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과거의 일이었다.
 
낯선 세계에 떨어져 버리고서 숲속에서 죽어가던 나를, 당신은 구해주었다.
 
단순한 변덕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제껏 보아왔던 당신의 행보를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덕에 나는 이 낯선 세계를 고향으로 삼을 수 있었다.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접고서, 당신의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단 한마디.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이 세계의 말을 배우고.
 
당신의 곁에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었기에, 곁에 있을 수 있도록 검술을 배웠다.
 
당신은 그런 나를 보며, 어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그렇게 말하고서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싶었다.
 
그 미소를 지키고 싶었다.
 
그렇기에, 사람을 죽였다.
 
“오랜 시간이었구나.”
 
그런 당신이 내게 말했다. 등 뒤에 업은 당신의 온기가 조금씩 차가워지는 것을 나는 애써 부정하며 말했다.
 
“예, 오랜 시간이었죠.”
 
스윽, 하고 당신의 손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차디찬 당신의 온기가, 그런 내 부정을 부정했다.
 
찰박찰박, 그럼에도 달린다.
 
아직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당신을 구할 수 있다고 믿고서, 다리를 움직였다.
 
“너를 숲에서 주운 지도... 벌써 이십 년이 지났구나. 제법 나도 늙어버렸어.”
 
그렇지 않았다.
 
당신은 여전히, 처음 보았던 그 날, 그때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빨리 다리를 움직일 뿐이었다.
 
“신음조차도 하지 못하고서, 그저 죽어가던 네가...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마지막이 아니었다.
 
당신은, 결코 여기서 끝나면 안 됐다.
 
“어둡구나...”
 
오늘은 보름달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어둡습니다. 덕분에 들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고함이 들려왔다.
 
저곳이다. 저기에 발자국이 있다.
 
“후후ㅡ”
 
당신이 웃엇다.
 
“어두운 날이다. 그런데 들켜버린 모양이구나. 내 운이 다한 모양이로다.”
 
꼬옥, 하고 그런 당신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러니, 나를 놓거라. 그리고 살아남거라.”
 
그럴 수 없었다.
 
“싫습니다.”
 
“싫다?”
 
“예, 싫습니다.”
 
그런가, 그러한가.
 
당신은 그렇게 중얼이고선ㅡ
 
“하하, 그럼 좋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함께 해다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마지막이라니요.
 
언제나 당당했던 당신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마지막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마이 레이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놈이 여기에 있다! 더러운 마녀도ㅡ”
 
말을 잇는 녀석이 채 석궁을 들어 올리기 전에, 나는 단검을 뽑아 던졌다.
 
내게 마지막 남은 무장이었다. 하지만, 아낄 수도 없었다.
 
푹!
 
미간을 꿰뚫린 녀석이 그대로 쓰러졌다.
 
단검을 회수할 시간도 없이, 나는 최대한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렸다.
 
그런 내게 당신이 물었다.
 
“죽였느냐?”
 
“예, 죽였습니다.”
 
“또 죄를 지었구나.”
 
“예, 지었습니다.”
 
그런가, 하고 당신은 말하고 입을 닫았다. 하아, 하아하고 등 뒤에서 당신이 신음하는 것이 들렸다.
 
한참을, 한참을 그렇게 숨을 죽인 채 신음하던 당신이 입을 열었다.
 
“곧, 나는 죽을 것이다.”
 
당신이 말을 이었다.
 
“그런 나를 위해, 죄를 더할 셈이더냐?”
 
“예, 얼마든지 더할 겁니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욱!
 
등 뒤로부터 날아든 볼트가 옆구리를 꿰뚫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소리에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서 업고 있던 그녀가 맞지 않게 했지만, 나도 볼트를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끄읍.”
 
신음을 삼키고서,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일어설 수가 없었다.
 
독이었다.
 
“...괜찮더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런가.”
 
당신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고 싶기에 배운 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생했다. 정말로... 고생했구나.”
 
이번에야말로 끝이라고 여겼을까, 당신이 그렇게 말하며 내 뺨을 만져왔다.
 
