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실력으로 날 물리치겠다고? 주제를 알아라, 애송이."


몇 번이나 토벌되어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던 마왕이 오늘, 바로 지금 마을에 쳐들어왔다. 언젠가 뛰어난 용사가 될 것이라며 평판이 자자한 소년 카일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마왕을 노려보았다.


"자, 어서 덤벼 봐라! 먼저 공격할 기회를 주겠노라."


이를 악물고 덤빈 카일이 순식간에 땅에 나동그래졌다.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 마왕이 손을 휘두르자 나무 한 그루가 잿더미로 변했다.


"특별히 목숨만은 살려주마. 복수를 원한다면 네 발로 직접 찾아오도록."


절망에 빠진 사람들과 분노에 찬 용사를 뒤로한 채, 마왕과 사천왕은 그렇게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

.

.

.

"야, 이 정도면 됐겠지?"


"나무까지 태워먹는 건 너무 심했지 말입니다."


"폼 잡아놓고 아무것도 안 하면 민망하잖아. 지난번에 지붕 부쉈다가 어린애 울린 뻔한 거 기억 안 나? 바로 고쳐놔서 망정이지." 


"확실히 먼저 덤빌 기회를 주는 게 낫네요. 아까 그 아이 눈빛 봤어요?"


사실 방금 있었던 일은 왕국과 짜고 치는 일종의 쇼다. 사천왕들은 연봉 100억대를 자랑하는 엘리트로, 비슷비슷하게 강하지만 일부러 약한 녀석부터 차례대로 나서다 아슬아슬하게 당하는 '역할' 을 맡고 있다.

사천왕 외에도 용사의 전투력에 알맞는 수하를 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초장부터 강한 적을 연속해서 만나면 마음이 꺾이고 말 테니까.


아직 미숙하던 시절에는 도발하다 실수로 지나친 비난을 퍼붓고 울음을 터트린 소녀를 달래주는 일도 있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용사의 재능을 가진 인간에게 원한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강해진 용사를 마왕성에서 맞이하여 토벌당해주는 것으로 역할은 끝난다.


조만간 부활할 고대의 악신에게 맞설 용사들을 육성하기 위해,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연기한다.


부하 행동 요령: 한 끗 차이로 져주기, 쓰러질 때 적당히 추켜세우는 동시에 더 강한 적이 있음을 예고하기, 상대할 가치도 없다면서 너무 약한 아군은 공격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