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그거 그만 하면 안되나?"


먼지가 내려앉은 마룻바닥을 발바닥과 의족으로 번갈아 밟아가며 어슬렁거리던 객점의 주인이 참다못해 불청객을 향해 한마디 내뱉었다.


"음? 나 말인가?"


마치 저와는 상관없는 양 태연하게 되물어오는 불청객을 보니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지만 객점의 주인은 다년간 수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며 다져진 인내심을 십분 발휘하여 한 번 참아넘기기로 했다.


"그래. 자네말일세."


아니, 어쩌면 참아 넘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어린 여자아이 인형 같은 것좀 그만 쓰다듬고 저리 치우면 안되겠냔 말이야."


미친놈을 상대하는건 산전수전 다 겪은 객점의 주인일지라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으하하하하! 미안하오.

이것 참.

이게, 한 10년 된 버릇인데 여전히 가끔 가다 기분이 좋을때면 튀어나온단 말이지."


불청객은 그 강렬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순순히 주인장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다.


그 순순한 태도와 호방한 웃음에 객잔주인 역시 처음 그에게 가졌던 경계심이 조금은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아.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 될 거라는 점괘를 받았지 뭐요.

그래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버릇이 튀어나온 모양이오."


어디서 또 저잣거리의 놈팽이 도인한테 돈푼이나 쥐어주고 헛소리를 듣고 왔나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주인은 자연스럽게 사내의맞은편에 앉아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경험적으로 봤을때 이렇게 기분이 들떠있는 손님들은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면 알아서 재신이 되어주기도 함을 주인은 알고있는 것이다.


"크흠.

이렇게 좋은 날에 술이 없으면 안 되겠지.

주인장 여기서 제일 잘나가는 녀석으로 한 병 부탁하지."


역시나.


자신의 혜안에 무릎을 치면서도 주인은 마음에도 없는 앓는 소리를 하면서 한발 뒤로 물러났다.


"이보게.

그 무슨 경을 칠 소림가.

전 중원에 흉년이 들어 천자께서 곡주를 빗고 판매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것이 채 열흘이 되지 않았거늘.

우리 객잔에는 그런 흉한 물건 없네."


주인이 짐짓 위국의 충신인양 호들갑을 떨며 한발 빼자 사내 역시 짐짓 맞장구를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이쿠. 

그랬소이까?

이것 참.

이해해 주시오.

구주천하 방방곡곡 안 돌아다닌 곳이 없는 몸인지라.

지난 10년간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어 산중의 벽지에 다녀왔다오.

어허이 참.

내 잠시 속세를 비운 사이 그런 참람한 칙령이 내려온 줄 몰랐군."


객잔이 있는 이곳도 꽤나 옹색한 산골이거늘 도대체 이 사내는 얼마나 외진 곳을 다녀온건지.


예상과는 다르게 순순히 체념하려는 사내의 태도를 보며 주인은 몸이 달아올랐다.


이래서야 금주령을 핑계로 덤탱이를 씌워 밀주를 팔아먹으려던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처지였으니.


결국 주인은 사내를 조굼 더 애태우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순순히 자신의 외발을 이끌고는 객잔의 한구석으로 가 바닥의 판자를 들어내 사내가 바라던 것을 꺼내올 수밖에 없었다.






"으하하하!

이것 참.

주인장께서 이 촌부를 위해 무리를 하시는건 아닌가 모르겠소이다."


주인장은 술이 한잔 들어가자 더욱 기분이 들떠서는 이제는 파안대소를 하는 지경에 이른 사내외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었다.


천자의 지엄한 칙령이 내려와 이름난 주도가들이 줄줄이 현판을 내리고 저잣거리에 취객은 커녕 술병 하나라도 보이면 경을 치는 시국이라지만 알게 뭔가.


지엄하신 천자의 명령도 이런 궁벽한 산골마을까지는 닿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객잔의 주인이 이런 곳에 터를 잡은것도 바깥세상과 통하는 줄이라고는 매달 한 번 오는 보부상이 전부인 이 마을의 위치가 마음에 들어서 아니었던가.


"크으! 좋구만.

나랏님께서는 이 좋은걸 어찌 하지말고 살라고 그런 명을 내리셨단 말임가."


거나하기 술이 들어간 사내의 입에서 슬슬 위험한 발언이 나올락말락 했지만 역시나 주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목소리를 높여 사내의 열변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게 다!

아랫것들은 입을 꽉 틀어막아 놓고!

저 높으신 분들만 몰래몰래 좋은걸 즐기겠다는 심보 아니겠는가!"


"듣고 보니 주인장 말에 일리가 있구려!

이리 아랫것들은 몰래몰래 쥐새끼마냥 술을 홀짝일때 저 높으신 분들은 지금도 어디 기루에서 양손에 꽃을 쥐고 귀한 술을 마시고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이 사내, 어쩌면 첫인상이랑은 다르게 제법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객잔의 주인은 얼큰하게 취해 몽롱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사내에 다한 평가를 수정했다.





"그러니까아.......

너무 달콤한 것에 취해서는 안된다.......그런 말일세."


"이를테면?"


"응? 이를테면?

글쎄.......

일단은 여기 우리가 마시고 있는 이 녀석이 있겠고."


객잔 주인은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들어올려 보였다.


술잔을 쥐는 주인의 손가락은 약지와 소지가 첫마디에서 잘려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술잔을 쥐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 그리고 양귀비가 있지."


"양귀비?"


"음? 자네 그것도 몰랐는가?

