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무엇을 바라신 겁니까? 저는 당신들을 원래부터 싫어했습니다. 저를 그저 편리한 방패로만 대한 당신들을 제가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요?"


왕국의 수호자이자 불멸자..

사상 최초의 9서클 마법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왕국군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아무도 도망칠 수 없습니다. 이 공간에서 왕국의 모든 것은 소멸합니다. 8백년 동안 저를 가둬온 대가를 이곳에서 치르는 겁니다."


그녀의 지팡이가 빛났다.

그러자 테샨 분지를 둘러싼 4개의 산봉우리에서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그것을 본 왕국의 궁정 마법사중 한 명이 허탈한 듯 읊조렸다.


"...초고위 결계마법.. 디멘셔널 락다운"


도망칠 수 없다.

이곳 테샨 분지는 하나의 거대한 함정이었다.

결계의 핵을 없애거나 마력공급을 차단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소멸하지 않는.. 공간조차도 격리하는 마법의 장벽


"그 말 대로다."


배신한 수호자의 옆에는 제국의 황태자가 서 있었다.

그가 목줄을 잡아끌자 한때 왕국의 수호자였던 마법사가 -꺄흑- 하는 소리를 내며 끌려갔다.

그러자 왕자가 그녀의 이름을 크게 소리쳐 불렀다.


"아이샤!"


그 모습을 본 황태자는 피식하고 웃었다.


"이년은 원래부터 우리 가문의 노예였다. 이년은 우리 가문의 선조가 1천명의 노예를 제물로 연성한 호문쿨루스. 애초에 영혼 자체에 복종의 낙인이 새겨진 존재다."


"그런!!"


"우리 가문이 전 대륙을 지배하기 위한 전략병기로 만든 생명체.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는 고대의 아티팩트로 연성한 우리 가문의 무기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문의 족쇄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내어 8백년간 왕국의 뒤에 숨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원래의 주인인 내가 회수하도록 하겠다."


"돌아와! 아이샤! 내가 잘못했어!"


왕자는 왕국의 수호자였던 마녀에게 읍소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이미 늦었어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왕자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왕자는 과거를 회상했다.


-어머 귀여워라. 이번 대의 후계자이신가요? 반가워요.


-마법을 배우고 싶으시다고요? 좋아요.


-이런 할머니를 좋아하면 안 돼요. 다른 더 예쁜 분들을 찾아보세요.


-정말 제가 당신을 좋아해도 될까요? 저는..


-미안해요.. 왕자님의 어머니를 살려드릴 수는 없어요. 죽은자를 되살리는건 금지된 마법이랍니다.


-저는 왕국의 수호자. 왕국을 벗어나서는 안돼요. 


-나쁜 사람..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바라면.. 당신의 소원을 들어 드리겠어요. 부디 잊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백마법과 흑마법, 연금술과 마도공학 그 외 모든 것에 통달한 달인.

사실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던 왕국의 수호자.

그런 그녀를 왕자는 사랑했다.

그녀 또한 처음에는 거부하는 듯 하더니 이내 왕자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다만 영생의 비결을 아는 그녀가 비극적인 사고로 죽은 그의 어머니를 되살리지 않고, 왕국의 초기 영토 밖으로는 절대로 나가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면서 왕자는 그녀의 사랑을 의심했다.

그녀는 왕국의 건국 시기 이전부터 살아 있었으며, 왕가의 역사를 함께 한 인물..

왕국의 왕좌에 앉았던 수십명의 일생을 지켜봤던 자.

그렇기에 그녀의 삶에서 수없이 지나쳤고 또한 지나칠 황가의 혈통 중 한명에 불과한 그가 그녀에게 특별할 이유는 없기에.. 

이 영원을 살아가는 마녀가 그를 한 순간의 유흥거리로 삼은 것이 아닌지.. 

그녀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한다면, 그가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라면, 과거와 다른 태도를 보여야 함에도 태초의 계약 그대로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녀의 사람을 의심했다.

그래서 왕자는 그녀를 밖으로 내돌리기 시작했다.

정해진 것과 다른 일을 하도록.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에게 있어 그가 선대의 왕들과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자 했다.


-왕국의 외곽에 도적이 쳐들어왔어. 해결하고 와 아이샤.


-하지만 거기는 제 관할이 아닌걸요.


-명령이다.


-거부하겠어요.


-역시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아. 그렇지?


-... 알았어요. 당신의 뜻이라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제국과 전쟁을 벌일 거야. 너의 힘이 필요해.


-안 돼요.. 제국만큼은 안 돼요..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부탁을 들어줘야 해 아이샤.


-거기만큼은 너무 위험해요. 제발 다른건 뭐든 다 할게요. 제국만큼은 안 돼요.


-이유는?


-말할 수 없어요. 말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하지만 믿어주세요. 저는 제국으로 가면 안 돼요.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상하게도 과거보다 더 완강히 거부했다.

왕자는 오기가 생겼다.


-너는 내 신하다. 내 명령에 따라야 해. 널 반드시 이번 전쟁에 데리고 가겠다.


-안 돼요.. 제발..


-같이 가지 않으면 너는 나를 두번 다시 볼 수 없을 거다.


-...


-그러니까 꺼져 버려. 갈 생각이 들면 다시 찾아와라.


왕자는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그간 그녀를 강압적으로 대하면서 수없이 확인해 왔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오기.

그녀의 마음을 완벽하게 꺾기 위한 시도.

이 영원을 사는 마녀를 죽어서도 오롯이 소유하기 위한 작업.


'내가 죽어도 영원히 살 너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주겠다.'


그리고 과연 그녀는 왕자의 뜻대로 마음을 꺾고 굴복했다.


