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방 안에 들어오자, 커튼이 쳐진 창문에 햇살이 가려지며 방을 밝히고 있었다.


타이펀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저 왔습니다 어머님."


타이펀의 맞은편에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백골이 된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고 있는 엘프 - 페나르핀이 있었다.


타이펀은 그녀이게 다가가 침대 옆의 테이블에 선물로 사온 과일을 내려놓았다.


".....빈손으로 오기는 좀 그래서 과일을 좀 사왔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군요."


타이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페나르핀은 여전히 말없이 오른손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질리지도 않고 찾아오는군. hlócë."


페나르핀은 퀭한 눈으로 타이펀을 바라봤다.


"....피로하신 모양인데, 잠들지 못하시는겁니까?"


타이펀은 침착하게 웃으며 페나르핀과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


".....드디어 영원히 잠들 수 있었건만, 네년이 그걸 막았지않느냐."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계시는군요."


"왜 나를 꺼냈지? 네년도 알지않느냐......나는 무고한 인간을 다섯이나 죽였다."


".......그이....게르트가 원하는 일이었으니까요."


"caita(거짓말). 너는 그 아이를 충분히 막을수 있었을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그것은 어째서냐?"


"....저 또한, 어머님이 살기를 바랬기 때문이죠."


"네년이? 하. 간사한 hlócë 같으니."


".....여전히 믿어주질 않으시는군요."


"asahanya(당연하다). 내 눈에는 나를 살릴 이유따위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페나르핀은 백골이 된 오른손을 꼭 쥐었다.


"....집착에 눈이 멀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않은 나를 살릴 이유가...네년에겐 전혀 없지않았느냐."


페나르핀은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다시한번 떠올렸다.


여지껏 그녀가 목숨을 거두어갔던 자들은 모두 자신에게 적의를 나타냈던 자들 뿐이었고,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목숨을 위협해오는 적들을 향해 먼저 검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죽인 위병 다섯은 고작 방해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목을 베어냈다.


검에 동화되어 저지른 그 범죄는, 그녀의 무인으로써의 마음가짐에 반하는 범죄행위였다.


"...아들을 사랑했던 내 뒤틀린 사랑때문에 아들을 잃었고... 아들을 보고싶다는 미련때문에 이런 모습이 되었고... 이제는 아들을 집착하는 마음때문에, 무고한 이를 죽인 괴물이 된 나를.... 왜 이렇게 살려두었느냐."


페나르핀의 가슴에 자기혐오가 끓어올랐다.


".그렇게 자책하지 말아주세요 어머님."


"...그때도 말했지만, 나는 네 어머니가 된 기억이 없다, hlócë."


페나르핀은 커튼이 쳐진 창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이미 3년 전부터 그 아이의 어미가 아니었으니, 그런 호칭으로 나를 부르지 마라."


"......그럼, 그렇다고 해서, 영영 그이를 만나지 않을 생각이신겁니까?"


"그러니까, 다. 나는 그 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고작 내 집착때문에, 그 아이를 그릇되게 바라봤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를 만날 생각이 없다."


페나르핀은 타이펀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게는 네년이 있으니 나같은 늙은이가 낄 자리따위는 애당초 없고 말이지."


"........"


페나르핀은 오른손을 쥐락펴락 하며 멍하니 오른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행동은 마치, 타이펀에게 '나는 너희의 목숨을 위협했던 괴물임을 잊지 마라' 라고 말하는듯 했다.


".....이 겨울에, 꽤나 싱싱한 과일을 가져왔구나. 참 고생했겠군. 꽤 비싸지 않았더냐"


"...어머님을 위해 사오는것인데, 비싼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 말은 참 잘하는구나."


시답잖은 문답을 하며, 언데드가 되어버린 엘프는 슬픈 얼굴로 웃어보일 뿐이었다.


"....너는, 나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다오. 나처럼...그 아이를 집착하지 말고, 그저 곁에서 그 아이를 보듬어다오. 내가 하지 못한만큼."


