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부”


“...”


“고모오부. 엄마는?”


“어…”


“고모오부. 엄마아는? 엄마 어딨어요?”


“어…그게…”


남자를 붙잡고 어린 조카가 연신 흔들어댄다.

남자는 칭얼대는 조카에게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다.


5살 먹은 조카. 몇번 보긴 했다.


결혼 전, 돌잔치에서 한 번.

몇 년이나 지나서 남자의 결혼식에서 한 번.

작년 설에 한 번.

장인어른 생신때 한 번.


아내와 연애를 오래 했었다.

남자의 공부때문에

여자의 이직때문에

여러 사정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결혼식을 올렸다.


만날때마다 용돈을 주긴 했었다.

돌잔치땐 축의금과 별개로 만원 한장을.

결혼식땐 버진로드를 서있는 대가로 오만원 두장을.

설에 세뱃돈으로 오만원 한장.

장인어른 생신때 오만원 한장을 주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였다.


“고모오오부우! 어엄마아! 으아아앙!”


결국 아이가 자지러지며 쓰러진다.

엄마를 찾아달라며 땅바닥을 기어다닌다.

아이 특유의 고음을 내며 울어제낀다.

기침을 한 번 하고,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운다.


남자는 그런 아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남자도 눈물을 흘린다.


아이가 자지러지는 바닥 앞에 

남자의 처남과 제수씨. 아이의 부모 사진이 놓여있다.

그 옆으로, 남자의 장인 장모의 사진이 놓여있다.

그 옆으로, 남자의 아내 사진도 놓여있다.


사진 주변으로 하얀 국화꽃이 흐드러지게 놓여있다.


조문객들이 힐끔힐끔, 상주와 아이를 쳐다본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아내와 가족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남자가 하나 남은 조카를 껴안는다.

아이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돌싱들의 맞선자리.

여러 사유로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만남.


결혼은 멍청이가 하고.

이혼은 깨달음을 얻어서 한다.


재혼은, 인간이 망각의 동물임을 상징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부모의 등쌀에 떠밀려 남자가 맞선자리에 나왔다. 

혼자가 된지는 5년이 지나간다.

결혼생활보다 더욱 긴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잊을법 한데, 남자는 여러 사유를 들이밀며 새로운 만남을 피해왔다.


바람때문에 이혼한 직장동료가 술자리를 권하기도 했다.

개인 카페의 사장이 알음알음 서비스라며 과자를 건네주기도 했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결국 남자의 부모가 남자 몰래 맞선자릴 잡아놓고선

남자를 밀어넣다시피 집어넣어놨다.


이런 자리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목이 타는 남자가 뜨거운 커피를 아랑곳하지않고 들이킨다.


“말씀 들었어요. 전 부인분과는 사별하셨다고…”


“네. 뭐…어쩌다보니.”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다.

9시 뉴스에 한 줄도 실리지 못했다.

처남의 SUV가 5인승 치고 커다랗다는 것과.

아내와 장인, 장모님과 제수씨까지 한 차량에 온가족이 탓다는 이야기.


가족여행에 남자는 끼지 못했던 이야기.

야근과 업무를 빌미삼아,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했던 이야기.


처남의 자동차 뒤엔 ‘아이가 타고있어요’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던 이야기.

그래서 언제나 운전을 조심스레, 천천히 한다는 이야기.


100km 제한의 고속도로에서도 95km정도를 달리며 바깥차선을 애용한다는 이야기.

네비게이션의 안전운전점수가 만점에 가깝다는 이야기.


속도제한을 임의로 해제한 화물차가 뒤에서 경적을 울렸다는 이야기.

마땅히 비켜줄 공간도, 필요도 없었던 처남을

화물차가 과속을 하며 추월하려던 이야기.


급격한 차선변경에 트럭 짐칸의 고정걸쇠가 끊어진 이야기.


그대로 수 십톤의 철판코일이 처남의 SUV를 덮친 이야기.

5명이 동시에 압착되어 뭉개진 이야기.


남자가 도착했을땐 응급실도 아니고 장례식장으로 안내받았단 이야기.


태권도장 캠프에 참가하느라

5살내미 조카만은 무사했던 이야기.

재미도 감동도 없다.


“안타까우시겠어요. 저런…”


“아닙니다. 다 지난 일입니다”


“혼인신고는…하셨나요?”


