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마와 죄악의 하렘





1.

나는 아직도 누나의 유언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마지막 순간에 그런 말을 했는지.
여태까지, 어쩌면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16호,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누나의 유언을 떠올리고 있었어.”


“뭐라고 했는데?”


“몰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지금 몇 시더라, 슬슬 배가 고팠다.

“점심 먹으러 안 갈 거야?”


“저기, 왜 사람은 먹어야만 하는 걸까?”


“안 먹으면 죽으니까? 그래서 먹으러 갈 거야, 말 거야?”

죽는 건 싫다. 적어도 아직 죽고 싶진 않았다.
나는 8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원, 너 진짜 이상한 거 알아?”

“알고 있어.”


“바꿀 생각은 없고?”


“바뀌지 못하니까 이렇게 사는 거야.”


8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저걸 ‘상관없어’라고 이해했다.
그가 먼저 앞서 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나와 같은 처지인― 종마들이 먼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남자였고, 목에는 얇은 사슬을 채워졌다.옷도 모두 똑같았다. 

위아래가 붙어있는 하늘색 펑퍼짐한 옷이다.

“켁, 오늘도 강낭콩 스프인가. 이렇게 먹어서 일을 하겠어?”


“우린 딱히 아무 일도 안 하잖아.”


“안하긴! 운동도 하고 이것저것 하잖아.”


“그걸 일이라고 부르긴 힘들다고 생각해.”


우린 각자 식사를 배급받은 뒤,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8호는 숟가락으로 수프를 떠서 입에 넣더니, 곧장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제기랄,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우리 차례가 될 때까지.”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고!”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화가 난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화낼 때 어떻게 하라고 했지?나는 심호흡을 한 뒤, 얼굴 근육에 힘을 줬다.

“뭐야, 왜 웃어?”


“네 기분이 나빠 보여서.”


“아니, 그거 진짜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마.”

내 웃는 표정이 싫은 건가, 나는 근육에 힘을 풀었다.
8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건 이해해. 그건 이해한다고…….”

“그런데?”


“그럼 빨리 여자들이랑 하게 해주던가, 아니면 뭐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말이라도 하던가!”

8호가 다시 스프를 퍼먹었다.
나도 거기 따라 스프를 먹었다.
맛은 짭짤하고 식감은 끈적거렸다.

“16호, 너는 화도 안 나?”

“안 나.”


“그래? 난 지금 열불이 뻗쳐서 짜증나 죽겠어.”


8호가 미간을 구겼다. 그의 말대로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

“종마라는 게 이런 건 줄 몰랐어, 젠장.”


“나도 몰랐어.”


“넌 숫자 맞추려고 끌려온 거지? 불쌍한 놈.”

“난 불쌍하지 않아. 밥도 공짜로 주니까.”


나는 단숨에 스프를 들이마셨다.
식사는 끝났다. 이제 저녁 식사 전까지 할 일도 없었다.

“전원, 주목!”


그때였다.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관리인들이 식당에 들어와 오와 열을 맞춰 섰다.

“지금부터 번호 순서대로 소장님과 면담을 할 것이다. 식사를 중단하고 지금 당장 따라오도록!”

“뭐야, 아직 먹고 있었는데.”


“거 여자는 언제 붙여주는 거요?”

“조용히! 입 다물고 순서를 지켜라!”

스프를 한번에 먹어치우길 잘했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관리인 앞에 줄을 섰다.
그나저나 이렇게 한 번에 호출한 적은 없었는데.
드디어 우리가 일을 하게 되는 건가?

“출발!”


우리는 관리인을 따라 긴 복도를 지나갔다.
나무 바닥은 걸을 때마다 끼익끼익 소리를 냈고 바깥의 날씨는 화창했다. 

창문 너머로 정원이 보였다, 정원에는 모래와 바위가 있었고 모래 위에 선을 그어 무슨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지!”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우린 본관에 도착했다.
여긴 첫날을 제외하면 처음 와본 곳이었다.
나무에 종이를 바른 커다란 문이 있었고, 양옆엔 창을 든 여자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1호, 입장! 들어가서 예의를 지키도록!”


“네이, 그럽죠.”


1호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음, 저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설마 그 여자랑 하게 되는 건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시끄럽다! 잡담은 금지다!”


관리인이 호통치자 쑥덕거리던 종마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1호가 들어가고 1분도 지나지 않아, 그가 도로 문을 열고 나왔다.

“뭐야, 씨. 이상한 질문이나 하고.”


“용무가 끝난 종마는 숙소로 복귀한다, 실시!”


“실시.”


1호가 우리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왜 이리 빨리 나온 거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뒤로 2호, 3호― 순서대로 종마들이 들어갔다.
대부분은 1분, 혹은 3분 만에 나왔는데 다들 표정이 묘했다. 나는 그 표정을 ‘이게 대체 뭐야’
라는 표정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16호, 네가 마지막이다.”


