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흐음..."


두사람은 계속해서 현장을 조사했다. 치열한 전투의 흔적들을 쫒아가던 타이펀이 손을 입에 가져다댔다.


"...냄새만 찾을수 있으면 어느정도 추적은 가능할텐데.."


"....그거 말인데. 이건 어때?"


"응?"


게르트는 쭈그려 앉아 움푹 패인 성벽 근처를 뒤지더니, 천조각을 건내줬다.


"....이건?"


"아마 그분이 두르고 있던 붕대겠지. 뭔가 깔려있길래 꺼내봤어."


"...흐음."


부상당한 팔에 두른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붕대는 검붉은 색으로 얼룩져있었다.


타이펀은 붕대를 유심히 보며 냄새를 맡아봤다.


"....특이한 냄새가 나네. 뭐랄까..."


형용하기 어렵다는듯 말문이 막힌 타이펀.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일단 이 냄새의 주인은 이 벽에서 바로 정문으로 나갔어."


게르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분의 것이 맞나보군."


"정황상 맞겠지. 추적할까?"


".........."


게르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 만같았다.


"......일단 하루정도 된 흔적이라, 비만 오지 않는다면 금방 찾아낼수 있을거야."


"......그럼 가보자. 이대로 비가 내려버리면, 찾아낼수 없을거아냐."


"......알았어."


두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정문을 나섰다.


피웅덩이를 밟지않게 조심스레 건너 앞으로 나아가던 두사람의 앞에 위병이 말을 걸어왔다.


"오. '신속'의 두사람이군. 조사는 끝났나?"


"대강은. 저 안쪽의 현장에서 볼만한건 다 봤으니까 나머진 알아서들 해도 돼."


"그렇군...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길이지?"


"범인을 쫒을 단서가 생겨서 말이지. 그대로 쫒아가려한다."


덤덤하게 말하는 게르트의 말에 위병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군. 어디로 향하는지 정확히 아는건가?"


"...내 아내의 후각에 의존해서 쫒는거라, 정확한 행선지는 모르겠군. 그쪽네 대장에게 보고만 해줘."


"....알겠네. 부디 무사하길."


"그쪽도."


위병은 두사람을 바라보며 길을 내주었다. 게르트와 타이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두사람은 그렇게 성채도시를 벗어나, 냄새의 흔적을 쫒아갔다.


타이펀은 혀를 날름거리며 추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계속해서 냄새를 쫒자, 둘은 성채도시 동남쪽에 위치한 인적 드문 숲으로 향하는 발자국을 발견했다.


페나르핀이 가까웠다.


하지만,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불온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


게르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불안한듯이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 경계를 시작했다.


앞서가며 혀를 날름거리던 타이펀이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게르트."


타이펀은 게르트를 바라보며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준비하자."


게르트는 조용히 검을 뽑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후우...."


타이펀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허리춤에 매단 곡검을 천천히 빼들었다.


둘은 등을 맞대고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이내 주변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들리는것이라곤, 서로의 숨소리와 자신의 고동소리 뿐.


"............."


둘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순간.


저벅. 저벅. 저벅.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겨울철의 숲 속에서, 낙엽을 밟고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하나, 두사람의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낙엽을 밟고 절걱거리는 인간의 소리였다.


저벅. 저벅. 저벅.


"................"


게르트는 천천히 오른쪽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타이펀은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저벅. 저벅....


계속해서 걸어오던 무언가는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고,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숲 속에서, 사람의 형체를 한 무언가의 어깨부분에 창백한 푸른 불꽃이 보였다.


"..........."


먹구름이 낀 어두운 하늘 아래, 음영이 진 숲 속의 무언가의 실루엣은 그 푸른 불꽃이 없었다면 파악조차 힘들었을것이다.


"......앞으로 나와라."


게르트는 차분히 무언가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러자, 형체는 조금씩 앞으로 나오며 그 정체를 드러냈다.


"........아가."


"...오랜만이군요."


창백한 피부에 바다같이 푸른 눈에 금색 머리칼, 몸에 두른 갑옷, 그리고 오른편에 찬 요도 - 야츠후사.


그리고, 백골이 된 오른팔에 붙은 창백한 불꽃까지.


오랫만에 만난 어머니이자 스승이었던 존재는, 더이상 엘프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페나르핀은 숲 속에 그늘진 음영에서, 게르트의 목소리에 반응하듯이 걸어나왔다.


"아아....게르트. 내 아가....보고싶었단다.."


페나르핀은 마치 유령처럼 흐느끼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애틋함이 묻어나온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모자지간이 아니지않습니까."


"...참 박정하구나. 네가 아무리 끊고싶다고 한들, 우리의 관계는 가벼이 끊을 수 없는것이 아니더냐."


게르트는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을 굳혔다.


"....당신은 '어머니'였고, 한때는 '스승'이었지만, 이제는 제게 아무것도 아닌 분이십니다."


타이펀은 마른침을 삼키며, 검을 뽑지도 않은 상대에게 큰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피비린내와 위압감에서, 그 압도적인 위압감에 타이펀의 심장은 미친듯이 뛰고있었다.


"....아아...게르트...너는 또 다시...내 가슴에 칼침을 놓는구나.."


페나르핀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운듯이 말했다.


"....당신 또한, 내 마음을 난도잘하셨기에."


게르트는 차분하고 냉정한 얼굴로 페나르핀을 바라봤다.


"....내가 해온 모든 일은...오롯이 너를 위해서 한 일이란다...아가야."