돌싱들의 맞선이라 그런지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거침없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때를 놓쳤죠.”


그 때는 그랬다.

이혼률이 유의미하게 높을때라.

아이가 생길 무렵까지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들이 많았다.


남자는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의 사망신고조차 병원 의사와 간호사의 손을 빌려야 했다.


“저도 그랬네요. 나중에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혼인신고보다 이혼이 빠를줄 누가 알았겠어요”


여자도 은연중 자신의 정보를 흘린다.

그래봤자 이혼남녀들이 만나는 자리인데도

서류상의 기혼 여부가 가점이 되고 감점요인이 된다.


어줍잖게 직장이나 연봉이나 자가 여부를 물어보지 않는다.

맞선을 소개해주신 분을 통하면 다~아 알게 되어 있다. 

으례 부모들이 이혼한 당사자보다 급한 법이고, 모든 정보를 건너건너 술술 불어준다.


가방끈도 길고, 직장도 좋고, 직함도 있다.

연봉이나 집은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생김새도 말쑥하고…

나쁘지 않다.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네? 아니. 무슨 일이 있으세요?”


“조카, 방과후학교가 끝나서 데리러 가야 하거든요”


“어머나~ 자상하셔라. … 형제가…있으세요? 분명 외동이라고.”


“… 처조카입니다.”


“네에?”


“미안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이야기 하려면 사연은 길고.

아이가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남자는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킨다.



“고모부우~~~”


“그래~ 고모부 왔다!

 오늘은 학교에서 뭐했어?”


“색종이 접었어.”


이제는 제법 커다란 아이를

가방째 뻔쩍 안아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이번엔 좀 흔치 않은 이야기라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아서

아내와 아내의 가족에 대해 어떠한 것도 정리하지 못했다.


결혼식때도 오지 않았던 아내의 머나먼 친척에 연락이 닿았고. 

촌수가 좀 가깝다는 이유로 재산이 넘어가게 되었다.


아내와 같이 신혼살림으로 장만했던 자동차가. 그렇게 생판 남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사실혼을 주장하면, 남자의 명의로 된 집도 일정부분 넘어가게 생겨서

여자의 명의로 된 자동차를 재산과 함께 거저로 넘겨주었다.

변호사가 미안하다 말하면서도 수임료는 잘만 받아간다.


너댓번 보았던 처조카가 본디 가장 가까운 상속자이지만. 나이가 너무 어린게 문제였다.


약삭빠른 친척이 보호자를 자처했고. 금치산자로 등록해서, 양육비를 빼갔다.


보호소에 맡겨져있던 조카를 발견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호시설 입구에서 조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남이다.

완벽한 남이고, 모르는 사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아내도 없고, 처남도 없다.


자신의 혼인은 법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했고 남아있는건 결혼식 사진들 뿐이다.


“고모부우…”


조카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

이젠 엄마도 아빠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친척에게서 자신이 버려졌다는걸

이 아이는 아주 잘 안다.


그자리에서 남자는 아내와 살던 집으로 아이를 데려왔다.


옷방을 정리해서 아이의 방으로 꾸미고

아이있는 아파트 주택이 그러하듯, 알록달록한 바닥매트도 깔았다.


이 아이가 고모부라고 불러주는 사실이

아내가 있었다는걸 증명해준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조카 명의의 통장에서 양육비가 빠져나간다.


남자는 아이의 부모도 뭣도 아니라 손을 쓰지 못한다. 


“오늘은 카레 먹을까?”


“매워~”


“안맵게 해줄게”


아이의 손을 잡고, 자동차로 향한다.

그나마 다니던 직장이 좋아서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육아휴직을 받지는 못해도, 탄력근로는 할 수 있었다. 


승진을 포기해야 했지만, 아이를 키우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쪼아”


“고모부도 실은 카레 좋아해”


“정말? 매운거?”


“음…안매운거”


“나두”


저녁 반찬을 이야기하면서, 뒷자리에 책가방을 먼저 싣는다.



“고모부가 오늘 좀 늦을거같아. 미안해”


“괜찮아요. 학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남의 아이라 그런지 시간 참 잘간다.

중학생이 된 조카는 학교가 끝나면 그대로 보습학원에 다닌다.