“네.”


“들어가라, 예의범절을 지키도록.”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나는 새콤달콤한 꽃냄새를 맡았다.

방 가운데에는 커다란 침대가 있었고, 그 주위는 옷이나 서류, 용도 모를 잡동사니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걸 제외하면 크고 멋진 방이었다.


“네가 마지막이더냐?”


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고 개인적으론 알지 못했다.
번식장의 주인이자 5명의 죄악의 소녀 중 한 명.

“내 이름은 시로네, 너의 이름은 무엇이더냐?”


“16호입니다.”


“본명은?”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시로네의 왼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호기심, 혹은 흥미로움의 표시다.

“당신은 절 16호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래, 16호. 내가 너한테 질문을 하나 하겠다.”


그녀가 검지를 들었다.

“딱 하나, 뭐든지 가질 수 있다면 뭘 가지고 싶으냐?”


“저는.”


내가 줄곧 가지고 싶었던 것.
그 질문의 답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마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마음? 꼭 마음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 같은 대답이구나.”

“그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마음이라 부를 게 없습니다.”


너는 텅 비어있어.
이게, 누나의 유언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가지고 싶습니다.”


“…….”

그녀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호기심인가, 아니면 적개심인가. 애매하다.


그러는 동안 나도 그녀를 관찰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머리에 커다란 여우귀다.
하얗고 뾰족했다. 반면 눈썹은 둥글둥글한 모양새였고, 눈과 눈동자는 컸다. 

나이는 10대 중반 정도로 어려 보였지만 그녀는 벌써 스무 살을 넘겼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내가 널 부른 이유를 알겠느냐?”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주에 대해선 알고 있느냐?”


저주. 나는 저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게도 그 저주가 걸려있기 때문이었다.

“약 22년 전, 저주의 악마들이 이 세상을 덮쳤다.”

시로네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저주받았다. 세상은 멸망 직전에 몰렸고― 

사실, 지금도 천천히 멸망하는 중이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주의 악마가, 내 몸에 봉인되어있다.”

시로네가 상의를 옆으로 거두자, 배에 있던 문신이 드러났다.
색은 은색이었고, 크기는 손바닥만 했다.

“내게 봉인된 악마는 나태와 비애의 악마, 페그리치아. 의지와 행복을 빼앗는 악마지.”

그녀가 도로 옷을 입었다.

“이 몸은, 이 악마를 죽일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이걸 듣고도 놀라지 않다니, 허어.”


아, 놀라야 하는 타이밍이었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양손을 위로 올렸다.

“와, 정말 놀랍습니다.”

“마음이 없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구나.”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 세상에 흩뿌려진 저주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바로 악마를 죽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않았습니까?”

“불가능했지. 그래, 지금까진 말이다.”


시로네가 내 앞에 섰다.
신장 차이 때문에 내가 그녀를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됐다. 혹시 이건 예의 없는 짓일까?

“허나, 이 몸이 방법을 찾았느니라.”


“아, 축하드립니다.”

나는 손뼉을 쳤다. 그러자 그녀가 혀를 찼다.


“마음에도 없는 축하 받자고 한 말이 아니니라.
하여튼 문제는, 이 방법을 쓰려면 조력자가 필요한데 이 몸은 널 그 조력자로 삼고자 하느니라.”

“그럼 저는 거절하겠습니다. 이제 나가도 됩니까?”


“아니, 그렇게 단칼에 거절한다고?”


“저야 딱히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제 돌아가서 낮잠을 자고 싶다.
악마를 죽이니 어쩌니 하는 그런 어려운 문제는
나랑 상관도 없고, 나로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낮잠을 자는 것이다.

“기, 기다리거라!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아, 네. 근데 저는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건 아직 모를 일이지. 아무튼……너의 그 무심함도 분명 저주의 탓이렷다?”

나는 옷소매를 거둬 오른쪽 손목에 있는 문신을 보여줬다.
저주의 낙인. 태어날 적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거 알고 있느냐?”


“일단 모르겠습니다.”


“악마가 죽으면, 저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을.”


그럼, 내 저주도 풀린다는 말인가?
내게도 ‘마음’이 생긴다, 그런 뜻일까?

“날 도와주거라. 그럼 너에게 마음을 돌려주겠니라.”

“…….”


누나는 말했다.
너는 텅 비어있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살아간다고.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마음을 가진 사람의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마음이 생긴다면.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그렇구나. 그럼 먼저…….”


그때, 시로네가 상의를 열어젖혔다.

“나를, 한 번 안아 보거라.”











사이코패스 주인공이 세상에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 악마를 품고 있는 이종족 여자애들이랑
야스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단지 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