-나쁜 사람..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그것이 당신이 바라는 바라면.. 당신의 소원을 들어 드리겠어요. 부디 잊지 마세요. 제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무언가 유언 비슷한 말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렇게 그녀를 강압적으로 끌고 나와 제국군과 테샨 평원에서 대치했다.

전쟁은 순조로울 것이었다.

이 고대의 괴물을 이길 자란 존재하지 않으니.

그렇게 믿었다.

막 양국의 군대가 충돌하려는 그 순간 전선에 제국의 황태자가 돌연 나타나기 전까지는..


"마녀가 온다는 말을 들었다. 경사로구나! 잃었던 재보를 되찾게 되었으니 어찌 내가 이 전장에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국의 황태자는 왕국군을 한번 쭉 훑어보더니 마녀를 발견하고는 그녀를 가리키며 외쳤다.


"성스러운 피의 소유물이여. 고대의 맹약에 따라 내게 복종하라!"


...


전장의 여신은 더 이상 왕국을 보고 웃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필사적으로 싸웠다.

한 명의 제국군이라도 죽게 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리고 한 명의 왕국군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이.

왕자는 소멸해가는 왕국군을 보며 하늘에서 재앙을 뿌리는 마녀를 올려다 보았다.


'그래.. 이게 벌이구나.. 이게 내게 걸맞은 결말이구나.'


테샨 평야에 세워진 거대한 마법의 감옥에서 2만명의 왕국군이 그대로 산화했다.

마녀가 자신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화구를 떨구는 것..

그것이 왕자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

그렇게 생각했다.


'왜 아직 살아있는거지?'


왕자는 살아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같이 전장에 투입된 왕국군도 모두 살아남아 있었다.

반면에 대치하던 제국군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녀 또한 같이.


'이게 어떻게 된..'


그 순간 결계의 북쪽이 살짝 일렁였다.


'결계가?'


그리고 다음 순간 왕자의 앞에 누군가가 텔레포트했다.

마녀였다.


"아이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그녀는 왕자의 말을 끊었다.


"저는 아이샤가 아닙니다. 왕자님께서 아시는 그녀는 이미 죽었습니다."


"뭐?"


"받으십시오."


그녀는 왕자에게 무언가 빛나는 덩어리 하나를 넘겼다.

그 빛덩어리는 왕자의 손에 올려지자 곧바로 왕자의 손으로 녹아 들어갔다.

직후 왕자의 오른손 손등에는 십자가 모양의 표식이 새겨졌다.


"이제부터 왕자님이 결계의 핵입니다. 왕자님과 왕자님이 지정한 자들은 이 결계를 드나들 수 있습니다."


"잠깐! 지금 그런 게 중요한게 아니야. 무슨 일이 일어났던거지? 설명이 필요해 아이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당신이 상상하시는 그녀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그녀가 남긴 사념만을 전달해 드릴 뿐. 저는 곧 소멸합니다. 그녀가 남긴 유언장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왕자는 사념체로부터 마녀가 남긴 메시지를 들었다.

그녀의 정체는 황태자가 말했던 그대로 제국의 황가가 자신의 소유 노예 1천명의 영혼으로 연성한 호문쿨루스.

영혼이 황가의 핏줄에 속박당한 존재였다.

그러한 사정을 안 왕국의 시조가 그녀를 데려왔고 특수한 계약으로 그녀에게 가해진 속박의 강제력을 무효화 시켰다.

그 힘이 무효화되는 범위가 바로 그 당시 왕국의 영토.

마녀가 왕국의 초기 영토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히 꺼렸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 영토 밖에서는 속박이 유효하기에..

혹시라도 황가의 피를 잇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예속당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그래서 그녀는 이번 출정을 특히나 더 거부했던 것이다.

다른 전쟁 같은 경우는 혹시 모를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엔 너무나도 확실히 황가의 핏줄을 만나게 될 것이었으니까.

원래라면 거부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8백년간 사무적으로만 그녀를 대했던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친근하게 다가왔던 사람이 왕자였으니까.

그를 다시는 못 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획했다.

영원히 아픔을 달고 사느니 저주받은 목숨을 여기서 끊어내고 너무나도 사랑하면서 너무나도 원망스러운 왕자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녀는 왕국군을 빠르게 몰살시킨 뒤에 황태자가 방심하는 틈을 타 준비해 둔 두 번째 마법을 발동시켰다.

현계와 명계를 뒤집는 마법.

공간마저 절단하는 고위결계 디멘셔널 락다운은 명계의 해당 위치까지 절단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그 절단면을 따라 동전을 뒤집듯 국소적으로 세계를 뒤집을 수 있었다.

그렇게 죽은 자는 살아나고 산 자는 죽었다.

그래서 제국군이 소멸하고 왕국군만 살아남은 것이었다.


"제국군의 시체가 없고 큰 부상을 입었던 당신들이 지금 멀쩡한 이유는 영혼이 빠져나간 제국군의 생명력 넘치는 시체가 당신들의 육신 수복용 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에요."


"..."


"아이샤는 당신의 어머니를 살리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실제로 그녀에게는 살릴 능력이 있었는데 살리지 못한게 맞거든요. 하지만 이제 당신은 왜 그녀가 그러지 못했는지 이해하리라 믿어요."


"..."


"그녀의 죽음으로 얻어낸 삶. 부디 행복하게 누리시길."


사념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멸했다.


"으아아아아아악!!!"


테샨 평야에는 왕자의 절규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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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에는 명계로 간 히로인을 살리려고 하는 스토리를 붙이면 괜찮으 후피집이 될거같은 느낌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