남자의 나이가 40에 가깝다.

동기란 놈들은 빠르면 ‘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다.

승진은 포기했어도, 살아남기 위해선 언제까지 퇴근을 빨리 할 수 없다.


아이를 학교 끝나자마자 보습학원에 넣어두고, 퇴근무렵에 데리러간다.

사교육은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 시키는게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용한다.


아이도 남자도, 대부분의 저녁식사는 편의점 도시락이다. 


“저…고모부.”


“응?”


“그…선생님이. 학부모 면담 있다고…

 부모님 모시고 오래”


“어? 어…그래. 고모부가 갈게.

날짜가 언제니?”


남자는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달력을 넘기면서 어찌해야하나 고민을 한다.

직장 주변 사람들의 눈치가 보인다.


“그… 보호자 모시고 오래. 고모부 말고.”


“하아. 연락은 되니? 그.. 작은할아버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장인어른의 사촌형제.

조카에게 있어선 6촌 남짓의 아슬아슬한 친척.

뭘 하는지도 모르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


매 달, 출금되는 돈이 있어서 살아있음을 가늠할 뿐이다.


“고모부가 선생님하고 잘 이야기해볼게. 걱정하지마”


남자의 머리가 지끈지끈한 만큼

선생도 입장이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학생의 지도편달사항중에선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한게 있다.


급식에 관한 것이든

방과후 학교든 수련회든 뭐든

가정통신문을 내주고 보호자의 서명을 받는다.


부모님이 없으면 조부모님께.

그마저도 없으면 법적인 보호자에게.


6촌 언저리 작은할아버지는 얼굴조차 모르고.

고모부는 선생의 입장에선 남이다.


사정이야 알지만, 추후에 사고가 터지면

잘못은 모두 선생이 지게 된다.


남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둘러싸여

머리카락만 한 움큼 씩 빠지는 것 같다.



[빵빵]


밤 9시 40분. 

학원 앞에서 남자는 경적을 울린다.


건물 안에서 기다리던 아이가 뛰쳐나온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너도 잘 다녀왔니.”


차 안에서 인사를 나눈다.

조카는 안전벨트를 매고나서, 그대로 고개를 쳐박고 핸드폰을 본다. 

남자는 유튜브를 따라가기도 벅찬데.

조카는 틱톡을 보면서 영상을 계속해서 넘긴다.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요즘 애들이다.

친구들과 노느라 용돈이 모자라서 연락이 오기도하고.

주말엔 집에있는 컴퓨터를 내버려두고 굳이 pc방을 가겠다고 한다.


공부라곤 지긋지긋하게 해봐서

남자는 조카의 학업을 크게 건들지 않는다.


건강하면 됐지.


“눈 나빠진다. 좀 떨어져서 봐라”

 

그래서 건강에 관한건 꼭 잔소리를 해준다.


“네~에”


건성건성 대답하는데다 전혀 듣지를 않아서

운전하는 와중에도 조카의 이마를 뒤로 젖힌다.


그제서야 화면에서 멀어진다.


남자는 시선을 전방에서 떼지 않는다.

아이에게 보이지 않도록 미소를 지어보인다.


“저…아버님..아니. 고모부님”


“그냥. 부르고 싶은데로 부르셔도 됩니다.”


“이러시면 저희도 곤란해요.

 학생의 직접적인 보호자이신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차마 선생도 ‘고모부면 남남이잖아요’

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에겐 별것도 아닌 가정통신문인데

보호자 서명란에 남자의 이름만 적혀있다.

선생의 입장에선 아무런 효력이 없는 종이쪼가리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조카의 보호자. 양육비만 빼가는 그 6촌 할아버지를 찾아보긴 했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 도저히 방법이 없어

양육권이라도 받아오고자 남자가 경찰을 찾았다.


아동방임으로 신원불상자에 대한 진정서를 작성하고, 

경찰은 주민등록과 금융거래내역을 뒤졌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란 작자를 찾아냈다.

그 집 주차장엔 예전에 남자가 몰던 자동차가 있었다.


그 6촌 할아버지는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애를 내가 키우면 되잖아 키우면!”


버럭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에서 조카를 데려갔다.


남자는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저번처럼 가족을 뺏기기만 했다.


