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타오른다, 피처럼 물들어간다,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그녀는 창가에 걸터앉아 창밖의 노을빛을 받으며 그저 해사하게 웃고있었다.


갈색의 머릿결을 바람에 나부끼며 가련하게 웃고있는 모습이 한폭의 명화가 따로 없다.


"벗어나려 해봐도 소용없어요. 시엔. 당신은 여기서 못벗어날거야."

"도대체가... 왜... 왜 그러시는 겁니까... 아가씨!"


시엔은 자신을 강제로 이 방에 가둬놓은 한 때 내가 모시던 주인 라비에트 에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광적인 집착이 느껴지는 눈빛, 그러면서도 내가 시야닿는 곳에만 있으면 안심된다는 듯이. 그녀는 너무나도 온화한 표정으로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 버리고 가버리려고 했잖아? 다시는 도망갈 엄두도 못내게 해줄게..."


퇴직계 낸게 다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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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늘 일본의 여성향 작품들의 스토리 개요는 뻔하고 뻔했다.

수수한 상의 여자 주인공, 찐따 재질이라 기센 여자 싫어하는 쿨찐 황태자. 대가리가 텅텅 비어도 내 비위 잘 맞추는 여자가 황후가 되어야 하는 병신같은 스토리.


근데 소설 사이트에 그런게 올라오니 꼴받아서 유동분신술로 고로시좀 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그 대가리 텅텅 빈 년에게 황태자 뺏기는 악역영애의 시종으로 빙의 당해버린 것이다.


어차피 스토리 뻔한데다 모시는 영애님 취향도 뻔해서 참 알기 쉬워 보필하기 참 편했다.


어느 날이었다.


"아아, 카일님... 어째서 그분은 날 안 돌아봐주시는 걸까..."

라비에트가 계속되는 황태자의 거절에 설움이 북받쳐 훌쩍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도 참 불쌍했다. 평생을 황태자비가 되기위해 길러졌는데.


정작 황태자놈은 레디메이드 조강지처 버리고 꼴통영애한테 가버리는 꼴이니... 내가 라비에트 였어도 꼴받아서 대판 엎었을 것이다.


"저, 아가씨... 한가지 직언 올려도 되겠습니까?"

"흑... 뭔데요?"


황태자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바탕으로 그를 사로잡을 계획을 알려주었다. 내가 바로 큐피드요, 공략집이라 불러다오.


"......어쨌든 요약하자면 황태자님은 보기와는 다르게 심약하셔서, 아가씨처럼 화려한 외모 보면 위기감 느끼고 불편해서 피하신다는 겁니다."


그녀가 생각보다 나의 그럴싸한 예측에 눈을 크게 뜨고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가요...? 듣고보니 그럴싸 하네요... 어차피 더 이상 실패해도 어쩔 도리도 없는거 같고... 그러면요?"

"아가씨의 취향과 정 반대되는 옷으로 한번 제가 골라봅죠!"


출세길은 따놓은 당상이였다.


"아가씨, 명심해 주십시오! 자존심 쌘 말투 금지! 황태자가 대가리 박살난 소리해도 잠자코 웃어주기! 황태자는 뭐다?"

"여성을 리드할 줄도 모르면서. 리드는 하고싶으니 조신하고 소극적인 여자를 좋아할 정도로 심약하다!"

"좋습니다. 이제 황태자 마음도 돌려지나 실전에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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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붙어다닌지 수개월이 지났다.

황태자와의 관계도 나아지고 그녀의 기분도 나날이 좋아졌다.


악녀소리는 커녕 손바닥 뒤집듯 멍청한 척만 해도 그녀를 칭송하고 떠받드는 호1감 역전세계... 가슴이 옹졸해졌다.


"잘됐습니다! 이대로만 가면 황태자비의 자리는 따놓은 당상!"


힘찬 목소리로 작전모의를 짜던 그때 라비에트는 물색의 수수한 드레스를 입은 채 머리를 싸매며 말했다.


"아아... 됐어요! 다 필요없어!, 저런 멍청한 녀석 제가 왜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무슨 문제가 있으셨습니까?"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인상을 팍 구기며 그녀가 짓씹듯 말했다.


"허구한 날 얼토당토 않은 국가재정 말아먹을 공약만 남발하고, 제가 싫어하는 행동만 평생 해서 저 머리 빈 놈 애까지 낳아서 기를 생각하니 치가 떨려요...!"


그녀의 현타가 씨게 온 모양이였다.


"그래도 노력한 것이 있지않습니까?"

"다 필요없어요! 황태자비 때려칠 거예요!"


그녀는 황태자비 후보 사퇴선언 후 평소대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젠 혼처 어디로 알아볼 예정이십니까?"

"흐응... 저랑 잘 맞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녀는 은근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음... 아가씨는 저 같은 사람이랑 잘맞으시니까... 알폰스 영식은 어떠십니까?"

"싫어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단칼에 말 나오자 마자 거절.


그 이후에도 거론되는 후보들 모두 모조리 거절의 연속 끝에 지쳐서 말했다.


"아가씨...... 결혼 안 하실 겁니까?"

"흥, 할거예요"

"아니, 그러니까 누구랑요!"


라비에트가 빙긋 웃으며 끈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엔...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평소엔 그리도 눈치가 좋더니..."

"아니, 진짜로 모르겠습니다... 영식중에는 다 찾아본거 같은데요?"


이렇게 능력 의심받으면 나도 서운한거 있는 남자다. 억울했다.


"하아... 어찌 이럴 때만 눈치가 이리도 없을까..."


그녀가 포기의 한숨을 쉬고는 힌트를 줬다.


"날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죠?"

"저 말고 잘 아는 사람 없지 않습니까?"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지었다.


"내 성격을 긍정해주던 사람은 누구죠?"

"아가씨 같은 진취적 성격... 다들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아, 전 예외입니다? 멍청한게 더 싫거든요"


그녀가 환한 미소를 띄웠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시엔, 당신의 작위는?"

"저 가신이라서 명예 남...... 예?! 에이 설마... 아니죠?"


그녀가 마른 입술을 햝았다.


"남편감 눈 앞에 있네요♡"

"어어? 그... 아가씨 착각하신거 같은데 그거, 사랑아닙니다?"

"제가 사랑과 호감을 착각할 만큼 어리석어 보였나요? 실망이네요"

"그렇... 죠? 착각하실리 없죠?"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렀다.

쟤 아버지한테 맞아죽지나 않으면 인생 훌륭하게 산 걸거다.


"그으... 그간 감사했습니다?"

"어라? 왜 작별 인사처럼 들리는 거 같죠?"

"하, 하하하! 착, 착각입니다!"


위기를 모면하려고 대충 둘러 댄 후 퇴근하는 길에 항상 자켓 안감 주머니에서 품속에 넣고다녔던 퇴직계를 제출하고 집으로 튄다! 오늘 폭탄선언 듣고 오직 그 생각 뿐이었다.


퇴직금만 받아도 먹고 살만큼은 나올거다.


물론 인생계획은 누구나 있다.

쳐 맞기 전 까지는.


"억!"


-퍽!

백작가를 나서는 길에 누군가에게 뒷목 맞고 쓰러졌다.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말.


"...망 가는건 ...납 할 수 없어요♡"


맞다 쟤 소드 익스퍼트였지...

난... 마나연공법 조차 모른다...


'라인... 잘못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