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날의 2교시.


창 밖으로는 시끄러운 매미소리와 후덥지근한 열풍이 이따금씩 불어오고.


교내에서는 아직 잠기운을 떨치지 못해 노론한 분위기가 조성되어가던 와중.


"B양 어제 투신하려 했대."


너에 대한 얘기가 들려왔다.


***


"A군은 참으로 이타적이네."


어렸을 때부터 늘상 들어왔던 말이다.


누군가의 잔 심부름을 들어주거나, 자리를 양보해주거나, 까먹은 준비물을 대신 빌려줄 때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저리 말하였다.


하물며 누군가는 나의 이러한 모습을 시험하려고 학급 내내 시달리게 한적도 있었고.


추후에 듣기로는 내가 이러한 이타심을 갖는 이유가 궁금해서라고 했다.


그 친구에게는 안타깝지만 딱히 내게는 이렇다 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그 사람이였다면 이러한 도움이 필요했을테니까가 나름의 이유라면 그거겠지.


그러니 내가 너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에도.


"뭐야, 저리 안꺼져? 너도 어저께 소문 듣고 온거냐?"


"우리 영화 보러 가자."


내가 이리 행동할 수 밖에.


###


별 미친놈이 다 있구나.


세상이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이 싫다.


그야 인생은 항상 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어제도 그렇다.


그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이 삶을 끝내고 싶었다.


빌어먹을 나무들과 폭신한 화단만 아니였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이게 기적이란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멍청한 것들.


그들은 내 행동의 원인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내가 한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책임했는지 꾸짖을 뿐이었다.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것들이 나를 힐난 했고.


이 감정을 대신 떠안을 수도 없는 것들이 무책임하게 나를 비난하기만 바빴다.


그래야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느끼게 하니까.


그래 사람이란 그렇다. 한 없이 이기적이야 살기 편한 세상이다. 


남을 짖밟아서라도 내가 더 돋보이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래야 본인들의 삶이 더 빛나게 느껴지니까.


그게 내가 살면서 깨달은 진리고. 그게 이 인생을 끝내고 싶은 이유였다.


근데 이 놈은 또 뭐냔 말이다.


처음에는 나를 비웃으러 온 줄 알았다. 


영화를 보자기에 무서운 영화를 보여주거나 혹은 나를 어떻게 해볼라는 것은 아닐지 의심했었다.


그래서 꺼지라고 전하자 울상을 지으며 억지로 나를 영화관으로 끌고 왔다.


그래놓고 보는게 가슴 따뜻한 로맨스 영화다.


그래 이러한 분류의 사람도 있다.


이렇게 삶의 아름다운 부분들을 보여주면서 스스로가 나를 갱생 시킬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무지한 것들 말이다.


아아 이런 귀찮게 미친 사람의 이기심에 이용 당하는 꼴이라니. 정말 인생 살기 싫어진다.


근데 이 자식 지가 보자고 해놓고는 영화를 보면서 울고 있다.


진짜 뭐하는 놈이지?


***


너무 감동적인 스토리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감정의 절제란 이리도 어려웠던가.


특히 여주인공이 공항에서 키스신 후에 떠나는 장면이 압권이였다.


아마 감독이 대놓고 눈물을 짜내려 만든 장면일 것이겠지.


허나 막상 너는 영화에 별로 집중하지 못한 모양이다.


분명 내가 보자고 했으면서 내가 더 영화에 심취하다니.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했지만 딱히 용서는 돌아오질 않았다.


이래서는 안된다.


맛있는거라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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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진짜 미친놈이 맞는 것 같다.


지 혼자 영화를 보며 울더니 느닷없이 사과하고 이제는 맛있는걸 먹으러 가자고 한다.


그래놓고는 결국 도착한 곳이 근처 패스트푸드 점이라니.


뭘 "먹고 싶은거 다 시켜"야.


도데체 이런 미친놈이 어떻게 사회에 대놓고 활보하는 거지?


역시 이 망할 인생은 더 늦기 전에 뜨는 것이 답이다.


그전에 이 녀석에게 금전적인 고통 좀 주고.


***


너는 생각보다 먹성이 좋았다.


