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따로따로.


-


꿈틀-


내가 이 세계로 들어왔을 때는 대강 12년 전이었다.


시야도 이상하게 낮고, 감각은 예민한데 사지는 기어다니듯이 움직이고.


인외물에 빙의라도 했다 싶었다.


꿈틀-


연못을 통해 내 몸을 보기 전에는.


"?"


나는 손이었다.


원래 세계에서 살던 내 손.


"아니 씨발?"


-


처음에는 이건 누구 손인가 싶었지만, 손금을 보고 내 손인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손에 정신이 왜 있는지, 앞은 어떻게 보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내 다른 신체들은 이 세계에 없다는 거다.


이세계 생활이 6개월차에 접어 들었을 무렵 나는 내가 소설에 빙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외물 주인공이랑 만났거든.


'뭐야 시발 진짜 인외물이었네.'


"저건 뭐지...?"


그쪽도 나를 보곤 당황한 눈치였다.


주인공 입장에서 원작에도 나같은 생물은 없었을 테니까.


조그만 뱀에 빙의한 녀석은 그래도 뱀이라고 날 사냥하려 들었지만,


"이 새끼가 하늘같은 선배님한테..."


6개월 동안 마나를 머금은 내 손, 아니, 나를 이길 순 없었다.


빙의 초반에 날 잡아먹으려던 짐승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몸으로 싸우는 것에 꽤 숙달된 상태였으므로.


이 몸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단 손이기 때문에 섬세한 행위가 가능하고, 음식물 섭취의 필요가 없다.


그리고 빙의의 영향인지 아니면 머금은 마나의 영향인지 판타지 세계에서 살아남을 만한 기초적인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싸울 수 있게한 일등공신.


짧은 비행 기능이 있다.


손 주제에 조금 체력을 소모하기는 하지만 이를 이용해 순간 가속으로 스트레이트를 날리거나, 땅을 박차며 어퍼컷을 날리는 것도 가능했다.


아무튼 그렇게 뱀 새끼의 목을 조르고 내 은신처로 데려갔다.


"말을 한다고...?"


"그래. 너처럼 빙의했다 이새끼야."


나로서도 6개월 전의 소설을 기억하기는 무리였고 녀석으로서도 아직 약한 초반부였으니 우리는 상호간의 협력을 약속했다.


녀석은 주인공 버프로 소설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기연 5:5로 나누기다? 알았지?"


"네..."


표정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뱀에게 표정이 어딨겠나.


-


"그래! 철수야! 쓸어버려!"


그렇게 현 시점에 이르러서 녀석은 성장을 끝마치고 완전히 우로보로스가 되어있었다.


"거 가만히만 있지 말고 좀 도와주시지. 어차피 이제 돌아가신다면서요."


내 짬에 이런 것까지 해야겠냐.


"이 하늘같은 선배님이 움직여야겠냐? 저놈만 잡으면 원작은 완전 종료라 이거지?"


"네... 좀 빡센 히든 보스가 있긴 한데 걔는 외전이라 아직 10년이나 남았어요."


"아."


"왜 그러세요?"


좆된 거 같은데.


"그거 내년에 부활한다. 엔딩이 이제야 기억나네."


"뭐요 시발?"


그런 걸 왜 이제야 알려주냐는 몸 길이 47m 거대 괴수 철수 군의 절규를 뒤로 한 채 나는 은신처로 향했다.


"가지마! 가지 말라고! 히든 보스 같이 잡아주고 가!!!"


손 없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을 내 본체야, 조금만 기다려라!


계획은 이렇다.


은신처 바닥에 미리 새겨둔 수복 주문을 방금 얻은 마왕의 뿔로 완성시킨다.


공간계 마법인 수복 주문은 대상을 원 위치에 돌려보내는 방식의 마법.


잘린 팔도 붙인다는 수복 주문으로 내 몸을 수복해서 '손'인 내가 '몸'으로 돌아가도록 할 거다.


잘린 건 아니지만 생긴 건 대충 비슷하니까 잘 되겠지.


"작성 끝이다. 이제 집으로 가는 구나!"


손목과 엄지, 약지로 몸을 지탱하고 중지로 마법진에 마력을 흘려넣었다.


그리운 내 집아. 돌아가면 핸드크림부터 사야지.


마법진이 작동하여 내 몸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간다!!!"


-


툭.


"어?"


마법진은 작동했지만 나는 제자리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이게 수복이 안된다고? 왜? 이거 내 손 아니었어?"


