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 끝났어.... 이리... 와라..."


히어로가 폐를 쥐어짜내며 간신히 말했다.


들숨과 함께 고통을 삼키고, 날숨과 함께 피를 뱉는다.


휘청거리는 두 다리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그의 속마음처럼 한없이 떨린다.


빌런의 어깨를 붙잡으며 멈춰세우긴 했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취하지 못했다. 



{영웅이여, 어째서 또 주먹을 날리지 않는 것이지? 겁이라도 먹었나?}


어깨를 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기라도 한 걸까.

빌런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히어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포.


생명의 위험을 받는 생명체한텐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지만,

시민들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히어로에겐 절대 느껴선 안될 감정.



공포는 차가운 눈폭풍이 호수를 뒤덮듯 히어로의 모든걸 얼렸다. 그리고 떨게 만들었다.


다리가 떨려온다.

더 이상 서있을수 없다.


두 팔이 떨려온다.

빌런을 잡은 손을 당장이라도 떼고 싶다.


심장이 쿵쾅된다.

이러다간 터져버릴것 같다.


두 눈이 떨린다.

이젠 초점을 맞추어 빌런을 바라보기도 힘들다.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머리조차 두려움에 집어삼켜져 판단을 포기하고 단 한가지 결론만을 기도하듯 읊조린다.



'도망치자.'

'도망쳐야해.'

'당장 도망가.'

'얼른 튀라고.'

'일단 살고 봐야지.'


머릿속에서 결론이 나오자 몸은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얼어붙은 신체들을 강제로 움직이며 도망칠 준비를 취했다.


어깨를 잡은 손이 내려가고,

두 다리가 뒤를 향해 뛸 준비를 하며,

두 눈은 앞을 보며 도망칠 경로를 짜낸다.



하지만 뒤돌아선 히어로는 다시 얼어붙은듯이 멈췄다.



"제발 살려주세요..."

"엄마, 무서워..."

"죽기 싫어, 싫다고..."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공포에 떠는 시민들,


'오...빠...!'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여동생.


'도망쳐, 얼른.'


몸을 벌벌 떨면서도 나와 빌런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목소리가 안나오는데도 입모양으로 간절히 외친다.


"...."


도망치고 싶다.

발이 자꾸만 앞으로 향한다.

허나 움직이지 못한다. 아니,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말아야만 한다.



{뭐지? 도망칠려는 건가? 흠... 잠시지만 날 재밌게 해줬으니 특별히 보내주지. 얼른 꺼져라.}


"...끄러."


{뭐라?}


"..시끄럽다고. 누가 도망친다는 거야?"



시민들을 향했던 몸을 다시 돌려, 그들을 등진다.


빌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의 시선에서 시민들을 가린다.


다 찢어진 장갑을 고쳐 끼우고,

시선을 빌런한테 고정한채,

당장이라도 싸울수 있도록 자세를 잡는다.


{호오... 또 싸우겠다고? 겁 먹고 떠는 주제어? 영웅이여, 그댄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빌런은 히어로에게 비웃듯이 물어봤고, 히어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그저 바라만 봤다.


무섭다.

두렵다.

공포스럽다.

도망치고 싶다.

이대로 죽기 싫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목숨만이라도 건지고 싶다.

하지만 절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히어로는 지킬게 많으니까."


{그래봤자 D등급인 그대가 뭘 할수 있지?}


"할수 없다니, 해야지. 아니, 해야만 해. 난 히어로니까. 그러니까...


얼른 덤벼. 이 빌어먹을 빌런아."


{흥, 입만 살아가지곤. ...저 놈을 죽여라.}


""케에에에엑!!""


빌런이 손짓하자 어둠 속에서 갑자기 생겨난 조무래기들이 일제히 히어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펄스... 임팩트!!!!!"


히어로는 다시 몸을 던졌다.


그는, 영웅이니까.


.

.


"지금까지 잘 버텨주셨습니다. 이젠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갈대 히어로 리드(reed)가 널 감옥으로 리드(lead)해주마!"


"PK-9! 다른 히어로들 서포트 해! 시민 여러분! 이쪽으로 대피하세요!

[빌런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감히 내 구역에서 잘난 척 깝죽대다니! 모가지를 부러뜨려주마!!!"


{크윽, 오늘은 이만 물러나주마!}


다행히 뒤늦게 지원하러온 A급 히어로들 덕분에 그는 목숨을 건질수 있었고, 빌런의 도주와 함께 전투는 종료됐다.



"오빠.. 흑, 정말 다행이야..."


"아야야, 좀 살살 안아. 나 진짜 괜찮.. 어라?"


"왜 그래? 어디 아파? 혹시 상처가 벌어졌어?"


"아니, 그게 아니라... 힘이..."


"힘?"


"힘이... 뭐랄까, 강해진거 같아...."


.

.


{히어로 펄스맨, 각성 성공. D등급에서 C등급으로 상향했습니다.}


"잘했다 브와무르. 부하들 데리고 이만 복귀해."


{예, 보스.}



<보스, B급 히어로 스코빌라에게 각성의 조짐이 보입니다.>


"조만간 그녀에게 그라시아스 형제를 보내도록. 상성이 불리한 다수의 적에게 당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예, 보스.>


뒷세계의 거물들중 하나인 패밀리.


그들은 오늘도 보스의 명에 따라 히어로들을 각성시키고 있었다.


.

.


'곧 세상이 멸망할 거야.'


영웅들이 막을수 있어.


'S급, 그 이상이어야 해.'


영웅들이 힘을 합치면 돼.


'오, 테크네. 그들은 어리석고, 추악한 존재야. 결코 힘을 합칠수 없어. 멸망을 막을수도 없어. 그들은 모두 사라질 거야.'


그들도 각성한다면...


'그들은 절대 각성하지 못할 거야. 한번 정해진 등급은 결코 못 바꾸는거 알잖아.'


난 희망을 믿고 싶어.


'희망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지.'


안 도와줄거면 얼른 가. 나 혼자서라도 그들을 각성시키겠어.


'...테크네, 부디 이 사실만큼은 기억해 줘.'


'이 멸망은, 그들에... 희망이...'


.......


"시발.. 또 이 개같은 악몽이냐..."


꿈 속에서까지 불가능하다고 말하다니. 이 악녀 같으니라고.


"...기다려라, 아레테. 네가 틀렸다는걸 반드시 증명하겠어. 반드시 S급 영웅 12명을 만들어서...막아내고 말겠어."



세상의 멸망을.





멸망까지 ×년.

현재 S급 영웅 2명.


남은 영웅,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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