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이상한 것들이 많다.

사람은 이상한 것을 두려워 한다.

그래서 사람은 이상한 것을 붙잡아 가둔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 까지.


나는 오늘 그 중 하나를 이해했다.

그렇기에 이 두꺼운 콘크리트 문 앞에 섰다.


<이 앞은 통제구역 입니다. 신원을 증명하십쇼.>


목에 걸려있는 카드키를 긁는다. 지문을 인식하고, 홍체를 인식한다. 복잡하지만, 확실한 절차들을 거친다. 그러자 벽이 올라가고, 복잡한 봉인장치가 되어있는 문이 나타난다. 유압 실린더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며 서서히 잠금잠치들이 하나 둘 씩 풀린다.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20겹의 안전장치를 한 문 뒤에 있는 소녀 또한 그러한 부류다. 인간의 몸에 깃든 괴물. 그녀와 대화기록을 남겼던 잭슨 박사가 적은 평가가 내가 본 보고서들 중에서는 인상 깊었다.


문이 열리자 새하얀 방이 나타난다. 웅웅거리는 소음이 들린다. 방의 중앙에, 거대한 원이 있다. 그 원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강의 전자석이다. 만약 저 전자석이 작동할때 인간이 들어간다면 철분과 그 외의 무언가로 분리되어 갈기갈기 찢길 정도다.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공기중의 수분들이 저 전자석의 진동을 주기에 따라 움직이는 것 만 봐도 위력을 알 수 있다.


천장을 올려다 본다.


거대한 포신같은게 있다. 저것은 입자가속기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포탄을 쏘는 대포다. 저것이 작동하면, 원자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쏘는데, 그 원자가 신체를 관통하면 원자단위의 붕괴가 일어난다.


주위를 둘러본다. 보라색 렌즈를 가진 등들이 전자석의 정중앙을 준하고 있다. 감마선 조사기다. 만약 이것이 작동한다면, 1초 이내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할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장치들의 조준점이 만나는 곳엔, 가부좌를 튼 소녀가  공중에 서 있었다. 


ST - 4001, 객체명: 천마. 자신이 '중원'에서 왔다고 하는 소녀로 과학으로 설명 불가능한 힘을 품고 있다. 누군가는 그녀를 걸어다니는 자연재해라고 경외를 담아 불렀다. 인간의 몸으로 전술 핵무기를 받아내고도 멀쩡하면 신기하긴 하지.


하지만 그런 그녀도 과학의 힘 앞에는 무릎 꿇어야 했다. 그녀가 사용하는 힘의 근원인 '기'는 자기장으로 교란시킬 수 있다. 감마선은 그녀의 내부를 흐트려 내장에 상처를 낼 수 있으며, 입자 가속기는 그녀와 함께 소환 되었고 비슷한 힘을 지녔던 '무림맹주'라는 인물을 흔적도 없이 분해시켰다. 물론, 이정도의 자기장을 버티고, 감마선을 쪼았는데 휴유증 없이 자가 치유하는 걸 보면 그녀의 위험도는 높은 편이다.


"ST - 4001, 신체 상태는 어떠하지?"


"아직도 본녀를 그리 딱딱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냐? 우리가 정분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그대와 나눈 정이 있지 않는가?"


내 장기 구조를 외울만큼 나를 찢어발긴것도 정이라면 정이겠지.


".......천마."


"반쪽이긴 하지만 그 요상한 발음보단 좋구나. 그래, 본녀는 매우 상태가 좋다. 오늘은 무슨일로 찾아왔느냐?"


"거래를 하자."


"....거래?"


"너를 풀어준다. 너는 내 편이 된다."


나는 오늘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