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로운 침실, 그곳에서는 알몸의 남녀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서로의 몸에는 격렬한 정사의 흔적을 반증하듯. 온몸을 끈적하게 적신 땀과 체액으로 범벅이였다.


그중의 한 사람은 나였고.


내 옆에는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꽃같이 아름다운 적발의 여성이 제 팔뚝을 끌어안고 내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듯 유심히 보고 있었다.


“…멜리사?”

“응, 내 남편이 갑자기 나를 왜 부르실까아?”


꿀이 흘러내리듯 달콤한 눈빛을 한채 나의 팔을 꼬옥 끌어안은 그녀는 황송하게도 나의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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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군필 평범한 남자. 반시혁.


그것이 나였다.


대학생활 잠깐하다 나라의 부르심 받아 가고 전역하니 복학생 아저씨인 나는.


군대 생활관에서 할 게 없어 후임에게 추천받은 웹소설좀 읽다보니, 빠져들어 이것 저것 다 보다보니 전역하고 보니 어느새 로판 누렁이가 되어있었다.


그러던 와중 여성 홀몸으로써는 후작위를 계승받지 못하는 법이 있어. 결혼 후 악녀가 아이를 배고 남편을 살해하는 내용을 보고 댓글창은 악녀언니의 걸크러쉬를 칭송하기 바빴지만.


나는 이루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이용권을 환불하고 하차했을 뿐이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잠이나 자자고 누워 자다보니.

빙의가 되어버릴 줄은 몰랐지.


자고 일어났더니 영 모를 곳에 와버렸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어딘지 모를 곳에 앉아있었고. 그곳은 무척이나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한가득한 곳이였다.


마치 귀족의 저택처럼.


회빙환이 유행하길래 나도 빙의하고 싶다고 외치곤 했지만 막상 빙의하니 기분이 참 뭣같았다.


“씨발…”


혼자만의 방에서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꽤나 훌륭하기 그지없었다.


금발 벽안이 조화로운 이목구비와 합쳐져 백마탄 왕자님이 따로없다.


고급스러운 정장은 속에 근육이 알차게 들어있는 것인지 딱 보기에도 머슬핏.


자신의 몸에 없던 자존감도 찾아지던 찰나.


누군가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떤 차가운 인상을 한 금발의 미남자가 나를 보고 데미안이라 불렀다.


“응? 어… 저요?”


그는 쯧 하고 멍청하게 대답한 나를 흘기더니 말했다.


“로즈윈 영애와 오늘 혼약을 치루어야 하거늘 어찌 그리 얼이 나간 것 처럼 굴고있느냐. 내 아들로써 부끄럼 없도록 처신하란 말이다.”


'로즈윈… 로즈윈? 설마…'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게 맞는지 그에게 황급히 물어봐야했다.


“아, 아버지…? 저 혹시 하나만 여쭈어봐도 될까요?”


귀찮은 것을 보는 표정. 아들로는 생각조차 안하는 저 인간은 가문의 명예에 미친 망령이나 다를바가 없는 인간일거라 짐작했다.


“무엇이냐.”

“혹시 제가 결혼할 사람이 멜리사 로즈윈 영애가 맞나요? ”


무얼 당연한 것을 묻고있느냐는 표정.

맞구나… 그래, 맞았어. 생각해보면 이 정장은 결혼식용 정장이었다.


“결혼하기 싫다고 그리 노래 부르더니 이젠 현실조차 까먹었느냐? 비록 얼굴조차 이곳에서 처음 마주하겠지만 너도 계집질은 그만하고 이제 가문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살거라.”

“아, 네…”


비록 욕을 먹긴 했지만. 주요한 부부관계의 단서를 얻었다. 얼굴조차 마주한 적 없는 후작영애와 계집질을 사랑하는 망나니(추정)의 원래 몸 주인.


소설 속 악녀의 약혼자라니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였다.

특별히 어디 소설처럼 그녀를 연민하는 것도.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편 살해의 동기에 관해서는 심리가 이미 까발려진 상황이라 대강의 인물 상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였다.


그렇게 도살장 소 끌려가듯 결혼식에 들어가 마주한 그녀는.


아름다웠다.


장미같은 사람이였다. 화려한 이목구비에 치켜올라간 눈매는 앙칼진 고양이와도 같았고.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고결한 느낌마저 들게했다.


밖에서는 주례가 뭐라뭐라 지껄여대고 있지만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녀만이 눈에 들어올 뿐.


-신랑, 신부 입장!


“……”


그녀가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해요? 그쪽도 마음에 안드는 결혼인건 알지만. 그래도 입장은 해야죠!”

“아, 죄송합니다…”


다행히도 본래의 바람둥이 몸뚱아리가 기억하는 듯 그녀가 왼손을 내밀자 몸이 저절로 그녀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를 하며 단상으로 걸어나갔다.


이 결혼이 잘 될리가 없다는 씁쓸함을 가슴 한켠에 품은채 우리의 결혼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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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윈 후작가의 데릴사위가 되어 데려와진 나는 공식적으로 데미안 로즈윈이 되었다.


후작가의 부부의 방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범한 미적기준을 가진 내가 갑작스레 그녀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봤을 때의 행동은 뻔하지 않겠는가?


맞다. 대가리는 DDOS맞은 서버마냥 돌아가지도 않고 하는 짓은 찐따가 따로 없었다.


“으, 아아… 저, 그게… 로즈윈, 아니 멜리사씨…?”

“뭐죠? 아까부터 제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정략혼이라 물론 싫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그녀는 기분이 상한 듯 눈을 흘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다, 다릅니다… 그게, 멜리사씨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셨겠지만… 너무, 아름다우셔서…”


부끄러움에 몸둘바를 몰라 얼굴을 붉히고 다시 그녀의 얼굴에서 애써 시선을 떼어낸다.


그 말을 하는 주체가 애매하게 생긴 남자였다면 모를까. 이 몸도 어디가서 얼굴천재 소리는 들을만하기에.


허, 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 짓는 그녀였지만 그렇기에 도리어 긍정적인 인상을 남긴 것으로 보였다.


“확실히 반응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 서투름인데…”

“네! 거짓없는 진심입니다…!”

“초상화로 볼 때는 퇴폐적인 느낌이였는데… 어째 실물은 순수하기 그지없네요…”


맥이 빠진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 하지만 그게 옳게 본 것일거다. 실제로 원래 몸 주인은 바람둥이가 맞았으니.


내가 그녀의 얼굴에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릴 성 싶었다.





얼굴 천재에 적응 못해 찐따처럼 구는거 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