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됐다 이제 어쩌지...?"

사천왕 중 한 명, 백골의 데스컬이 말했다.
회의를 소집한 건 좋았는데, 그 뒤가 진짜 문제였다.

사천왕 중의 한 명, 리치 영감이 용사한테 당했다.

그 사실을 되새기자 뼈만 남은 그의  몸뚱이가 부르르 떨렸다.


"아니, 진짜야? 진짜로 당한 거야, 그 영감탱이?"


서큐버스, 매혹의 카밀라가 말했다.


"아까 확인했는데, 확실히 당했어. 아주 가루로 만들어버리던데."


"용사가 그래도 되는 거야?"


"그 년 또라이라고 내가 말했지! 혼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자, 일단 두 분 모두 진정하시죠.

리빙 아머, 그리디아가 두 사람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잘 마시겠...습니다가 아니잖아 지금!!"


데스컬이 찻잔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동시에 그리디아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지금 제 앞에서 찻잔을 던진 겁니까?"


"어, 아니, 그게."


"제 호의를 무시하다니, 당장 개새끼 뼈다귀로 만들어드리죠."


"아니, 너희끼리 싸우지 말고!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잖아?!"


카밀라의 외침에 그리디아가 멱살을 놓았다.


"또 제 앞에서 찻잔을 던지면, 그땐 칼슘 보충제로 만들어 버릴 테니 그리 알아두시길."


"이게 메이드장 입에서 나올 말이야? 솔직히 말해, 너 메이드 아니지?!"


"어머, 무슨 말씀을. 저는 어엿한 메이드랍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데스컬은 조금도 믿지 못했다.

키가 3미터에 무게는 2톤인 쇳덩이가 메이드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하지만 그에겐 그 사실을 지적할 깡이 없었기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


"자, 일단 상황을 정리해보죠. 사천왕인 리치 영감님이 당했다, 맞습니까?"


"어. 용사가 오함마로 으깨버렸어."


"오함마...? 그거 용사가 써도 되는 물건 맞아?"


"나한테 묻지 마 씨벌."


데스컬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 힘만 센 고릴라년을 용사라 불러도 될지 그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마왕님은? 알고 계셔?"


"아직은 모르셔. 당장은 비밀로 해두자고, 알겠지?"


"그럼 대책을 세워야겠군요. 지금 이 상황에 용사가 여기 쳐들어오면 끝장입니다."


그 말이 옳았다, 사실 마왕의 세력은 아직 너무나도 약했다.

간부는 4명뿐이었고- 그마저도 오늘 아침에 하나가 죽었다.

마왕님은 전력 외, 카밀라도 전투에선 별 도움이 안 되고 실질적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디아와 데스컬뿐이었다.

그리고 확신컨대, 둘이서 한꺼번에 덤벼도 용사한텐 못 이긴다.

"아...그 치매 노인네는 어쩌다 당한 거야?!"


"그게 말이지, 말하기가 좀 그런데."


데스컬이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리치 영감이 혼자 용사를 쓰러트리겠다고 선언하고 나갔거든?"


"영감님이요? 별 일이네요, 그럴 분은 아니셨을 텐데."


"그게 사실 쓰러트리러 간다는 말은 구라고...실제론 용사의 브래지어를 훔치러 간 거였어."


순간 방에 정적이 흘렀다.

카밀라가 이마를 짚었고, 그리디아는 고개를 돌렸다.


"...할 말이 없네."


"치매 걸린 노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답없는 분이셨을 줄이야."


"아무튼, 리치 영감이 용사한테 가서 브래지어를 내놓으라고 소리쳤어.
그 뒤에...에...용사가 오함마로 리치 영감을 박살냈어. 그게 다야."


"자연사네."


"자연사군요."


하지만 리치가 무슨 짓을 하다가 죽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멍청이여도 일단은 사천왕 최강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영감, 내 속옷도 훔친 것 같은데."


카밀라가 말했다.


"가끔 내가 세탁기에 넣어둔 빨래가 사라진다고 생각했는데...그 영감 짓이었나..."


"어? 너도? 야, 나도!"


"뭐어? 아니 너는 뼈다귀인데 무슨 속옷을 입는다고 그래?"


"너 임마 그거 종차별주의야! 스켈레톤은 속옷 입지 말란 법 있어? 으이!?"


"옳은 말씀입니다. 저도 속옷 정도는 입는다고요?"


두 사람이 그리디아를 보았다.

속옷을? 어디에? 왜?

어딜 봐도 속옷을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부위는 없었다.

그야, 그리디아의 몸은 거대한 갑옷이기 때문이었다.


"...뭘 보십니까? 또 맞고 싶으신지요?"


