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어느 키키모라와 그녀의 주인인 젊은 청년이 있었어.


둘의 사랑 이야기는 마을에도 유명했는데, 키키모라가 어릴 적에 골목에서 헤메는 고아였던 주인 청년을 데리고 극진히 애정을 쏟았다는 이야기였지. 참사랑의 귀감이라고 할 정도였어. 자신의 은인이자 연인인 키키모라를 청년은 사랑했고, 키키모라 또한 자신의 연인인 청년을 사랑했지. 그렇게 그 둘은 오래도록 행복한 사랑을 할 줄 알았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지.


하지만 어느날, 같은 이웃에 살던 밴시 아가씨가 정말 슬픈 표정을 지은 채로 그 둘을 찾아오면서 그 행복은 깨지고 말았어.

그래, 청년으로 자랐던 소년에게는 어릴때부터 끌어안고 있던 병이 있었어. 청년의 부모는 그런 병을 지닌 청년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골목에 버렸던 거야. 키키모라는 자신이 몰랐던 청년의 과거에 놀랐지만, 청년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더더욱 놀랐지. 얼마나 몸이 망가졌는지, 얼마나 더 버틸수 있는지 키키모라는 애걸복걸하며 밴시 아가씨에게 물었지만 밴시 아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이번 달이 마지막이고, 자신도 어쩔수 없다고 말이야.


첫 며칠은 키키모라가 이곳저곳에 발품을 팔며 연인을 살릴 방도를 찾아다녔어.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사가 찾아와도 이미 때를 놓쳤다는 말을 할 뿐이었어. 저 머나먼 바다에서 넘어온 새하얀 깃털의 칼라드리우스 의사도 그저 청년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때가 늦었다는 것을 말할 뿐이었지.  청년도 이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눈치였어. 키키모라는 눈물을 속으로 삼킬수 밖에 없었지.


그 다음부터, 청년은 키키모라에게 말했어. 우리가 지금껏 못했던 모든 것들을 하러 가자고. 마을을 벗어나 먼 곳을 여행하기도 하고, 바다에도 놀러가보자고. 병마는 점점 더 빠르게 청년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둘은 더 이상 후회할 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키키모라도 고개를 끄덕였어. 난생 처음 보는 바다의 넓음에 놀라고, 바다로 저무는 해와 수많은 별들과, 그 바다 사이를 헤엄치고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수많은 마물소녀들을 보며 즐거워했어. 하지만 여행 마지막 날, 빠르게 나빠져가는 청년의 건강에 그들은 황급히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지.


청년의 건강은 여행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망가져갔어. 침대에서 일어나 앉기를 버거워했고, 누워있는것 조차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였지.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키키모라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연인을 떠나보내고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키키모라의 마음을 더더욱 무겁게 했어.


그날부터 키키모라는 이웃의 아라크네 씨에게 도움을 받아 실을 잣기 시작했어. 무엇인가 단단히 결심한 모양새였어. 평소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둘의 사랑을 응원하던 아라크네 씨는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왔어. 아라크네의 튼튼한 거미줄이 아름다운 빛깔의 실로 거듭나자, 키키모라는 연인의 앞에 앉아 천천히, 재봉을 시작했지.

아라크네의 실은 키키모라의 깃털과 함께 한 데 섞여 하얀 빛을 띈 정갈한 옷으로 거듭나기 시작했어. 키키모라는 그렇게 옷을 만드는 사이에도 청년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고, 청년은 키키모라에게 계속해서 대답을 해 주었지.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르면서 옷은 마지막 마감을 기다리고 있었어. 청년은 이제 정신을 차리고 있는것조차 버거웠어.

마을의 모두가 청년의 이승의 마지막을 지켜보려 찾아왔어. 밴시의 눈물과 함께 흐르는 키키모라의 눈물. 키키모라는 자신의 연인에게 자신이 짠 정갈한 옷을 덮어주었어. 청년은 마지막 남은 힘으로 키키모라가 건네준 옷과, 키키모라의 손을 붙잡고 대답했어.


'꼭 돌아올게.'


그 말을 끝으로 청년은 눈을 감았어.





그리고 청년이 떠난 지 몇 해가 지난 어느날, 밴시가 키키모라네 집의 문을 두드렸어.

키키모라는 문을 열었고, 그 앞에 서 있는 자에게 황급히 다가가 포옹을 했어.

새하얀 옷을 입은 청년도, 키키모라를 품에 꼭 안았지.


'돌아왔어. 다시는 혼자 떠나지 않을게.'


두 연인의 재회를 지켜본 밴시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축복했단다.


키키모라가 실을 잣는 것을 본 사람은 곧 죽는다는 전설이 있지만, 사실은 키키모라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주인을 위해 실을 잣는다는 이야기가 잘못 전해진 거란다. 그 실을 따라, 주인이 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을 포옹해주길 기원한다는 사실을, 이젠 알겠지?




키키모라 실 잣는걸 보면 곧 죽는다는 전설을 보다가 살짝 꼬아 보았다.

순애는 좋아. 마음이 따뜻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