덕분에 내 한달 용돈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너가 만족한 것 같으니 아무렴 좋다.


삶의 한순간이라도 너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좋다.


너를 동정하고 너를 어떻게든 살리겠다라는 거창한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였다.


그저 내가 너였다면 이러한 순간들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은 그저 스쳐가는 삶의 편린이라고 해도 괜찮다.


언젠가는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면을 채워가면 되니까.


다만 이제는 내가 뭘 해야할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이성과 이런식을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은 많이 없었으니 그 다음은 주로 뭘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너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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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준 답변은 "꺼져"였다.


내가 언제까지고 이 유치한 연극에 어올려야 하냔 말이다.


시간이 아까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가뜩이나 어제의 실패로 인해 모두가 보는 내 모습이 더 비참해졌다.


그들은 나를 마치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버러지를 보는 듯했으니.


그러니 너 또한 그럴 것이다. 


너 또한 그저 나를 불쌍히 여길 뿐이다.


재수없다. 상당히 아니 꼬왔다.


놈은 상당히 낙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알게 뭔가.


내가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너가 다급하게 나를 붙잡았다.


***


이대로 보내선 안된다.


이대로 가다간 너가 후회할 일만 생기게 되니까.


어떻게 너를 붙잡지?


붙잡는게 과연 옳은 행위인가?


너는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뭘 바라는 거야?


표면적으로는 내가 놓아주길 원하겠지만,


이미 이러한 사람들은 더 잡아 주길 원하니까.


그러니 강력한 한 수가 필요했다.


나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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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진짜 미친놈이 분명하다.


지 용돈을 털어서 하루에 한번씩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주겠다니.


도데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뭐가 "단 너의 삶을 끝내 달라거나 같은 소원은 못 들어줘"냐고.


그딴걸 에초에 너한테 왜 부탁할까.


아니지.


생각 해보면 이건 어쩌면 기회다.


내 삶을 끝내기 전에 누릴 것은 다 누릴 수 있는 기회.


이 녀석이 왜 이리 절실한지는 모르겠다만 바라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것이라면.


철저히 이용한 후에 끝내 그 기대를 짖밟아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 사람은 이기적이니까.



>>>


(대충 같이 아쿠아리움도 가고, 먹고 싶은 대빵 큰 디저트 가게도 가고, 자전거로 공원 데이트도 즐기고, 코노도 가고 기타 등등...)


>>>



"이제 그만해도 되잖아!"


떠나가려는 너를 왜 붙잡고 있을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너가 용돈도 다 써서 애들에게 빚지고 다니는걸 모를 것 같아?!"


들키고 싶지 않던 치부마저 낱낱이 드러난 기분이다.


"이제 그만해도 돼,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안한다고. 제발 너를 생각해서라도 이제 그만 두라고!"


그 모든 과정이 순탄했나 물으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부모님에게는 용돈을 다 어디에 썼는지 추긍 당했고, 


학교 선생님들 마저 내가 괴롭힘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봤다.


그렇지만 이 상황 속에서 제일 괴로운 것은 당연 너겠지.


"왜 나를 또 막는건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뭔데?!"


이유. 이유라.


'내가 너라면 이것을 원했을 테니까' 가 과연 맞는 대답일까.


그래, 난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이유를 구상해 본 적이 없었던거야.


그저 나름 그럴듯한 대답 하나만을 가지고 늘 그것이 이유라고 믿어왔던거지.


그러니 지금 내가 이리 해야할 이유는...


"... 내가 원하니까."


"뭐?"


"그냥 내가 이기적이라 너가 살아있었음 하니까. 그냥 내가 그걸 원하니까..."


따스한 수분기가 우리의 뺨을 타고 흐른다.


"그냥 내가 이기적인거야... 그냥 내가 이기적이라 그런거라고!"


"..."


늘상 감정이 복받혀 오는 순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감정을 절제하기란 이리도 어려운 것이니.


어느세 너와 함께한 시간도 가을과 겨울을 지나갔고,


그러한 시간 동안 이미 서로에게 물들어간 우리는 이미 어느정도 닮아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너머,


다시 여름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