당신을 지킬 수 없었다.
 
그러고 싶기에 배운 검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자식, 마녀가 독화살을 맞았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안 맞았으면 됐지 않소? 그나저나 소문이 사실이였구만. 엄청나게 미인이라더니.”
 
웅웅,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벌써 혼탁해진 소리였지만, 그럼에도 들었다.
 
세 명.
 
“화살 맞은 놈은 죽었나?”
 
“곰도 죽여버리는 독을 발라놨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소?”
 
“그도 그런가. 뭐, 아무튼 목을 잘라두게. 잔당은 모두 두당 골드 한 닢, 그런 계약이었으니.”
 
“예이예이.”
 
철그럭하고, 내게 다가오는 놈에게 나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
 
“그나저나 어차피 사로잡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 데려가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오른쪽으로 뻗은 손에 잡힌 것을, 그대로 휘둘렀다.
 
“꺼윽...!”
 
“녀석이 살아있다! 쏘...”
 
그리고 던졌다.
 
“아븍...”
 
푹, 하고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미친 새끼가...!”
 
석궁.
 
쏘아지는 볼트가 어깨를 관통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있는 힘껏 몸을 내던졌다.
 
“어윽...?!”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시야로, 나는 내게 깔린 놈의 목을 깨물었다.
 
“아악! 이, 이 미친 새...”
 
그리고 뜯어냈다.
 
“끼......”
 
얼굴이 피로 젖어들었다. 뜨겁다.
 
등 뒤에 있는 당신은 차디찬데.
 
“...괜찮, 으십니까?”
 
내가 물었다.
 
한참 뒤에, 당신이 대답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살아있었구나.”
 
안도한 듯, 혹은 슬픈 듯 말해오는 당신이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작별의 키스라도 해줄까 했더만... 살아있었구나.”
 
그런 당신을 보고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늦게 일어날 걸 그랬나.
 
“...하지만, 이제 끝이구나. 그렇지?”
 
“...네.”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풀썩, 하고 내가 쓰러지자. 당신 역시 쓰러졌다.

다시 한참 뒤에, 당신이 말했다.
 
“...살아있느냐?”

내가 대답했다. 

“...네, 아직.”
 
“질기구나.”
 
큭큭, 하고 웃었던 당신이 말했다.
 
“전에 궁금해 했었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었느냐고.”
 
무슨 이야기일까.
 
돌지 않은 머리로 생각했다가, 곧 그것이 당신의 다리가 굳게 된 이유를 말하는 것임을 알았다. 언젠가, 내가 당신 같은 분이 어쩌다 그런 몸이 됐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자세나, 태도, 습관부터가 태생부터가 그러한 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물은 질문이었다.

그때는 당신은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의 당신은 내게 말했다.
 
“내 유모였다.”
 
“...그랬습니까?”

내가 모르는 이였다. 그 말은, 적어도 내가 그녀에게 거둬지기 전에 그녀를 따르던 이였다는 이야기였다.

이십 년을 당신을 쫓아오면서,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당신은 내게 말했다.
 
“아들이 인질로 잡혀 있었다더군. 그녀는 내 유모였으니, 내 젖형제나 다름없는 이였지. 과연,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 뭔가. 그녀가 나를 마음으로 낳았다 한들 태내에 품다 낳은 진짜 자식과 비교할 수 있을까.”
 
“...그렇, 습니까?”
 
“그래, 그렇지. 그래서 죽였다네.”
 
“...그랬, 습니까.”
 
“낳지는 않았으나 날 기른 어미를 죽인 거나 다름 없었다. 죄가 깊은 일을 벌인 게지.”
 
흠, 하고 그렇게 말한 당신이 말했다.
 
“말하지 않는 게냐?”
 
“......네?”
 
“말할 것이 있지 않느냐. 여태껏... 네가 나에게 숨겨왔던 것이. 나 역시 내 비밀을 알려주었잖느냐? 마지막이다. 그렇게 비싸게 굴지 말거라.”
 
그것은.
 
