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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숲을 나선지 3년이 지났다. 나는 다시 홀로 이 숲을 지키고 있었다. 그 아이와 있었던 일이 자꾸만 생각나서 나는 악착같이 이 숲을 지키는 일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자리해있던 그 아이가 없어지니, 마치 내 마음은 밑빠진 독처럼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받으며 그 아이를 바라보며 느끼던 고통과는 다른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눈 앞에 아른거리는 아들의 얼굴. 숲을 같이 거닐며 발견했던 버섯이나 꽃을 보면 언제나 아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들을 떠올릴때마다 마치 구멍뚫린 상처에 바람이 불어 아리듯 가슴이 아파왔다.


아들과 마지막으로 겨뤘던 수련장에서 아들을 추억하고 있을때,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넌 살인자에 이기적인 쓰레기야."


그리고 그런 상태가 계속되자, 내 주변에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를 모욕하고, 내가 했던 모든 일을 부정하며, 내가 이룬 모든것에 저주를 퍼붓는 이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더 선명하고 또렷해졌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로 또다시 내 귓가에 속삭인다.


"그 비뚤어진 애정으로 너는 아들의 혈육을 베어죽이고 기뻐했지. 언제나 아들이 네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야."


"........."


"그 쓰레기같은 마음때문에, 너는 부모가 될수 없었지. 참 우스운 일이지, 안그래?"


무언으로 답하며 언제나 무시해왔던 이 검은 목소리는 그 아이를 추억할때마다 그 목소리를 높여 내게 참을수 없는 모욕을 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언제나 아이를 보며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 아이를 소유하기 위해 죽인 친부모를 보면서, 정말 너는 안도하기만 했을까?"


"......그만."


"어머니로서 아이를 사랑했던 너의 그 모성애는, 정말로 모성애였을까? 아니면.. 다른 감정이었을까?"


"....그 입을...다물어.."


목소리내어 반응하자, 마치 놀잇감을 발견한 들뜬 아이처럼 웃으며 검은 목소리가 말한다.


"너...사실은 그 아이를 이성으로 사랑했지? 그렇지?"


마치 악마가 내 귓가에 속삭이며 검은 숨을 불어넣는듯한 끔찍하고 섬뜩한 감각.


"....아니야...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려고 연인의 부모를 죽여 기뻐했던 그 혐오스런 감정을 스스로 깨달으니, 혐오감과 죄책감이 몰려와 그 아이와 대결했던거지?"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밑 빠진 독에서 무언가 검은것이 올라온다.


"...틀려...아니야..아니라고..."


"절대 숲에서 내보내지 않으며 평생 아들이자 곧 남편이 될 남자를 키우고 있었잖아?"


".......닥쳐..."


"그리고 성인이 된 아이와, 몸을 섞는 상상을 하며 몸이 달아올랐었지?"


"..그만하지 않겠다면..."


"그리고 그런 남자가 너를 떠나니, 그 공허함에 고통스러워하며 더더욱 자신을 망가뜨려갔지."


"너를...베어주겠어...베어서..."


"죽이려고? 그날 죽였던 그 인간들처럼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내려고?"


"......."


"너는 괴물이야. 비틀린 애정을 지닌 추악한 괴물이지."


"아들과 부부가 되어 남은 생을 행복하게 보내려 했던 그 추잡한 생각을 과연 아들이 몰랐을까?"


"너는 선을 지키려 애썼지만, 정말 너는 선을 지켰을까? 그 아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는 알까?"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나를 모욕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웃고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네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그 추악한 마음이 너를 점점 잠식하고 있었겠지."


"아들이었던 남자와 사제관계가 된 너는 어엿한 성인이 된 그 아이를 보며 언제나 그 추악한 마음을 참느라 매일매일 고통스러워 했지."


"...................."


"그리고 성인이 된 제자를 보며, 너의 추악한 생각은 결국 선을 넘으려 했지."


"..................................."


"너는 제자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발정했지. 매일 밤마ㄷ......"


허리춤에 메어뒀던 검을 뽑아, 목소리가 들렸던 곳에 미친듯이 휘둘렀다. 팔이 떨어질듯 아파왔지만, 신경쓰지 않고 나는 계속 휘둘렀다.


그렇게 한참을 휘두르자, 문득 목소리가 더이상 말을하지 않음을 느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처참하게 베어진 나무들과 이곳저곳 난도질 하듯 갈라진 땅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내 마음과 같은 풍경이었다. 갈라지고 깨지며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한듯한 수련장.


"...잠시 멱이라도 감아야겠군. 마치 온몸에 진흙이 묻은것 같은 기분이야."


무언가에 홀린듯이 혼잣말을 하며, 나는 근처에 있는 냇가로 향했다.


한참을 검을 휘두른 탓인지, 온몸은 땀에 젖어 끈적해진 몸을 씻어내고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냇가에 도착해 그 물을 들여다보자, 내 모습이 비춰보였다.


".....하하...폐인같군."


마치 죽은 생선같은 눈과 피곤하고 우울해 보이는 표정.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질것같은 표정의 꼴사나운 엘프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하하....한심해......정말...한심해......."


이제 더이상은 무리야. 나는 이제 더는 살아갈 자신이 없어. 이제 끝내고 편해지고 싶다.


허리춤에 메여있던 검을 뽑아냈다. 목을 한번에 그어버린다면, 분명 출혈사하겠지. 내게 맞는 고통스러운 죽음인것같군.


마지막으로... 너를 볼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너에게 해주지 못한 일, 말하지 못한것. 전부 이루지 못할 꿈이지만..


만약...내가 여기서 죽어 너를 만난다면... 미안하다고 하고싶구나.


정말 사랑했노라고, 어머니로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너를 정말 사랑했다고. 그런 말이 하고싶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길게 목을 긋자, 피가 울컥거리며 쏟아진다.


마치 타는듯한 목의 통증. 입에서 토해지는 피와 빠르게 뛰는 심장.


그리고 나는 멀어져 가는 의식속에서 게르트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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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