"저를 위해서? 저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이셨습니까? 저를 위해 숲에 찾아온 친부모를 죽였습니까? 더이상 그런 말도안되는 거짓으로 저를 속이려들지 마십시오."


"....도무지 믿어주지를 않는구나. 고집스러운점이 참 너다워....후후후... 허나, 언젠가는 너도 내 마음을 이해하겠지..."


페나르핀은 살풋 웃어보였다. 얼굴은 웃고있었지만, 게르트는 왠지 모를 집착어린 광기를 느겼다.


"...또 그날과 같은 변명을 하시는군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저는 당신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네 옆의 독이나 뱉는 추잡한 도마뱀은 누구더냐?"


갑작스레 화제를 돌리는 페나르핀. 웃고있던 눈을 가늘게 뜨고 타이펀을 바라봤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 남자의 아내되는 금 등급 모험가, 펄라이트 타이펀이라 합니다."


페나르핀은 순간 정색을 하며, 날카롭게 노려봤다.


"....아내.....아내....아내라고?"


페나르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녀의 몸에서 검붉은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내....아내....아내....아내....?...."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그녀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페나르핀의 오른눈이 붉게 물들었다.


페나르핀은 갑자기 튀어나가듯이 달려 단숨에 타이펀의 눈 앞까지 와버렸다. 그녀의 눈에 살의가 들끓고있다.


"...!?"


"........누구 마음대로. 내 아이의 옆에서. 아내라는 말을. 꺼내는게냐. 이 더러운 도마뱀이."


"...읏!"


페나르핀은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고 타이펀의 오른 어깨로부터 대각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 추잡한 몸뚱이를 치워라, 더러운 도마뱀."


"...읏?!"


"타이펀!!"


챙-!!


게르트는 화들짝 놀라며, 검을 휘둘러 페나르핀의 일격을 튕겨냈다.


".....어째서? 게르트. 내 아가. 왜 나를 막는게야?"


"...괜찮아?"


"어어...미안해."


타이펀은 충분히 반응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페나르핀이 뿜어내는 그 광기어린 살의에 몸이 얼어붙은탓이었다.


"...전혀 움직이질 못했어.."


"게르트. 아가. 답해주려무나. 어째서니? 어째서 막은거니? 그 도마뱀이 네게 마수를 뻗치려 하는것을 막으려 하는데, 왜 막는거니?"


"..당신이 제 아내마저도 죽이게 둘수는 없기에."


"아내라니? 그 도마뱀이 어째서 네 아내인게냐?"


"......저는 이 사람을 사랑합니다. 당신이게 상처받고 숲을 나와 전쟁에 시달리며 메말랐던 제 마음을 치유해준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게르트는 타이펀을 감싸며 페나르핀을 바라봤다.


"이 어미보다, 그 도마뱀이 더 소중한게냐? 너를 거두고 키워준 이 애미보다?"


"...당신은 한때 내 목표이자, 이상이었으며, 항상 자상하고 따스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날이 있기 전까지는."


"..........."


"...당신이 내게 준 이 검을 바라보며, 그 돌아갈수 없는 나날을 추억했습니다."


게르트는 자신의 검은 롱소드 - 엘레메실을 꽉 쥐며 말했다.


"...저는 한때 당신과 함께 여행하고싶었습니다."


그의 몸에서 녹색과 청색이 뒤섞인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허나, 그 시절로 돌아갈수는 없습니다. 저도, 당신도. 우리는 더이상 모자의 관계가 아니며, 사제의 관계마저도 당신이 끊어냈습니다. 당신과 나는, 이제 아무런 관계가 아닙니다."


게르트의 눈에 결의가 불탔다.


"...저는 그저 아내와 함께 세상을 돌고싶은 방랑자일 뿐입니다."


"....너무하는구나....너무해....아가...어째서 그렇게 심한 말을 하는게냐......"


페나르핀이 검을 들어올려 타이펀을 향했다.


".....저 망할 계집때문이더냐? 저 계집년이, 저 간사한 혀로 네 귀에 음모를 속삭인것이더냐?"


페나르핀이 눈물맺힌 얼굴로 게르트에게 소리쳤다.


"....그런것이구나....너는 이미 마음의 안식을 찾은것이로구나! 이 애미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놔두고서, 너만은 행복을 찾은게로구나! "


페나르핀은 살의와 광기가 뒤섞인 웃음을 터트리며 자세를 잡았다.


"후후후....하하하하하하....흐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랬구나. 그런 것이었구나! 하하하하하하하!"


"....타이펀."


게르트는 페나르핀을 향해 검을 고쳐잡았다.


"...준비해."


"...나는 네가 없으면 살 수가 없는데, 너는...너는 나 없이도 그렇게 행복하구나..."


페나르핀은 피눈물을 흘리며, 게르트와 타이펀을 바라봤다.


"나는 이렇게나 너를 사랑하고 있거늘. 너는 나를 버리고, 저런 더러운 도마뱀따위를 선택했구나."


"...후우우."


타이펀은 심호흡을 길게 하고, 몸에서 노란빛의 마력을 터트리듯이 뿜어냈다.


"...해보자."


"...그래!"


'신속'은 이내 자세를 잡고, 전투를 준비했다.


"게르트... 네 옆의 도마뱀을 베어죽이면, 다시 내게로 돌아와주겠지? 후후후..그럴것이야...후후..내 사랑스런 게르트..."


페나르핀은 게르트를 사랑스러운듯이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서 광기어린 집착과, 연인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이 보였다.


"이번에야말로, 너를 놓치지 않으마. 나의 사랑스런 게르트. 너를...반드시..."


불길한 바람이 부는 어두운 숲 속, 세사람은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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