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마물은

인간보다 뛰어난 외모와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능력과

인간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


하지만,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종하지 않았다.


모든 마물은 자신의 서식지와 환경이 다르면 버티지 못했지만

인간은 인간계 천계 마계 모든 곳에서도 다 살아갈 수 있었고


인간이 없으면 마물 또한 번식을 하지 못 했으니까.



"저, 그러니까, 좀 지나갈게요..."


'특급 배달! 마계부터 천계까지! 화산부터 크레바스까지! 어디건, 어떤 물건이건 다 배달해드립니다!' 라는 문장을 등에 맨 체

몬붕이는 항구 뒷 골목을 막고 있는 혹등고래녀에게 부탁했다.


"안~돼. 요즘 여기 뒤는 위험하대두! 이 아줌마 말을 들으렴. 너 여기 처음이지? 내가 대신 전해줄테니, 돌아가렴."


"저, 그래도 우리 회사 방침이..."



처음, 배달 서비스는 호평이었다.

천계에서만 살던 천사들은, 마계에 존재하는 '도수 높은 술 위에 불을 붙여 먹는 화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열광했다.

마계에서만 살던 마물들은, 천계에 존재하는 '천년간 하루에 이슬 한 방울씩 모아 만든 마력 포션'에 역시 정신을 못 차렸다.


숲 지대에 살던 알라우네는 바다 크라켄과 싸우는 선원들의 그림을 보며 황홀해했다.

설원 지대에 살던 예티들은 터져나오는 화산 지역을 묘사한 그림을 보며 전율했다.



그 다음, 배달 서비스는 악평이었다.

'돈이 된다'는 명목 하에, 배달부를 자청하고, 물건을 훔쳐 도망가는 인간이 많아졌다.

화산 지대에서 절도를 저지르고 바다로 떠난 인간을 잡을 수 있는 헬하운드는 없었다.

진주와 산호를 훔쳐다가 마계로 떠난 인간을 잡을 수 있는 인어는 없었다.



그리고, 다시 제 2의 전성기가 다가왔다.

'물건을 훔쳐 도망간 배달부를 잡으면, 그 배달부를 성노예로 삼건 감옥에 가두건 우리는 지지하겠다' 라는 회사의 방침이 내려왔다.

그러자, 오히려 인간이 물건을 훔치길 바라는 자들이 늘었다.


어떤 소녀는 유니콘의 뿔로 만든 딜도를 훔쳤다가, 원래 배송받기로 했던 악마의 오나홀 신세가 되었다.

어떤 소년은 트러플 마이코니드의 포자를 훔쳤다가, 본인이 마이코니드의 숙주가 되어 영원히 착정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완벽한 법은 없는 법.


곧이어, 물건을 배송받았음에도 '도난당했다' 라고 신고하는 마물이 늘었다.

무고한 인간들이,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지 못하면 성노예로 마물들에게 팔려나가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이젠, '배달부 확인 서비스'가 생겼다.


물건을 제대로 전달하면, 전달 받은 마물에게 사인을 받는 것.

본인의 목소리와 마력을 담아서 사인을 해야 하기에, 위조도 불가능하고 거짓 신고도 불가능해졌다.


... 그것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러.니.까! 요즘 백상아리 갱단이 항구에서 바글바글댄대두!"


몇 십년간 항구에서 'Shining Shrimp' 술집을 운영하던 혹등고래 마담은, 외지인이 이 무법지대 항구에서 길을 잃을까, 아님 목숨을 잃을까, 아님 정조를 잃을까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몬붕이 역시 다급했다.


자신이 직접 '배송 확인'을 받지 않으면, 절도범으로 오해를 받을 여지가 생긴다.


기본적으로 혹등고래 아인들은 '자신의 적이 아닌' 다른 모든 이들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지금 이 배송물을 받을 고객은 '범고래 아인'이다.


교육시간에 지긋지긋하게 배운 내용이다.


"드리아드들은 하피 아인들을 싫어한다. 자신들이 깃든 나무의 열매를 훔쳐 먹거든. 하지만, 하피들이 열매를 먹음으로서 번식을 할 수 있는 열매에 깃든 드리아드들은 오히려 하피를 반기기도 한다. 캡사이신이 가득한 고추라거나..."


"범고래 아인들에게 물건을 주문할 때는, 결코 고객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바다 아인들의 공적이기 때문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어떤 마물이 다른 마물을 싫어하는지

어떤 마물이 다른 마물을 좋아하는지


99점은 필요 없다. 오로지, 100점만이 배달부의 자격을 얻었다.