집으로 혼자 터덜터덜 걸어왔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 널부러진 장난감이 보인다.

치우고 나니까, 벽에 걸린 아이의 상장이 보인다. 

고개를 돌리니 냉장고에 붙여진 사진과 그림이 보인다. 


예전엔 옷방이었던, 조카의 방이 보인다.


남자는 장난감을 정리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탄력근로도 그만두고 평상시 업무 스케줄로 돌아왔다.


퇴근하고나면 동료들과 술을 마시기도 하고.

오밤중에 보지 못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등원준비를 할 필요가 없어서 늦게일어나도 됐고

출근거리도 상당히 짦아졌다.


그래도, 장난감 상자나 냉장고에 붙인 그림을 떼어낼 순 없었다.


두 달이 지나서

남자의 핸드폰으로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힌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학교선생님인데요.]


“네…에?”


[자녀분 때문에, 상담드릴게 있어서. 통화 되실까요?]


“어..어..네. 아뇨. 갈게요.

 학교가 어디죠?”


[아… 자녀분 학교도 모르시는구나.

 네. 네. 여기는 말이죠~]


반차를 내고 선생님이 알려준 초등학교를 향해 차를 몬다.


신호위반도 한 번 하고, 과속딱지도 날아올 테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초등학교 교무실에 들어가자, 출동한 경찰과 함께 선생님이 남자를 맞이한다.


팔짱을 끼고. 경멸스런 눈빛으로 선생이 남자를 쳐다본다.


“흠흠. 아동 학대, 방임 건으로 조사가 필요합니다. 서까지 동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우리 조카한테 무슨일이 있나요?

 어딨어요? 조카? 네? 선생님! 어디있냐구요!!”


“보여드릴 수 없어요. 이런건 학생과 보호자를 분리하는게….어… 조카? 부모님 아니세요?”


“어디 있냐구요!! 조카 지금 봐야겠으니까! 빨리!!”


경찰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선생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떨린다.


아이를 볼 때까지 경찰 입회하에 사정을 설명하느라 1시간이나 걸렸다.


남자가 온 경위야 간단하다.

아이가 외우고 있던 ‘부모님 전화번호’는 남자의 핸드폰이 전부였으니까.


선생이 경찰을 부른 경위는 좀 더 복잡하다.

때린 것만 없는 학대의 정황이 입학이래로 계속 관찰된다.


크기가 맞지 않는 커다란 옷.

일주일동안 계속해서 그 커다란 옷만 입고 등교한다.

아이가 신고 있는 운동화의 세탁이 전혀 되지 않는다.

머리카락도 자르지 않는다.

알림장에 부모님 확인란이 비어있고.

일기장의 내용이 지리멸렬하다.

수업 준비물들을 전혀 챙기지 않는다.

밥을 허겁지겁 먹는다.

등교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너무 이르거나. 지각만 겨우 면하거나. 편차가 너무 크다.


이상하게 여긴 담임선생이 

아이에게 부모님 전화번호를 물어봤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이 학교명도 모르더라…


그 즉시 담임선생은 경찰을 불렀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남자를 체포하지 못한다.

선생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맨다.


“죄..죄송해서 어쩌죠. 그런줄도 모르고…”


“아뇨.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할아버지? 란 분은 학교차원에서 방임으로 신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와드릴게요”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두세요. 조카는 제가 데려가도록 할게요”


신고를 넣으면… 그 6촌 할아버지란 작자가 양육권을 계속해서 주장할 것이다.

아이는 집으로 갔다가 버려지길 반복할 것이다.


설령, 법망을 피하기 위해 학대나 방임을 그만둔다 그래도, 

아이가 제대로 관심을 받기는 힘들다.


고모부라는 허울좋은 명칭만 있을 뿐.

생판 남인 남자가 조카의 양육권을 가져오긴 힘들다.


“고모부우~”


“아이고. 우리 조카. 잘 있었어?”


고모부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가 교무실을 달려 나온다.

남자는 2달만에 만난 조카를 뻔쩍 안아든다.


“저희. 그만 가봐도 되나요?”


경찰이 선생에게 질문을 건넨다.


—-

편의를 많이 봐주던 초등학교 선생과 달리

중학교 선생은 빡빡하게 군다.


