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데뷔에 설레이는 것은 누구나 똑같다.



차가운 봄의 새벽. 구름 사이로 해가 조금씩 온기를 드리우는 아침. 산업화의 수혜를 먹었음이 확실한 도시에도 공평히 아침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도시 어딘가, 지금 막 고교 데뷔를 앞둔 꽃다운 나이의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소녀는 그저 소녀라 서술하겠다.

차가운 도시 한켠에 위치한 D 아파트. 사실 아파트라기에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모자란 건물이지만 건물주의 주장으로 아파트라 불리는 시멘트 건축물. 그 안 3층에서도 깊숙한 곳. 312호의 문은 찢어진 전단지와 떼어내려 애쓴 스티커, 낙서와 녹으로 가득하다.

그 안을 살펴보면, 눅눅하고 서늘한 공기로 가득차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물론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고, 애초에 사람이 살지 못한다면 이 아파트에 기능적인 하자가 있는 것이므로 당연하게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렇다. 그게 바로 소녀다.

312호실 깊숙한 방 안. 소녀는 몇겹의 담요를 걷어내고 새우처럼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눅눅하고 악취가 스민 공기를 머금으며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다. 모포 사이로 희미하게 남은 온기는 순식간에 빠져나가 허공으로 퍼져나가 버린다. 소녀는 공기를 제 것이라 여기는 멍청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게 아쉽지 않다.

 소녀의 몸과 함께 모포 속에서 빠져나온 소녀의 긴 머리칼은 오랜 시간 관리받지 못해 엉클어졌을 뿐만 아니라 기름기로 떡져있다. 분명 쿰쿰한 냄새가 날 것이 분명하다.

작은 몸집이 굽어진 어깨로 더욱 아담하다. 몸을 덮은 것은 아비의 것을 훔쳐입은 듯 커다란 반팔티. 팔꿈치까지 덮은 것은 소녀의 마른 몸을 덮고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온다. 헤진 옷자락과 어깨까지 늘어난 목부분은 예의있게 해학적이라 표현하겠다. 소녀의 얼굴은 덥수룩이 자란 머리카락에 뒤덮여 겨우 눈가가 검게 눌어붙은 퀭한 시선만을 알아볼 수 있다.

소녀는 그 머리칼을 벅벅 긁으며 축쳐진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어둡고 습한 곰팡이 냄새가 익숙하다는 듯, 소녀의 낮짝은 태연하다.

굽은 등으로 한걸음씩 비틀거리며 방을 빠져나온 소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거실을 가득 채운 쓰레기봉투. 청결함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끔찍한 모양새 역시 소녀에게는 익숙하다는 듯, 소녀는 발바닥에 밟히는 무언가의 부스러기에도 개의치 않고 전진한다.

그러자 소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굴러다니는 초록색 술병 무더기와 벽 한켠에 기대어 골아떨어진 검붉은 머리카락의 여자. 싸구려 염색약을 사용한 듯 쨍한 색감과 짙다 못해 과하게 칠해진 마스카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울려 보인다. 입가로 번진 립스틱과 울긋불긋 부어오른 뺨을 소녀는 오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조금은 단호하게 고개를 돌린다. 마치 선을 긋는 것처럼.

소녀는 다시 걷는다. 문지방을 넘어 좁고 냄새나는 거실 한편에 자리잡은 주방으로. 사실 주방이라기 보단 박스형 냉장고와 싱크대가 놓인 방 구석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식탁도 접시도 보이지 않는 주방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소녀는 익숙하게 매캐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검은 쓰레기 봉투를 피해 냉장고 앞에 섰다. 가늘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팔로 힘겹게 문을 연 소녀는 고민없이 무언가를 꺼냈다.

계란 세개. 우유 두팩. 김치 한캔. 냉기를 머금어 시린 그것을 품에 안아든 소녀의 몸이 작게 떨린다. 반팔 아래로 오소소 돋은 닭살도 돋보인다. 소녀는 비척거리며 대충 쓰레기가 널린 바닥을 발로 쓸어 공간을 확보한다. 그리곤 품에 안아든 '식사'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싱크대 아래를 열어 가스 버너를 꺼낸다. 기름때가 누렇게 들러붙은 버너는 생리적인 혐오감을 자아내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는다. 애초에 그런 것에 거북함을 느껴야하는 이유를 소녀는 배우지 않았다. 그러니 소녀는 능숙하게 버너를 음식 옆에 내려놓고, 다시 싱크대 아래에서 검게 탄 프라이팬과 녹슨 부탄가스를 꺼낸다.

소녀는 부탄가스를 흔들어본다. 작게 찰랑이는 감각이 느껴져 소녀는 안심한다. 만약 다 떨어졌다면 이른 아침에 쓰레기장으로 나가 다른 이들이 대충 쓰고 버린 부탄가스 더미를 뒤지거나 조리를 포기하고 생식을 해야했을 것이다. 소녀 하나뿐이라면 몰라도 여자의 것까지 챙겨야 하므로, 생식은 논외라고 소녀는 생각한다.

부탄을 끼운 버너에 팬을 올리고, 몇번의 시도 끝에 점화에 성공한 소녀는 얼음장같은 손을 비비며 입김을 불어넣는다. 달궈지는 팬 위에 손을 가져다 대보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임을 안다. 그러니 소녀는 비효율적인 행위를 빠르게 포기하고 계란을 든다.