그때.


[와 씨발 유입이다 유입 대체 뭔 차원에 들어가 있었던 거야]


[일단 반갑고, 여기 눌러서 갤로 들어와라]


"이건 또 뭐야"


손가락을 뻗어 상태창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터치했다.


[내 몸 갤러리]

[개념글]

[주딱이 유입있다는데 이거 진짜임??(12)]

[내장 새끼들 좆목 좀 그만해(83)]

[나도 씨발 아카데미 빙의 시켜달라고 왜 나만 좀아포야(3)]

[서큐버스 만난 썰 품(179)]

[글젠 왜 이래 이거(5)]

[유입 제발 들어왔으면 좋겠으면 개추ㅋㅋ(17)]


진짜 뭔데 이거.


12년 만이지만 여전히 익숙한 인터페이스에 홀린 듯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님들 이거 뭐임?]

작성자:ㅇㅇ(999.99)

갑자기 이거 뭔 상태창 같은 게 뜨더니 여기 들어와졌음...


커뮤니티의 기본이 닥눈삼이라는 건 이미 작성을 완료한 후에 떠올랐다.


1분이 채 되지 않아 올라오는 수많은 댓글들.


[사람위엔아무것도없다: 유입이다 씨발!!!!]

[우루사: 유입! 유ㅜ잉ㅂ너 어디출신ㄴ이야!!]

[진짜모름: 와 이거 얼마만에 유입이냐]

[전뇌: 얘가 내가 말했던 유입임. 뉴비새끼 차원 구석탱이에 갑자기 나타나길래 납치했음]

ㄴ[진짜모름: 지금부터 완장 찬양을 시작하겠습니다.]

ㄴ[게이타락: 가장 위대한 신체부위는 뇌이며 이것은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도 나와있는 사실이다.]

[86세할아버지최후의갈아만: 든배: 너 어디 출신임? 내장만 아니어라 제발 제발]

ㄴ[진짜모름: 님 닉으로 뇌절 좀 그만 해]

    ㄴ[86세할아버지최후의갈아만: 든배: 난 14자 닉을 쓰고 싶다고 꼬우면 글자수 풀어주든가]

[노예3호: ㅎㅇ. 아이피 미쳤네.]


정신없는 텍스트의 향연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머리는 없지만.


우선 옆에 주황색 아이콘이 달려있는 '전뇌'에게 댓글을 달아보았다.


주딱이니까 뭐든 잘 알겠지.


[ㅇㅇ(999.99): 그,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설명 좀 해줄 수 있음?]


이윽고,


[전뇌: 공지 ㄱㄱ]


실시간으로 계속 댓글이 달리고 있는 글을 떠나 공지 목록을 눌러보았다.


그래, 공지부터 읽었어야 됐네.


[유입 필독) 내 몸 갤러리 공지]

작성자: 전뇌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남궁시우의 신체 일부분이다.

조각조각 나뉘어서 여러 창작물에 빙의한거야. 원래 몸이니까 빙의는 아닌가?

나는 뇌고, '이 세계에서 최강나무꾼으로 살아갑니다'에 빙의해서 주인공을 죽이고 마법사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신체들엔 모두 인격이 부여되는데, 나는 뇌라 이미 원래 인격이 있었거든?

그래서 어쩌다 보니 뇌가 듀얼코어로 돌아간다.

아무튼 듀얼코어 뇌로 바법 수련하다 보니까 초월에 성공했어.

초월한 다음에 살펴보니까, 다른 신체부위도 눈에 들어오더라고.

기운이 느껴지길래 몸 조각을 다 모아서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내가 만든 게 이 내 몸 갤러리다.

다 한 몸이니까 잘 지내자.

기능 궁금한 건 댓글 달아라.


...이게 진짜라고? 


내 몸이 다 따로 나뉘어서 빙의했다고?


12년간 내 몸에 대한 생각으로 살았는데, 다 빙의했다고 생각하니 어지럽다.


그럼 내 글에 댓글 단 것도 신체 부위 중에 하나겠네.


[공지 읽고 왔는데 너네 다 신체 부위임?]

작성자: ㅇㅇ(999.99)

진짜로?

