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로 12...어디요?"


"...그냥 고글 써라. 네비 찍어줄테니까."


부슬비가 내리는 도심, 머리를 뒤로 묶은 앳된 외모의 여성이 누군가와 통화하며 으슥한 뒷골목을 가로질렀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투명한 고글 하나를 꺼내 쓰자, 눈앞에 반투명한 화면의 네비게이션이 켜졌다. 다행히 길을 아예 잘못 든 건 아니었는지, 목표 지점까지 3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분 남았네요."


"늦어. 뒷골목에서 누가 죽을 줄 알고. 1분."


"귀찮은데...2분만에 누가 다칠까요?"


"잔말 말고 달려. 사상자 생기면 감봉한다."


"우우, 악덕 사장. 노동청에 신고할거에요. 안 그래도 쥐꼬리만한 봉급에서 얼마나 더 떼어가려고."


그녀는 툴툴거리며 종아리를 감싸는 철제 외골격의 버튼을 눌렀다. 약간의 경고음과 뒤섞인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본래 이런 뒷골목의 치안은 누구 하나 죽어도 아무도 모를 끔찍한 수준이었지만...아이러니하게도 뒷골목 가장 깊숙한 곳에서 기다란 막대 하나만을 등에 멘 채 달려나가는 여자를 건드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당연했다. '평범한 이십 대 초반 여성'이 이런 곳까지 몸 성히 들어올 수 있을리가 없잖은가? 겉으로 보기에 연약한 인간이 이런 곳까지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둘 중 하나다. 뒷배가 세던가, 본인이 세던가.


이 여자, 이서아의 경우는 후자였다. 그녀는 미끄러지듯 정지하며 어느 낡아빠진 건물의 뒤편에 도착했다.


"끄륵, 끄으윽...?"


형형색색의 그래피티가 덕지덕지 칠해진 금이 간 건물의 벽에 달라붙은 건, 마치 꾸물거리는 진흙 더미와도 같은 무언가였다. 온 몸에 다닥다닥 붙은 눈과 이빨이 어지러이 난 입들이 난 기괴한 모습을 한 무언가는,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부풀렸다.


"아 찾았다. 주변에 딱히 피같은 건 없고...제 시간에 도착한 거 같은데요? 딱히 뭐 이상한 걸 먹은 것 같지도 않고."


그녀는 고글을 벗어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평범하게 어두운 갈색이었던 눈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그녀는 등에 메었던 막대기-칼을 뽑아들고는 괴물을 겨누었다. 그녀의 적의를 눈치챈 괴물은, 마치 용수철처럼 몸을 한껏 수그렸다가, 튀어나가듯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우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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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네?!"


이어폰에서 들리는 비명에 깜짝 놀란 나는 앞에 손님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소리쳤다. 급하게 연결을 잠시 끊어 두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손님. 하하...외근 나간 직원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요. 그래서, 그 제품으로 하시겠어요?"


"으음...호신용으로 적합한 거 맞죠?"


나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혀를 놀렸다.


"아무렴요. 파이어플라이 사에서 제작한 최신예 호위 드론 FF-2X 세트면, 어지간한 갱단 하나는 순식간에 벌집을 만들어 줄 수 있을겁니다!"


그 비싸고 더럽게 다루기 어려운 드론들을 브레인 링크로 실시간으로 조작할 능력이 있다면-이라는 말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아 물론, 초보자용 보조 AI(세트에 포함)만 써도 총 들었다고 설치는 어설픈 양아치 정도는 몇 명이든 깔끔하게 털어줄 테니 호신용으로는 어지간해선 부족함이 없을 거다. 애초에 저게 부족할 정도면 누구랑 척을 졌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해선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과장 광고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어쩔 수 없어. 우리 지부 예산이 이번달에 또 조금 깎였는 걸.


"음...그럼, 결제할게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객의 결제를 도와줬다. 고객은 그래도 제법 이름있는 기업에서 만든 드론답게 멀끔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곧바로 시동을 켜고는 호위를 받으며 가게를 나섰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자, 나는 재빠르게 버튼을 눌러 가게 정문의 셔터를 내리고는 서아와의 연결을 재개했다.


"야, 괜찮아?!"


"으으, 더러워...진흙탕에서 조금 구른 거 말고는 괜찮아요. 그런데 오빠, 있잖아요."


"적어도 일할 때만이라도 지부장님이라고 부르라고..."


"둘밖에 없는데 지부장은 무슨...여하튼 그, 저거 별로 세진 않은데 제법 날래서요. 공격 한 번 받아내야 틈이 생길 것 같은데."


"그게 왜? 부적 줬잖아."


"이...부적이 죄다 한자로 쓰여서 못 읽겠어요."


...?


"뭐?"


"아니, 난 뒤에 한글이나 영어로 무슨 부적인지 적어둔 줄 알았는데 아니네...? 얼음, 불, 번개, 방패, 회복 각각 세 장씩인건 아는데 어느 게 어느 건지 모르겠어요."


