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흑.. 흐흑.."


그날도.. 이전과 같은 이유로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이유로 어머니께서는 우셨다.


항상 친구들과 함께 놀러다니는 한명의 아이


그런 나를 항상 찾으면서 걱정하시는 어머니


나를 찾고는 곧장 데리러가는 아버지.


누군가에게는 단란한 가정이자 이상적인 가정이었을 지 모를 우리 가족에게는 하루하루가 한명을 제외하고는 지옥 그 자체였다.


바로 아버지라는 저 인간 때문이었다.


항상 술만 마시면 정신을 못차리시는 아버지.


그렇다.. 그 인간이 문제였다.


"으.. 끅! 여편네가.. 어디..서 울고 지랄이.. 끅!"


'개새끼.. 너는 내가 언젠가는..'


평소에는 말로만 가정을 위한다는 식으로 남에게 자랑질 하는 아버지..


그 인간은 집에만 들어서면 악마로 변하기 일쑤였다.


매일 일을 나가면서 밖의 사람들에게는 인상좋은 듯 미소만 보이고, 항상 싹싹하게 고개를 숙이며 허리를 굽히는 그 인간..


돈을 벌거면 일을 하라는 식으로 나에게 반 협박으로 나오게 해놓고는 나를 마스코트 마냥 물건 취급하는 그 인간..


그러면서 자신의 실수도 내가 한 실수인 것 마냥 포장하려는 그 인간..


가끔씩 돈을 벌러 같이 일할 때면 나에게 푼돈이라도 쥐여주는 모습이 겉만 보고 판단하려는 누군가에게는


"좋은 아버지 아냐? 항상 오면 용돈도 챙겨주고, 장난감도 창겨주잖아?"


"우리 아빠는 돈은 커녕 그냥 오면 잠만 자는데.. 부럽다.."


같은 소리를 들을 만한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제발.. 술은 그만.."


"닥쳐! 니가 뭘 안다고 또 나한테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건데!"


그렇게 말로는, 겉에 보이는 행동으로는 늘 가족만 생각한다는 그 인간은 가족을 위한다는 사람이 술만 마시면 인격이 뒤틀리는 양아치였다는 게 문제였다.


술만 마시지 말라..


 담배 좀 그만 펴라..


제발 밖에 나가서 문제만 일으키지 말아달라..


내가 태어날 때부터.. 아니 어쩌면 훨씬 그 이전부터 어머니가 주문처럼, 어쩌면 이뤄지지 않는 희망을 향한 자조로 읊조린 그 말은 그 인간에게는 들리지도 않았었다.


항상 가족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거 하나 지키지도 못하는 썩어빠진 인간..


나는 그 인간이 술만 마시면 폭력으로 자기가 우위라고 착각하며 날뛰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그리고 고등학교 예비소집이 끝난 그날..


특히.. 그날은 더 그랬다.


예비소집이 끝나고 밖에서 자장면을 먹고 들어온 그날에도 그 인간은 돈이 아깝다며 못마시던 고량주 생각이 난다면서 소주를 까기 시작했다.


한잔은 한병이 되고


한병은 두병이


두병은 네병이


그리고 그 네병은 그 인간의 고삐를 풀기 시작했다.


11시까지 주구장창 술만 쳐 마신 그 인간은 딸꾹질을 역겹게 이어가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


그 모습을 보던 어머니의 눈가에는 지겨움과 걱정이 담겼고, 그 감정은 어머니도 모르게 숨에 담겨 밖으로 나왔다.


문제는 그걸 그 인간이 들었다는 점에서 시작했다.


밤 늦게까지 술만 퍼마시던 그 인간이 안주를 정리하던 어머니의 한숨을 듣더니


"지금.. 끅! 한숨을 쉬고 있어?! 니가 뭔.. 끅!"


"제발 그마.. 으악!! 꺄아악!!"


손을 잡고 어머니를 끌어서 바로 바닥에 내동댕이 치던게 그날의 악몽의 시작이었다.


"흑.. 끄흑.."


"뭘.. 잘했다..고! 눈물이야..!"


바닥에 내쳐지면서 급격히 넘어진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몸을 부들거린 채 그대로 몸을 옹크렸다.


'저건.. 피 아냐? 아.. 어머니!'


그리고 한손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손 사이를 두고 넘쳐오르는 그 피는 곧 한쪽을 감싸던 손 전체에 번지기 시작했고, 이내 어머니의 한쪽 전체를 덮었다.


분명 누가 보더라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피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인간은 그런 어머니의 어머니의 모습에 희열이라도 느끼는지 더더욱 발길질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손목을 부여잡고 아픈 듯이 신음과 눈물, 피를 흘려대는 어머니의 등에 발길질로 화풀이를 하는 그 순간..


이때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만해! 이 미친놈아!"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도 않음에도, 나이를 서서히 먹어도 하는 짓에는 여전히 발전이 없는 그 인간에게 나는 그동안 쌓은 분노를 표출했다.


