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헤르베트는 여느날 처럼 마왕성 옥좌에서 서류결제를 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콰아앙!

마왕성 벽이 무너지며 뛰어들어온 은발의 아름다운 빛을 내는 성검을 쥐어든 여기사가 그를 향해 외쳤다.


"마왕 헤르베트! 여신님의 용사, 아리아가 그대를 멸하러 왔습니다!"

"아, 잠깐만. 아니 10분만 기다려봐, 이 서류만 좀 다 처리하고"

"네?! 아니, 그게 무슨..."


예상치도 못한 마왕의 무관심에 얼떨떨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아리아는 망연하게 서서 서류를 계속 처리하는 마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폭발의 충격파로 서류들이 뒤죽박죽 어지러이 흩어졌지만 추후에 귀찮지 않으려면 당장 쌓인 서류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저기 옆에 테이블에 앉아있어. 기다리기 지루할테니 다과나 들고있지"

"아? 네?! 이게 아닌데..."


집무용 안경을 검지로 고쳐쓰며 계속해서 서류작업을 진행하는 헤르베트는 만마의 왕이라는 극악한 칭호와는 다르게 재상과 다름없어 보였다.


-벌컥!

"마왕님! 마왕성에 지진이...!"


집사장 세바스찬이 달려와 왕의 안위를 살피려 들어왔으나, 예상치 못한 광경에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성검을 든 은발의 여성이 마왕을 지켜보고 있으며 그 앞에서 태연하게 서류나 보고있는 마왕.


거기에 한 술 더 뜬 기이할 정도로 평이한 어조로 명령하는 마왕까지 겹쳐 세바스찬은 인지부조화가 올 지경이였다.


"뭘 그리 멍하니 쳐다보고 있지? 잘됐군, 손님이다. 가서 다과나 좀 가져와"

"아... 예...! 여봐라! 여기에 다과를 좀 가져오도록!"


세바스찬은 바깥의 시녀에게 소리쳐 다과를 가져오게 한 후 마왕을 바라봤다.


"손님이 불편해 하는 기색이군 자네도 나가있게나"


아직도 멀뚱히 서서 어쩔 줄을 모르는 채로 성검을 쥔 손만을 꼼지락 거리는 아리아를 잠시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잽싸게 나간 세바스찬, 헤르베트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아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서 있을 거지? 저기에 앉아서 기다린다면 조금 있다가 시녀가 다과를 들고올테니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 하지않았나?"

"아, 아... 네!"


헤르베트의 말에 얌전히 티테이블에 다소곳이 앉아서 두 손을 꼼지락대며 어색함을 견디던 아리아는 상정외의 상황에 머리가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시녀가 가져다 준 차와 과자들을 먹으며 기다렸다.


"기다렸군. 마왕성 내는 조금... 자는건가? 적지에 와서는 태평하기 짝이 없군"

"음냐... 새액... 쌕..."


다과를 비우고 새삼 평온한 얼굴로 티테이블에 엎드려 자는 용사를 바라본 헤르베트는 그녀를 마법으로 자신의 침실에 던져놓고선, 서류를 전달했다.


<><><><><>

아리아는 왠지 낯선 천장과 푹신한 감촉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하아아암... 여긴...?"

"태평하게 잘도 자더군... 잘 잤나?"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용사가 소리쳤다.


"겨... 결투입니다...! 당, 당신을 죽여! 세계의 평화를 되찾을 겁니다...!"

"결투 같은거 귀찮아서 싫은데... 어차피 계속 들러붙겠지. 용사라는 족속들이 그러하니"

"그렇습니다! 어서 결투를!"


"그렇다면 하다못해 마왕성 밖에서 싸우지. 성이 무너지면 짐은 잘 데가 없어진다"

"......네!"


당연히 자신이 이기고 돌아갈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마왕의 말에 껄끄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마왕과 대결 시작 후.



마왕성 밖 연무장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용사는 일합만에 쓰러졌다.


<><><><><>


포로관리실의 릴리트는 갑작스런 마왕의 방문에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게...


"릴리트, 용사 잡아왔다. 이것도 관리하도록"


릴리트는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마왕님. 저는 힘이 부족해서 용사는 도저히 제어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대충 릴리트에게 던져놓고 신경 끄려던 마왕도 마찬가지로 난처한 기색으로 머리를 연신 긁적일 뿐이였다.


"흐음... 그러면 용사는 죽일 수 밖에 없는건가? 마왕성 부서진 만큼은 뽑아먹어야 할텐데..."


릴리트는 조심스레 헤르베트에게 이야기 했다.

"저... 마왕님?"

"왜그러지?"

"그, 혹시 괜찮으시면 용사의 포로관리는 마왕님이 해보시는 것도...?"

"할 줄 모른다. 불가하다"


싫은것도 아니고 할 줄을 몰라 못한다고 한다면 가르치면 되는 문제가 아닌가?


"그러면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저에게 맡겨주세요!"

'용사는 분명 강한 여성이니 마왕님의 반려로써 적합해! 그동안은 여체에 대한 관심조차 없으셨지만 계속해서 접촉을 한다면 혹시 몰라!'


마왕은 현재 본인을 제외하고 반려에 대한 이슈가 한창이였다.





서큐버스에게 포로관리의 '상식'을 주입받아 포로가 된 용사(반려진)에게 포로관리를 빙자한 무지성 꼬시기 프로젝트.


반응이 좋으면... 다음편 써볼지도?



2편 https://arca.live/b/novelchannel/40179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