페나르핀은 타이펀의 비늘덮힌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의 백골이 된 오른손에는,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타이펀이 그녀의 손을 꼭 쥐고, 그대로 고개를 들어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봤다.


세로로 찢어진 동공에서는 분노가 느껴졌다.


"......정말이지, 왜 이렇게 제멋대로인지 모르겠군요."


"...뭐라ㄱ.."


"왜 그렇게, 혼자만 상처받은듯이 행동하시는겁니까? 당신은 가해자인데, 왜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려고도 하지 않는겁니까?"


페나르핀은 갑자기 돌변한 타이펀의 태도에 당황했다.


비늘덮힌 그녀의 손은 너무나도 단단히 페나르핀의 손을 잡고있었다.


"...대체 왜, 제가 이 방에서 나가는 즉시 목숨을 끊을것처럼 슬프게 웃으시는겁니까. 어머님은 그이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 여기에 오신것이 아니셨습니까? 여기에 처음 오겠다 마음먹었을 때의 그 각오는 대체 어디에 버려두고 오신겁니까?"


"....제멋대로 말하지 마ㄹ.."


"아니요. 저는 제멋대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제멋대로 말하고 있는건, 어머님입니다."


타이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내려다보며 분노했다.


"....이곳에 숨어드신지 두달. 매주마다 두번씩, 계속해서 찾아온 저에게 그런 비관적인 태도로 모든 일을 끝맺으시려 하는 그 태도가! 너무나도 제멋대로인 그 태도가! 저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타이펀의 노란 눈이 마력을 발하며 빛나고 있었다.


"...저는 그이의 아내입니다. 그이와 만났던 그 순간부터, 저는 그이의 곁에 서서 그이와 함께 싸우고, 함께 먹고, 함께 잤습니다. 저는 그이에게 인정받고, 이렇게 반지도 받았습니다. 저는 그이와 어머님의 이야기에 끼어들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타이펀은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뱀처럼 눈을 번득이며 쌓아두었던 마음을 터트리듯 늘어놓았다.


혀를 날름거리며 내뱉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가 느껴졌다.


"어머님은 언제나, 언제나! 늘 찾아오는 제게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으시고, 언제나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시고, 잘못된 것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대체 어째서입니까? 그이가 두려우신겁니까? 아니면 그 후에 다가올 그이와의 관계가 두려우신 겁니까? 대체 뭐가 그리 두려워서,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어두운 방 안에서 덜덜 떨고만 계시는겁니까!"


"뭐라...!"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이도 그렇고, 어머님도 그렇고! 모자지간인 두사람 사이에 저 혼자 이렇게 껴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어야 하는겁니까! 너무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읏...!"


"어머님은 죄를 저지르셨지요,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어머님은 그이의 친부모를 죽이고, 그 비밀을 숨겨오셨던 그 일련의 행위에는 분명히 죄가 있습니다. 하지만!"


타이펀은 소리를 뺵 지르고는, 자리에 앉아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무책임하게 인적 드문 숲에 아이를 버려두고 사라졌던 친부모 대신, 그 아이를 마치 제 자식마냥 사랑으로 키워오셨던 어머님이, 여기서 이렇게 도망치셔서는 안되는것 아닙니까?"


"............."


페나르핀은 손을 마주잡고 놓아주지 않는 타이펀의 시선을 피해내며 입을 꾹 닫고만 있었다.


".....도망치기만 해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타이펀은 그런 그녀의 손을 양 손으로 잡고,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어머님이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마음은.... 분명 그것은, 어머니로써 가져서는 안되는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도망치셨다간... 다시는 만회할수가 없으실겁니다."


"....정말...말은 잘하는구나."


페나르핀은 자신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고집스런 타이펀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떻게든, 아이와 어머니를 마주보게 할 생각만이 가득해보이는 고집스런 얼굴이었다.


타이펀의 왼손에 끼워진 녹색과 청색이 섞인 예쁜 마보석 반지가 빛났다.


"...그리고, 정말 고집스럽고 말이야."


페나르핀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못이기듯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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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쫄보같이 숨어서 히키짓이나 하는 시어머니 참교육 한 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