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어느 어촌에 구전되는 이야기였다.


가을이 되면 밤마다 갑자기 때아닌 폭우가 내리면서 한 창백한 피부의 여자아이가 선수에 앉아있는, 안개에 휩싸인 무시무시하게 생긴 배가 나타났다가 새벽이 되면 지우개로 지운 듯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했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괴상한 이야기 따윈 믿지 않는다. 가을날의 비 오는 밤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창백한 여자아이와 유령선이라니, 그런걸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괴이한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입장에선, 기록자가 아무리 그 이야기를 지나가는 어린이조차도 안 믿을 헛소리로 치부해도 소용이 없기 마련이다.


어찌됐든 나는 그런 기이한 이야기들을 찾는 사람이고, 내가 찾는 이야기들은 그 지역의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차로 대략 5시간 정도를 달려 그 어촌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처 시장에서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아직 낮 2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6~7시간 뒤에 바닷가로 나가면 될것이라 생각해 적당히 차에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잠을 잤던 건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밤 9시였다. 이미 창문 밖에는 얼다가 만 듯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혹시 내가 너무 늦은건가 싶어 급히 시동을 걸고 바닷가로 갔고, 그곳에서 나는 보고야 말았다.


저 멀리서 안개를 휘감은 채 해변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거대한 배를, 그 배의 선수 부분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드레스 차림의 여자아이를 말이다.


그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개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믿을수 있는 목격담이었구나, 라고 생각한 나는 곧장 태블릿을 꺼내 괴이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리고 돌아가려던 찰나, 나는 내가 타고 온 자동차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뒤쪽에 괴물처럼 생긴 거대한 배가 웬만큼 출력이 강한 엔진을 단 모터보트와 같은 속도로 쫒아오는데, 차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보통 이 상황에서 나올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다.


나는 이제 뭣됐구나, 내 인생이 여기서 허망하게 끝나는구나.


내 사고는 진즉에 이미 이 상황과 가장 걸맞는 결론을 도출해내고 멈춰버렸다.


난 평생동안 할 욕과 안할 욕을 다 섞어가며 이 빌어먹을 문짝의 손잡이를 당겼고, 배는 이미 내 뒤통수 바로 앞까지 쫒아와있었다.


바로 위에 선수에 앉은 여자아이가 보일 정도로 말이었다.


결국 나는 차의 문을 여는 것도 포기하고 드디어 이 여자아이가 아무것도 못 먹고 하도 굶주려서 유령선을 데려다 날 잡아먹을려 하는구나하며 미리 유언을 생각하던 도중 기절했다.


그리고 그 뒤의 일들은 필름이 끊긴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거라곤, 눈을 떴을땐 배와 여자아이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고, 내가 모래사장에 떨궈버렸던 패드엔 종이 하나가 붙어있었을 뿐이다.


아니, 종이라기보단 편지라고 해야하나. 분명 이상한 문장이 써있던 걸로 기억한다.


편지의 내용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무튼 나는, 짐을 챙겨서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지금도 생각할수록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도대체, 어째서 배가 나타났을 때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데 주변의 땅은 젖긴 커녕 오히려 더 말라갔던 걸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현실과 괴이의 경계 따윈 진작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제 봤던 안개에 휩싸인 배와 여자아이가 도로를 가로질러 내 차를 따라오는 것을 보면, 적어도 그렇게 느낀다.


언제쯤 지나야 이들을 내게서 떼어놓을 수 있을까, 언제쯤 되어야 이들이 내게 건 저주를 풀어줄까.


어쩌면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어촌의 일부가 되버렸던 걸까.


그렇게 생각할수록, 어촌에 대한 의문만 늘어나게 될것만 같은 평범한 어느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