 어찌될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


어려울 거 없어 보이는 조건이었으나 건너갈 길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함정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기에 나는 그 방은 넘겼다.


" 오른쪽 문은 영하 -125도의 극저온실. 그냥 가면 재미없으니까, 등반 장비 하나로 절벽 오르기만 하면 건너갈 수 있어. "


이 또한 조건은 단순하지만 극저온에서는 손이 닿기만해도 들러 붙다가 가죽이 찢어진다거나, 등반 장비가 딱 하나라는 점, 그리고 내 옷은 집에서 입는 간결한 옷이어서 추위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 방도 넘겼다.


" 중간의 문은 10년간 굶주린 만티코어가 들어가 있어. 넌 도구도 없이 이 흉포한 녀석과 맞서 싸우거나 도망쳐서 반대편 문으로 가기만 하면 돼. "


이 문들 중 하나에 들어가면 다신 못 나와. 그럼. 이란 말을 끝으로 스피커에선 더는 음성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깊게 고민한 끝에, 나는 중간의 문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건 유명해서 본 기억이 있다. 10년간 굶주렸다면 제아무리 흉포한 생물일지라도 진즉에 아사할 시간이다.


" ……――어. "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방. 아니, 한가운데에 여성 하나가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 만티코어는? "


" 응? "


내가 중얼거린 소리를 들었는가 여성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씨익- 소름이 끼치는 미소를 띄우며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 호오? 내 방을 고른 거야? 죄인이라고 하더만 착하네~ 일부러 '여길' 고르다니 말야. "


" 이게 무슨… "


만티코어라더니 내가 알던 그런 괴물이 아니라 웬 꼬리를 단 여성이었고, 10년간 굶주렸다더니 팔팔해보이기만 하는 건강한 체형이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여 바로 방을 빠져나가려 했을 때, 문은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 안돼지 안돼~ 기껏 '지목'을 했으면서 여자에게 망신을 줄 셈이야? 그래서 죄인이구만? 이런 나쁜 아이에겐… '벌'을 줘야겠지? "


질꺼억-


수상하게 생긴 보라색 타액을 늘어뜨리며 꼬리 끝 부분이 벌름거린다.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문을 등지고 벌벌 떨다가 아까의 의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10년간 굶주렸다. 보통은, 그렇게 긴 시간을 굶주리고 살 수 있는 생물은 없다. 그 목소리는, 일부러 굶주렸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10년이란 시간을 말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힌트였는데 내가 신경쓰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배가 고파보이지 않는 듯 하단 건, 잘 먹고 살았다는 뜻일 거고. 굶주렸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내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꼬리가 나를 찌른다.


" 히히히, 자-알 먹겠습니다~ "



나는, 그렇게 굶주린 만티코어의 식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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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 수수께끼가 생각나서 써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