이해는 한다. 뉴스를 보면 진상 학부모가 판을 치고. 교사는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보수적으로 행동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엑. 고모부 진짜 학교왔어?”


“보자마자 엑이 뭐냐 엑이”


“회사는?”


“돌아가야지.”


“오늘도 늦게 끝나?”


“아마도?”


“만원만요. 저녁 사먹어야해요”


“잠깐만…”


남자는 2만원을 조카에게 내민다.


“오오. 두배다. 그럼 오만원만”


“이녀석이. 남은건 간식먹던가 알아서 해.

편의점 도시락만 먹지 말고”


“감사합니다.”


남자는 조카에게 손을 흔들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아이는 꽁으로 생긴 돈 만원을 챙기고

무엇을  살지,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반차만 겨우 낸 남자는 다시 회사로 들어간다.

동기였던 부서장에게 인사를 하고 업무를 본다.

그 새 밀린 일이 책상 한가득이다.


회사는 남자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가족관계증명서는 말끔하다.


퍽하면 애 때문에 조퇴다 연차다 하는데

자녀수당은 신청도 안한다.

관계를  물어봐도 어물쩍 넘어가고

어쩌다 맡은 친척의 아이라는 이상한 소리만 한다.


아이와 남자의 관계에 대해 오만가지 소문이 돈다.

혼외자라던가, 태어난 배가 다른 나이가 한참 어린 동생이라던가.

촌수를 가늠할 수 없는 피붙이 혈연에 대한 여러 상상을 한다.


설마 처조카라는, 친척도 아닌 인척

이제는 사별한 아내의 조카라는 이야길 누가 믿기나 할까.

그쯤 되면 남남이다.


“이거, 다음주까지 취합해서 가져다주세요”


한가득 서류철 위로, 다시 그 반만한 서류더미가 쌓인다.


“아..네. 알겠습니다.”


야근 확정이다.

9시에 일을 마쳐도, 아이를 데리러가면 9시 반이 넘어간다.


학원은 저녁식사를 하고, 8시 반에 수업이 끝난다.

30분정도야 자습실을 열어주지만, 9시가 넘어가면 학원선생들도 퇴근을 준비한다.


집에서 혼자 기다리는게 안타까워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학원에서 남자의 퇴근을 기다리게 한다.


고등학생이 되면 좀 더 늦은시간까지 학원을 다녀도 괜찮을거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 기다려도 괜찮을 것이다.


중학생은…아직 이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자에게 있어서 조카는 쬐깐한 어린애같다.


[고모부 오늘 야근이야. 학원에서 좀만 기다리고 있어]


[네에~]


[네는 짦게, 한 번만]


[아 빨리와요. 심심해. 졸려]


[알았어]


남자는 기지개를 쭉 편다.

일이 많지만, 카페인 충전이 먼저다.

사약맛이 나는 커피를 타서 자리로 돌아온다.



[출발한다. 금방 갈게]


[선생님이 문 닫는다고 나가있으래]


[카페라도 들어가 있어. 만원 줬잖아]


[아…PC방 가려고 했는데…]


그치, 어떻게 생긴 꽁돈인데 음료수값으로 5천원이나 쓰긴 아깝지.

남자는 핸드폰을 닫고 운전대를 잡는다.


빨리 달리면 10시 전엔 도착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정리를 하면 11시는 될 것이다.


30분 차이로 야간의 도로가 되어서 길이 뻥뻥 뚫린다.

과속 아슬아슬한 시점까지 엑셀을 밟는다.


그래도 안전운전, 안전운전.

아무리 본인이 조심하더라도 사고는 불시에 다가온다.

남자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있다.


간선도로를 나와서 도심 상업지구에 진입한다.

학원 빌딩이 저 멀리 보인다.

일찍 오면 빌딩 경관조명도 켜져있었는데. 지금은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야박하긴…


빌딩 앞 빨간 불 신호에 멈춰선다.


[고모부 거의 다 왔다, 어디니?]


[건너편 무인카페] 


똑똑한 녀석. 그 와중에도 한 잔에 1500원짜리 아이스티를 파는 무인카페에 들어가 있다.

용돈을 좀 더 늘려주고 싶다가도

그게 교육에 좋은 일인지 고민이 든다.


부모… 어쨋든, 아이를 키운다는건 참 힘든 일이다.

간단한 사안도 선택을 고민하게 만든다.

