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붕이는 새파랗게 질린 요호한테 이유를 물어봤지.

요호는 자세한 대답을 꺼리면서 빨리 '붉은 재앙'으로부터 도망가라는 말만 할 뿐이야.

몬붕이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서둘러 세공품을 전부 처분하고 식량과 바꾼 뒤에 상점을 나왔어.

상점을 나와서 그동안 자기가 알던 식충이 악룡이와, 요호로부터 들은 악룡이에 대해 혼동스러워 했어.

그리고 일단 동굴로 발을 옮길 무렵이었어.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빛나던 해가 사라졌어. 두 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지.

사라진 해 대신에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불길하게 불타는, 커다란 붉은색의 동공이었어.

지상을 굽어보는, 세로로 쭉 찢어진 눈동자는 공포에 질린 시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노와 집착, 소유욕으로 가득한 눈길로 몬붕이를 샅샅이 찾고 있었지.


마치 악신이 제물을 고르는 듯한 그 끔찍한 광경에 어린 와이번들은 그만 혼절해버리고,

구마왕 시대에도 활동했던 극소수의 드래곤들만이 자리에 버티고 있었어.

재난본부장도 악룡의 등장을 파악하자마자, 지인 고룡들과 함께 광장으로 달려왔지.

고룡들 대부분은 하늘에 붉은 눈이 뜨이자마자 그대로 도망가고,

그나마 자리에 남아있던 것은 저 미친개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부장과 함께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하는 무리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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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본부장이 그 동기들과 함께 붉은 눈 아래에 서서 물었지.

어떤 개호로잡놈이 당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을 알려만 주신다면

빠르게 잡아서 눈앞에 대령해드릴테니, 진정하시고 레어에서 기다려주시면 안되겠느냐고.



애타게 부장이 악룡이에게 사정했지만, 그 말은 악룡한테 들리지 않았어.

부장의 천리안이라는 마법도구의 힘을 빌릴 것도 없이,

악룡은 진신의 두 거대한 눈으로 용황국을 거리 하나, 건물 하나 샅샅이 뒤지고 있었거든.

그리고 몬붕이를 찾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던 차에, 몇몇 애송이들이 통촉해달라며 빽빽거리는 것은 자기가 알바가 아니었지.


몬붕이는 하늘에 떠 있는, 불길하게 불타는 거대한 눈동자를 보고 마찬가지로 공포에 질렸어.

압도적인 포식자의 기운과 하늘마저 뒤덮어버린 눈빛에 자리에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지.

실제로, 하늘의 눈동자를 바라본 인간과 마물들은 전부 그자리에 굳어서 쓰러지고 말았어.

마치 토끼가 압도적인 포식자를 만났을 때 꼼짝 못하고 자리에서 벌벌 떠는 것 처럼 말이야.

그렇게 쓰러진 미물들 위로 몬붕이를 탐색하는 불길한 눈동자가 시선으로 쓱 흝고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어.


몬붕이 역시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질 뻔했지만, 악룡의 마력에 익숙해서 그런지

가까스로 몇 발자국을 옮긴 뒤, 벽을 등지고 눈동자의 시야를 피해서 쓰러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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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룡은 갸우뚱 했어. 진신의 눈을 뜨자 모든 사람과 마물이 그대로 쓰러졌는데,

어째서 고룡을 뺀 4398명 중에 4397명만 눈에 잡히는지 말이야.

자기가 아는 한, 몇 고룡을 제외하고 자기 눈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거든.

악룡이는 그 1명이 몬붕이일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어.

그래서 악룡이는 도시 전체를 벽돌 단위로 분해해서 지반 째로 공중에 띄운 다음,

둥둥 뜬 몬붕이를 뜰채로 건지듯이 그 1명을 찾아내기로 했지.


드디어 소중한 보물을 다시 곁에 두고, 오래오래 아끼며

다시는 뺏기지 않게 사슬을 채워서 감금하는 등,

편집증적인 소유욕을 채우려고 하는 악룡이.

그 들뜬 마음에 맞춰 하늘에 뜬 눈동자도 더욱 불길한 빛을 발하고,

도시 전체가 흔들리며 벽돌 단위로 분해되려던 찰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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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당장 멈추라며 몬붕이를 데리고 악룡 앞에 나타났어.

마계은으로 만든 단검을 몬붕이 목에 갖다 댄 상태로 말이야.

그리고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악룡을 협박했지.

파괴행각을 멈추지 않는다면 자신의 마력이 듬뿍 담긴 단검으로 몬붕이를 찔러서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말이야.

협박하며 자신의 타액을 듬뿍 바른 긴 혀로 몬붕이의 목을 끈적하게 핥는 것도 잊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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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붕이는 정신이 나가버리기 직전이었어.

자기는 오랜만에 산책을 하러 나왔을 뿐인데

같이 살던 돈만 많은 식충이가 살아있는 재앙이라는 소리를 듣지를 않나,

갑자기 하늘이 새까매지더니 거대한 두 눈이 시내를 단체 패닉으로 몰고가지를 않나,

더 이상한건 그 눈동자가 왠지 익숙한 것 같다는 거야.


벽에 기대서 이게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던 차에,

딱 봐도 귀족같은, 기품이 넘치는 용이 몬붕이 앞에 나타났어,

그리고 몬붕이를 쏘아보는 거지.


그 용은 바로 여왕이었고 순수한 인남과 수백년 만의 희미한 악룡의 냄새를 맡자

딱 이 인남때문에 이 대참사가 일어난 것을 알아챈거야.

여왕은 재앙의 원인인 몬붕이를 쏘아보다가 갑자기 도시가 지반째로 흔들리자,

상황이 더욱 심각해짐을 깨닫고 몬붕이의 허리를 어깨에 들쳐메고 제빨리 광장으로 달려갔어.

그렇게 몬붕이는 인질극의 희생자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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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긴 혀로 끈적하게 몬붕이의 목을 핥으며 사악한 미소를 지은 체

마계은 단검을 들고 전설적인 악룡을 협박하는 용황국의 여왕.

그 모습은 지켜보는 부장과 고룡들에게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지.

물론 여왕은 전부 연기였지만 말이야.



악룡은 마력의 행사를 멈추고 몬붕이와 여왕에게 시선을 집중했지.

특히 여왕이 몬붕이의 목을 핥을 때, 악룡의 시선은 여왕을 찢어발기는 것만 같았지.

실제로 그 여파로 옆에 있던 몬붕이는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어.


악룡은 부들거리며 마력의 행사를 멈췄으니 당장 몬붕이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어.

여왕은 단검을 들이대며 악룡에게 말했지. 시가지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오늘 하루 날아간 관광수익은 어떻게 할거냐고 말이야.

결국 악룡은 자기 레어에 수천년간 쌓아놓은 보물의 일부로 배상하겠다는 협상을 제기했어.

그리고 둘은 배상금에 대한 협상에 들어갔지.


협상을 하는 내내, 여왕은 몬붕이의 목을 혀로 종종 핥으며 악룡을 겁박하고,

결국 상당수의 배상금을 뜯어내는데 성공했지.

부들부들거리던 악룡은 빨리 몬붕이를 돌려달라고 여왕에게 요구하고,

여왕은 못내 아쉬워하며 몬붕이를 악룡에게 건내줬지.


그리고 한계까지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던 몬붕이는 자기가 악룡에게 신병이 넘겨지고,

악룡이가 소름끼치는 두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과 함께 정신을 잃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