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유신아입니다.

 

나이는 10살, 성별은 여자입니다.

 

좋아하는 건 친구들이랑 수다를 떠는 거에요. 요즘은 귀여운 마법소녀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해요.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랑 아빠!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사랑이 뭔지 알기엔 저는 너무 어리다고 언니가 그러는데, 절 애 취급하는 언니가 짜증나긴 하지만 언니도 좋아요.

 

아무튼, 저는 아주 평범한 초등학생 여자아이에 불과했습니다.

 

어느 날 이상한 네모 화면과 함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아카데미 헌터라는 게임이 있다. 아주 평범한 육성 시뮬레이터 게임일 뿐이지만 그것은 매력적이고, 나는 그 게임에 매료되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증오루트로 해피엔딩을 보는 것에 대한 연구를 하던 나날, 마침내 가능성이 보이는 방법을 찾아냈으나 사고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기적이 일어났는지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작고 가녀린 몸. 힘 하나 없는 육체.

 

거울을 봐도 전혀 모르는 얼굴이지만, 눈앞에 뜬 상태창은 내가 게임에 빙의했다는 것을 명시시켜주었다.

 

아무래도 나는 원작 게임의 평범한 엑스트라 여자아이의 몸에 빙의한 것 같았다.』

 

[퀘스트]

[증오루트로 해피엔딩을 보십시오.]

[보상 : 당신이 원하는 것.]

 

이게 뭐지? 눈앞에 뜬 이상한 네모 인터페이스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몸도 이상했어요.

 

몸이 의도대로 움직이기는 하나, 무언가 의도가 이상했어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느껴지는 듯, 목이 딱히 아프지도 않았는데도 목을 풀며 스트레칭을 했어요.

 

“게임 빙의라니, 곤란하네.”

 

입에서 나오는 말도, 이 말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듯 제 뇌가 속삭이는 느낌이에요.

 

『여자 아이의 몸은 보폭도 다르고 눈높이도 달라 도통 적응되질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엔딩을 보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몸도 원하는대로 움직여진다.

 

어쩌면 완성하지 못한 증오루트의 해피엔딩을 여기선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제 몸을 움직이게 조종하는 강박관념의 주인은 이 목소리가 아닐까요?

 

아까부터 게임이니 뭐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려서 곤란하네요.

 

꿈이라면 빨리 깨버리면 좋을 텐데.

 

『우선 증오루트의 해방을 위해선 업보 능력치가 필요하다. 나는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이 소녀의 기억을 훑어다 봤다.

 

음, 잠겨있는 업보 능력치를 해방하기 딱 좋은 소재가 보인다. 

 

우선은 밤이 늦었으니 잠을 자고 내일 일어나서 학교에 가도록 하자.』

 

아직 학교 숙제도 하지 않았는데, 머릿속의 목소리가 심는 강박증을 이길 수가 없었어요.

 

저는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어요.

 

다음 날.

 

“안녕히 주무셨어요?”

“오늘은 웬일로 바르게 인사를 하니?”

 

전 항상 엄마에게 안녕 엄마! 하며 활기찬 인사를 하는데, 오늘은 바르게 인사를 했어요.

 

엄마의 기특한 시선은 좋았지만, 이 말을 한 주체가 제가 아니라 하니 어딘가 꺼림칙했어요.

 

『저 사람이 이 몸 주인의 부모님인가. 우선 신뢰를 사두는 편이 좋겠지.』

 

잠에서 깼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가 절 짜증나게 만들어요.

 

그래도 내색할 수가 없었어요.

 

자꾸 머릿속에 ‘목소리’가 원해는 행동이 마약처럼 떠돌아다니니.

 

저는 저항을 포기하고는 빨리 목소리가 사라지길 빌었어요.

 

“신아야 안녕?”

“어, 유나야 안녕.”

 

유나쓰! 라고 인사해야 하는데.

 

『이유나. 이 몸 원주인의 가장 친한 친구다. 녀석이라면 증오루트 해방에 딱 좋은 제물일 거다. 

 

양심의 가책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한낱 게임에 불과할 뿐이니까.』

 

대체 목소리가 말하는 증오루트 라는 것이 무엇일까.

