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말로를 위시한 고전 느와르(하드보일드) 장르에서는 위스키같은 독한 술과 궐련으로 캐릭터의 고단함과 염세주의적 삶을 은유하며, 리볼버를 통해 캐릭터의 보수적인 성향을 강조하지.
그리고 고전 서부극에서는 모자의 색깔로 등장인물의 성향을 상징하는데, 보안관 같은 정의로운 인물은 흰 모자를, 무법자와 같은 사악한 인물은 검은 모자를 쓰게 해.
이 전통이 현대까지 내려와 불법적인 해킹을 막는 해커를 화이트햇해커라 불러
영화에서는 베스트 오퍼가 가장 설명하기 쉬운 예일거임. 베스트 오퍼의 주인공은 미술감정사인데, 인간과 어떤 감정적 교류도 하지 않는 냉정한 노인이지만 그림 수집 취향에서 그 본심이 드러남.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만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있음. 사실은 그 누구보다 정열적인 사랑을 꿈꾸는 노인인거지. 동시에 값비싼 예술품 수집이라는 형태로 그 열정을 대리충족하는걸 보면 허영도 장난아니게 많은 인간임.
희곡에서는 인형의 집의 로라가 설명하기 쉬움. 인형의 집을 보면 로라가 중간에 마카롱을 몰래 사먹고 남편에게 변명하는 장면이 나오거든. 마카롱은 로라의 취향인 동시에 로라와 남편의 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임. 로라는 과자조차 자기 마음대로 사먹지 못하고 숨겨야 할 정도로 집 안에서 주도권이 없는거지. 과자를 먹고 쩔쩔매는 로라의 모습은, 로라가 사실상 아이 취급을 받고 있다는걸 드러내주고.
고전소설에서는 돈키호테가 이걸 아주 극단적으로 보여줌. 돈키호테의 갑옷기사 차림과 기사담 중독증은 돈키호테의 기사도 로망스 취향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질적인 광기를 지닌 존재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지.
만화에서는 아마 체인소맨의 덴지를 예로 들수있을거임. 덴지는 '잼을 바른 토스트'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음. 덴지에게 있어서 잼을 바른 토스트란 평범한 삶의 상징임. 토스트를 굽고 잼을 바른다.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맛이 나는 특별할거 하나 없는 틀에박힌 요리지. 덴지는 그 틀에 박힌 삶을 동경하고 있었음. 그렇기에 덴지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목줄을 채우더라도 불만이 없었던거. 잼 바른 토스트만 나오면 그저 행복한거지. 작품 후반에 덴지는 '잼 바른 토스트는 이제 질렸다고!'라고 마키마에게 외치는데 그건 '틀에 박힌 삶이 싫다고!'라는 뜻임. 음식취향이 변한걸로 덴지가 변화했다는걸 알 수 있는 장치지.
조지 오웰의 1984는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4월의 맑고 쌀쌀한 어느 날, 시계가 13번 울리고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13번 울리는 시계이다.
13번 울리는 시계를 본 적이 있는지?
당연히 없을것이다. 13번이나 울리는 시계는 없으니까.
하지만 1984년의 시계는 불길하게도 13번이나 울린다.
시계가 서양권에서 불길한 숫자로 취급되는 13번 울림으로써 독자들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