그것은...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걸까.
 
“...저는.”
 
말했다.
 
다른 세계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세계에 오게 된 것을.
 
내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비밀을.
 
“다른 세계라... 대단하구나.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비밀을 숨기고 있었구나.”
 
고얀지고, 하고 당신이 내 뺨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기느라 힘들었겠구나. 괴로웠을 테고. 고향은 어떤 곳이더냐?”
 
“......”
 
“......그런가.”
 
눈이 감겼다.
 
어떻게든 뜨려고 노력해도, 그럴 수 없었다.


당신이 묻는 것에 대답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을 것을. 허나, 마지막이 지나기 전에 나누게 됐으니 다행이로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까지 함께해줘서 고맙구나.”

무언가 입가에 닿는 기분이 들었다.

차갑고,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스한 것이.

그리고,

"......그런가, 그러한가... 마지막에 가서야 알았구나. 그대여, 나는 너를 좋아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것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신의 자비였을지도 몰랐다.
 
내 마지막.
 
결국 독이 몸에 돌아 죽어버리고 마는 나의 마지막.
 
끝끝내,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같이 하겠다는 약속이 깨져버리고 마는 마지막이 기억난 것은, 그야말로 신의 자비라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으니.
 
혹은, 악마의 농간이라거나.
 
이것이 죽기 전의 마지막으로 보는 환상이 아닐까 싶어서 십초를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세어나갔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환상이 아니었다.
 
그런가.
 
그러한가.
 
하필이면 지금 되돌아온 것도, 그런 뜻인가.
 
신의 자비인가.
 
아니면 악마의 농간인가.
 
설령, 나를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존재가 둘 중 그 어떠한 존재라고 한들. 결국 나는 춤을 출 수밖에 없는가.
 
“전하? 무슨 문제가 있으시옵니까?”
 
나를 바라보는 유모의 안색은, 과연 어딘지 모르게 낯빛이 조금, 아주 조금 바래있었다. 과거 나는 저것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여느 때와 같은, 평소의 유모라고만 여겼었다.
 
“레이실라. 나는 당신을 좋아했다. 그러니, 이십 여 년 전 내가 묻지 못했던 질문을 네게 하겠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전하?”
 
그대 역시 귀족의 여식이구나.
 
자신이 모시던 이의 갑작스레 광증이 도진 이와 같이 내뱉은 말을 듣고서도 태연하니. 하긴, 그렇기에 나는 그대를 좋아했다. 그대를 따라 하였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를 신뢰했다. 그렇기에, 나는 독을 마셨다.
 
“내가 이것을 마셔도 네 아들이 살아남지 못한다고 한들. 너는 변함없이 네게 독을 마시게 할 것이더냐?”
 
“...그, 게.”
 
허나, 그대는 단지 귀족의 여식일뿐이었다.
 
단지, 한 명의 가엾은 어머니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아귀였다.

망국의 공주라는 이름으로.

왕가의 마지막 남은 후계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잡아먹은 이였다.


나는 그들에게 희망이었고 등불이었으며 또한 저승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사신이었다.


그들은 죽고자 나를 따랐으니, 실로 그 말이 옳았다.

그렇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만 바라볼 뿐이었다. 

때때로 무언가를 이해시키는 것에는 말보다는 그저 침묵이 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음이라. 나는 다만 침묵을 지키며 레이실라를 바라봤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시온지, 전하...?”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묻는 레이실라의 눈동자에 부정과 의혹이 깃드는 것이 보였다. 내가 한 말이 말도 되지 않는다며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또한, 내가 어째서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의아할 것이다.
 
부정과 의혹.
 
그러한 빛이 채 어떠한 결론으로 굳어져서 스스로의 모양을 갖추기 전에 나는 말을 이었다.
 
“그 말 그대로이다. 나는 네가 준 독을 마신다. 그리고 너는 그러한 내게 죽임을 당한다. 나는 너를 죽이기 전에 묻는다. 어찌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고, 너는 대답한다. 하나뿐인 너의 자식이 인질로 잡혀있노라고. 간단한 이야기다. 그렇지 않느냐, 레이실라?”
 
