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고민이 있는 까닭이였다.


약관에 들어선 지 일년이 다 되어가 혼기가 가득 차다 못해 썩어가기 시작하거늘, 이 산자락에 틀어박혀 수련이나 하고있으니...


"민아? 민아, 어디있느냐?"


바윗단 사이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흑단처럼 매끄럽고 고운 긴 머리를 틀어올린 여인이 걸어왔다.


남궁연. 검후라는 드높은 명성을 자랑하는 여걸중의 여걸. 스승으로 모셔가려 이곳 저곳에서 난리인 이 미인은 내 스승이였다.


객관적으로 스승의 위명이 대단하고 고강한 무공을 가진 것은 맞지만.


"하... 스승님, 이 불초 제자가 한 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녀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쉬는 시간은 끝났지 않았더냐? 뭐 좋다. 질문해보거라"


그녀의 응답에 소민은 냉큼 바닥에 검을 던지며 담담히 선언했다.


"저 스승님 제자 때려칠렵니다."


늘 때려치고 싶다. 때려치고 싶다, 노래를 불렀거늘 어찌하여 놀라는 지 의문이였지만.


그녀는 마치 예기치도 못한 충격선언을 들은 것 마냥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 어째서 여의 제자를... 그만둔다는 말이더냐...?"


달달 떨리는 입술과 목소리는 마치 연인의 이별선언이라도 들은 양 퍽 비통하고 서글픔마저 느껴졌지만.


이제는 제 알 바가 아니었다.


"이 제자 나이가 어찌되는지 기억하실렵니까?"

"그야 약관이지 않느냐?"


왜 그런 것 따위가 관계가 있냐는 듯한 그녀의 태도는 더욱 더 내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예, 그렇습니다. 약관입죠. 제 나이가 지금 혼인 적령기를 지나다 못해 이제는 늙다리 총각 소리 듣기 일보직전이란 말 입니다!"


나의 비통한 외침을 들어도 그녀는 하등 문제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할 뿐이었다.


"그까짓게 뭐가 대수라고 그리 유난이느냐? 그리고, 의외로 인연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스승님...... 제가 어릴 적 부터 함께 지낸지가 10년입니다, 10년. 그간 본 여성은 스승님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산짐승으로도 치면 암토끼, 암여우 등도 손에 꼽을 수는 있겠군요. 제자보고 그냥 늙어죽으란 소리입니까?"

"그, 그렇지 않단다... 여는... 여는..."


침울한 그녀의 얼굴을 보면 내 가슴이 많이 아프지만 끊어내야 했다.


10년간 산 속 수련에서 그녀의 반로환동한 외모는 싱그러운 처녀와도 같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절색을 자랑했다.


어디서 구해온 지도 모를 장어와 전복, 웅담까지 활력을 준다고 이름 난 식재들을 매일같이 먹여대는 제자 사랑은 좋았다.


좋았지만...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젓가락으로 떠먹여 주기는 좀 아니지...'


항상 얼굴을 붉히며 입안으로 전복이나 그런것 따위를 먹여주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갓 혼인한 신혼의 새색시가 이렇지 않을까 절로 상상하고.


때때로 목욕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의 아니게 목도할 때면 군침이 절로 삼켜지는 백옥같은 피부와 농염한 몸매에, 몽정마저도 그녀가 등장하니 미칠 노릇이였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버티냐고...'


"그런고로 이 불초 제자는 속세로 돌아가 새색시 엉덩이 두드리고 살렵니다! 잘 있으시길!"


등돌리고 떠나려던 그때였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것은 필시 점혈을 당한 것 이리라.


그렇다면 누구? 애초에 화경의 전설적인 여걸이 눈 앞에 있는데 누가 목숨을 걸고 자신의 혈도를 상처없이 눈 깜짝할 새에 점혈하겠는가.


애초에 나도 강호에선 어디 가선 꿀리지 않을 절정 최상경의 고수였다.


그런 내가 내릴 수 있는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남궁연, 그녀다. 어디서 갑자기 신선이라도 내려오지 않는 한은 이곳에서 범인은 그녀밖에 없었다.


'대체 왜 갑자기...?'


의문을 품고 남궁연에게 혈도를 제압당해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굴려 그녀에게 물었다.


"크으윽... 스, 승님... 이, 게... 무슨..."


털썩 하고 기혈이 막혀 엎어진 나에게 남궁연이 다가왔다.


어쩐지 환한 미소를 띄며.


"잘 되었구나 민아. 스승으로써 차마 제자를 겁박하여 혼인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그... 게 무, 슨...?"


오랫동안 앓던 이를 뺀 것 마냥 퍽이나 시원스런 표정을 지으며 남궁연이 말했다.


"하문하지. 민아, 너는 오늘부로 내 제자를 그만둔다 하였다. 맞느냐?"

"그...렇 습니다..."


"오늘부터는 내 서방님 이구나♡"


몸을 점혈당해 움직일 수 없는 나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배부른 사자와도 같은 만족스런 포식자의 눈을, 능소화 처럼 붉게 빛나는 입술이 말라 적시는 혀를,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느긋하게 걸어오는 그녀의 두 다리.


그녀의 발목에는 한 줄기의 물이 흐른 자국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