"안돼..! 그러지마!"


그리고 그때.. 나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가로젓는 어머니의 피멍이 든, 피투성이가 된 얼굴이 보였지만 그 얼굴 위로 보이는 그 인간의 발이 나는 더 거슬렸었다.


"뭐..라고? 이 불효자 새끼가..! 끅!"


나에게 향한 그의 분노는 나에게 더더욱 살기를 피어오르게 했고, 그의 발걸음이 어머니의 부러진 손목을 향해 다가오는 걸 느낀 나는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들어서 그놈의 다리를 향해 날렸다.


'일단 저 발부터 빨리 쳐내야..'


모든 사고가 멈추면서 나에게 든 생각은 오직 이 단어 하나 뿐이었고, 그 단어를 마음에서 외치자 그놈의 말이 귀를 찢기 시작했다.


"..아아.. 끄아악!!!!"


그리고 그 놈의 저속한 비명이 고막을 넘어 눈을 향할 때 쯤, 내 손에 느껴진 건 차디찬 무언가였다.


'뭐지.. 아.. 이거였구나.'


어릴 때 항상 친구들과 함께 했던 야구..


그때 아버지가 싫어서 항상 혼자서 낑낑대며 알루미늄 방망이를 들며 친구들과 놀았던 그때의 기억이 스쳤다.


참 우습지 않은가..


그때 친구들과 놀때 쓴 그 야구 방망이가 지금 찌그러진 채로 그놈의 발목을 박살냈으니.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어떠시지..'


그리고 그 찌그러진 방망이에 비친 어머니의 얼굴에는 절망과 안도감이 동시에 피어났다는 것이..


정말 이 상황이 웃겼다.


나쁜 놈이 고작 발목이 부러진 것 뿐인데 내가 나쁜 놈이 된 듯한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나를 칭찬해주는 상상 속의 어머니의 모습과 너무 다른 그때의 상황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인간을 패고 싶었다.


'너만.. 너만 없었으면...!'


"컥.. 끄허어... 크허억..."


맨 처음에는 다리를 부여잡는 그 인간의 팔뚝을 쳤었다.


팔뚝을 여러번 치니 팔뚝을 숨기기 시작하니 허리를 쳤다.


확실히 발목을 날려댈 때보다 다리를 쳐내는 게 더 손에 부담이 많이 왔고, 허리를 처내니 손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손을 고쳐잡았던 것 같았다.


어릴 때의 추억이 담긴 그때의 야구하던 나 자신의 모습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몸을 고쳐잡기 시작했다.


팔을 숨기는 그 인간의 모습은 마치 야구공 같아 보였고


나는 그 역겨운 야구공을 마구 치기 시작했다.


야구공이 안날라가니 더더욱 치기 위해 여러번, 수십번, 백번 가량을 치기 시작했다.


한번의 스읭에 손에서의 울림이


열번의 스윙에 딱딱한 끝에 걸린 손맛이


백번의 스윙에 무언가 슥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삼십번을 치니 방망이 한쪽이 찌그러지니 방망이를 반으로 돌려 잡고는 계속 그 인간을 팼다.


칠십번을 치니 방망이 양쪽이 찌그러져 끝의 뭉퉁한 부분이 좌우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반의 반을 돌리고 검으로 찍듯이 그 인간을 파기 시작했다.

박살난 방망이가 휘어지니 접혀서 생긴 뭉툭한 날로 그 인간의 등짝을 쳐내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정신없이 그 인간을 다지던 그 날 이후 어머니는 얼굴에 생기를 되찾으셨다.


늘 상처로 가득했던 팔도 더이상 숨기시지 않았고, 그날 부러진 손목도 여차저차 해결해서 일자로 생긴 흉터 말고는 말끔한 팔을 그대로 내놓으며 돌아다니신다.


그리고 그 날의 기억은 어느 순간 내 머리 속에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항상 나의 곁에 맴돌던 그 인간의 모습이 더이상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항상 어머니가 다치셨던 그 장면이 머리 속을 맴돌 때에도 자신있게 들이대어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를 향해 고마워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상상으로나마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나는 그런 어머니의 미소를 보고 있다.


비록 현실은 감옥에서 어머니의 피묻은 손수건을 감싸며 일년에 한번씩 교도관에게 사정해서 떡을 받아 물과 함께 간소하게 제를 지내는게 전부지만 말이다.


이제 3년차가 돠었으니.. 4년이 남았다.


4년만 지나면 어머니의 곁으로 갈 수 있다.


4년만 지나면 그 인간에게서 어머니를 구해낼 수 있다.


4년만 지나면.. 그 인간의 관을 파내서 조각이 된 뼈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 수 있다.


4년만.. 제발 나에게 4년이라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제발..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지금도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인간과 함께 땅 속에서도 눈치를 보며 지내셔야 하는 어머니를..


빨리.. 다른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도록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