양귀비 씨앗을 잘 말려 가루를 낸 다음 불에 태워 그 연기를 마시면 그 즉시 서왕모께서 계시는 도화원 구경을 갈 수 있다, 그 말이네."


"허어....

이 촌부는 그 또한 처음 듣는 이야기구려."


이 사내는 구주천하를 유람했다면서 도대체 아는것이 뭔지.


주인은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지만 이제는 이 순박한 사내가 조금 마음에 들었기에 친히 일생의 교훈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행여나 꿈에서라도 양귀비를 할 생각은 말게."


"아니, 어째서요?

나도 도화원 구경이나 한번 해 봅시다. 주인장."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내인지.


"내가 아까 말했지않나.

달콤한 것에 취해서는 안된다고."


술 한 잔을 다시 입안에 털어넣은 객잔 주인이 이제는 거의 탁자에 고개를 파묻을락 말락 한 자세로 웅얼거렸다.


"양귀비느은....

중독성이란 것이 너무 강해서 말일세....

한 번 맛본 사람은 반드시 더시 찾게 된단 말이지이...?

그것이 제 명줄을 갉아먹고 있는 줄도 모르고 금은보화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는....

제발 한 주머니만 팔아달라고 사정 사정을 한단 말이야....

그렇게 한 번... 두 번... 그 짓을 반복하다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도 아니란 거야.

몸뚱이는 여기 있는데!

정신은 이미 저승으로 가 버렸다고!"


말을 마친 주인이 사내를 돌아보자 사내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주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술친구의 자세가 바로 된 놈이구만.


주인은 사내에 대한 평가를 다시 고쳤다.


"주인장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 왔나보오?"


"으응? 그런 사람들?"


"양귀비에 빠져 인생을 망친 사람들 말이오."


"아아, 난 또 뭐라고.

많이 봐왔냐고?"


주인은 다시금 비어있는 술잔에 술을 따랐다.


"질리도록 많이 봐왔지."


그건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러고보니 저 사내와 술을 마시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자신의 얘기만 늘어놓았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은 이제 슬슬 대화의 주체를 바꾸기로 했다.


"이 사람아.

언제까지 나만 떠들고 있게 할 건가?

자네 이야기도 좀 해보지 그래."


"음? 나 말이오?"


"그래.

지금까지 내 이야기만 했잖은가."


갹잔 주인의 투덜거림에 사내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 동작을 무언의 동의로 받아들인 주인이 사내가 객잔이 들어온 직후 지금껏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아까 자네가 쓰다듬던 그 인형.

그건 도대체 뭔가?"


사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이내 한쪽 구석으로 치워두었던 인형을 들고서는 자리로 돌아왔다.


"이름은 애월이오.

어떻소.

이쁘지 않소?"


"이쁘다고?

그 인형이?"


주인은 술자리를 시작한 이후 계속해서 올라가던 사내에 대한 신뢰도가 다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사내가 꺼낸 인형은 빈말로라도 좋은 솜씨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어서 조악한 모양새가 기괴한데다가 얼마나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는지 곳곳이 헤져 너덜너덜했다.


사내는 객잔 주인이 그 인형을 보고 어떻게 반응하던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애월이는 낙양의 유명한 기루의 기녀였다오.

아, 오해하진 마시오.

기루가 유명했던거지 애월이는 별로 유명하진 못했소."


숫제 인형한테 이름을 붙이더니 이제는 사연까지 붙여서 가지고 노는 건가.


사내에 대한 평가는 이제 그가 처음 객잔이 들어왔을 때보다도 더 떨어지는 중이었다.


"뭐. 사실 인기있는 기녀였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건 애월이와 내가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는 거지."


얼씨구.


"우리는 행복했다오.

무명의 기녀와 기루의 문지기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저 무림의 오룡사봉도 부럽지 않았지.

그라,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오."


일순 사내의 븐위기가 바뀌었다.


"그 날?"


"그렇소. 그 날."


멈춰있던 사내의 손이 인형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날.

애월이가 낙양의 어둠을 주름잡던 흑도의 주연에 불려간 그 날."


사내의 손길이 한층 부드럽게 인형을 쓰다듬는다.


"애월이가 그 자리에서 흑도의 간부의 강권에 못이겨 처음으로 아편(양귀비)을 한 그 날."


객잔 주인은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애월이가 흑도놈들의 추잡한 성벽의 노리개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 그 날 말이오."


객잔의 주인은 완전히 만취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다 이내 의수와 다리가 꼬여 바닥에 널부러지고 말았다.


"참으로 얄궂은 일이지.

낙양의 어둠을 주름잡던 흑도의 간부가 반병신이 되어 이런 산골에 쳐박혀 허름한 객잔이나 하고 있다니."


"너....너...."


인형을 쓰다듬는 사내의 손길이 멈췄다.


그 부드러운 손길은 이제 인형의 입으로 향하더니 곧바로 목구멍에 들어가 무언가를 끄집어낸다.


파르라니 날이 선 비수.


"주인장. 이야기 잘 들었소.

달콤한 것들을 멀리하라니.

실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였소이다."


"사....살....제발...."


"그런데 가장 달콤한 하나가  빠졌소, 주인장.

그게 뭔지 아시오?"


사내가 파르라니 웃는다.


"복수(復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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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수미상관으로 마지막에 객잔 주인이 바짓가랑이릉 붙잡고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는 엔딩을 내려고 했는데 뭔가 느낌도 안살고 잠도 오고 해서 끝냄.


아카라이브 4천자 개 기네.


노벨피아에서 쓸땐 이렇게 안길었던거 같은데.


내 소설 안쓰고 새벽에 이거 쓰고 있는 내가 ㄹ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