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끔찍하리만치 더운 날이었다


내리쬐는 태양과 덥혀진 공기, 아스팔트에서 미친듯이 올라오는 열기까지.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을 전부 프라이팬으로 만들어서 그 위의 생명체들을 전부 익혀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냥 더운 것도 아니고 존나 덥네."


손에 들린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또 마셔도 가시지 않는 더위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여름은 도대체 언제 사라지는 건지, 사라질 수 없다면 최대한 짧게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일은 없다.


"헬리오스 개새끼. 아니, 요즘은 아폴론인가."


어린 시절에 봤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곱씹으며 태양을 욕한다. 사실 태양이 있기에, 그리고 그 거리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미묘한 위치에 지구가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있는 거라고는 하고 싶지만.


"요즘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데 조금만 태업이라도 해주면 안되려나."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이렇게 찌는 듯한 더위는 너무 싫었다. 땀은 비오듯이 흐르고 음료는 전부 다 마시고 없었다. 이걸 몇 달을 버텨야 겨우 선선한 가을이 온다는 건데 그마저도 태양은 여전히 강렬하게 내리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는 사이에,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미칠듯한 더위에 불쾌지수는 한도 끝도 없이 오르고 있지만 길거리에서 성질내면 경찰서에서 형사님과 쎄쎄쎄하면서 취조를 당하겠지.


조금은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 덕분에 더위가 살짝 가셨으니 오히려 다행인 건가.


"잠시, 말씀 좀 물어도 될까요?"

"아, 예. 혹시 외국인이신가요?"

"외국인...... 네. 외국인이라고 하죠. 제가 길을 찾고 있어서 그런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이거, 도를 믿습니까 각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진짜 외국인이라고 믿을 외모였다. 금발 벽안에 곱슬이라니, 한국인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외모였으니까. 게다가 키도 훤칠하니 큰 남성. 이거 설마...... 에이, 아니겠지.


"시간도 남는데 같이 가 드릴게요. 이상한 말 들리면 바로 뛰쳐나오겠지만."

"하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럴 짓을 할 정도로 무례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시는데요?"

"여기에 뭐 기상 관측대 같은 거 있나요?"

"그건 도대체 왜 찾으시는 건데요. 길 찾아주는 건 몇 번 해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네."

"제가 날씨에 관심이 많은지라."


아, 진짜. 진짜 아닐거라 믿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입조심 제대로 하는 거였는데.


"일단 여기 저기 있는 게 기상 관측대니까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 잘 따라오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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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진짜. 미친듯이 덥네. 그쪽은 덥지도 않아요?"

"원체 더위에 강한지라 괜찮습니다."


눈 앞에 있는 기상 관측대 앞에 도착한 나는 미칠듯한 더위에 그저 숨을 몰아쉴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이 외국인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편안히 있을 뿐이다.


"솔직하게 물어보는데, 그쪽 사람 아니죠?"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이 더위에 멀쩡하면 그게 사람입니까? 괴물이지."

"괴물이라고 하면 좀 상처받는데요. 키메라나 티폰도 아니고."


...... 이쯤되면 그냥 대놓고 물어보라고 밑밥을 까는구나.


"그쪽, 아니. 태양신님."

"......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더 이상 숨길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너무 허술합니다."

"티났나요?"

"애초에 괴물 예시로 티폰을 든 때부터 평범하게 보이진 않았습니다. 외모도 그렇고요. 책에서 묘사된 그대로긴 한데...... 아폴론? 헬리오스?"

"...... 너무 예리하시군요."

"이만한 더위에 멀쩡한 범주를 좁혀보니까 그 둘이 답이더라고요."


추리를 잘하는 척 위장을 해도 솔직히 쫄린다. 대놓고 태양신을 욕했는데 그 태양신이 내 눈 앞에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인간을 마구잡이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이 더 무서운데요."

"제 힘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라면....... 인간의 문명 때문일까요."

"그래도 이 정도로 더우면 조금은 약해질 만 하지 않습니까?"

"신의 힘은 강약을 조절한다로 해결될 사항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습니다. 일단 이름부터 밝히죠. 헬리오스. 아폴론의 선대 태양의 신입니다. 비록 구신이지만 힘은 남아있지요."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목울대가 움직이고 온몸에 긴장이 드리운다. 아폴론보다 더 오래 존재했던 태양신이라니. 하지만 그는 내가 욕했다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나에게 제안을 할 뿐이었다.


"신화가 끝난 이후의 신들의 이야기. 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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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미친듯이 더운 날이라 떠올랐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 떡밥 보고 섞어서 만들어 본 것.


신은 하나만 나오지 않고 여러 신이 나옴. 어느 때는 태양신 아폴로, 어느 때는 최고신 제우스, 어느 때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등등. 한 명만 나오지 않고 한 번에 여러 신이 나올 수도 있음


제우스: 인간, 아니 좆간새끼들이 지들이 바람펴놓고 내 자식이라고 하는 거 꼴받는다니까? 그래도, 헤라? 그냥 그대로 냅둬. 당신이 고생하지 않아도 알아서 파멸할 년놈들이야.

헤라: 당신의 위명에 오물을 뿌리는 추악한 놈들을, 제가 용서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제우스: 인간. 내가 이렇게 잡혀 산다. 그래도 좋은 아내야. 신화에서 나를 욕하더라도 이런 아내 덕분에 참고 지내는 걸 알고 있으라고.


포세이돈: 어우 바다 왜 이렇게 더럽냐. 섬인 줄 알고 봤는데 쓰레기더미네

데메테르: 땅도 지금 개판났어요. 비료니 뭐니 좋은 게 나왔는데 이상기후 때문에 말도 아니라고요.

하데스: 여기는 갑자기 역병이 돌았나 영혼들이 많이 오는데? 그런데 사망 사유가 왜 이따위...... 끄아아아악!!!!!!

페르세포네: 하데스? 하데스? 정신차려요, 하데스!


아프로디테: 아름다움과 추악함은 공존할 수 밖에 없지. 물론 나는 아름다움만 있지만?

헤파이스토스: 추악한 남편을 두었으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프로디테: 당신의 내면과 손기술은 추악하지 않으니 된 거 아닐까?


자 이제 써오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