레이실라의 낯빛이 변해간다. 파랗게 질린다. 이윽고, 그녀의 안색이 새하얗게 되었을 때 말을 더했다.
 
“나는 너를 죽이고서 네 자식을 찾는다. 네가 남긴 자식이다. 나를 배신해가며 살리려고 했던 자식이다. 나는 너를 내 어미와 같이 여겼기에, 내게 독을 마시게 한 것은 너를 죽이는 것으로 끝맺음을 지었음이라. 그렇기에, 나는 같은 어미를 둔 형제의 도리로서 그대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찾았다.”
 
허나, 그대는 단지 이용당했을 뿐인 귀족의 여식일뿐이었다.
 
“죽어있었더구나. 오른쪽의 약지, 그것을 증표로 네게 넘겼더냐?”
 
“아... 아아...”
 
“네 아들은 죽어있었다. 손가락을 자른 피가 채 마르기 전이었노라. 잘라낸 손가락에서 흐른 피가 채 마르기 전일진대, 네 자식은 이미 죽어있었다. 네게 증표로 삼을 손가락을 잘라 보내고서 곧바로 죽임을 당한 거겠지. 그러하니... 지금이라고 한들, 이미 늦었겠지.”
 
이해라는 것은, 때때로 인지를 넘어서서 이루어지기도 하는 법이었다. 갑작스레, 자신이 모시던 공주가, 하물며 때때로 자신을 따라하는 마냥 철없이 어리디 어린 공주가 평소 간단히 즐겨오던 다과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그녀가, 납치된 자신의 아들에 대한 것을 알고.
 
또한, 그러한 그녀가 이미 그 자식이 죽었음을 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작게 떨리는 어깨가, 그 떨림을 멈출 때까지 나는 기다렸다.
 
다만, 기다렸다.
 
“...정녕.”
 
레이실라는 입술을 짓씹으며 나를 올려다본다. 차갑게 식어버린 두 눈은, 도리어 뜨겁게 증오를 불태우는 이의 것이었다. 불태우는 증오로 칼날을 벼려냈기에, 그 칼날을 마음에 품어냈기에, 연료로 삼은 심장이 전부 타버려 차디차게 식어버린 이의 것이었다.

부모를 잃고, 연인을 잃고, 형제를, 자식을 잃어서.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이미 망해버렸던 나라의 사람이었다는 것뿐이어서.

그렇기에, 모든 것을 내던져버렸던 이들이 갖고 있던 이의 것이었다.

심장이 모두 타버려서, 그저 자신이 죽어 누울 곳만을 찾아다니던 이들의 것이었다.

저러한 눈빛을 하게 된 이는, 하나같이 모두 죽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심장이 전부 타들어 가 죽은 자이거늘, 살 수 있을 도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한 이의 것으로, 나를 보던 레이실라가 내게 말했다.
 
“정녕, 그 말씀대로... 제 아이는 이미 죽은 것이옵니까, 전하?”
 
“그러하다. 흉수는 알고 있다. 그대 또한 그러하겠지.”
 
그저 침묵하던 레이실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전하, 전하를 모시온지 십육 년이 흘렀습니다. 요람에 누워 계시는 전하께 머리를 숙이며 충성을 맹세한 그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감히 그 동안 전하를 딸과 같이 여겼사옵니다. 하나, 오늘 저는 제가 그저 그러한 말로 자신을 속여왔음을 깨달았나이다. 딸처럼 여겨왔다던 당신을, 제 자식을 위해 죽이려고 했을 때부터 깨달았나이다.”
 
저 또한, 그저 어머니에 불과했다는 것을.
 
더욱이 고개를 숙이며 레이실라는 말을 이었다.
 
“여기 이곳에서 어미였던 레이실라는 이미 죽어 없어졌사옵니다. 당신을 딸이라 스스로를 속이려 했던 위선자 레이실라 또한 없어졌사옵니다. 다만, 그저 한 명의 사람만이 남았나이다. 이미 제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다만 그저 사람이온즉, 감히 청컨대 전하께 누를 끼치는 것을 허락해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나 또한 다만 사람으로서 대답하니, 그리해도 좋다.”
 