저 나이대는 스펀지와 같아서 주변의 모든 일들을 그대로 흡수한다.


[조금만 있다가 나와, 학원앞에서 기다릴게]


[응, 나갈게요]


늦은시간까지 애를 바깥에서 돌게 만드는게 올바른 일인지도 의문이 든다.

공부는 지긋지긋하게 해봐서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게 하는것도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무작정 놀러다니라고 할 수 도 없고

집에만 있으라고 말하기도 꺼림직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른이 한명쯤 더 있으면 좋을텐데.


아내쪽 가족은 그 망할 6촌 작은할아버지 뿐이고

남편쪽은 부모와 의절했다.

뭐. 돌아가시면 연락이 오겠지.


갓길에 차를 대고 노란 점멸등을 켠다.

경적을 짧게 두 번 울린다.


“고모부우!!”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조카가 남자를 크게 부른다.

양손을 흔들어서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킨다.


“어, 횡단보도 조심해서 건너와~”


남자는 조카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아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좌우를 살피면서 오는 차는 없는지, 신호는 언제 바뀔련지 가늠을 한다.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고, 좌우를 살핀다음 쏜살같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차라곤 저 멀리서 오는 세단이 하나. 적신호다.


“넘어질라. 뛰지말고”


가방은 지 몸만한걸 메고 있으면서

폴짝폴짝 잘도 뛴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계기판을 만진다.

날씨가 더우니 통풍시트를 가동시키고

에어컨의 온도를 낮춘다.


집으로 네비게이션을 조작하는데..


[부웅우우웅…퍽]


어?


저 멀리서나 있던 세단이 총알같은 속도로 남자를 지나간다.

남자의 뒤로는 도로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고

있는거라곤… 조카가 건너던 횡단보도 뿐이다.


“어..어?!”


남자가 황급히 차를 내린다.

횡단보도를 한참 지난 세단 차량이 연기를 뿜으며 멈춰있다.


급제동을 하느라 휠 너머로 브레이크 라이닝이 붉게 가열된게 보일 지경이다.

패드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


“어..어..어..”

남자가 차선을 무시하고 자동차 쪽으로 향한다.

분명 건너왔어야 할 조카가 보이지 않는다.

사고가 있었다면, 응급조치를 해야할 운전자가 내려야하는데.

운전자는 차 안에서 어찌하는지, 짙은 틴팅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다.


“아냐..아냐..아냐!!!!!”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간다.


이쯤 되면 나와야한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남자를 찾는 조카의 목소리가 들려야한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두려움이 엄습한다.


남자가 자동차 너머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조카의 몸만큼 거대했던..

중학교 입학선물로 사준 책가방이다.



“현재시간 2024년 xx월 xx일. 22시 53분. A군께서 사망하셨습니다.”


“...”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제가…제가 저는…”


남자는 한 번도 아이의 아버지를 자칭한 적이 없다.

아이가 자신을 고모부라 불러주기 때문에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던 아내와의 짧은 결혼생활을

조카가 입증해줄 뿐이다.


조카를 키우고 돌보는 이유는

아내를 아직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랬을 터였다.


“이 애 아버지에요.


 제가…제가 이 애 아빠라구요..

 내가 이 애 아빤데…아빤데……….”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으…으헝헝헝…으허어어어어어어엉”


피칠갑이 된 아이를 끌어안고

10년 전 아내를 잃어버린 그 날처럼 목놓아 운다.


그때처럼 조카를 꼭 끌어안는다.



“선고. 피고인을 징역 10년에 처한다.”


검사는 살인을 사유로 징역 15년을 구형했고.

판사는 사유를 참작하여 징역 10년을 판시한다.


배심원단은 이게 참작사유로 들어가야하는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남자는 쇠고랑을 차고 교정직 공무원에게 끌려나간다.


한 번은 가족을 잃어버릴 수 있어도.

두 번씩이나, 그것도 음주운전 과속차량에 잃어버릴 순 없었다.


진정으로 남자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다.

집에 있던 아이의 상장도.

냉장고에 붙어있는 그림도.

이제는 쓰지않는 장난감상자도


모두 쓸모없어졌다.


남자는 아이의 보호자도, 가족도 아니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음주운전자는 그놈의 6촌 작은할아버지와 합의를 진행해야했고.


