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치키 료야가 없는 환상향은 3차 창작이다.


원작은 동방 프로젝트며, 그것을 기반으로 한 2차 창작 팬픽 [동방기연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태그를 붙인다면, 글쎄, 후회피폐칩착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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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하고는 상관 없는 잡설을 잠깐 하겠는데, 나는 후회피페집착얀데레 4드론이 그 자체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태그로 작품 좀 쓸 수도 있지. 문제는 그걸로 돈 쪽 빨아먹고 빤쓰런 치는 양심 팔아먹은 종자들이고.



다만 태생적으로 4드론은 4드론인 이유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후회해서 피폐해지고 집착해서 얀데레가 된다?


어지간히 기틀을 잘 잡아놓지 않는 이상, 이 일련의 사건을 원만하게 수습해서 다음으로 이어갈 수가 없다.


뒤가 없다는 이야기다.



재밌게도, 그 뒤가 없음은 팬픽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리지널 4드론물에선 자극을 위해 날림으로 쌓기 쉬운 기틀도, "원작 있어요"


저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같은 말도 안 되어보이는 배경설정도,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분량이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원작이 그랬어요"


뒤가 없다는 것도, "장편 팬픽도 아니니까"


단 1화만에 나이스보트로 "완성" 찍 해버려도 팬픽으로선 그게 완결이라는데 별 수 없다.


오히려 그게 재밌는 경우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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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작품이 가진 3차 창작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잠깐 1차와 2차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할 것 같다.



1차인 동방 프로젝트는 환상향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대체로 일본 신화에 기반을 둔 여자 캐릭터와 여자 캐릭터와 여자 캐릭터가 나와서 싸우는 내용이 주가 되는데,


원작인 슈팅게임 시리즈부터가 텍스트가 매우 빈약하고, 원작자가 2차 창작 풀 오픈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팬덤에서는 그야말로 상상할 수 있을 법한 대부분의 종류의 캐릭터 변형을 시도하고 받아들여진다는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소설이나 만화 같은 것으로 이야기가 보충되면서 그런 경향이 줄어든 것 같긴 한데,


하여튼 제법 원작 캐릭터의 날조를 자유롭게 해도 큰 문제는 없다.


같은 원작 캐릭터라도, 기초설정 붕괴만 없다면 작가가 그 캐릭터를 자애로운 풍요의 신으로 쓸 수도,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잔혹함을 숨긴 재앙신으로 쓸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면, 단편으로 주제를 압축할 수 있을수록 인물의 배분이 자유롭다는 뜻도 된다.




동방기연담은 동방 프로젝트의 장편 2차 창작 소설 중 하나로, 헤타레인 오리지널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다.


헤타레가 뭐인지 설명하긴 힘들다. 일단 사람 좋은 초식남이나 순박한 청년 정도로 생각해두고 궁금하면 따로 검색해봐.



나에게 동방기연담이 왜 특별했는가?


팬픽의 오리지널 주인공인 이상 떠오르는 태그가 한둘이 아니다.


하렘, 순애, 먼치킨, 성장, 사이다....


동방기연담의 주인공 츠치키 료야는 그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다.



어쩌다 봉래의 약을 억지로 먹여져서 불사가 된다.


자신 주변 일정 공간을 자신의 지배하에 둬서 마음대로 조절하는 공상구현화 같은 능력도 얻는다.


이 능력으로 말미암아 비물리적인 공격들에 대해 모두 면역된다.


일본 만화에 흔하디 흔하게 나오는 쿠사나기의 검의 레플리카를 손에 넣는다.


환상향에 존재하는 모든 단체의 수장 및 간부들과 우호적인 친분관계를 쌓는다. 사실 민간인 수준하고도 친분이 있다.



불사가 되도 약해서, 하찮게 죽었다가 살아난다.


능력의 이름은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히는 정도의 능력"이다. 실제로 가능한건 에어컨 기능 정도다. 본판이 상식인이라 격변을 일으킬 수가 없다.


물리적인 공격은 전부 쳐맞는다. 말 그대로 즉사계 저주 같은 것이 막힐 뿐, 보스급은 커녕 잡몹한테도 평타 한 대만 스쳐도 그대로 사망 직행이다.


쿠사나기의 검 레플리카로 평타 몇 번 방어하는게 스고이한 활약의 전부다.


친분 쌓으면 뭣하나. 본인이 그런걸 써먹을 정치력도 야망도 없고, 친분 있어도 결국 어디선가 죽는다.




이런 주인공으로 정말 괜찮나? 문제 없다.


그냥 그런 주인공이라서, 아무 비장감도 고구마도 없이 잔잔하게 일상 이야기가 쓰여진다.


탄막슈팅 대결이니 이변 해결이니 하는 사건들 전부가 가진 비장감이나 갈등이 이 주인공이 있는 것으로 희석된다.


독자도 작가도 주인공도 인물들도 주인공의 죽음에 무게를 두지 않으므로 그것은 고구마도 뭣도 아니다.



안다. 호구형 주인공 자체가 고구마로 받아들여지곤 하는거.


근데 어쩌나. 주인공이 호구처럼 있는만큼 환상향도 주인공에게 따뜻하고,


거기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의미가 없으니 계산할 것은 아니다.