“네, 전하의 자비에 감사드리옵니다. 이만 떠나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레이실라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그런 레이실라를 배웅하지 않은 채, 이미 차갑게 식은 찻잔에 담긴 독을 바닥에 흘려보냈다.
 
천천히, 천천히.
 
흘려보낸 독이, 바닥을 적신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 역시 귀족이어라.”
 
그대가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한들, 태생이 그대는 귀족이였다.
 
귀족의 여식으로 태어나.
 
귀족으로 자랐다.
 
찻잔에 남은 독은, 입술에 발랐다.
 
레이실라가 내게 사용한 독은, 다만 음독했을 때에만 하지가 굳어가는 독이었다. 피부에 조금 닿는 정도로는 약간의 마비만 올 뿐 큰 효과는 없었다.
 
처음부터 흉수는 그러한 독을 내게 사용하라고 레이실라에게 건넨 것일까?
 
하반신이 마비된 공주야, 아무리 재기가 넘친다고 한들 한낱 정략 도구의 가치로도 모자람이 많으니. 왕의 후계로는 턱없이 부족함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게 단지 다리가 굳을 뿐인 독을 탄 것은 어디까지나 레이실라의 의지였을 것이다.
 
아아.
 
그렇다.
 
그렇기에 레이실라. 나는 그대를 죽였음에도 후회했고, 나는 그대가 준 독을 마셨음에도 여전히 그대를 어미로 여겼다.
 
그런 그대여.
 
내 어미가 아닌, 단지 사람일 뿐인 레이실라여.
 
“그대여, 모욕당한 명예와 신뢰는 다만 피로써 갚는 귀족이어라.”
 
콰당, 스스로 무너뜨린 균형에 내가 쓰러지자 곧이어서 밖을 지키고 서 있던 호위의 기사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그들이 바닥에 흐른 독과 쓰러진 나를 보고는 외쳤다.
 
“독이다! 셋째 공주 전하께서 독에 당하셨다!”
 
소란 속에서, 나는 황급히 들것에 실려서 옮겨졌다. 그런 내 소식이 정말이지 금방도 퍼진 모양이라 실려가는 나를 지켜보는 이들 중에 나의 남매들 또한 있었다.
 
그리고, 단지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단지 사람일 뿐인 레이실라가 거기에 있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크프흡...?!”
 
꺄아아아악!
 
비명이 들리는 가운데, 나는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면, 조금 몸을 너무 사린 듯 하였다. 입술에 바른 독이 너무 적어서, 용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는 길은 힘들 듯 싶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십 여 년을 앉은뱅이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다시 그러한 신세가 되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꺼려지는 일이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직접 독을 마셔두는 것이 확실했건만... 하지만, 혹여라도 잘못되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도 그럴 것이 서른하고 일곱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 열하고 여섯을 빼고도 이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내가 끝을 맞이했던 그 날.
 
내가 돌아온 이 날.
 
그 간극은 이십 여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란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는 변함없었다.
 
내년.
 
서른하고 일곱을 사는 동안, 처음으로 연모하게 되었던 나의 마지막 기사를 줍게 되는 날.
 
이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돌이켜 돌아왔어도, 여전히 연모하는 나의 마지막 기사를 줍게 되는 그 날.
 
그 날, 보다 아름답게 있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 누가 대체 나를 이러한 곳으로 돌려보냈는지는 알 수 없을지언정.
 
그를 위해서라면, 춤을 추라면 얼마든지 추겠노라.
 
무얼.
 
명색의 공주였던 몸이다. 춤이라면 추지 못할 것도 없었다.
 
신이여.
 
혹은 악마여.
 
그러니 아무쪼록 나의 춤을 기꺼이 즐겨주길 바란다. 

 
 
 ㅡㅡㅡ 라는 내용으로 회귀한 황녀가 기사 키잡하는 거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