3천만원에 조카의 죽음은 합의가 되었다.


운전자에겐 8년이 구형되서 4년이 선고되었다.

죄를 뉘우치고 가족과 합의를 한 점이 양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모범수로 바르게 지낸다면, 형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가석방이 될 것이다.


방청석에 있던 남자는 숨겨왔던 날붙이로 피의자를 찔렀다.

혹시나 살아남을까봐. 두 세번 넘게 찌르는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의 죽음은 뉴스 한 줄도 나오지 않았는데

법정에서의 살인사건은 대서특필이 되었다


기자들과 유튜버들이 앞다투어 남자의 과거를 캣지만. 어느것도 나온게 없다.


남자는 죽은 아이와 완벽한 남남인데

생활은 십년을 가까이 같이 했다.


보호자라는 6촌 할아버지는 관심도 없고.

남자는 입도 뻥긋 하지 않는다.


“지 애도 아닌데 뭐가 그리 속이 상했을까”


“정작 보호자는 합의했다며”


배심원단은 전후사정을 알지 못한다.

아이의 초등학교 담임선생이 쓴 탄원서를 읽어본 판사만이. 

착잡한 표정으로 형량을 깎아줄 뿐이다.


“배아파 낳은 애가 죽으면 복장이 찢어지고.

 가슴으로 낳은 애가 죽으면 심장이 찢어지지... 어휴…”


단순 살인이면 어떻게든 형량을 깎아줄테지만.

계획범죄에 법정모독이다.


판사는 한숨을 쉬며 법정을 떠난다.




“야. 신입. 인사 안하냐”


“형씨. 그러지 말어. 저 사람이 그사람이여”


“에이씨... 재수 똥밟아서는”


문신 어깨가 남자에게 시비를 걸려다 제지당한다.


교도소에선 특별관리대상이 두 부류가 존재한다.


한 쪽은 집단린치의 위험이 있는 자.

가령…경찰이나 검찰이었던 사람

아동성범죄자

그리고 요즘엔 코인사기꾼이 포함되었다.


각자 무리끼리 뭉쳐다니며 안전을 도모하고

교정직 공무원들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의주시한다.


다른 한 부류가…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다.

뒷배도 없는데 뒤도 없다.

잃을게 없어서 안하무인이다.

교정직 공무원의 속을 있는데로 썩이고.

다른 죄수들과 사이도 좋지않다.


그리고 이에 준하는 사람이…

남자처럼 자식잃은 부모다.


죄를 뉘우칠 생각도 없고. 교정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교양있는 지식인들이 대부분이다.


비슷한 공통점을 보인다.

눈알이 동태눈알마냥 초점이 없다.

항상 모래알 씹듯 밥을 먹고

어느 누구와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얼빠진 머저리마냥 가만히 있다가.

불현듯 눈물을 흘린다.


무서울게 없는 사형수도 이들만큼은 피한다.


“...미안합니다. 잠시 지나갈게요”


남자도 동태눈깔을 해선

문신어깨의 옆을 피해서 지나간다.


교정시설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중. 

종교시설에 몸을 맡긴다.

신부님과 함께 기도를 올린다.


교정시설 프로그램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제과, 제빵, 목공, 용접같은 업무능력을 배우는것이 하나.

사회에 복귀해서 다시 범죄에 몸을 담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친다.


다른 하나가 심신의 안정을 찾기 위한 종교시설이다.

불교든 기독교든 개신교든

종교인들이 찾아와 범죄자들을 회유하고 개심시킨다.


범죄자들의 곪은 속을 보듬어주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남자는 기술을 배우는데 영 흥미가 없다.

신부님이 오실 때면, 구석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기도만 올린다.


10년.


남자는 출소 후에 한가지 계획이 있다.

3천만원에 자신의 아이를 팔아버린 그 사람을 찾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그 망할 노인네가 몸 건강히 잘 살길 바랄뿐이다.

그때까지, 가슴속에 있는 분노가 자신을 좀먹지 않길 바라면서

꺼지지 않는 불씨를 잠재우기 위해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부디. 그 노인네가 무병장수하길.

부디. 자신이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출소할 수 있기를.

부디, 하늘에 있을 나의 가족, 나의 아내. 나의 아이가 편히 잠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