 

목소리의 명령대로 머리를 지배하는 강박증에 따라 저는 친구를 옥상으로 불렀어요.

 

“무슨 일이야?”


그리고.

 

『이제 이유나를 옥상에서 밀어 죽이면, 소중한 사람을 죽인 것으로 판단하여 상태창이 증오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어?

 

저는 친구를 옥상 난관으로 향하게 유도하고 있었어요.

 

“유나야 이리와봐. 도시 배경이 멋져.”

“그러네?”

“좀 더 가까이 와봐.”

 

마침내 유나가 난간에 몸을 기대 섰을 때.

 

『이제 밀도록 하자.』

 

강박증이.

 

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밀어야 한다는 듯.

 

차라리 몸을 뺏기는 거라면 좋았을까요.

 

그렇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제 몸은 여전히 제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었어요.

 

제 몸을 조종하는 것은 목소리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저였어요.

 

유나를 밀치면 죽어요. 그런 것 쯤은 얼마든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밀지 않으면 밀지 않으면 밀지 않으면 밀지 않으면 밀지 않으면 밀지 않으면.

 

머리가 뒤죽박죽.

신경이 헤롱헤롱.

눈은 무생물을 보는 것처럼 싸늘하고.

저항하고 싶은데 저항할 수가 없고.

강박증이 말하길 밀어밀어밀어밀어.

내 몸이 말하길 저항하지마.

목소리가 말하길.

 

『아이를 죽인다는 게 꺼림칙하지만, 게임 NPC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나는 제일 친한 친구인 유나를 밀었고.

 

“어?”

 

유나는.

 

“꺄아아아악!”

 

그렇게 죽었어요.

고기파편이 되었어요.

정말로 무생물이 되었어요.

내 손으로 죽인 거에요.

 

『눈물? 별로 슬프지도 않는데 왜 눈물이 나오지? 이상할 노릇이다.』

 

울고 싶은데, 나 자신이 증오스럽기 그지 없는데.

 

강박증은 감정을 표출하지 말라고 명령해서.

 

나는.

 

나는.

 

[증오루트가 해방되었습니다.]

 

『예상대로군.』

 

그 날, 자유를 잃었다.

 

 

 

 

 

*

 

 

이제 TS빙의한 남주인공이 일부러 여주에게 주도권 넘겨주는 방법 찾음.

 

초등학생으로서의 일상을 보내는 게 싫증나 몸을 넘겨줄 때 많음.

 

다만, 독백으로

 

『만약 이 몸이 범행을 기억해서 자살시도 같은 거라도 한다면 곤란하다. 만약 그런다면 몸을 넘겨주는 건 그만둬야겠지.』

 

강박증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여주에겐 큰 쾌락으로 다가와 필사적으로 범행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럴수록 죄책감 때문에 더욱 피폐해지는 여주인공.

 

평화롭게 살고 싶어도 어느 순간 남주인공이 빙의하고, 머릿속의 강박증이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이 생각하는대로 행동하도록 유도함.

 

(그러니까 남주는 제대로 된 빙의를 한 것이 아니지만, 강박증 때문에 여주가 남주의 의도대로 행동하니, 자기가 몸을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그래서 자기 손으로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름.

 

초반에는 업보 스탯을 통해 스킬을 구매하기 위해 노숙자들을 죽여 상태창이 먹어치우게 하고.

 

중반에는 일부러 친한 친구를 만든 다음 배신하여 죽이는 등.

 

그렇게 점점 피폐해지는 여주인공.

 

다만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고 있다고 일기장에 쓰는 식으로 남주인공을 속이는 여주인공.

 

그러다 결국 들키고, 남주는 몸을 영원히 뺏으려 하다 여주가 전면적으로 협력해주겠으니 가끔 자유를 달라며 빌기도 하고.

 

그렇게 여주는 서서히 원치않는 범행에 익숙해져 타락.

 

남주 또한 이 세계가 점점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며 죄책감.

 

마지막 엔딩의 소원권은 사실 남주가 아닌 여주에게 있는 것이었고.

 

드디어 강박증에서 벗어나 소원권을 사용하게 된 여주인공의 소원은, 남주인공의 육신을 이 세계로 가져오는 것.

 

그 후는 이 글을 가져갈 피폐충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