"아니 왜 나한테만 그래! 쟤도 봤는데!?"


"당신 눈깔이 마음에 안 듭니다."


"나 스켈레톤이거든?! 눈깔이 어디 있다고 그래!?"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카밀라가 책상을 탕 치고 일어섰다.


"지금 용사가 공격해오면 우린 끝장이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거야!?"


"아, 그랬지."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런 것들을 사천왕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카밀라는 이 모지리들을 데리고 세계 정복을 해야 할 마왕이 불쌍해졌다.


"그럼...어쩌지?"


"항복할까요?"


"싸우지도 않고 항복을 해? 네가 그러고도 전사냐!"


"저는 메이드입니다만."


"마! 남자가 가오가 있지, 싸우다 죽거나 이겨서 살거나 모르나!"


"...우린 여자인데."


"아무튼!"


데스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항복은 없다, 마지막 한 명까지 싸우다 죽는다! 이상!"


"카밀라 씨, 지금 도망치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나 폴란드로 갈 건데 같이 갈래?"


"아니 벌써 도망칠 생각부터 하지 말고!"


틀렸다, 이것들은 답이 없다.

데스컬은 아직 이 사태를 모르고 있을 마왕이 불쌍해져 눈물이 차올랐다.

물론 눈물샘 따윈 없기에 떨어지는 건 골수뿐이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함정을 파는 거야!"


"함정? 무슨 함정 말씀이신지?"


"아, 왜 그 마왕성 같은 곳 가보면 함정 이것저것 깔아두잖아! 그런 거 말이여!"


"그거라면 마왕님이 다 치워버렸는데?"


아니, 왜?

데스컬의 턱뼈가 바닥에 떨어졌다.


"출퇴근 할 때 자꾸 함정 발동돼서 불편하다고 그래서, 그냥 치웠어."


"마왕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임-!!"


"시끄럽습니다, 아가리 좀 다물어주세요."


플랜 A, 함정 작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했다.

하지만 데스컬은 포기를 모르는 뼈다귀였다.


"그냥 우리 셋이서 동시에 공격하는 건?"


"최악의 대책이네."


"카밀라 씨,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디아가 헛기침을 했다.


"우선 저는 그렇다쳐도, 여기 이 멍청하고 무능한 뼈다귀는 약해빠져서 쓸모가 없답니다."


"뭐야 이 년아?"


"그리고 당신도. 용사는 여자라서 매혹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 맞다. 그랬지 참."


카밀라는 아예 전력 외, 데스컬은 약하고, 그나마 그리디아가 있지만 역부족.

결국 셋이서 공격해봤자 제삿날만 똑같아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플랜 B도 격침. 답이 없었다.


"...진짜 답이 없네..."


"우리 마왕군의 명운도 여기까지란 말인가...!"


"새 고용주를 찾아봐야겠군요. 다음엔 주휴수당을 주는 곳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에이잇! 이게 다 그 멍청한 리치 영감 때문이라고!"


카밀라가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리치 주제에 치매는 걸려서 밤에 배회하질 않나! 속옷을 훔치질 않나! 도움이 안 되잖아, 도움이!"


"거기다 허리 아프다면서 마사지도 자주 받으러 갔지."


"그거 때문에 저희 재정에 타격이 막대했습니다."


그리디아가 계산기를 꺼내들며 말했다.


"우선 데스컬 씨가 막노동으로 벌어들인 돈, 한 달 평균 3백만원."


"그거밖에 안 돼?"


"세금 때문입니다."


"아잇 씨팔! 이 놈의 나라는 왜 이리 세금을 많이 떼!?"


타다닥, 그녀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다음, 카밀라 씨가 인터넷 방송으로 번 돈 1천 1백 32만원."


"뭐어!? 야, 무슨 인터넷 방송으로 돈을 그렇게 벌어!? 그게 말이 돼!?"


"후후, 내 미모에 반한 팬들이 보내준 돈이야."


"참고로 방송상 설정으로 카밀라 씨는 22살입니다."


"무슨 개소리여, 저 년 나이가 벌써 마흔-"


쾅! 데스컬의 머리가 날아가 벽에 박혔다.


"아가리."


"네."


"다음, 제가 부업으로 번 돈이 1백 20만원. 종합 1천 5백만원 상당."


"뭐야, 돈은 제법 있잖아. 우리 사정이 그렇게 빠듯해?"


"우선 지출이...저희가 머물고 있는 이 임시 마왕성의 월세, 마왕님의 개인 지출 비용...
카밀라 씨가 사들인 철탄소년단의 굿즈, 데스컬 씨가 산 오토바이와 보험금...기타 등등..."