"넌 무당이 그 정도 한자도 못 읽냐?!"


"아잇 진짜, 무당은 우리 엄마고요. 난 그냥 신기 좀 있는 무당 딸내미라니까? 그리고 지금이 10년대도 아니고 누가 한자를 배워요. 교과과정에서 사라진 게 언젠데."


"넌 뭐 달력도 안 보냐? 월화수목금토일 몰라?"


"아, 화 자는 알겠다. 근데 나머지 넷은 모르겠어요. 아 몰라, 일단 아무거나 쓸게요."


"야! 딴 건 몰라도 낙뢰부는 쓰면 안 돼! 지금 비 오는데 그거 쓰면...!"


"아 저부터 좀 살고 보자구요. 급급여율령."


"야 이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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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오, 방패 당첨."


"야, 너 이 씨...."


운 좋게도 방어부를 뽑은 서아가 중얼거렸다. 뭐라뭐라 투덜거리는 지부장, 현우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그녀는 힘껏 부적이 만든 적당한 크기의 반투명한 보호막을 휘둘러 괴물을 밀쳐냈다. 안 그래도 건물들이 죄다 낡은데 여기서 낙뢰부를 썼다간 주변 감전은 물론이고 광범위한 정전이 일어날지도 몰랐는데, 다행이었다.


아 물론, 서아는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일이 틀어졌을 때 들을 잔소리가 싫은 것 뿐이었지만.


"현참정."


사인참사검에 새겨진 별자리가 반짝이고, 칼날은 마치 두부를 썰듯 부드럽게 괴물을 반으로 갈랐다. 괴물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지만...이내 잘라진 그대로 다시 붙어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어라. 이거 재생하는데요?"


"사인검에 베였는데 재생한다고? 그게 말이 되는..."


"흐음."


그녀는 시험삼아 몇 번을 더 베어봤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괴물은 몇 조각이 나든 느리지만 서서히 회복하고 있었다. 괴물이 다섯 번째 재생을 끝마치자, 안 그래도 날씨 덕에 짜증이 난 그녀는 검을 들어올려 괴물을 겨누었다.


"...아예 지져버리면 재생을 못 하겠지."


"야 잠깐, 너 설마..."


"휘뢰천."


서아가 순간적으로 도약하며 내뱉은 말과 동시에,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꽂혔다. 굉음과 함께 피어오른 연기가 걷히자, 괴물은 바싹 타버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그녀가 검으로 괴물의 시체를 찌르자, 이내 괴물은 검은 연기를 흩뿌리며 소멸했다.


"오케이, 복귀할게요."


"...주변 확인해라. 누가 감전사하거나 정전됐으면 너 진짜..."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명색이 특별한 기물이라 진짜 번개처럼 주변에 큰 피해를 입히진 않았겠지만...깜빡거리던 가로등 하나가 완전히 나가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가로등을 걷어차자, 다시 깜빡거리는 정도로는 돌아왔다. 물론 전보다 많이 빛이 약하기는 했지만.


"좋아, 이상 없음. 돌아갈게요~ 어."


"어?"


그녀가 골목을 나서자, 귀퉁이에 쓰러진 남자가 눈에 띄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가 맥을 짚자 다행히, 남자는 숨은 붙어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또~ 그냥 평범한 약쟁이에요.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


"그거 맞냐? 야!"


그녀는 휘파람을 불며 통신을 끊어버리고는,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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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아 넌 경위서다.


돌아오면 깜지 쓰듯 채워 쓰게 만들 경위서를 출력하며, 나는 데이터베이스에 오늘의 사건을 정리해 업로드했다.


-괴이 대책부 태천시 지부-


투박하게 만들어진 사이트에 보고서를 업로드하는 나와 서아는...무려 2145년에 괴물 비슷한 것을 때려잡는, 퇴마-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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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판타지의 배경이 근미래 사이버펑크 도시면 어떨까-싶어서 끄적인 소재임. 기업들이 유사 자치구로 변질된 도시를 통치하는 네온사인의 도심 속에서 기이한 사건을 해결하고 괴물을 때려잡는 정부 소속 무당/엑소시스트/퇴마사는 어떨까! 싶어서 만들었음. 한 쪽에서는 화려한 최신 기계와 로봇이 도시를 가득 채우는 와중 다른 쪽에서는 주술과 초능력이 난무하는 사이버-판타지라는 기묘한 대조가 제법 재미있을 것 같음. 


정부가 힘을 거의 잃어서 봉급도 썩 좋지 않고 예산도 정말 적어서 어쩔 수 없이 엔지니어 겸 로봇 샵을 운영하는 투잡을 뛰면서 장비값을 충당하는 궁핍하면서도 나름 영웅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이야기, 난 마음에 듦.


그러니까 내가 보게 좀 "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