양손에 한개 씩 쥔 계란을 서로 두드려 깬 소녀는 손가락을 굴려 껍질을 반으로 쪼갠다. 누군가 보았다면 감탄할 정도로 능숙한 손놀림으로. 소녀는 나머지 계란을 깨 팬에 떨군다.

치익 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계란. 손잡이를 잡고 팬을 튕겨 프라이를 뒤집으면 누런 기름때가 묻어나오지만, 소녀는 주린 배를 느낄 뿐이다.

이윽고 프라이가 다 익자, 소녀는 버너를 끄고 싱크대에서 젓가락을 깨낸다. 옆에 놓인 휴지곽에서 휴지 몇장을 뽑아든 소녀는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잘먹겠습니다."

그리고 손을 모아 말한다. 소녀의 식사예절이다. 원래라면 가족의 예절이였겠지만, 지키는 이는 소녀 뿐이므로. 적법한 절차를 밟아 소녀의 것이 되었다.

소녀는 젓가락으로 계란 세개가 엉겨붙은 기름때 소스 프라이의 3분의 1을 잘라낸다. 그리고 그대로 입 안에 구겨넣는다. 맛은 잘 모르겠다. 식사에 맛이 중요한가. 중요한건 몸이라는 기계를 위한 연료 보충이다. 대충 씹어 내용물을 삼킨 소녀는 우유 한팩을 까 배 속에 들이붓는다.

차가운 것이 식도를 스쳐 위장으로 떨어지는 감각은 소녀가 좋아하는 것이다. 몸을 꿰뚫는 시원함. 소녀가 이 순간을 즐기는 이유다. 소녀는 한번에 들이켜 비어버린 우유곽을 조금 아쉬운 눈으로 응시하다가, 주변에 널린 쓰레기 봉투 사이에 우유곽을 구겨넣는다. 실로 간편한 동선이다.

소녀는 한손에는 김치캔과 우유팩을, 한손에는 프라이팬을 들고 골아떨어진 여자에게로 향한다. 발소리는 조용하다. 여자를 깨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양새. 여자의 앞에 선 소녀는 조심스레 손에 든 것들을 그 앞에 내려놓았다.

잠시 여자의 지친 얼굴을 눈에 담은 소녀의 표정은 오묘하다. 아까와 같다. 딱히 감정적이지는 않으나, 무정하지도 않다. 그러니 오묘하다는 표현이 맞을거다.

소녀는 다시 주방으로 향해 버너를 싱크대 아래 집어넣는다. 그리고 쓰레기 더미를 넘어 소녀가 잠들었던 방으로 들어간다.

여러개의 모포가 뭉쳐있는 소녀의 잠자리로 향한 소녀는 그 옆에 있는 것을 들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소녀의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차분히 개어져있는 것.

소녀의 교복이다.

소녀는 교복을 내려놓고 제가 입은 티를 벗었다. 속옷 위 아래가 색깔이 맞다는 것에 안도해야 할까. 칙칙한 회색이라는 것에 납득해야 할까. 어느 쪽도 되먹지 못한 감상이다. 소녀는 블라우스를 걸치고 교복치마를 허리까지 끌어올렸다. 양 손으로 잡힐 듯 가는 허리는 매력이라기 보단 결핍이 어울린다.

결핍. 결핍된 몸. 소녀는 그 위에 교복을 걸쳤다. 둔갑하듯이 소녀의 결핍이 포장된다. 가난하고 더러운 소녀에서 키작고 음침한 여학생으로 변신한다. 물론 누덕진 머리카락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존재부터 바뀌는 복장의 마법이지 않은가.

소녀는 묵묵히 해냈다.

넥타이까지 여민 소녀는 옷매무새를 점검한다. 그리고 모포 반대편으로 깡총깡총 뛰어간다. 그래봤자 세발자국이지만, 그 움직임에는 흥겨움이 있다. 물론 흰 양말에 무언가 묻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누렇게 변색된 플라스틱 조명 스탠드가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그 아래로 널부러진 책더미와 검은 색 가방. 줄줄이 노트 한가득 수학 수식으로 가득하다. 소녀는 그것들을 가방에 주워담는다. 소중하게 하나하나 그러모아 조심스레 담는다. 전부 소녀의 '노력'이다. 혹은 그 증명이다. 그러니 소녀에게는 소중하다.

소녀는 가방 지퍼를 잠그고 바닥에 툭툭 내리친다. 묵직한 무게감에 소녀의 기분도 묵직해진다. 소녀는 가방을 매고 몸을 일으킨다.

잰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지르는 소녀. 힐긋 확인한 여자는 아직도 꿈나라다. 당연하다. 여자는 피곤할 것이다. 소녀는 이해한다.

현관으로 나선 소녀는 낡았지만 잘 관리된 단화를 신는다. 그리고 현관문을 잡고, 마지막으로 어둠이 내린 집 안으로 시선을 향한다. 생각보다 괜찮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이 또한 소녀의 예절이다. 가족의 것이였으나, 합법적으로 소녀의 소유가 된 행위.

첫 등교. 소녀는 집을 나섰다.








지금 얼굴 시뻘게졌음

근데 노피아 들어가져서 기분 좋음

오모시로이함

암튼 간단한 판타지 세계관에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소녀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써보고 싶음

아니면 누가 써주는거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