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악마로군. 조건이 너무 대놓고 '나는 네 불행을 원한다'인데, 누가 이딴 계약을 하겠어?"

"그래서 원전에서는 당사자가 아니라 대리인이 계약했지, 이런 건에 대리계약이 되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당사자에게 '마탄을 얻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으니까 대충 퉁치고 넘어간 모양이지. 하여간 너한테 이런 조건으로 악마가 계약하자고 하면 어쩔 것 같나?"


계약하면 사랑하는 이가 죽는다. 계약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사랑과 목숨을 저울질하는 단순한 질문같지만, 이 친구가 내게 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마 그런 류의 심심한 대답보다는 좀 더 '흥미로운' 답을 원하기 때문일 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지? 만약 일곱번째 탄환보다 먼저 사랑하는 이를 죽이면 어떨까? 아니야, 악마가 바라는 건 불행이니까 그래봤자 좋아라 하겠지. 이렇게 말하면서, "네가 사랑하는 이가 한 명일 것 같나?" 그리고 어머니나, 아버지나, 아니면 은사님이나, 하다못해 우리집 개라던가, 아무튼 내가 두 번째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쏘겠지.


날씨가 딱 적당한, 주말의 한가한 오후였다. 그나 나나 시간은 충분했으니 느긋하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동굴에 들어가서 입구를 막고 일곱 번째를 쏘면 어떨까? 원작이 이거랑 비슷한 방식이었나?' 날씨가 적당했고, 나는 어느새 깜빡 졸았을 지도 모른다. 바람이 잔잔히 불어왔고, 어느 새 저문 태양이 카페 차양막 아래의 내 눈가를 비추는 순간...


"죽음을 사랑한다면 해결되겠네."

"응?"

마찬가지로 반쯤 졸았던 듯, 그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이야기에 따라 묘사가 다르지만, 어떠한 이야기에서도 죽음 그 자체가 죽는 일은 없어. 의인화된 죽음은 결국 저승사자, 인도자의 역할을 맡으니 죽음이라는 개념과는 분리되고, 그러니 그것이 죽는다고 한들 죽음이 사라지지는 않지."

"일리 있군. 사신이나 사후세계, 혹은 죽어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죽음이라는 관념이 주역이 되는 이야기는 거의 없지."

"그러나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겠지, 겨울을 죽일 수는 없어도 겨울을 사랑할 수는 있듯. 악마가 내 영혼을 받고 일곱 발의 탄환을 건넨다면 나는 마지막 한 발을 가슴 속에 품고 죽음을 사랑하기 위해 노래하겠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방아쇠를 당기겠지. 거기 꿰뚫린 죽음이 죽었다면 나의 육과 영은 분리되지 않을 것이고 살았다면 계약 불이행이니 어느 쪽이건 악마는 꽤 난처할거야."

"그래, 죽음을 사랑한다라. 놀라운 발상이구만..."


그와는 평상시에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때로는 약간의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사고실험을, 때로는 이런 문학작품들을 소재로.

그의 이야깃거리는 늘 내 흥미를 자극했고, 서로 이야기하며 나 - 혹은 우리 - 는 서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얻어갔다. 때로는 그가 무슨 사람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문학소년? 과학자? 철학자? 작가? 아니면 돈 많은 한량? 사실 앞의 네 가지는 마지막 하나로 귀결되긴 하지만...






라는 내용으로 프롤로그에서 가볍게 운 띄웠다가

2화부터 가족 친구 반려견 다 잃어버린 주인공이 죽음을 관철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도중에 알고보니 자기 인생이 좆된건 노가리까던 저 친구때문에 그런건데 그 친구의 최후는 존나 허무하게 끝나버려서 제 손으로 복수했는데도 허탈한 감정밖에 남지 않는 걸로 분량 좀 챙겨주고

에피소드마다 멋드러지게 문학이나 사고실험 관련해서 그럴듯하게 한마디씩 쑤셔박아두고


마침내 죽음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죽음이 말하기를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거라. 너는 나를 '진실로'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는 동안 그들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는 않았는가? 사랑하는 나를 죽이고 그 옛날처럼 사랑하던 이들 사이에서 살아갈 자신이 있나?"


1. 죽음을 죽였는데 죽은 이들이 부활하지 않아서(또는 부활하지만 온전치 못해서)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잃고 미쳐버린다 / 2. 죽이고 부활했지만 주인공은 공허함을 느끼고 세상은 죽음이 사라져 곱창난다 / 3. 주인공이 죽음의 곁에 남기로 하자 다음편에 죽음이 담담하고 짧게 허무한 후일담 남기고 끝


악마는 맥거핀으로 남겨둘수도 있고 1/2번에서 맛탱이가 간 주인공이 악마가 될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친구는 악마나 그 하수인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하여간 이런 판타지 약간 가미한 존나 암담한 글 하나 보고싶은데

도입부 통째로 써도 좋고 하드보일드장르랑 암울한 엔딩만 유지하면 마음대로 손봐도 되니까 누구 업어갈 사람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