[댓글]

[진짜모름: ㅇㅇ 그래서 넌 뭔데 빨리 말해줘]

[사람위엔아무것도없다: 난 위고 데드풀 영화에 빙의함. 라이건 레이놀즈 손에 잡혀서 위산 쏘고 있음.]
[좆같은좆: 난 좆임]

[우루사: 내장이냐? 그렇다고 해줘 제발]

ㄴ[86세할아버지최후의갈아만: 든배: 난 배인데 내용물 없이 겉에 살만 딸랑 나왔음. 그리고 너는 씨발 내장 좆목 그만해]

[노예3호: 왼쪽 가슴임.]

[불운아: 자궁이다. 씨발 왜 나만 TS된 건데]

ㄴ[우루사: 입갤ㅋㅋㅋㅋ]

ㄴ[좆같은좆: 그저...ㅋㅋㅋ]

ㄴ[남궁시아: 내가 있잖아]

    ㄴ[불운아: 이 새낀 질인데 떡인지 빙의한 뒤로 암타했음]


TS는 또 뭐야.


정체를 묻는 댓글에 새로 글을 써주었다.


[나 왼손임.]

작성자: ㅇㅇ(999.99)

혹시 오른손도 있음? 좀 궁금하네.


글을 쓰자마자 댓글이 달렸다.


[진짜모름: 나!!! 와 진짜 씨발 다행이다 드디어]

ㄴ[노예3호: 이걸 찾네.]

ㄴ[대칭의수호자: 얘도 짝 찾았네 이제 대칭 딱 맞는다.]

ㄴ[ㅇㅇ(999.99): 오 반갑다]

[우루사: 아 왜 내장 아님...]

[86세할아버지최후의갈아만: 든배: 아싸 내장아니고ㅋㅋ]

[무라하치피해자: 주딱이 1년 전에 유입없을거라 했는데 갑자기 생겼네. 썰 좀 풀어줘.]


썰?


갤러리라면 아마 수복마법과 관련이 있을 성 싶다.


[전뇌: 그러게. 내가 싹 찾아 봤는데 근처 차원에는 우리 몸 없길래 유입은 끝난 줄 알았었음. 근데 어제 다시 보니까 갑자기 감지돼서 데려온 거임. 어케 들어왔는지 설명 좀.]


[ㅇㅇ(999.99): 몸으로 돌아가려고 수복 주문 썼더니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갤러리만 들어와짐.]


[무라하치피해자: 이거 그거네. 차원째로 움직인 거. 수복은 원래 위치로 공간이동시키고 그 다음에 원래 형태로 짜맞추는 마법인데 그 원래 위치가 이미 조각 나서 빙의돼 버렸으니까 차원좌표가 에러난 거임. 그러다가 네가 아니라 차원이 이동하는 쪽으로 마법이 변형된 거 같음.]


[전뇌: 그냥 코딩오류네.]


[무라하치 피해자: 그런 셈이지.]


아무래도 귀여운 우리 뱀 철수와 배운 것보다도 저 녀석이 더 마법을 잘하는 것 같다.


자존심이 좀 상하는데.


[ㅇㅇ(999.99): 근데 님은 어디 부위임?]


[무라하치피해자: 나? 암 종양인데.]


갤러리를 꺼버렸다.


-


"오 유입이네."


"그렇네?"


왼다리와 왼발.


둘은 공교롭게도 같은 세계관에 빙의했다.


그리고 둘은,


"네? 뭐라고 하셨나요?"


아카데미 외다리 검사의 골반 아래에 들어와서 살고 있다.


-


초월자이자 대마법사 뇌


어느 종족의 몸에서도 퍼져나가며 행성 하나를 거의 절멸시킨 암 종양


장애인이라 아카데미 입학에 차질이 있던 검사의 다리가 된 왼발과 왼다리


철수를 버리고 튀었다가 다시 히든 보스를 잡으러 가야되는 팔자가 된 왼손


빙의 특전으로 생긴 방어력 덕택에 저주받은 전설의 인피갑주로 명성을 떨치게 된 뱃가죽


빙의 특전으로 어떤 것이든 정화하는 신물이 되어버려 거유 구미호가 집착하는 간


이세계에서 다 따먹는 좆


게이타락한 전립선


떡인지 세계에서 암컷타락한 질


빙의한 곳이 아사나기 판타지 세계란 걸 알기까지 15일 남은 자궁


좀아포에서 좀비에게 먹힌 후 뇌에서 내려오는 식인욕을 중간에서 쳐내며 몸을 강탈한 척수


그 좀비를 보고 지성있는 좀비인 줄 알고 공포에 떨며 사는 오른손


데드풀 손에서 ph2의 정신나간 산성액을 뿜는 위


그런 게 보고 싶다.


써줘.