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날이 갈수록 차가워지는 바람과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늘어나는 늦가을의 어느 날.


추수를 모두 끝낸 농지를 지나,넓게 펼쳐진 들판을 게르트와 타이펀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겨울을 대비해, 평소 입고있던 갑옷 위에 다이어 울프의 모피를 덧대어 만든 두꺼운 망토를 두른 게르트.


입고있는 갑옷을 숨긴듯이 두른 망토와,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허리에 찬 검이 풍기는 사고를 칠 것만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용의 가죽으로 만든 느낌의 얇은 녹색 가죽갑옷과 손과 발을 따라 덮여있는 단단한 비늘, 뱀과 같은 노란색 눈과 게르트처럼 몸을 두른 따듯한 털망토와, 망토에 가려 살며시 보이는 녹색의 꼬리.


포니테일의 예쁜 아가씨인 타이펀과 험상궂은 용병같은 느낌의 게르트. 그런 특이한 분위기의 두사람이 들판을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었다.


"음... 조금 있으면 점심이군. 게르트, 특별히 생각나는게 있나? 가능한 선에서 만들어주지."


"글쎄...딱히 생각나는건 없는데."


슬쩍 타이펀을 보며 시큰둥하게 말하는 게르트. 그런 게르트를 보며 싱긋 웃고는 타이펀이 말했다.


"아직 점심까진 좀 남았으니까, 원하는게 생기면 말해줘. 최선을 다해서, 내 애정을 담아 만들어 줄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부담스럽다고."


타이펀이 쑥쓰러운듯 앞을 보며 말하는 게르트.


"후후.. 덩치는 산만하면서 쑥쓰러워 하기는. 정말 귀엽다니까."


"....."


'또 말려들것같군.' 게르트는 속으로 생각하고는 말을 아끼며 타이펀의 시선을 무시했다.


"쑥쓰러워 하는 모습도 참 좋다니까. 평소에는 세상 무섭게 진지하면서, 쑥쓰럽거나 부끄러우면 나랑 눈도 못마주치고."


말을 아끼며 애써 시선을 무시하는 게르트를 귀엽다는듯 바라보며 타이펀이 말했다.


"나는 진지한 너도 좋지만, 귀여운 모습도 좋아해. 평소랑은 다르게 신선한 느낌이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웃는 타이펀. 그런 대사에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려 성큼성큼 걸어 타이펀의 앞으로 간 게르트.


게르트의 등을 바라보던 타이펀이 게르트의 귀를 보며 풋,하고 웃는다.


"뭐야. 왜 웃어?"


"아니.. 게르트, 혹시 부끄러워?"


"그럴 리.."


그렇게 말하며 게르트의 옆으로 다가온 타이펀과 게르트는 눈이 마주쳤다. 사랑스러운듯 자신을 쳐다보는 타이펀의 눈을 보자 순간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낀 게르트가 홱 고개를 돌렸다.


"......."


빨개지는 얼굴을 빠르게 돌리자 타이펀이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하하! 진짜, 귀여워 죽겠다니까!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건지!"


"시..시끄러워! 오히려 너는 좀 덜 솔직해야한다고! 부담스럽다고 매번 말하잖아!"


당황해서 소리치는 게르트를 보며 타이펀이 놀리듯 다가오며 말했다.


"으으음? 부담스럽기만 한게 아닌거같은데에?"


가까이 다가오자 얼굴이 붉어진 게르트를 본 타이펀이 귀엽다는듯 생글생글 웃는다.


"윽......젠장..."


어느덧 그녀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지 두달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언제나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타이펀에게 게르트는 인간적인 끌림을 느끼며 시작한 여행이었다.


여행하며 알게된 타이펀은 발정난듯 달려들었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가정적이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디를 가더라도 언제나 당차고 솔직하며, 의외로 가정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며 게르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느꼈던 인간적인 끌림은 점점 호감을 넘어 연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이성과는 엮어본적이 없었던 게르트는 자신이 겪는 마음의 변화가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요새 왜 이러지? 요즘따라 저녀석이 저런 눈을 하면서 나를 보고있으면, 가슴이 뛰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겠군.'


하지만 게르트의 마음의 변화를 타이펀은 놓치지 않고 캐치했다. 이제 남은건 게르트가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는것만 남았다.


그리고 타이펀은 자각할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것이라는걸 잘 알고있다.


게르트가 타이펀에게 의외의 면모를 발견했다면, 타이펀은 게르트라는 사람을 어느정도 파악하기 시작했다.


목적없이 여행하면서도 지나가다 마주친 약자를 돕는것에 주저가 없고, 매사 진지한 태도로 모든것을 임하려 하며, 자신이 먼저 상처주는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보기에 옳지 않은것에 화낼 수 있는 강자. 그것이 게르트였다.


그리고 호감에서 연심으로 변해가는 게르트처럼, 타이펀은 자신을 꺾은 수컷에게 따르는 본능에 의한 사랑과 게르트의 됨됨이와 성격을 보며 생긴 호감이 섞여, 본능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게르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으으음? 왜 너는 그렇게 부끄러워 하는걸까아?? 나는 이유를 알것같은데.."


"큭.....!"


쿵쾅거리며 울리는 심장과 상기된 얼굴. 게르트는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앗..!"


더 가까이 붙어있다간 어떻게 될것같았던 게르트가 타이펀에게서 도망치듯 달려갔다. 게르트의 멀어지는 등을 보며 타이펀이 당황하듯 외쳤다.


"이런.. 너무 괴롭혔나... 게르트! 잠깐! 너무 가잖아!"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대한 간격을 두기위해 게르트는 달렸다. 뒤이어 달려오는 타이펀을 향해 게르트가 소리쳤다.


"잠깐은 무슨 잠깐! 너, 좀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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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두번 날려먹고 겨우 완성했네 슈발


드디어 잘수잇겟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