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단, 잘 들으렴. 우리는 가장 위대한 가문의 일원이란다.”

 

나의 아버지, 위대한 가문의 가주는 틈만 나면 그런 말을 주워섬기고는 했다.

 

“황제 폐하보다도요?”

 

“당연하지.”

 

타고난 마력, 강력한 육신. 우리 가문의 일원들은 제국 전역에서 명성을 떨쳤으며, 그 위세는 황가에 비견될 정도였다. 나의 아비가 황제의 면전에서 저런 불경한 말을 주워섬겨도 무어라 처벌받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우리를 시기했으며, 그만큼 우리를 추양하는 자들 또한 많았다. 만인이 우러러보며, 누대토록 권세를 누릴 황금의 길.

 

그리고 나는, 그런 위대한 가문의 하나뿐인 후계자였다.

 

“잘 들으렴, 에이단. 그리고 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리 정해져 있었다.

 

“이 위대한 가문에서도, 가장 위대한 아이가 될 거란다.”

 

*

 

몰락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 위대한 권세도, 압도적인 무력도 의미가 없이. 황제마저 깔보던 위대한 가문이 잿더미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우리를 추양하던 자들은 등을 돌렸고, 우리를 시기하던 자들은 이빨을 드러냈다. 요새와 같던 가문의 저택은 무너지고, 모여든 병력은 가문의 시종과 기르는 애완동물까지. 그 무엇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고 가문의 모든 인원을 추살했다.

 

한때 내가 가장 우러러보던 사람, 위대한 가문의 아버지조차 제국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비명과 재의 향기. 그리고 나를 들쳐매고 달리는 억센 손길.

 

내가 도망친 것 또한 기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를 돌보았던 하녀와 함께, 나는 불타는 저택을 등지고 으리으리한 담벼락을 넘어 달아났다. 마치 쥐새끼처럼.

 

“이런 식사밖에 대접할 수 없어 죄송합니다.”

 

“괜찮아. 나도 더 이상 애가 아닌걸.”

 

우리가 새롭게 마련한 은신처는 빈민굴의 거지조차 집으로 삼지 않을 그런 폐허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늪지. 그 중간의 단단한 땅 위에 세워진 초라한 오두막.

 

그것이 위대하고도 위대한 가문의 말예가 거하는 장소였다. 드물게 이 곳을 찾는 약초꾼이나 사냥꾼들의 눈길마저 두려워, 나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삼가야 했다.

 

“지금은 이런 꼴이지만······언젠가는 위대한 가문이 다시금 성세를 되찾으리라 믿습니다. 도련님. 그 때가 되면, 어리석은 선택을 내린 배반자들에게도 그 죗값을 받아낼 수 있겠지요.”

 

“내가? 난. 그냥 아이일 뿐인걸. ······내가 그런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가끔씩 레이나가 밖에서 구해 오는 풀이나 들짐승의 고기 따위로 간신히 연명하고, 오두막의 한구석에 갇혀 햇빛조차 받지 못한 채 곰팡이처럼 푸르게 생을 이어가는 나날.

 

“난,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오직 도련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응?”

 

그러나, 그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나를 돌보는 레이나의 눈에는 한 점의 미혹도 없었다. 한없이 올곧은 그 시선은 언제고 위대한 기문이 다시금 일어서리라는, 광신에 가까운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태도는 종교적 열망보다는 차라리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논하는 것에 가까웠다. 달빛마저 간신히 비쳐 들어오는 어둠 속. 그 속에서 태양처럼 빛나는 광신에 찬 눈동자.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이 도련님을 우둔하다 손가락질하던 것, 알고 있습니다. 허나 어린 시절부터 도련님을 보필했던 제 눈까지는 속일 수 없습니다. 도련님께서는 분명, 위대한 가문에서도 가장 위대한 재능을 타고나셨다는 걸.”

 

“레이나, 난······.”

 

“쉿, 잠시. 전령이 온 모양이로군요.”

 

위대한 가문은 몰락했지만,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이룩했던 모든 것을 완전히 뿌리뽑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두막의 얼기설기 얽은 지붕 틈새로 파고 들어오는 새 한 마리.

 

굳은살 가득한 위로 얌전히 내려앉은 그것은 제국의 대숙청에서 살아남은 정보원들이 보낸 편지였다. 밀랍의 봉인을 뜯는 레이나의 얼굴은, 나를 대할 때와는 딴판으로 싸늘했다.

 

“같이 보시죠, 도련님.”

 

“무슨 내용인데?”

 

“밀고자의 정체를 찾아냈다는 소식입니다.”

 

가문은 몰락하고 권세는 빛을 잃었건만, 그 그림자 아래 몸을 누이던 이들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이미 몰락한 가문의 부스러기라도 긁어 모으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목숨을 던지고, 고난의 가시밭길 위로 망설이지 않고 뛰어든다. 당장 내 옆의 레이나만 해도, 나라는 짐덩어리가 없었더라면 자유 기사로써 제법 명성을 날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씹어먹을 자의 이름은 바로······.”

 

나는 그런 가문이 싫었다.

 

“······에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