그렇기에, 몬붕이 역시 고객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혹등고래녀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저희 회사에서, 제가 직접 고객의 목소리를 녹음하지 않으면, 수당을 줄 수가 없대요..."


혹등고래 마담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결국 길을 터 주었다.


"그래.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크게 소리치렴. 알겠니?"



범고래 아인의 집은 항구에서도 제일 외따로 떨어진 집이었다.

아까 그 혹등고래 마담보다는 작지만, 몬붕이보다는 월등히 큰 범고래 아인 남자가, 씩 웃으며 '물건'을 받았다.


"이야~ 인간이 여기 오다니. 반가워! 내가 평판은 안 좋지만, 인간에겐 친절하다고."


그리고

이제까지 몬붕이가 겪어보았던 그 어떤 마물들보다 신사적으로

범고래 아인은 '배송 확인 완료' 마법진을 가동시키고, 자신의 목소리로 '물건 이상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라고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럼, 수... 수고하세요!"


"그래, 몸 조심하고! 요즘 여기에도 갱단 나부랭이가 판치거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범고래 아인 남자가 말했다.

온 몸에 새겨진 흉터와, 전과 기록만 아니었어도 몬붕이는 분명 좋은 마물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아닌 걸 알기에, 몬붕이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거 뭐야?"


골목길을 나오는 길에

백상아리녀 셋이 몬붕이의 앞 길을 막았다.


"저 새끼에게 준 물건, 뭐냐고."


"저, 저는 배달부 나부랭이라... 물건이 뭔지는 알지 못..."


"아, 아... 닥치고... 물건이 뭔지 배달부가 진짜 모를 리가 있나. 저 새끼가 가져간 게 뭐냐고."


순식간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백상아리녀 셋은 몬붕이를 구석으로 몰았다.


"한번 깨물려 봐야 정신 차리나?"


"뭘 깨물어볼까? 입으로 니 몸통을 깨물어볼까? 아님 보지로 니 자지를 깨물어볼까?"


"뭘 배달해줬냐고. 씨발, 저 새끼가 뭔 짓을 하는지 알아야 우리도 대응할 거 아냐!"


점점 행동과 말이 거칠어지는 백상아리녀들을 보며

몬붕이는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거기 너희, 뭐 하는 거니!"


그리고, 아까 길을 막았던 혹등고래 마담이 어느샌가 다가와 몬붕이를 감쌌다.


"얘는 그저 배달부일 뿐인데, 어떻게 그런 걸 알겠니... 그냥 지나가자. 응?"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혹등고래 마담은 몬붕이를 어깨에 들쳐메었다.


"어이, 아줌마. 그 새끼 놓고 가쇼.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백상아리녀들은 서서히, 허리춤에 찼던 블랙잭을 꺼내들고,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혹등고래 마담은, 백상아리녀들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험한 꼴? 너희들이 내게? 할 수 있을까?"


"이 씨발...!"


곧 이어, 백상아리녀들은 블랙잭을 휘둘렀다.


몬붕이는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휘익 퍽 하는 소리가 신나게 울려퍼진 뒤


혹등고래 마담은 물었다.


"그게 끝일 거면, 보내 주지 않겠니? 인간이 겁내잖니."


전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은 채, 혹등고래 마담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희들같은 애들이 커서 되는 게 나 같은 아줌마란다. 서로 험한 꼴은 보지 말자꾸나."




뒷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큰 도로, 'Shining Shrimp' 술집 앞으로 나온 뒤, 마담이 물었다.


"많이 겁먹었겠구나. 그러니, 뒷 골목으로는 가지 말라고 했잖니. 아니면, 내게 같이 가 달라고 말이라도 하던가."


몬붕이는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혹등고래 아인이 모든 아종에게 친절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고래 아인이 맷집이 좋다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다음부턴, 차라리 나나 내 아들딸들 중 하나에게 부탁하렴. 호위 정도는 해 줄수 있단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담은 몬붕이의 어깨를 탁 쳤다.


"그러면... 우리 가게에서 한 잔 하고 가겠니? 공짜로 대접해 줄 수 있단다!"



그 뒤 몬붕이는

왜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술고래'라고 칭하는 지 깨닫게 되었다.


마담을 와이프라고 부르는 변화와 함께.



p.s. 나무위키에 보면, 혹등고래가 위험을 경고한 곳에 스쿠버다이버가 억지로 들어갈 경우 고수압, 소용돌이, 상어에게 노출되었고, 특히 상어에게 노출되었을 때는 혹등고래가 지켜줘서 안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글에서 모티브를 잡음.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monmusu/673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