타다다닥, 마침내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하여 남는 돈은 약 3천 200원 상당입니다."


"야! 너 내가 굿즈 좀 적당히 사라고 그랬지!?"


"뭐어? 그럼 네가 산 오토바이는 뭔데! 그거 할부만 얼마인 줄 알아!?"


"그건 다아- 쓸모가 있어서 산 거야! 네 굿즈는 어디다 쓰는 건데!?"


"우리 철탄소년단 까면 사형!!"


"아지매 정신 좀 차리소! 아이고 머리야, 아참. 머리 주워와야지."


주섬주섬 데스컬이 벽에 박힌 머리를 빼내, 도로 끼웠다.


"아참, 근데 우리 무슨 얘기하고 있었더라?"


"리치 영감님이 죽어서 저희가 괴멸 위기라는 안건이었습니다."


"씨팔 나도 몰라 이제! 망하든가 말던가, 여기 와서 맨날 털리기나 하는데! 썅!"


용사한테 덤볐다가 몇 번이나 깨졌는지 이젠 셀 수도 없다.

그 때마다 운좋게 겨우겨우 빠져나왔지만, 데스컬은 매번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한 채

퇴각해야만 했다. 오죽하면 마왕이 '넌 이제 나가지 마라.' 라고 하였겠는가.


"씨이버얼...용사 너무 강하잖아...한 손으로 전봇대를 뽑질 않나...그게 무슨 용사야...고릴라지..."


"고릴라도 그 정도로 강하진 않습니다."


"맞아, 비유할 거면 코끼리 정도는...아니, 코끼리보다 강하려나."


하아...세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어쩌지?"


"일단 마왕님한테 보고하자, 또 뭔가 수를 내시겠지."


"하지만 상심이 크시겠군요. 리치 영감님이 당해버렸으니..."


띵동, 그 순간 도어벨 소리가 울렸다.


"뭐야, 너희 다 모여서 뭐해?"


"마, 마왕님! 그게, 실은,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습니다만..."


"거 무슨 재미있는 얘기들을 그리 하셔들,,,? 이 늙은이도 껴주게."


마왕, 김총통이 들고 있던 리치의 머리를 내려놓았다.


"어..."


"뭐야, 리치 영감 죽은 거 아니었어!?"


"오다가 주웠어. 용사한테 덤볐다가 당했다는데, 머리는 어떻게 건진 모양이야."


"이거야 원, 그래도 팬티는 봤으니 후회는,,,없으야,,,!"


머리만 남은 리치가 소리 높여 웃었다.


"그보다 너희 뭐하고 있었어?"


"아니, 그...리치 영감이 당한 줄 알고 대책을..."


"그걸 왜 걱정해? 걔 여기까지 안 와."


"어, 어째서입니까?!"


"그야, 우리가 당하면 걔도 돈을 못 받잖아."


그랬다.

용사 또한 돈을 받고 마왕 세력에 대항하는 입장이었다.

그 말인 즉, 마왕이 사라지면 더 이상 돈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왕과 용사는 서로 합의를 봤다.
마왕은 너무 난리를 치지 않기로, 용사는 마왕성이랑 마왕을 치는 것만은 피하기로.

세간에선 이를 담합이라 부르지만- 모두가 좋은 일이니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럼 우리가 한 걱정은..."


"쓸모없었지. 그보다 영감님, 걔한테 자꾸 속옷 보여달라고 하지 좀 마세요. 성추행이잖아요."


"거,,,아가맘마통 좀 볼 수 있지,,,요즘 것들은 말이여,,,으이,,,!"


"경찰오면 저도 몰라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경찰 오면 꼼짝없이 감방가요, 불법 체류자라서."


""...""


세 사람이 서로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데스컬, 일단 문부터 잠가."


"마왕님, 잠깐 나가계시겠습니까?"


"어, 왜?"


"사천왕끼리 잠깐 대화를 좀 나눠야겠거든."


마왕 김총통이 내쫓기듯 임시 마왕성에서 내쫓겼다.


"야 이 미친 영감탱이야아아아아아-!!"


"뒈져! 이미 뒈졌지만 또 죽어! 세 번 죽어!!"


"손으로 해서 되겠습니까? 자, 여기 프라이팬 받으시죠."


"느아아아아,,,! 이, 이거 노인 학대야아아아아,,,,"


"..."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일까.

김총통은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에라 모르겠다, 지들끼리 알아서 잘 하겠지."


그보다 용사한테 사과하러 가야겠네.

마왕은 그렇게 용사한테 사과하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이런 느낌의 현대 판타지 코미디 일상물을 쓰고 싶었다

근데 이런 장르는 롱런이 힘들어서 힘들 듯

이제 밥먹으러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