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리기를 포기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드디어 다시 마주한 얼굴.

장붕은 자신의 모든 행적을 지켜보던 신의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수백 번의 죽음과 수천 번의 절망, 수만 번의 절규로 이루어진 자신의 이야기를 손에 쥔 채로.

"그래, 정말로 성공했군. 축하하네."

마치 담배라도 한 대 피고 온 사람처럼, 그는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예전의 모습은 한 톨도 남지 않은 자신과는 반대로.

혀나 무언가 대단한 희열이나 정복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미완의 여로 속에서 그는 전생 이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렸으니까.

기억을 영혼의 구분법이라 정의한다면, 현재의 그는 소설에 빙의된 사람과 다른 인물이라는 판정을 받을 것이다.

"헌데, 무언가 감상은 없나? 미완된 이야기를 대필로마나 끝맺었는데 말일세."

그렇다면 이 가슴 속에 응어리진 잉걸불은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천상의 6만 6천 계단을 오르는 내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안개는 신의 그 한마디에 비로소 사라졌다.

"아니, 소원이 있다."

"호오."

"해묵은 원한이라고 하기엔 조금 다르고, 새로 떠올린 것도 아니니 그냥 반반 절충했다 치자고."

"그래서, 연중하고 도망간 작가 놈들도 굳이 납치해야겠다?"

"아무래도 독자만 빙의당하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푸하하하하하하핫!"

그의 말에 너무나도 기뻐하는 늙은 신.

"좋아, 자네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어."

딱- 소리와 함께 공간이 무너지더니, 어느새 그들은 공항의 국제선 청사 앞에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 잘 부탁하네."

"5700자든 드리프트는 죄다 혼쭐을 내 주지. 믿고 다녀오라고."

"고맙네. 이게 몇 년만의 휴가인지... 허허허."

하얀 모자를 쓰고 매무새를 정리한 신이 작은 가방을 쥐고서 멀어져간다.

"정말로 신일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휴가때마다 영화를 찍은 거였다니."

약간 썰렁한 농담이 떠올랐지만, 그는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기엔 지금 이시간에도 그의 손길이 필요한 악질들이 빙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어디보자, 웹소설은 많이 봤어도 신 대타는 처음인데.

뭘 참고하면 좋으려나... 브루스 올마이티?

그의 혼잣말이 허공에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