개그만화에서 잠깐 누가 죽었다가 금방 부활하는데 일일이 화낼 이유가 뭐가 있나.


심지어 진짜로 죽어서 영혼만 남더라도, 삼도천이니 지옥이니 하는게 실존하다보니 그럴 능력만 있으면 사후에도 만나러 갈 수 있다.


죽음에 무게감이라곤 하나도 없다.


나도 그냥 어휴 또 죽네 하고 넘어갔다.


다들 그랬다. 내가 아는 한은.






거기에서 혜성처럼 나타난게 츠치키 료야가 없는 환상향이었다.





이야기의 전제 중 하나. 츠치키 료야는 불사다.


불사기 때문에 쉽게 죽었다가 쉽게 부활한다. 힘조절 같은 실수가 일어나도 사지 멀쩡하게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부분을 이 팬픽은 부정하고 시작했다.


어떻게 죽었나는 생략하겠다. 하여튼 츠치키 료야는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죽었다.



이 발단으로부터 판이 전개된다. 인물들이 각자 역할을 가진다.


냉철한 마법사이자 스승이었던 파츄리가 피폐해진 채로 우리 모두 공범이라는 말을 한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레이무가 죽음으로 가까운 사람을 잃은 사람의 상실감과 집착을 대표로 보여준다.


어떤 의미로는 제일로 츠치키 료야의 죽음을 방치한 유카리가 그 사실을 들이대진다.


사건은 항상 자기식대로 유쾌하게 황색언론으로 찍어내던 아야가 무미건조한 부고 소식을 낸다.


별 것 아닌 식인요괴 루미아가 레이무에게 료야도 죽고 다치는 것은 아팠을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후회, 피폐, 집착...


물에 젖은 장작더미가 쌓아올려진다.



장례식이 열린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 태반이 장례식이 선포된 것을 듣고 나서야 그게 거짓이 아님을 깨닫는다.


말했듯이 그는 환상향에 사는 사람 전체와 친분이 있다. 당연하게도 최후의 살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려진다.


그걸 히에다노 아큐가 가로막는다.



이 아큐라는 인물의 역할이 대단히 재밌다.


우선 요괴나 신이 득시글대는 동방 프로젝트 등장인물 중에서 극히 드문 인간이다. 변변찮은 전투능력도 없다는 부분도 꼽으면 한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수준이다.


환생을 하고, 그 기억을 어렴풋하게나마 가지고 있다. 죽음의 고통을 기억할 수 있다.


환상향의 인물에 대해 기록하는 걸 업으로 삼고 있다. 아큐는 츠치키 료야의 입을 통해서 온갖 인간과 요괴와 신들에 대해서 전해들었다.


츠치키 료야가 가졌던 그들에 대한 호감도 함께.



그런 약자가 강자들에게 되려 따지고 든다.


너희야말로, 우리야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한거 아니냐고.




그 뒤는 뭐, 흔하다면 흔한 씁쓰름한 죽음빛의 이야기니 생략하고.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당시 이 이야기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4차 창작도 제법 많이 생겼다.



왜 좋았을까?



너무 하찮아서 작품 내외에서 거론되지도 않던 죽음이라는 소재를 주제로 꺼낸 것이 참신하고 충격적이었다는게 우선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냥 죽음에 대해서 다뤄봐야 그냥 그런 작품일 뿐이다.


1차도, 2차도, 죽음에 대해선 제법 가볍게 다뤘으니까. 묵직한 한 방이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한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도 좋았다.


이 작품은 왜, 어떻게 죽었나에 대해선 굳이 오래 다루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에서 츠치키 료야의 죽음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츠치키 료야의 죽음으로 생긴 변화와, 그 변화들로 추측할 수 있는 츠치키 료야가 가졌던 무게다.


빈 자리는 없어져봐야 알고, 반대로 빈 자리가 차지한 양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도 엿볼 수 있으니까.


말마따나,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 죽어서 그 비밀을 파헤쳐나가는 스토리는 이 작품의 주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돌아보면 캐릭터들의 역할이 분명했다는 것도 좋았다.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썼을지는 당연히 모르지만,


내가 평가하기론 츠치키 료야의 죽음을 조명할 다양한 캐릭터와 다양한 역할을, 사족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분배한 결과가 되었다.




아마 무엇보다도 심금을 울린건 이야기가 가진 비극성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쓰여진 4차들 중 제법 많은 것들이 츠치키 료야의 부활을 다뤘다.


부활을 다루지 않는다면 죽음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에 대해서 다뤘다.


꼭 4차가 아니어도 이후 기연담 3차에서 료야의 죽음을 찾아보긴 힘들어졌다고 기억한다.


피폐를 좋아하든 구원을 좋아하든, 죽음이라는 사건이 가지는 비극성은 좋은 작품으로 전달되기만 하면 그만한 파급력을 지닌다.






갑자기 터진 새벽감성에 글이 길어졌다.


3차 팬픽이라 가능한 완성도라고 보긴 하지만, 3차 팬픽 거르고도 제법 잘 썼다고 생각하니 읽어보면 좋겠다.


그래도 3차긴 하니까 가능하면 기연담 읽을만큼 읽어보고 읽는걸 추천하지만.


네다씹 장문글 읽어준 사람에겐 감사하단 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