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7살)보다 2살이나 더 먹은 으른?이지만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무서워서 잠을 설치는 남주.

평소에도 남주-여주네 집이 친하기도 하고, 두 집 모두 외동 + 맞벌이 조합이라 둘이서 밤늦게까지 붙어 있는 날이 많았음. 아무튼 날씨가 험상궂고 큰 소리가 많이 나는 날이면 남주는 자기 애착인형인 쪼꼬미 테디베어를 손에 꼬옥 쥐고 여주 집 앞에 감. 이건 여주네 엄마가 남주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준거임.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문 앞에서 소심하게 톡톡 두드린 다음 서성이다 보면, 여주가 문을 열어줌. 남주는 비에 반쯤 젖은 채 덜덜 떨면서 들어옴. 따뜻한 차 한 잔 마신 다음이면 남주는 여주 곁에서 졸린 병아리마냥 꾸벅대다가 어깨에 기대서 선잠을 자곤 했지. 여주는 다 큰 으른(9살)이 천둥소리 무서워하냐고 놀리면서도 그런 오빠가 커여워서 잘 때까지 머리 쓰다듬어줌. 새근대는 숨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몸을 침대에 뉘이고, 손 꼭 잡고 같이 코코낸내함. 중간에 깨더라도 무서워하지 않게. 그게 얘네 일상이었음.


시간이 흐르고 둘 다 청춘이 될 무렵, 전화가 대륙을 휩쓴다. 남주도 징집 통지서 받고 전선으로 향함. 전선은 늘 위태로워서 남주는 고향으로 휴가 한 번 못 갈 정도로 격전지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박격포탄에 중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 가고, 그곳에서 종전을 맞이한다. 못 다한 이야기와 보내지 못했던 수백통의 편지뭉치, 성하지 못한 몸을 이끌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마을은 수 차례 폭격을 맞아 반쯤 부서졌고, 남주가 알던 여주는 더이상 없음. 남주가 중상을 입고 의식이 없는 동안, 마을 광장에 떨어졌던 적군의 폭격은 여주를 냅두고 시장에 서로 볼 일 보러 나갔던 양가 부모님을 앗아가버렸다. 그 뒤로 여주는 조금만 큰 소리가 나면 그 자리에서 주저 앉음. 누가 일으켜주기 전까진 하염없이 머릴 무릎 사이에 쳐박고만 있다. 천둥소리를 무서워하지 않던 당돌한 아가씨는 더 이상 없어. 반대로, 남주는 지독하리만큼 포격에 시달려서 이젠 어떤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고막이 반쯤 맛이 가고 감정이 무뎌진 건 덤.


그렇게 여주는 자기 집 부엌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덜덜 떨고 있는데 잠깐 볼 일 보러 들어온 남주가 그걸 발견하곤 머릴 쓰다듬으면서 '나랑 똑같네' 하는 거임.


이렇게 시작하는 쌍방구원순애가 마려운 밤이다.


둘이 어느 정도 멘탈을 잡고 난 다음부턴, 서로 못 보낸 편지들을 순서대로 하루에 하나씩 교환하면서 회고하는 거임. 그리고 중간중간에 멘탈 치유를 위한 시간(a.k.a. 데이트)을 몇 번 갖고, 마지막엔 양가 부모님 무덤 앞에서 결혼한다고 인사드리고 마무리.



이제 이걸로 누가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