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자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생각하는 독자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이야기의 바깥에서 주인공의 행보를 바라보는 당신들과는 말이다.


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자이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당신들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구의 장난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시작은 주인공이 태어난 마을에서 같이 지내는 남자아이였다.


당연히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기뻤다. 너무나 행복했다.


실제로 내가 좋아했던 등장인물들을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자, 금세 절망하고 말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이야기에는 간섭하거나 진입할 수 없었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신체 능력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다.


빙의한 인물의 신체적 한계가 여기라고 알려주듯 말이다.


다음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현대의 지식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손으로 적을 수 없었다. 몸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무리 머릿속에는 지식이 있어도, 빙의한 인물 혹은 그 인물과 연관된 주변 인물이 알고 있는 지적 수준 정도밖에 활용할 수 없었다.


즉, 내가 흐름을 뒤바꾸는 변수가 될 수 없었다.


그저 한 명의 독자로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밖에 불가능했다.


마치 겉모습은 이야기 속 인물이지만, 본질은 이야기 바깥의 인물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듯이 말이다.


물론, 그런 절망적인 현실도 있었지만,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는지 재미난 현상이 발생했다.


주인공이 마을을 떠나 용사가 되려는 길에 따라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다시 한 번 절망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마을을 떠나고 다음날, 재미난 일이 발생했다.


나는 주인공과 함께 지내던 남자아이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되어있었다. 용사를 호위하기 위해 기사단의 말단 기사가 되어 있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현상을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어떨 때는 용사를 시중하는 하인으로, 또 어떨 때는 용사 파티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린 마을의 시민으로, 또 어떨 때는 마왕군과 싸우는 최전방의 기사로.


나는 꼭 주인공의 발자국이 찍히는 장소에서 용사와 그 파티원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새로운 인물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 인물이 이상해지지는 않는다.


해당 인물의 모든 정보가, 말투가, 행동과 능력이 전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무슨 짓을 해도 주인공이 장소를 이동하면 빙의하는 인물이 바뀌니, 주인공이나 동료들과 접점을 만들 수 없었다.


만약 빙의한 인물이 전투 중 죽는다고 해서 내가 죽지는 않는다. 또한, 내 몸에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인물로 빙의 될 뿐.


그렇게 주인공의 이야기가 결말을 맞이할 때까지 무한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빙의한 인물은 주인공과 결혼하는 히로인의 아버지였다. 둘의 결혼식을 끝으로 이야기의 결말을 확인했다.


이제 결말을 확인했으니, 나도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게 죽음은 영원히 없다는 듯, 자고 일어나니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떴다.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났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5개의 이야기를 이야기 속 독자로 결말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떴다.


이제는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세상의 정보와 주인공에 대한 간략한 정보 그리고 빙의한 인물의 정보가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첫 시작은 주인공과 함께 빈민촌을 굴러다니는 비렁뱅이였다.


스타트가 영 좋지 않았지만, 어차피 나는 이야기에 간섭할 수 없는 존재. 


내가 어떻게 된다고 해서 이야기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뼈저리게 깨우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주인공이 정해진 분기점에 들어가는 순간, 인물도 바뀌겠지.


조금만 버티면 된다.


다행히 저기 앞에 주인공이 보인다. 반갑게 손을 뻗어 인사를 건넸다.


"이야, 오늘도 안 죽고 살아남았네?"

"너도."


우리는 함께 꺼지기 쉬운 불꽃을 연명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탐독하는 독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멋지게 빛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는 것,


하지만 6번째의 이야기에서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다. 이것이 갑작스럽게 왜 발생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보는 것밖에 불가능했던 것처럼, 그저 그냥 자연스레 가능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 변화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아무리 소싯적 원하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지쳐버렸기에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듣는 그대에게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옆에서 탐독하길 원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옆에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다.


그대여, 이제와서 나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지 말라.


나는 그대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겠다.


* * *


주인공의 멋진 이야기를 바라보는 독자의 역할에서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버린 독자의 이야기.


주인공이 되지 않고자, 독자로 남고자 노력하지만 세상은 그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고 만다.


그는 세상이 정한 정명한 야야기의 주인공.


과연, 그는 세상의 억압에 맞서 독자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